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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원조 대흥민인 스탠리 매튜스(커리어 동안 1우승)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프랑스풋볼 측에서는 ‘발롱도르’를 신설했다. 이후 투표인단이 UEFA 기자단에서 비 유럽인 기자단으로 확장된다거나, FIFA와 통합되거나 등의 수정을 거치면서 현재 2023년까지 총 45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최다 수상이라던가 최다 후보등록 및 최초의 수상자와 같이 흔한 기록들 말고 이색적이고, 또는 의외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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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노미니가 많이 된 선수는? (메시,호날두 제외)

흔히 알다시피, 호날두가 가장 많은 발롱도르 후보 선정(19회)의 영광을 누리고 있고 그 뒤를 메시가 쫓고 있다. 과거 20세기 선수들의 수명이 짧고 또 기록에 관한 관심이 최근으로 오면서 증가하는 트렌드에 맞물려 ‘발롱도르 후보 10회 이상’에 속하는 8명의 선수 중 5명이 21세기 선수이며 20세기 선수는 2명 뿐이다.

남은 한 선수는 파울로 말디니로 20세기와 21세기 모두 포디움에 들었던 몇 안되는 선수 중 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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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말디니는 1989년 1점으로 23위에 랭크되며 그 시작을 알렸다. 이후 2년간 미선정을 거쳐 5회 연속 선정 되는 등, 19년간 13회 선정되었다.

그의 최고 순위는 3위로 1994년과 2003년 두번에 걸쳐 올랐는데, 이는 93/94시즌 UCL 우승(바르셀로나 상대 0:4) 그리고 02/03시즌 UCL 우승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7회, 21세기 6회 선정 되며 어느 한쪽에 편중되지 않은 양세대에서 고르게 후보에 올랐다.

이 다음으론 크루이프, 베켄바우어, 벤제마가 12회이며 즐라탄과 부폰이 11회로 그 다음에 위치하고 있다. (10회 선정은 없으며 9회 선정된 선수론 앙리, 네이마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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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롱도르 수상자들 중 가장 노미니가 적은 선수는?

아마도 이 부분은 마이클 오웬을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현대 발롱도르 수상자들 중 가장 임팩트가 적고, 큰 대회 우승이 없던 시즌이며 전성기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오웬도 발롱도르 수상 해를 포함 3번이나 선정되며 일명 ‘발롱도르 찍먹’이라는 오명은 피할 수 있었다. 이렇게 3번 선정된 다른 선수로는, 도르트문트의 센터백이었던 마티아스 잠머라던가 AC밀란의 스트라이커 셰브첸코와 같은 선수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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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롱도르 찍먹에 그쳤던 선수는 역사상 두명 뿐인데, 소련(현 우크라이나) 출신의 이고르 벨라노프와 라이베리아의 대통령직에 역임 중인 조지 웨아가 그 주인공이다.

이고르 벨라노프는 1986년에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1986.. 꽤나 익숙한 숫자임을 눈치 챘을 텐데, 바로 멕시코에서 FIFA 월드컵이 열렸고 마라도나가 엄청난 활약으로 우승한 대회이다.

당시 비유럽인은 발롱도르를 수상할 수 없었고, 같은 해 벨라노프의 디나모 키예프는 UEFA 컵위너스컵 우승과 소련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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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점한 사람x 처음 킥 한 사람o)

컵 위너스컵 9경기에서 5골을 넣으며 대회 공동 득점왕을 차지한 공을 인정 받아 그 해에 발롱도르를 수상했지만, 이후 단 한번도 후보에 오르지 못한다.

조지 웨아는 비유럽인 발롱도르 수상 제한이 풀린 첫 해에 수상한 비유럽인 (아프리카 출신) 선수로, 해당 해에 파리와 밀란에서의 활약을 인정 받아 수상하게 된다.

번외로, 의외(?)로 후보선정이 적었던 선수로는 아버지 세대의 아이콘인 로베르토 바죠가 있었다. (총 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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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팀에서 포디움을 독식한 경우는?

이 질문을 들었을 때, 바르셀로나의 팬이라면 2010년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니에스타는 유럽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차비는 월드컵 드림팀과 월드베스트 모두 석권했고, 메시는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이 셋이 1,2,3위를 한 것에 이어 조금 더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AC밀란의 반바스텐, 굴리트, 그리고 레이카르트 삼형제를 떠올릴 것이다. 1988년 이들은 세리에a를 정복하며 네덜란드 커넥션으로 떠올랐다. 결국 97/98시즌 후 발롱도르 1,2,3위에 위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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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다음 해인 1989년에도 독식을 했다는 사실은 꽤나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이는 네덜란드 3인방 중에서 굴리트가 7위로 하락하고 대신 밀란의 수비 핵인 바레시가 2위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이들은 좋은 공격력과 훌륭한 수비로 89년 챔피언스리그에 우승하며 유럽 최정상에 올랐다.  1988년 동료들이 포디움을 석권할 때 8위에 머물렀던 바레시는 1989년 2위에 오르며 베켄바우어 이후 수비수로서 최고 순위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1990년엔 팀 내 최고 순위를 기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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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시즌에 순위가 가장 높았던 선수는?

사실 이 부분의 초고는 ‘발롱도르 1위를 하고 그다음 해부터 후보에 들지 못했던 선수는?’ 이였으나, 베켄바우어나 리오넬 메시 등 꽤나 많은 후보군이 있어 방향을 틀게 되었다. (초대 수상자인 매튜스는 그 다음해 10위에 위치하여 후보군에서 제외되었다.)

해당 질문에 대해 대답을 내놓는 사람들도 꽤나 있을 것이다. 임팩트가 강한 대회에서 이른바 ‘슈퍼캐리‘를 했고 박수칠 때 떠난 몇 안되는 선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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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딘 지단은 2006년 월드컵에서 프랑스를 결승으로 보내는데 있어 혁혁한 공을 세웠고, 비록 우승엔 실패했지만 FIFA 월드컵 골든볼을 수상하며 결국 그 해 하반기를 은퇴로 인해 뛰지 않았음에도 5위에 위치했다. 

특히 지단의 발롱도르 커리어에서 눈여겨 볼만한 부분은 월드컵이 열린 해마다 그 순위가 높았다는 점이다. 00유로에서 우승을 차지해 발롱도르 2위에 올랐던 것을 감안하면 그의 국가대표로서의 능력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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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vs 앙리 vs 네이마르 누가 더 근접했나?

발롱도르를 수상할 재능과 활약을 보였음에도 수상하지 못한 선수로 늘 거론되는 3인방이다. (사실 라울은 필자의 주관이 꽤나 들어갔다.) 반지 키스 세레머니로 유명한 라울은 메시와 호날두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 챔피언스리그 최다득점자에 랭크되기도 했었고 우승도 많았으며 스텟도 괜찮아 분명 한번 쯤은 타볼만도 한 커리어를 가졌다.

앙리 또한 아스날에서의 활약과 우승 커리어를 비추어 보았을 때, 몇몇 아쉬운 순간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결승전서 새가슴을 보였던 것과는 별개로) 네이마르는 잘 알테니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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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선수 중 가장 가까웠던 선수는 앙리라고 할 수 있겠는데, 네드베드에게 밀려 2위를 차지했던 해 보단 셰브첸코에게 밀려 3위에 올랐던 해를 더 아까워하는 팬들이 더 많다. 리그에서 30골이나 넣었고 챔피언스리그에선 10경기 5골 7도움으로 고군분투하여 충분히 수상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라울은 비교적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네이마르의 경우 2위는 없지만 3위에 두번 위치했고 또 9번의 후보선정에 성공한 반면 라울은 이보다 떨어지는 8회에 2위 한번을 제외하면 포디움에 진입한 적이 없다. 

오웬에게 밀렸던 라울은 같은 해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했으나, 당시 오웬은 리버풀이 5개의 트로피를 우승하는데 큰 활약을 한 것에 가려져 2위에 머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