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발발한 제4차 중동전쟁에서 아랍 연합군에게 기습을 당했던 이스라엘군은 전력을 긁어모아 먼저 골란고원에서 시리아군을 박살내고, 다시 방향을 돌려 남부전선의 시나이 반도를 탈환하기 위해 전진했다. 시나이반도 중간까지 진군했던 이집트군의 반격을 차례로 격파한 이스라엘군은 수에즈 운하를 역도하하기 위한 '강인한 사나이'(Abirey-Halev) 작전을 개시한다. 당시 이스라엘군은 이집트군 방어선의 틈을 뚫고 수에즈 운하 중간에 위치한 그레이트 비터 호수(Great Bitter Lake) 북부의 좁은 수로를 성공적으로 도하해서 카이로로 가는 교두보를 확보했다.
하지만 교두보 북쪽에는 아직 운하 서안으로 철수하지 못하고 포위된 이집트군 3군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에 이스라엘 참모총장 다비드 엘자르(David Elazar)는 교두보 북쪽의 위협을 제거해야 한다면서 아리엘 샤론(Ariel Sharon)이 이끄는 제14 기갑여단에게 이 지역을 청소할 것을 명령했다.
이 지역에는 사람이 거의 거주하지 않았다. 이스라엘군 정찰대는 주변을 수색하던 도중, 그나마 랜드마크로 쓸만한 버려진 농장을 발견했다. 이 농장은 과거 이집트 정부가 농업연구기지로 쓰던 곳이었다. 이스라엘 정찰병들은 기지에 설치된 농업용수 펌프에 중국한자가 적혀있는 것을 보고선 그 곳을 멋대로 '중국농장'이라고 불렀다. 사실 그 펌프는 일본제였고, 가타가나와 일본식 한자가 적힌 거였지만 그런걸 따질 여건이 아니었던 이스라엘군은 정찰병들의 보고를 그대로 받아들여 그 곳을 '중국농장'이라고 불렀다.
10월 14일 밤, 명령을 받은 샤론은 제243 공수여단의 지원을 받으며 중국농장 북쪽으로 진군했고 15일 새벽 01시에 이집트군 대전차 매복조와 접촉하였다. 전투는 15일부터 17일까지 약 이틀간 벌어졌다. 양측의 서술은 전부 제각각이지만 이스라엘군은 대략 136대의 전차를, 이집트군은 그보다 많은 300대 이상의 전차를 밀어넣었다. 양측은 서로 반드시 이 지역을 점령해야 했다. 이스라엘군은 아직 교두보가 안정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이집트군으로서는 이스라엘군이 카이로로 진군하는 것을 막아야만 했다.
전투는 정말 처절하게 진행됐다. 이 지역은 폭이 2km, 길이가 4km로 매우 좁았다. 전차들의 교전거리는 400m 내외였다. 말 그대로 먼저 보고 쏘는 쪽이 이기는 상황이었다. 전쟁 초기 빛을 발했던 이집트군의 대전차 전법은 이번에는 보전 합동으로 밀고 들어오는 이스라엘군 앞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보병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군 전차들은 숫적 열세를 승무원들의 기량으로 커버하며 이집트 기갑부대를 밀어냈다.
당시 이집트군은 의외로 적외선 탐조등, 야시경등 야시장비가 제대로 보급되어 있었지만, 뜻밖의 문제로 인해 무용지물이 됐다. 이 야시장비들은 미국의 1세대 장비와 엇비슷한 수준으로 매우 뒤떨어졌다. 그래서 증폭튜브의 결함 때문에 전투중 발생하는 섬광으로 인해 상이 번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는 훈련도가 부족한 이집트 전차병들의 고질적인 문제점과 겹쳐서 이집트군은 전투 기간 내내 야시장비의 우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포병지원에 의존하였다.
반면 이스라엘군은 오히려 야시장비가 제대로 지급되지 못한 상태로 싸웠다. 밤에 켜면 표적이 되었기 때문에 전차에 달린 탐조등을 사용할 수 없으니 아군 포병이 쏴주는 조명탄의 불빛에 의존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위의 이집트군의 구형 야시장비 문제점과 겹쳐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16일 새벽까지 이어진 이 전투에서 이스라엘군은 50여대의 전차를 손실했고 이집트군은 160대 가량을 손실했다. 손실은 이집트군이 더 많았지만 이스라엘군 역시 136대의 전차 중 기동 가능한 게 단 40대 남았을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주간에는 공중지원을 받아서 이집트군의 공세를 막아냈다. 이스라엘군 보병들은 농장 인근의 메마른 관개수로를 점령하였고 굳히기에 들어갔다.
17일 오후 17시, 2일간의 격렬한 전투 끝에 이집트군은 마침내 공세를 지속할 수 없다고 결론내리고 완전히 후퇴해버렸다. 교두보를 지켜낸 샤론은 이후 제18 기계화여단의 도움을 받아 방어를 강화했다. 이 전투에서 이스라엘 기갑부대가 피를 흘린 끝에 수에즈 운하를 역도하할 교두보는 더 확장될 수 있었고, 4차 중동전쟁의 마침표를 찍는데 큰 역할을 했다.
중국 농장 전투는 이스라엘군 전사에 악명 높은 유산을 남겼다. 이는 전쟁에서 가장 잔혹한 전투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전투가 끝난 후 모세 다얀은 전장을 방문했다. 제14 기갑여단의 암논 레셰프(Amnon_Reshef) 대령은 "이 죽음의 계곡을 보라, 우리가 여기서 무슨 짓을 한 건가?"고 중얼거렸다.
다얀은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전쟁이나 전투를 여러번 겪어왔지만 이런 최악의 전쟁은 현실에서도 영화에서도 본 적 없다. 이 광야에서는 광대한 살육이 펼쳐졌었다.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하겠다."라고 말했다.
전투의 지휘관이었던 샤론 또한 "유대인과 이집트인들의 시체가 나란히 누워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불타는 탱크에서 뛰어내리다가 죽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 어떤 사진도 현장의 공포를 포착할 수 없었고,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담을 수 없었다."라고 고백했다.
개추 바로 박음 - dc App
저거이후 이집트 3군단 포위된건가! - dc App
전차 시뮬 해본 적 있었는데 적외선 탐조등 야투경 끼고 보면 어그로 장난아니더라 - dc App
워썬더보다 더 전문적인 게임인갑네 이름이 뭐야?
steel armor blaze of war - dc App
니 어제 바드르 전투 어쩌고 올렸다 글삭한애 아니냐? 글 쓰는 티도 비슷한데 세세한 내용 죄다 틀린거까지 비슷하네 - dc App
아닌데요 - dc App
1. 포위된 3군 청소하라고 14여단 투입했다 X 중국농장 전투 발발시점은 도하작전 이전이고 선제적으로 제압들어간거. 14여단 투입 당시는 커녕 끝날때까지 3군 포위는 완료되지 않음 - dc App
2. 이스라엘군이 카이로로 진격할거란 건 이집트도 이스라엘도 딱히 생각하지 않았고 그당시 이집트군 우려는 이새끼들이 포위 완료하고 섬멸 + 수에즈 시 딸지 말지였음 - dc App
3. 대전차전법이 힘을 못썼다? 티르투르로의 대학살 이끌어낸게 이집트 대전차전술인데 대체 뭘 근거로 이런 소리를? - dc App
4. 건너간 애들이 교두보 확대하며 SAM 포대 조지기 전까지 이스라엘 공중지원은 위축된 상황이었고 주간 공세는 이집트 작계가 측면 노출한 병신이었던거 - dc App
5. 14일 샤론의 진군은 티르투르로 뚫고 부교 보내는게 목표였고 중국농장 북쪽까지 공격한바 없음 공세는 티르투르로도 못뚫고 주저앉았으니 - dc App
그랬군요. ㅈㅅ합니다
뭐야 그럼 맞는게 뭐여
그리고 6. 보전합동으로 밀고 들어오는 이스라엘 어쩌고 했는데 이스라엘은 이때 좁은 길목에 공수여단이랑 기갑부대 축차투입했다 갈갈됨 - dc App
7. 중국농장전투에서 이집트군의 주요한 성과는 죄다 야간전에 나옴 탐조등 번짐현상이 없었던건 아닌데 없는것보단 나았고 이집트 야간전 능력이 이스라엘보다 뛰어난건 맞음. 최소한 야시장비 덕택에 공수여단 갈아버린건 맞아서 톡톡히 역할한것도 맞아 - dc App
님 군갤식 질문글 당한거에유 - dc App
뭐냐 이거 이새끼 다 틀린거내?
엉터리로 적으면 잘 아는 몇명이 와서 가르쳐주네ㅋㅋㅋㅋㅋㅋ 질문 개쉽노
그래서 누가이김? 이스라엘이 이긴거임?
광대한 살육 사망자 1000명도 안됌
ㅇㄷ
ㅎㅎㅎㅎ - dc App
또 좆스라엘 답게 오바떠네
댓글보고 뭔가 이상하다 했더니 이스라엘 갈려나간 전투였나
신은 이상황을 관전하고있다는점
군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