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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내가 딸치는 방법조차 알지 못했던 새파란 병아리 시절

우리 동네에는 유희왕 카드 게임이라는 일본 문화가 성황리에 유행했었고

시대의 흐름했던 민감했던 당시의 나 또한 그 유행에 온몸을 내던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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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악한 일제 문화의 선봉 대장이었던 만큼, 당시 유희왕은 집안의 재력이 곧 덱의 화력으로 이어졌었다


본인 집안은 당시 기준으로는 나름 잘 살았던 편이라 주어진 용돈으로도 충분히 덱을 만들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한 불가촉 천민들은 밀레 이삭 줍는 아낙네처럼 문방구 주위를 서성이며 

중산층의 카드 찌거기를 주워 먹는 것으로 비참한 삶을 연명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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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재력의 핵심이 있는 것이 당시에는 고가였던 이 캐릭터 팩이었는데


이 캐릭터 팩을 지른 얼라들은 동봉된 룰 북과 정식 듀얼판을 통해 

상당히 클린하고 고상한 듀얼을 할 수 있었던 반면


그런 지식이 통용되지 않는 아파트 계단 자리 무법지대에선 

지 좆대로 효과와 룰을 창조하는 우매한 머저리들로 인해

야만스러운 주먹다툼이 벌어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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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파트 계단 자리가 서늘하고 평평해서 상당히 인기 있었다


하지만 서로의 목소리가 크게 울리거나

누가 올때마다 듀얼이 중단되는 것이 약간의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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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생각나는 인상 깊은 썰을 하나 꼽자면


잠자는 아이라는 카드에 개재된 상대방을 영원한 잠에 빠뜨린다는 텍스트를

블리자드 드래곤의 기동 효과로 해석한 어떤 창의적인 개새끼 때문에 

우리 단지 내에서 <잠자는 아이>는 몬스터 버전 빛의 봉인검으로 칭송받곤 했다


이의를 제기하는 영민이들도 몇 명 있기야 있었지만

고작 몇 명 남짓의 영민이들이 아파트 단지 내의 모든 진구를 설득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던지라

오히려 진구들이 영민이들을 갈구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내가 다수의 의견으로 소수가 묵살되는 광경을 본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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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되짚어 만든 당시 본인이 쓰던 덱)



호랑이 없는 굴에 토끼가 왕이라고 했든가

그런 병신들 사이에서 본인은 유일지존 듀얼킹으로 통했었다


일단 가진 카드의 가짓수. 레어도부터가 압도적이었고 


당시에는 산만큼 수북히 쌓아놓은 카드를 김밥처럼 들고다니던 게 유저 지능 평균이었던 터라

실전 카드으로 압축된 내 덱이 상대적으로 강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그 당시 동네에서 본인의 입지는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카드에 보호 필름 씌우는 놈들은 좆게이 새끼라는 내 발언에

보호 필름 쓰는 놈들은 화장실에서 같이 볼일볼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했고


옆동네에서 내게 덱 빌딩을 의뢰하는 불온한 로비에

우리 동네 애들이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내 소유권을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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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내가 유일하게 못 이겨먹었던 건 라바 골렘을 필두로 한 고문덱


하지만 이 거지발싸개 덱을 쓰는 놈들은 애들 무리와 몇 번 듀얼하다 보면 

알아서 사회적으로 도태되기 마련이었던 지라 

내버려 두면 어느 샌가 사라져서 그닥 위협적이진 않았다


그렇게 내가 <면목동의 바르바로스>라고 불리며 

학교와 동네를 평정하고 있기를 얼마간


어느날 갑자기 우리 동네로 이사온 어느 이름 모를 소년에 의해

영원할 것만 같았던 내 천하는 너무나도 어이없게 끝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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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화면



당시 판도라 TV를 통해 신규 지원 카드를 어깨너머로 훔쳐볼 수밖에 없던 우리들 앞에

녀석은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냈다


그 놈이 우리 앞에 자신만만하게 빼든 건 무려 데스티니 히어로 덱

것도 흔해 빠진 한글 따위가 아닌, 우리가 화면 너머로 군침 흘리며 지켜보던 일본판 카드였다


문방구의 신규 카드 입수가 상당히 느린 편에 속했던 우리 동네에서 

데스티니 히어로라는 최신 문물이 가지는 위상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고

생전 처음 보는 카드들에 의한 현란한 콤보는 내 혼을 빼놓기에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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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볼때마다 치가 떨리는 이 애미 뒤진 새끼


그 신출내기는 우리가 일본 문화에 무지하다는 걸 약점 삼아

카드 효과를 지좆대로 지어내는 것에 능통했는데


둠가이의 전투로 파괴시 부활 효과를, 전투든 효과든 일단 파괴되면 그 즉시 부활한다며 거짓된 주둥이를 놀렸고

가드 페널티는 그 몬스터가 묘지로 가기 전까지 무한히 지속되는 효과라는 거짓부렁으로 

나의 때묻지 않은 순진한 마음을 사정없이 유린했다


당시에는 인터넷 문화의 발달이 더뎌, 너석의 구라를 검증할 뾰족할 방법ㅗ 없던 터라

결국 나는 애지중지 모은 레어 카드 7여장을 안티룰로 강탈당하고

듀얼킹의 칭호도 강제로 빼앗기게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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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다시 일어날 수 있었을 테지만


생전 처음 맛 본 압도적인 패배감. 그로인한 멍울은 애석하게도 상당히 오래갔고

결국 나는 그간의 영광을 지키기 위한 방어 기제로 한동안 듀얼에 대한 완전히 흥미를 끊게 됐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녀석도 어설픈 일본어 실력 때문에

본인의 카드가 진짜 그런 효과라고 착각했던 걸지도 모르지만

이미 지나간 과거를 추궁할 순 없으니, 결국 진실은 오리무중.


고요한 저녁. 문득 그런 덧없는 추억이 떠올라 한번 끄적여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