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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년대 이전 

이 당시 한국만화는 김산호 선생의 라이파이나

소년만화 주인공 캐릭터의 원조격이었던 독고탁의 이상무 등

일부 두각을 드러낸 작가들이 있었으나

태반이 일본만화의 저질 파쿠리에 

합동만화 출판사라는 초대형 만화공장 카르텔에

작가들이 헐값에 갈려나가는 만화의 암흑기였음

툭하면 YMCA에서 학교 운동장에서 만화책 모아다

불 싸지르는 바람에 만화=유해매체 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있기도 했고

불행중 다행히도 고아서 썩어들어가던 합동만화출판사가 

뇌절에 뇌절을 거듭한 끝에 도산해서 사라지고 3S정책을 적극적으로

민 전두환 정권이 탄생하면서 우리나라 만화의 1차 황금기가 시작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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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년대 극화와 대본소 만화 그리고 1세대 순정만화의 시대


80년대로 접어들면서 한국만화계에 그야말로

혁명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바로

공포의 외인구단

똘이장군류의 프로파간다 만화 아니면 독고탁류의 소년명랑 만화가

주력 메타이던 만화계에 정통 극화 라는 신기원을 불러일으킴

이현세의 대히트는 삽시간에 만화의 주 소비층을

어린이에서 성인으로 변화시키고 전국에 만화책방이 증홍하는 계기가 됨

이 시대에 두각을 나타낸 작가들이 바로 허영만 박봉성 고행석 김철호 등

1세대 대본소 작가들 

또한 경제가 급성장하고 소비문화가 발전하면서 여성들의 소비력도

과거에 비해 급격하게 증가했고 그로인해 여성향 순정만화 시장도

크게 성장하게 되는데 일본의 유리가면과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영향을

짙게 받은 김혜린과 황미나 등 1세대 순정만화 작가들의

초기작들이 이 당시 큰 인기를 얻었음


물론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서슬퍼런 정권의 검열의 칼날의

한계로 질적상승에는 한계가 있었고

일본만화의 파쿠리와 불법해적판의 범람이라는 환경적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했음

또한 대본소 공장제 생산 시스템이라는 흑역사가 시작된 시기이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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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년대 초 한국만화 1차 르네상스


80년대를 통해 이현세 박봉성 허영만 등의 작가들이

이끌어 가던 하드보일드 극화 시장이 매너리즘에 부딪히면서

점점 대중들의 눈높이는 높아져 가고

보다 새로운 그리고 세련된 만화에 대한 수요가 높아져 가기 시작했음


1992년 창간한 소년챔프는 이러한 한국만화의

질적 상승에 대한 욕구가 폭발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당시 소년챔프와 아이큐 점프 투톱체제를 통해 

이제는 우리나라 만화계의 원로들이 되어버린 3세대 만화 작가들이

대거 등용문에 오름 


대략적으로 열거하자면

이충호

문정후

이명

박무직

임재원

김성모

박성우

손희준

박산하

이빈

원수연

권가야

박희정


등등


이 당시 한국만화는 절대적으로 넘어서야할

거대한 두개의 벽에 마주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드래곤볼'과 '슬램덩크'였음


넘사벽으로 아득하게 만화의 수준을 앞질러버린

이 두개의 대작을 뛰어넘는 것은 어떠한 사명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당시 한국 만화가들은 어떤 의미로는 짙은 영향을 받았고

어떤 의미로는 오리지널리티를 확보하기위해 노력했음


마이러브 단행본 판매량이 드래곤볼을 (일시적으로)뛰어넘었음이

세일즈 포인트가 되었을 정도니


여전히 일본만화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진 못했지만

흑역사로 가득했던 7080년대의 자성으로부터 시작한

한국 만화의 질적상승에 대한 욕구는 실제로 과거에 비해

상당한 발전가능성을 보여주면서

훨씬 자유분방해진 사회 분위기에 맞게 여러가지 과감한 소재와

시도를 통해 발전해 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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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당시 천재 고고생으로 불리던 고2 이명진이

선보인 당시기준으로는 매우 트렌디한 일본만화 그림체와

연출 작법은 삽시간에 한국만화의 메타를 뒤바꿔 놓기에 충분했음

어마어마한 스포트 라이트를 받으며 기대를 한몸에 모았던

이명진의 만화가로서의 이후 행보는 알사람들은 다 알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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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손희준같은 작가들을 위시로 훗날 씹덕코드로 통하게 되는

미소녀와 판타지 하렘물들의 원시적 시초가 되는

작품들도 이 당시 대거 선보이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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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향 순정만화들도 이 당시 많은 변화를 맞이했는데

이전까지의 유리가면 캔디류의 눈알에 별빛 백만개 

반짝반짝 류의 구시대적 느낌을 타파하고

90년대를 지배한 허무주의적 감성과 여권신장을 반영한

보다 날카롭고 심플한 그림체와 보다 주체적이고 진보적인

캐릭터와 서사가 주를 이루게 되었음 


그렇게 조금씩 언젠가 일본만화를 넘어설 날을 바라보며

한걸음 한걸음 성장하던 한국만화에 위기가 찾아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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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여점의 등장과 양SAN형 만화의 범람


90년대 중반즈음을 기점으로 만화와 비디오테이프를

200~300원 정도에 빌려주는 이른바 대여점이라는 

새로운 만화 소비방식이 등장하면서

우리나라 만화는 위기에 부딪히게 됨


대여점이 위기랑 뭔 상관이냐? 


모든 문제는 결국 돈임


여러 어시 써가며 힘들게 퀄리티 신경써가면서

주간연재하는 만화랑

대충 도장으로 찍어내는 만화랑 판매량이 동일하다면

과연 전자에 해당하는 작가는 창작의욕이 생겨날까?


대여점이 전국적으로 보급된 이후

만화책은 '소장'이라는 개념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하게 됐고

웰메이드 만화건 마구 찍어낸 저질 대본소 만화건

판매량은 거의 비슷하게 권당 1만부(당시 전국 대여점의 대략적 숫자)에

수렴했음 


지금처럼 쿠키수입이나 광고수입 2차판권

하다못해 굿즈판매 등 만화가가 수익을 창출할 길이

널리고 널려있는 시대와 달리

당시 만화가들은 주간 연재원고료+단행본 판매 인세 외에

수입을 기대할 수 없는 환경이었고 


게다가 거의 대부분의 출판만화가들은 최소 3~4명정도의

어시를 굴려가면서 작업하던 상황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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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만화나 아래의 만화나 판매량에 별 차이가 안나던 시대

아니 많이 찍어낸 만큼 아래에 해당하는 만화가는 떼돈벌던..


이러한 시스템을 악용한것이 바로 그 악명높은 김성모

당시 주간연재 기준 단행본 1권의 출간 텀은 아무리 짧게 잡아도

2개월 보통 3개월 1년에 최대 4권정도가 출판되는게 정석이었는데

김성모는 공장을 차리고 그야말로 만화를 찍어내다시피해서

단행본이 무려 1주일에 1권 텀으로 출시되는 기염을 토해냈음

오죽하면 당시 유행하던 말이 김성모 만화는 읽는 속도보다

나오는 속도가 빠르다는 말도 있었음


이렇게 떼돈을 버는 모습을 목격한 많은 만화가들이

김성모 시스템을 벤치마킹하고 마치 오늘날 일진물의 범람마냥

너도나도 기본 판매량은 보장해주는 '학원물'에 뛰어들었음

이본토 손태규 최병열 등등..이당시 만화대여점 도서진열대는

미친듯이 쏟아져나오는 저질 학원물들과

마찬가지로 쏟아져나오는 한유랑류의 여초딩 중딩용 인소감성

로맨스물로 홍수를 이뤘고


많은 만화가들이 이런 환경에서 창작의욕을 잃거나

절필을 선언함 


그리고 본격적인 인터넷 시대가 시작되면서 

PC방이 대중화 되고 10대 20대들의 즐길거리가

만화에서 PC게임과 인터넷으로 전환되면서

그렇게 우리나라 출판만화는 서서히 조용한 죽음을 맞이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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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가던 90년대 출판만화의 전성기의 불꽃을 마지막으로

화려하게 불태웠던 양경일의 아일랜드를 마지막으로

양경일 듀오는 일본으로

이충호와 문정후 등은 학습만화로

양재현과 임재원 등은 아득바득 본인 간판작을 이어가며

그렇게 한국만화의 불꽃은 잠시 빛이 사라지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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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00년대 웹툰의 시작과 학습만화의 대 전성기


 그렇게 학습만화가 조용한 침몰을 맞이한 후

한국 만화는 의외의 새로운 생존방식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웹툰


물론 초창기 웹툰은 이전의 출판만화 시장에 비하면

매우 작디작은 미미한 규모에 불과했고

그 누구도 웹툰 시장이 오늘날처럼 커질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음

초기 웹툰작가들 또한 기존 출판만화가들과 계보가 뚝 끊어진 채

(양영순 같은 일부 예외를 빼고)


기존의 출판만화와는 사뭇 다른 감성의 4컷만화 혹은 생활툰

옴니버스 물등이 주류를 이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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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04년 양영순이 1001을 통해 스크롤을 활용한

웹툰연출의 새로운 장을 열면서

웹툰은 본격적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장편으로 선보이면서

지금과 같은 양적 성장을 맞이 하게 되었음


그리고 죽어가던 한국 출판만화 시장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리스로마신화 마법천자문 살아남기 시리즈 

코믹메이플 스토리 등 어린이 대상 학습만화를 기반으로

어마어마한 풍요를 누리게 되었고


그 후로는 여러분들이 아는 이야기 그대로

조석 강풀 양영순 이상신 국중록 강도하 손재호

등의 웹툰 1세대 1.5세대 작가들이

웹툰시장을 키웠고

이어 등장한 삭,순끼,시우,김규삼,박용제 등이

웹툰의 황금기를 열고 

박태준의 등장을 거쳐 에이전시 기반의 현재까지가

내가 기억하는 간략한 한국만화의 역사와 계보임


물론 나는 업계인도 아니고 그냥 나이든 평범한 만화 독자에

불과하므로 잘못된 사실과 뇌피셜이 가득하지만

그 어떤 의미부여보다는 한번 재미로 읽어볼 수 있는

그런 글이었길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