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량 문제로 나눠서 씀


<제2안> 중층 금당, 680018피스, 6.4m x 6.1m x 2.1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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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제1안과 마찬가지로 경루에서 부품 하나가 누락되어 피스 수에 이를 포함했음

제2안은 현실성은 떨어지지만, 웅장함에 더 큰 비중을 두었음

목탑 뒤 건물들이 금당인데 중층이 되면서 제1안보다 더 거대해졌음

전반적으로 1995년 복원안과 비슷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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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를 비롯한 신라의 간판 유적 복원은 경주시의 숙원사업임

2010년대에 한 번 추진했다가 유네스코의 반대로 엎어졌는데,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다시 탄력이 붙었음

다만 일단 디지털 복원과 기단 정비만 하고, 반응이 좋으면 실물 복원까지 추진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듯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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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가 황룡사 복원을 강력히 추진하려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임

경주는 천년수도였던 만큼 수많은 유적이 있지만 다 터밖에 없음

남아 있는 건물이어봤자 첨성대, 불국사 정도이고 그나마 동궁과 월지, 월정교가 복원되면서 볼거리가 생긴 건데, 그마저도 대량의 관광객을 유치하기엔 부족한 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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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유적이 남아 관광객이 몰리는 교토와 비교하면 더욱 차이가 남

물론 경주는 1~10세기까지 수도였고, 교토는 9~19세기까지 수도였으므로 교토는 건물이 많이 남아있는 게 당연함

그래도 교토는 관광객이 너무 몰려 제발 그만 좀 오라고 하는 판에, 같은 천년수도로서는 많이 비교되는 게 현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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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폐허는 폐허만의 맛이 있다고는 하지만 보통 허허벌판엔 사람이 찾아오지 않음

따라서 경주시 입장에선 관광객을 유치할, 제대로 서 있는 관광지가 절실함

교토 바로 옆 나라도 많은 고대 건물들을 복원해 관광객을 유치하니 그러고 싶은 마음이 더욱 굴뚝같을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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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황룡사를 그 자리에 복원하는 것에 대해선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두 가지 우려되는 점이 있음

첫째는 복원 황룡사의 시점 문제임

남아 있는 최종 유구는 고려시대 4차 가람이고, 황룡사를 그 자리에 복원한다면 초석을 훼손할 순 없으니 아마 고려시대 가람으로 복원될 것임

현재 진행 중인 기단 정비 역시 고려시대 가람을 기준으로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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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고려시대 가람으로 복원해놓고 '신라시대 황룡사'라고 홍보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임

어쨌거나 사람들은 황룡사 하면 신라를 떠올리니까

그냥 정직하게 '고려시대 황룡사'라고 홍보하면 좋을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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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단청 문제임

조선 이전 한국 단청이 정확히 어땠는지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인데, 기껏 건물은 잘 지어놓고 온통 조선식 단청을 칠하기 일쑤임

자료가 부족하다는 것도 원인이지만 조선식 단청만을 한국의 단청이라고 생각하는 대중의 인식과, 조선식 단청에 익숙한 단청 장인도 원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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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경우엔 고려시대 가람 위에 건물을 지어 놓고, 조선식 단청을 칠한 다음에, 신라의 황룡사라고 홍보하는 황당한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음

제발 이러지 않았으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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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제작을 위해 자료 조사를 하며 상당히 혼란스러웠는데, 지금 추진하고 있는 기단 정비 사업의 경우 현재 남아있는 고려시대 유구를 기준으로 하고 있음

그런데 그 위에 올라갈 중문의 ar복원안을 보면, 통일신라시대 평면을 기준으로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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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답사를 간 2월 시점에선 중문과 남회랑 기단 정비 공사가 진행 중이었고 목탑과 중금당 등 주요 건축물의 디지털 복원도 진행될 듯함

황룡사가 실물 복원되더라도 그 시기는 빨라야 2020년대 후반에서 2030년대일 가능성이 높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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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실물 전함 창작만 해왔던 나로서는 황룡사 프로젝트는 일탈과도 같은 작업이었음

딱히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입대 전에 시간도 많으니 한 번 만들어볼까 한 게 여기까지 왔음

문화재청 간행물이나 논문을 참고하긴 했지만 뇌피셜도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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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을 하면서 어렵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었음

규모가 클수록 오히려 표현하기는 쉽고 전통 목가구 건축이라는 게 모듈화를 잘 하면 돌려 쓸 수 있는 게 많기 때문임

뼈저리게 느낀 건 노트북 램을 8기가가 아니라 16기가 이상으로 했어야 했다는 후회였음

그리고 전통 건축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구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음

대부분 뇌피셜로 땜빵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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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 복원에 대해 말하자면, 레고에서 생산하지 않은 색의 부품이 대량으로 쓰이므로 돈이 아무리 많아도 불가능함

레고랜드 같은 데에서 한 번 만들어 봅시다 하면 가능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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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가상의 모델이지만 실제 구조를 고려한 미니피규어 스케일 황룡사 모델은 내가 한국에서 처음일 듯함

그러면 5월에 내 주종인 전함 창작, 아이오와로 돌아오겠음




미니피규어 스케일 황룡사 창작1 (stud.io, 완성)


약 한 달 동안 이어졌던 구조적으로 정확한, 미니피규어 스케일 통일신라 시기 황룡사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었음

모델링 자체는 지난 29일 대지 창작글을 올린 날에 끝났고 그동안 렌더링만 열심히 돌렸음

렌더링 하나 돌리는 데 80분이 걸리니 시간이 좀 걸렸음

렌더링 시간을 제외한 총 제작 시간은 220시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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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 앞서 완성본 렌더링은 위 이미지를 참고해 간단하게 단청을 칠한 상태로 돌렸음

비록 통일신라시대의 정확한 단청은 알 수 없지만 기본적으론 붉은색이 위주인 주칠단청을 썼다는 게 유력한 편임




<제1안> 단층 금당, 638899피스, 6.4m x 6.1m x 2.1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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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더링 돌리면서 알았는데 내가 파일을 잘못 가져온 건지 중금당에서 12피스, 경루에서 1피스가 사라졌음

아마 원본 파일에서 잘못 없애버린 거 같은데, 피스 수는 이 누락된 13피스를 포함한 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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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는 신라를 대표하는 국가사찰로 진흥왕 시기인 553년 창건되어 556년 완공되었음

전설에 의하면 원래 황룡사 자리엔 왕궁을 지으려 했는데, 건설 도중 갑자기 황룡이 나타나는 기적이 일어나 왕궁을 사찰로 바꾸고 이름을 황룡사로 지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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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황룡사는 칠처가람 중 하나로, 신라에서 가장 중요한 사찰 중 하나였음

칠처가람이란 석가모니와 그 이전 시대의 부처인 과거칠불이 아주 옛날에 신라 땅에서 세운 일곱 곳의 절을 의미함

물론 당연히 사실은 아니고, 불교의 정통성을 강화하고 신앙심을 북돋기 위해 당시 만들어진 설화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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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는 70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존속하며 모습이 여러 번 바뀌었는데, 시기별로 크게 4차 가람까지 구분함

가장 처음 창건되었을 때인 1차 가람은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승방과 원동서회랑, 남회랑 및 중문으로 둘러싸인 3원식 구성이었고 중원엔 초기의 중금당과 작은 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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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574년 장육삼존불상을 주조하였고, 584년 이를 봉안하기 위해 처음의 금당을 허물고 거대한 금당이 지어짐

이 금당이 지금 모델링에서 보이는 중금당임

비슷한 시기 서원과 동원에 각각 서금당과 동금당이 지어지고, 그 유명한 9층 목탑이 승려 지장의 건의로 지어져 645년 완공됨

636년 백고좌회가 개최되었다는 기록을 볼 때 6세기 말~7세기 초 북승방의 가운데를 잘라내고 강당도 지어진 것으로 보임

이것이 2차 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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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황룡사는 다시 많은 변화를 거침

우선 원동회랑과 원서회랑을 철거해 삼원식 구성을 폐지하고 하나의 거대한 가람을 구성했음

또한 서금당보다 컸던 동금당을 서금당과 같은 규모로 다시 지었고, 8세기엔 황룡사 대종이 주조되면서 종루와 경루가 지어졌음

이에 따라 원래의 남회랑과 중문을 철거하고 남쪽에 새로운 중문과 남회랑을 지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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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엔 9층 목탑을 처음부터 새로 지었고, 그 사이 동금당과 서금당 역시 여러 차례 다시 지었음

이것이 3차 가람이고, 내가 만든 황룡사임

황룡사 복원안 이미지에서 볼 수 있는 황룡사의 모습은 8~9세기가 되어서야 처음 완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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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가람은 고려시대 가람임

강당이 정면 10칸에서 9칸으로 축소되고, 동, 서승방이 철거되어 동, 서회랑이 생김

중문 역시 새로 고쳐 지었으며, 하나의 긴 건물이었던 강당 양옆 건물은 여러 건물로 나뉘게 됨

또한 9층 목탑을 처음부터 다시 지음

종루와 경루도 다시 지어 평면이 바뀜

이것이 현재 남아있는 황룡사 유적의 모습임

즉 지금 남아있는 황룡사 유적은 신라의 황룡사가 아닌, 고려의 황룡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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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는 동궁과 월지 바로 옆에 붙어있으며, 발굴조사 결과 남문 앞 거대한 광장은 동궁과 월지까지 이어져 있음이 드러났음

이 광장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각종 왕실 행사 및 황룡사 행차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임

이는 황룡사가 일반적인 사찰이 아닌, 왕실과 깊게 연관된 사찰임을 암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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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멸망한 이후로도 황룡사는 존속했으며 고려 역시 불교 국가였으므로 고려시대에도 황룡사는 번성했음

그러나 1238년 몽골의 침입으로 황룡사가 불타면서 완전한 폐사지가 되었고, 다시는 복구되지 못해 지금에 이르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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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군에 의해 파괴되었다는 점에서 몽골만 아니었어도,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아마 몽골 침략을 견뎠어도 고려 말 극성이었던 왜구, 임진왜란을 버티기 어려웠을 테고 기적적으로 전란을 견딘다 한들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자연스레 폐사되었을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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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지의 본격적인 발굴은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음

이때 황룡사지에 있던 민가를 모두 헐고 부지를 정리했는데, 도굴꾼들의 좋은 타겟이 되어버렸음

1964년 도굴꾼이 목탑의 심초석 아래 사리장엄구를 모두 훔쳐 달아났으나 1966년 기적적으로 붙잡혀 사리장엄구를 되찾을 수 있었음

그러나 사리와 사리함은 사라져 지금까지도 오리무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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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되찾은 사리장엄구에 적힌 찰주본기로부터 황룡사 목탑의 높이가 225척이라는 명시적인 기록을 얻어 복원안 작업에 큰 도움을 주게 됨

1970년대부터 제대로 된 발굴이 시작되어 금당 치미 등 여러 유물을 발굴해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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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2012년 황룡사 복원안과 비슷하고, 내가 생각하기에 더 현실성 있는 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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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량 문제로 제2안은 다음 글에 올리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