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글을 거의 안쓰고 있는데, 경복궁 관련해서 말들이 많길래 경복궁을 중건한 인물인 흥선대원군에 대해 말해보려 함.
들어가기에 앞서 나는 흥선대원군에 대해 별 악감정이 없으며 오히려 그가 시행한 여러 개혁정책들은 꽤나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함. 하지만 그는 경복궁 중건이라는 큰 실수를 했고, 결과적으로 이것으로 인해 고종에게 권력을 넘겨주게 되었음.
[광화문과 북악산]
다만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오로지 문화재와 건축에 국한된 부분이지 이것으로 흥선대원군에 대한 비판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님. 역사에 가정은 없기에 그가 집권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문화재들이 지금 남아 있었을지 여부는 알 수 없음. 다만, 흥선대원군에 대해 경복궁을 중건했다는 사실만으로 치켜세우는 것은 전체를 보지 못한 부분이라고 생각함.
[안동 호계서원, 산청 덕천서원, 안동 묵계서원, 밀양 칠탄서원. 사진 : 문화재청]
흥선대원군이 실시한 가장 대표적인 정책은 서원철폐령이었음. 서원은 조선시대에 지방권력을 틀어쥐고 갖은 횡포를 부리고 있어 지방 관아에서도 어쩔 수 없이 놔두고 있었음. 특히나 세도정치기 삼정의 문란 등으로 백성들의 삶이 극도로 궁핍해져 가고 있던 상황에, 서원의 악행은 묵과할 수 없던 부분이었음. 따라서 흥선대원군은 47개소의 서원을 제외한 모든 서원을 훼철시킴.
정책적 측면을 떠나 문화재적 가치로만 접근하자면, 성리학을 이데올로기로 삼았던 조선에서 서원은 궁궐 다음으로 권위 있는 건축물이었고, 또한 그 수도 많았기에 당시에 1000개소가 넘던 서원을 극소수만 남기고 모조리 없앴다는 것은 조선 건축의 한 뿌리가 사라진 것과도 같음. 훼철 이후 여러 서원들이 재건되었는데, 그 면모를 살펴보면 입지나 배치가 훌륭한 곳들이 많아 대원군에 정책에는 수긍하면서도 50년만 더 버티지 하는 생각도 들긴 함. 특히나 한국전쟁 중 서울 근교의 우저서원, 파산서원, 사충서원 등 남아있던 47곳 중에서도 소실된 것이 많은 점은 더욱 안타까움.
[경복궁 흥례문]
가장 중요한 부분은 경복궁임. 경복궁은 1592년 소실된 이후 몇몇 왕들이 찾기는 했으나 270년간 출입이 통제되어 있었음. 반대로 말하자면 조선 초기 궁궐의 형태가 온전히 남아있었음을 뜻함. 조선 초기는 경복궁-창덕궁 양궁 체제로 운영되었는데, 태종의 경우에는 창덕궁에서 주로 머물렀으나 세종 등의 경우에는 경복궁을 선호하였음.
따라서 경복궁에는 조선 초기, 특히 세종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었음. 세종조 집현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많은 과학적 성과들의 흔적이 1865년까지 경복궁에 남아 있었는데, 옥루, 앙부일구 등이 설치되어 있던 흠경각과 일영대, 천문관측을 하는 장소였던 간의대 등이 남아 있었음.
그러나 경복궁 공사가 시작되며 이것들은 모조리 헐리고 말았음. 이를테면 간의대 옥석의 경우에는 근정전 뜰의 품계석으로 쓰였음.
또한 정조실록에 따르면 정조가 "(전략) 우리 나라에서 제일 웅장한 건축인데 지금껏 우뚝 솟아 있어 마치 영광전과 흡사하다."고 하였으며 같은 기록에서 경복궁 터를 다녀온 호조판서 심이지가 보루각 터를 둘러보았으며 흠경각은 들보와 서까래가 썩었다고 했는데, 이는 1794년의 기록임. 이 흠경각은 광해군 때인 1613년 재건한 것인데, 당시까지 남아있었던 것으로 보임. 다만 효종조 잠시 언급되었다가 이후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광해군이 폐위된 이후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았던 것 같음. 물론 정조 때에도 이미 상태가 그리 좋진 않았던 것 같지만, 중건 시점이 이로부터 70년 뒤이니 남아 있었을 가능성도 있음.
[경복궁 경회루]
흔히 조선 초기 경회루에 대해서는 돌기둥에 용 조각이 있었음에 주목함. 성종조에 조각된 이 돌기둥은 임진왜란 이후 방치되다가, 중건 시점에는 48개 중 3개만 서 있고 나머지는 무너져 있었다고 함.
중건 시점에서 용 조각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돌기둥들이 화재로 상해 사용할 수 없는 상태라서 계체석으로 썼다고 적혀 있음. 아마도 경회루 기단의 돌들이 검게 변한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옛 돌기둥들을 깎아 재사용한 것으로 보임.
물론 불에 탔다고 하더라도 조각은 분명 남아 있었을 것임.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다른 용도로 재사용되었기에 그 모습을 알 길이 없음. 현재의 돌기둥들은 삼청동과 송계별업 등지에서 새로 떼어 와 제작한 것들임. 가끔 가다 용 조각은 오래되서 지워진 것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정보임.
한편, 경복궁을 재건하던 당시 근정전과 경회루의 기단과 월대는 다시 제작되었음. 당시 기록을 보면 외형은 약간 손상이 있었으나 돌을 뜯어내니 안쪽은 물이 스민 흔적이 없이 완벽했다고 함. 기단 안쪽을 채우던 돌들은 그대로 사용했다고는 하나 월대와 기단은 새롭게 조성한 것으로, 조선 전기의 흔적이 아님.
[경희궁 흥화문과 숭정전. 사진 : e뮤지엄]
하지만 무엇보다도 큰 손실은 바로 경희궁임. 경희궁은 비록 직전 왕들인 헌종-철종조(1834-1864)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으나, 헌종 이전의 순조를 비롯하여 인조, 숙종, 영조 등 많은 임금들이 애용하던 궁궐이었음. 지금은 터조차 남아있지 않지만, 조선 후기에는 창덕궁과 경희궁 두 궁궐을 중심으로 운영되었으며, 남아있었다면 큰 역사적 가치를 가졌을 것임.
그러나, 경복궁을 중건하며 부재를 충당하기 위해 경희궁이 헐리게 되었음. 따라서 경희궁은 위 사진과 같이 5개 전각을 제외한 모든 건물들이 사라졌음. 막상 헐고 나니 상한 목재가 많아 대부분 사용하지 못했다고 함.
경희궁은 이후 망국 이전까지 이따금 군사를 사열하는 등의 장소로 쓰이다가 망국 이후 남은 건물들은 모조리 팔려나가고 그 터에는 서울고등학교가 들어섰음. 숭정전은 일본 사찰에 팔렸다가 지금은 동국대학교 정각원으로 쓰이고 있고, 정문인 흥화문은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의 신사인 박문사의 정문으로 쓰이다가 해방 이후 그 자리에 들어선 신라호텔의 정문으로도 오래 서 있었음. 흥화문은 1988년이 되어서야 경희궁으로 되돌아왔으나, 옛 터에 구세군 건물이 들어서 있어 원래 자리는 되찾지 못했음.
참고로 박석 갖고도 시끄러운 거 같은데, 내 추정으로는 임란 이전까지는 박석이 없었을 것으로 보임. 현재 경복궁 내에서 박석이 사용된 장소는 근정전 앞마당뿐임. 그런데 영건일기에 따르면 경희궁과 안현(안국동고개. 현재 광화문에서 안국역으로 넘어가는 길)에 깔려 있던 박석들을 싸그리 철거해서 들고 왔고, 그것도 모자라 강화에서 새로 떼어 왔다고 함. 애초에 박석은 바닥에 까는 돌이니 조선 초기부터 있었다 한들 굳이 철거한 후 다시 깔 필요는 없어 보임.
중건 이후 고종은 30년도 안되는 경복궁 생활 동안 멀쩡한 침전 놔두고 구석에 들어가서 살다가 아관파천으로 경복궁은 이후 또 다시 폐허가 되었음. 군주의 위상을 세우겠다고 엄포한 고종은 또 다시 궁궐 공사를 시작했고, 여기에 더불어 평양의 풍경궁이나 안동별궁을 비롯해 각종 토목공사를 벌였음. 경운궁은 완공된 지 1년만에 전소되어 중층 중화전 건물을 단층으로 재건하는 촌극을 벌였고, 풍경궁은 완공도 못 한 상태에서 일본군이 러일전쟁 중 점거하여 돈낭비로 그쳤음. 언젠가 고종의 토목공사 욕심에 대하여 제대로 다루게 된다면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음.
어쨌든 이번 글에서는 경복궁 중건이라는 대역사를 벌인 흥선대원군에 대해 알아보았음. 물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지가 된 경복궁이 없는 서울을 상상하기 어려움. 그러나 그것만으로 대원군을 찬양하는 것은 동전의 한쪽 면만을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이 아닐 수 없음. 더군다나 그 역사적 맥락으로 살펴봤을 때, 경복궁 중건은 결과적으로 조선을 망국의 길로 이끈 시발점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경복궁이 갖는 의미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19세기 조선에 그대로 대입하여 흥선대원군을 평가하는 것은 크나큰 잘못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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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런승만 맞다니까? 어쩌구저쩌구 논리에서 개쳐발리고 우엥~ 런승만이야 ~ ㅋㅋ
노인네가 행정은 병신인데 도망치는 타이밍은 기가막힘 전주이씨 유전자의 힘인가 -> 박근혜가 혼자서 생각 못하는것도 박정희 닮아서 그런거노? ㅋ 지논리 그대로 적용시켜주니까 저능아 됐음 ㅋㅋㅋ 본인이 저능아인걸 알아서 시인해주노
ㅋㅋㅋㅋ 아 ㄹㅇ 이해못하고 있는거였노 ㅋㅋㅋㅋ 레전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 자부심 가져라. 넌 이씨 조선이 아니라 저기 북한 김씨가 있어도 니 손으로 인생 망쳤을 수준이니까. ㅋㅋㅋㅋ 덕분에 웃고가노
? 틀딱들 유전자 타령하면서 자식 얘기 왜 꺼내냐고 하네 공주님 수호 실화냐?
근데.. 대통령이 전쟁나면 도망가는게 당연한거 아님? .. 잡히면 바로 종전 돼 버리고 나라 넘어가는데 대통령이 튀어야지... 그렇다고 이승만이 해외까지 도망가서 망명정부 세우자는걸 동의한 것도 아니고 대전에서는 남아서 죽으려고까지 했던 사람인데 .. 전쟁 중에 전선에 나가서 연설한 것만 수 백번이고 .. 죽음이 두려워서 도망간 대통령이 아님 ... 런승만이라고 왜 까는지 모르겠네
이 타래엔 왜 병신들이 병림픽 하노? 런승만이 말년에 노욕이 치밀어올라서 권력 포기 못하고 무고한 사람에 정적까지 사람 목숨 파리 목숨 취급한 건 팩트. 한창 소련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같은 거대정부>국가주도개발계획 같은 건 빨갱이사상이라 무시하고 국민들 다 굶어 뒤져도 미국 앞에 어깨 펴는 당당한 나라를 꿈꾸던 씹새끼였던 것도 팩트. 근데 임정부터 독립운동하던 니들이 물고빠는 독립군에 열사들이 죄다 광복 후에 단체 조직 꾸리면 무조건 맨 꼭대기에 추대하고 이름이라도 써붙여두려 했던 위인이 이승만이었던 것도 팩트. 외교니 나발이니 니들이 뭐 논문 하나 뜯어보지도 못하고 끽해야 뇌피셜 범벅으로 아가리 터는 거랑 다르게 걍 국민이 국부라고 불렀던 대한민국의 대표자.
광복에 6.25까지 겪으면서 빨갱이새끼들은 북한보다 위협적인 내부의 적이었던 것도 팩트. 당시 빨갱이는 ㄹㅇ 국가전복을 실행에 옮기는 씹새끼들이었고, 대한민국 정치 1번 아젠다가 미국에 호소해서 북침전쟁으로 무력통일을 할 것인가, 개발 우선으로 평화통일을 꿈꿀 것인가였을 정도로 빨갱이는 현존하는 위협이었고, 그 빨갱이 학살에 관련된 이승만 학살들 역시 단지 인명학살로만 놓고 보는 건 부당하다는 것. 2차대전이 끝난 뒤 공산-자유진영의 제1 전쟁터가 한국 땅이었음.
그리고 장면 주도 경제개발계획은 씨이발 그 이승만이 씹새끼가 찍어눌러서 실행을 목표로 두고 예산도 못 짜본 폐기물이었다. 심지어 그 예산 마련 계획은 국방비 감축해서 만들겠다는 거였고, 그마저도 도로 깔고 산업화 가겠다는 게 아니라 걍 씨발 전후에 박살난 한국 땅에서 애새끼들 쌀 없어서 굶어 뒤지니까 농업력 향상을 위한 저수지, 댐 건설이 가장 산업화와 가까운 계획이었다. 뭘 알고 장면 장면 읊어라 씹ㅋㅋㅋㅋ 그리고 박정희 쿠데타는 그 장면 씹새끼 찍어누르겠다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윤보선이 '승인'한 쿠데타다. 왜 그랬겠노? 이승만이 나가리되고 자유당은 대선후보도 못 낼 만큼 병신취급 받게 된 상황에 온 세상이 민주당 천하였는데 개같이 물고 뜯고 싸우다가 그렇게 된 거다.
이승만이 하야하고 윤보선-장면이 집권한 뒤에 날린 군경 모가지만 수만이고, 곧장 착수한 게 국방비 감축인 데다 몇몇 정신병자새끼들이 '안정되어가고 있던 정국' 운운하는데 그거 다 치안 씹창나서 정치깡패 득세한 시점이었다. 박정희가 애초에 존나 난 새끼라서 쿠데타를 계획하고 실행해서 성공한 게 아니라, 씹새끼들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발판을 깔아주고 아무튼 혁-명 했더니 라이벌 제거하려고 덜컥 대통령이 도장찍은 씹새끼였을 뿐이다. 니들이 쿠데타에 대해서 정규교육과정에서 한 번이라도 배워봤어야 알지 ㅋㅋ 죄다 빨갱이식 세뇌교육밖에 못 받았으니. 박정희 아니었어도 가능했다는 건 걍 국방비 감축- 베트남전 미참전으로 게임 끝난다. 전쟁 특수 없이 한강의 기적? 니미 뽕이다 ㅋㅋ
ㅋㅋ 틀딱새끼들 지가 말하면 다 팩트(근거없음)
건국 초기 조선 국력이면 일본의 몇% 정도냐?? 경제력 군사력 다 밀리지 않냐??
절반 임진왜란 직전 1/3
경제력은 밀려도 군사력은 조선이 더 강했음 고려말 왜구 몽골로 전쟁의 연속이었는데 약했을리가 특히 세종대에 화약무기의 개편으로
총 규모로 봤을때 양적으로는 일본이 더 높지만 덴노나 쇼군의 지배력은 조선왕조보다 훨씬 느슨했기 때문에 단일 국력으로는 조선이 더 강함.
ㄴㅋㅋㅈㄹ하네 임진왜란은 도호쿠쪽 도쿠가와 세력은 참전도 안했음 간사이쪽 도요토미 세력만 침공한건데 그거도 조선이 못막아서 명나라까지 도와줬는데도 7년끌다가 겨우 막아냄 근데 단일국력은 조선이 더 강함 ㅇㅈㄹㅋㅋ도요토미가 도쿠가와랑 사이 좋아서 둘이 연합해 쳐들어왓으면 조선은 찍소리도 못하고 끝났음
애초에 현대인들 시각에나 건축물의 역사적 가치 유물적 가치같은 게 의미가 있지 저 시대 사람들이 그런걸 어떻게 신경쓰고 또 신경쓸 여유는 어디있겠음. 과거인들의 행동을 현대의 관점에서 공과 실을 따지는게 잘못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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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없는 미관 아파트로 완전히 말살시켜버리는 발상
자살좀 해라 좀 이 틀딱 씹버러지새끼야 아파트 이지랄하네 씹새끼가
"전라" "홍어" "팩트" - 나라 처망하던 말던 시아비랑 며느리랑 서로 기싸움처하고 외세군대 끌어들이고 나라 개처망하게 만든 "이하응", "민자영", "고종".....특히 좌빨선생 색희들 "고종"을 비운의 황제, "민자영"을 비운의 황후 처럼 "명성황후"라고 가스라이팅 시키는 거 보면 존나 역겨움.....
민자영이 처 빠는 새끼들은 대가리 깨야함
개조센
헬조센 최고 아웃풋 흥센대원군.... 여전히 흥센대원군의 정신을 기리어 쇄국 신토불이를 외치는중. 직구금지 가즈아ㅏㅏㅏㅏ!!!! 조센 최대 위인 흥센대원군을 뒤따르자!!!!!! 칼라파고스 만세!!!!!!
평소에 메이드인 짱깨라면 기겁하던 새끼들이 품질 검사 못받은 짱깨물건은 직구 안된다니까 발광 중ㅎㅎ 짱깨냐?
나라 터지기 직전인데 경복궁 같은거 중건이나 처 하고 있으니 나라가 망했지
지붕에 시멘트는 왜 쓴거냐?
경복궁 전체복원가자
전쟁만 아니었어도 문화재 많았을텐데
정작 이씨조선은 문화재 관리도 안함
몽골?
ㄴ조선 역사봐라 굵직한 전쟁 손에 꼽음 조선만큼 평화시기 보낸 왕국이 세계사 통틀어 얼마 안됨 근데도 문화재 남은게 없는거면 조선이 뻘짓했거나 유지보수 안했기 때문임
왜군이 들어오고 선조가 도망가자 분노한 백성들이 겅복궁에 난입 불지르고 노비문서 태우고 약탈 ㅋㅋㅋ 대단하다 좃센징
도망가니까 분노하는거지 개돼지 쪽본이었으면 도망가서 적국 놈들이 자기 죽여도 받아들였지
나라 망하게 한 놈
사진밑에 노무 뭐임
그냥 조선이 존나 가난해서 그런거야. 지금 복원한다고 하면 나라가 휘청이겠음? 인건비도 백성노역으로 때웠는데도 저정도 궁궐 짓는데 휘청거린다는거 자체가 나라 사이즈가 좆만한 증거
노역이라고 돈안줘도 된다는 발상은 21세기 한국에서나 나오는거고, 노역도 임금은 줘야 먹고살지. 봉건국가에서도 노역은 임금이 나와요. 그게 안나오면 노역이 아니라 노예임. 당장 임오군란도 월급으로 나오는 쌀 떼먹어서 터진건데. 당백전 발행한것도 돈이 없으면 찍어서 주면 된다는 발상에서 나온것. 저거 인건비임
임오군란은 군역으로 징발한 군인들이 아니라 상비군이지
팩트: 조선은 하급관리의 녹봉이 없었음. 그니깐 무보수로 일을 시켰다는 말임. 임오군란의 경우는 왕실 수호하는 근위병은 고급인력이라 직책은 낮아도 녹봉을 일괄지급했는데 구한말땐 얘들 녹봉줄 돈도 없어서 긴빠이 쳤다는 소리임. 참고로 하급관리 녹봉안주면 얘들 생활 어떻게 함? 이럴수 있는데 말 그대로 알아서 벌어먹었다 백성들 삥을 뜯든지 부정부패 저지르던지 했다는 소리. 괜히 한국이 사기범죄 1위가 아님 유전자에 사기치고 해쳐먹는게 각인됐다는거
그러든 말든 지금 돈되는 경복궁을 남긴건 잘한거지
정보) 현재도 개센징들은 경희궁을 일제가 헐었다고 날조하며 그 아까운 땅에 수천억을 퍼부으며 민족정기 복원한다고 슈킹중이다
이하응 최대 업적 = 짱깨로부터의 독립선언 경복궁 당백전 국력소모 다 개좆빠는 소리 그냥 이하응이 반짱깨해서 짱깨매국노새끼들이 짱깨 매국노 고종 앞세워서 탄핵한거임
짱깨식민지 500년에서 독립하고자 한 것은 위대한 생각
문제는 이 병신이 왕따를 선언
프랑스대혁명 미국독립선언을 기점으로 문명전파자들이 천부인권을 바탕으로 전세계의 노예들을 해방하러 다니던 시기
여기서 자유민주진영 동아시아지부 일본한테 붙어서 짱깨한테 독립 민주공화정으로 갔어야 됨
그럼 자유민주주의 경제시스템에서 우리 수준이 발달함에 따라서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일본을 앞질렀을 것
근데 인간 하응이 똑똑했지만 차마 지 아들내미보다 국가와 민족을 우선할 수 없었던 것
결국 짱깨 매국노 살인귀 고종은 도살자 원세개를 끌어들여 이씨조선의 자주 독립 민주화을 도와주던 문명전파자들과 그를 따르는 자주민주 국민 수십만명을 학살하였고 자주 민주화 불가 판정을 받은 이씨조선은 일제식민지가 됨
만동묘를 개박살낸 위대한 애비 이하응 부서진 만동묘를 다시 만든 짱깨 매국노 병신새끼 고좆 이게 끝
틀딱들 또 짱깨타령ㅋㅋ
짱깨새끼가 짱깨타령 ㅇㅈㄹ ㅋㅋㅋㅋㅋㅋㅋ 짱깨 싫어하는 건 틀딱이 아니라 3세 미취학 아동부터 전국민임 ㅋㅋㅋㅋㅋ
그리스 로마 양식을 부활시키겠다고 표방한 로마네스크도 결국은 로마 건축양식 제대로 된 부활시키지 못했다 따라서 전통건축의 온전한 부활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고 판단됨
++ 건축으로 보는 미개인종 순위 ++아프리카 흑징 - 없음퉁구스징 - 낫띵조셍징 - 석굴암(한반도 유일한 석조건축물, 이유 조선돌은 단단해요)인도네시아징 - 보르드부르동남아징 - 앙코르와트남미인디오징 - 마추피추인도징 - 타지마할터키징 - 아야소피아(조셍징 삼한시대 건축물)그리스 로마 - 파르테논 콜롯세움(조셍징 고조선시대 건축물)이집트징 - 피라미드(조셍징 곰 호랑이 마늘먹고 사람된 시기 건축물)
궁궐에 잔디나 깔아라 조상이니 전통이니 같잖은 개소리하면서 모래바닥 진창으로 언제까지 놔둘건데
게이야 진드기 같은 해충 때문에 일부러 잔디 안 갈고 흙바닥으로 살아온거야
한옥은 팔작지붕보다 맞배지붕이 존나 이쁘더라 특히 풍판까지 달면 존나 고즈넉하면서도 담박한 맛이 있음 - dc App
어차피 일제시대 유교전쟁 지나면서 파괘됏을것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만드는거는 올림픽이나 월드컵처럼 나라를 결집시키는 효과를 기대해서 한 측면도 있었겠지만, 조선을 버리고 요동에서 관직하나 달라고 징징대던 선조나 고종같은 임금들을 보면은 조선임금들의 평균적인 마인드는 조선반도와 거기에 사는 인민들을 자기의 개인적인 재산으로 여긴듯함
++ 유럽인의 인종차별 기준 미개인종 순위 ++아프리카 흑징 - 나뭇가지엮고 소똥바름 석조건축 없음.퉁구스징 - 소가죽 천막 석조없음.조셍징 - 지푸라기 초가집, 중국식 목조 흙벽기와집, 석조건축 전무.인도네시아징 - 보르드부르, 대나무집동남아징 - 앙코르와트, 대나무집남미인디오징 - 마추피추, 자연석가공 짜마춤.인도징 - 타지마할터키징 - 아야소피아(조셍징 삼한시대 건축물)그리스 로마 - 파르테논 콜롯세움(조셍징 고조선시대 건축물)이집트징 - 피라미드(조셍징 곰 호랑이 마늘먹고 사람된 시기 건축물)
저런거 재수없는 폐건문 다 허물어 버리고 그냥 공원만들어라. 뭐냐 저 쓸모 없는 쓰레기 건축물.. 뭐 문화재?? 지랄 쌉싸네 관리비만 연간 수억이다.
틀딱들 또 아무튼 수십억씩 들어감 on
전국 문화재 관리비용 다합쳐도 1조도 못찍는데 경복궁에 수억 틀딱 실화?
돈도 없는 거지나라인 주제에 궁궐만 지어댄 조선왕조 그런 조선왕조를 없애고 일본에 합병시켰다고 난리를 치는 조선인들
심지어 그렇게 백성들 피땀 쥐어짜서 지은 건물이 아름다운 것도 아님
일뽕 틀딱들 또 시작이네
현대판 조선왕조가 북한임. 중국 영향력 하에 자기 마음대로 사람들 죽이고 외국이랑 교류 다 틀어막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왕정국가 조선이 외세의 개입 없이 자기 스스로 개혁을 해서 신분제 없애고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주장은 날조 판타지 소설임
ㅋㅋ 틀딱새끼 뭐만하면 북한타령ㅋㅋ 보수독재자 빨면서
경복궁 가니까 왜케 궁궐들이 더럽냐?? 청소안함? 검은때 준내 껴있고 경희루 연못은 개똥물같고 흙바닥때문에 먼지날리고..한 나라의 중심이였다기 보다는 을씨년 스러운 폐가 같음..깨끗하게만 관리하면 진짜 멋있을텐데 대체 왜그러는거냐?? 콘크리트로 떡바른 오사카성보다 더 분위기 있더구만
흥선대원군이 영조랑 다르게 마지막에 아들 끝끝내 제거하지않고 사랑하며 죽었음..
흥선고라니가 전통건축 구세주 소리 듣는건 이 새끼한테서 처음 들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1짤 어딘지 이름 좀 알려줘라 씹간지나네
구글링 하니까 경복궁 집옥재라고 나오는데 저사진은 카메라빨 좀 들어감
고맙다 집옥재였구만 얼마전에 안에서 책읽고 나왔는데 그걸 못알아봤네 사진이 좀 많이 다르긴한듯
흥선대원군과 건축 얘기를 하는데 운현궁이 안나오노 진짜 숨겨진 작은 보물같은곳임 가보면 외국인들도 다른데보다 찐으로 문화재 답사하러 온듯한 느낌이 많음
쇄국정치 병신인데 - dc App
싹다 걍 싹다밀었어야했는데
똥양혐오인 내눈엔 그래도 일본 중국 건축물은 각각의 특색이 확 느껴지면서 괜찮은데 조선껀 초록빨강 애매하게 섞여서 존나촌스럽고 흉측함 그 개촌스러운 채도 확올린 연초록저고리 빨간치마 여자한복마냥 옥춘사탕색감마냥 개촌티남걍
븅신 새끼가 개소리를 하고있네. 그냥 너의 미적감각이 종범인거야. 이 븅신아. 조선의 건축물과 색깔 등은 무척 수준이 높은 미적감각을 지녔다고 고평가를 받는게 팩트인데 너같은 븅신 새끼는 그냥 무지성으로 흉측하다느니 촌스럽다느니 하는 개소리를 하는거 말고는 할줄 아는게 없지. 너같은게 놈이 바로 촌스러운거야. 버러지야.
미적감각이 종범 ~~ㅋㅋ 언제젹 종범이농
저런 나무집들 좀 지엇다고 망할 나라면 망하는게 맞다 ㅇㅇ
ㅇㅈ
저때 새로 안지었으면 아직도 터만 남겨둬야되니 복원해야되니로 2400년 인구소멸로 나라망할때까지 싸움
서양은 쾰른대성당마냥 존나착취했을거같은 건축물 오조오억갠데 한국은 나무판자 몇개 짓는다고 나라가 휘청엿구나 ㅠㅠ
개소리를 하고있네. 어줍짢은 지식으로 개소리를 지껄이는 꼬라지가 참 한심하네. 무슨 서양에서 쾰른대성당마냥 존나 착취했을거같은 건축물이 오조오억개라고 혼자서 뇌피셜을 굴리며 개소리를 하는거냐? 오조오억개는 커녕 10만개도 못만들었어. 이 등신아. 그리고 그딴 쾰른대성당 따위보다 경복궁 만들고 보수하는게 훨씬 더 비싸고 힘든일이야. 알겠냐? 이 등신아
이새끼 말대로면 이집트는 피라미드 3개 짓는 시점에서 문명이 사라졌다 ㅋㅋㅋ
쾰른대성당'따위' ㅋㅋ 국뽕 평균 수준 ㅋㅋ
애비나 그새끼나
정체불명의 실체도 없는 괴단어 전통건축
걍 이 나라 구세주는 일본임
일제축복기 없었으면 아직도 소로 밭갈면서 살았을거임
여러모로 말은 많지만 경복궁이 남아있게 된 건 좋긴 하다...
여자 처녀막+몸무게+나이 = 남자 키
중고 쿵쾅이 아줌마 = 난쟁이
개좆선 전통건물? 솔직히 뭔 귀신의집 같음 ㅋㅋㅋ 좋게 봐주면 창고? 정신사나운 단청부터 좆같음 색조합도 개씹븅신같고 대체 저딴 연두색 청록색 같은 걸 왜 나무에다 쳐바르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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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을 역사성을 높게 사는건 알겠어. 그런게 그 역사성이라는 것이 물리적 건물을 100% 보존해야만 지켜지는 것이 아니야. 숭정전, 흥화문, 회상전, 황학정 등 서궐안에서도 역사의 무대였던 핵심 전각들을 남겨서 역사성은 보존됐어. 만약 경복궁에 임란 이전 근정전, 광화문, 사정전, 경회루가 남아있었어도 "에이..유기성없으니 역사성 없네."라고 했을거야?
정치적으로는 정치 공간으로써 연속적이었다고 할지라도 건축으로는 아니라니깐. 훼철은 물리적인 변화이고, 사람은 동물이기에 공간 자체가 달라졌는데 건축물을 체험하는 이용자가 같은 장소라고 여기지 않을 거라고. 니가 살던 집과 같은 자리에 새롭게 집을 재건했다고 한들 거기 살던 니가 그게 같은 장소라고 인식하겠느냐는 거지. - dc App
*경복궁 중건에 따른 해악적 결과들을 나열했으니 그 원인이 되는 경복궁 중건은 당연히 비판하는게 되는거지. 어떤 다른 생각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쓰여진 글의 맥락은 이렇잖아? 갑자기 경복궁은 문제 없다고 하면 중간과정은 뭐 다 생략된건가
*집을 완전히 새로 짓는게 아니라. 대원군은 경희궁의 오리지널 건물들을 남겨놨다고. 집으로 치면 대문도 옛날 그대로고, 거실은 옛집 그대로, 안방도 그대로 남겨져있어. 그런데 "어라?주방이 바꼈네? 복도가 바꼈네? 내집 아냐!!!!!"이런단 말이야? 역사성 휘발도 정도가 있는거지 정도면 집착증에 완벽주의야
그런 상태에서의 경복궁은 연구 가치만 있는 거지. 나는 문화재에 크게 2가지 종류가 있다고 보는데, 하나는 연구 가치만 남은 것이고, 또 하나는 선대의 유산으로써 그 '문화'를 영위해 나가고 있는 것임. 전자는 박물관에 갇혀 있는 불상, 후자는 사찰에서 예배의 대상이 되는 불상이 되겠지. 전자는 경복궁 정도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만 포함된다면, 후자는 삶 자체임. 우리가 살고 있는 삶 자체가 문화의 단편이고, 그것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 문화로써의 문화재임. 그래서 헐린 행각의 자재는 물리적인 옛 물건의 문화재라면, 궁궐의 건축물로 남아 있는 행각은 유기체의 일부로 그것들이 합쳐져 더 큰 가치를 창출할 거야.위의 경우는 역사성은 있겠지만, 유기체의 일부로서 작동할 때에 비하면 그 - dc App
감동은 덜하겠지. - dc App
*정치적 잣대가 아니라 건축적 잣대로 본다 했는데. 그게 바로 역사적 사고의 범위를 넘어선거야. 과거인의 행위를 과거인의 상황과 맥락속에서 재사고 하는게 아니라, 현대의 건축적인 관점에서 어휴 다 남겨놔야지 뭐해!하고 야단치는건 역사적 판단의 오류야
문화재는 현상이지 옳고 그름의 판단 대상이 아니야. 다만 그 문화재가 함포한 역사의 장면들이 판단의 대상이 되겠지. - dc App
*너가 물리적인 공간성을 가지고 판단했잖아. 경희궁의 남은 건축물에서 역사성을 느끼진 못하는거야? 경복궁에 조선전기 근정전 광화문 경회루 사정전이 있었다 생각해보라니깐. 그것도 단절됐다 생명력없다 삐딱하게 봤을건 아니잖아. 넌 너무 건축물의 완결성에 대한 완벽주의에 사로잡혀있어. 그 건물이 생명력을 가졌던 딱 그상태로 온존해야만 역사성이 있는게 아니야.
*역사적 변화(때때로 쇠락한)를 용납하지 못하는 태도는 건축의 역사성을 바라보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야! 과거인의 역사적 행위 결정에 현대의 관점을 투영해서 판단하는건 역사적 판단의 오류야! 수백년전 건축물의 완결성을 원하는건 실현될 수 없는 욕망이자 환상이야!
건축은 하나의 추억과도 같아. 나의 역사, 타인의 역사가 누층 쌓이고 쌓여 건축물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이 곧 건축물의 가치지. 현재의 문화재적 가치로 놓고 본다면 보존해야겠지. 근데 건축적 가치는 돌고 돌며 의미가 변화하기 마련이지. 당시에 철거한 경희궁을 체험한 사람들의 기억이 남아 건축적 가치를 형성했겠지. 그리고 그 장소는 영원한 기억 속 장소로 남으며 건축적 가치를 잃게 된다는 거야. 문화재적 가치와 건축의 가치를 구분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임. - dc App
건축물이 어떻게 아무런 변화가 없이 유지될 수 있겠어. 자연스러운 세월의 흐름 속에서 그 건축물에서의 채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건축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고. 그런데 경희궁의 예와 같이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닌 과격한 변화가 주어질 때, 과거의 모습을 기억하던 사람들은 추억 속 장소를 상실하게 되고, 그게 건축적 가치의 상실이라는 거야. 이를테면 어릴 적 놀던 놀이터가 완전히 변해 있는, 그런 기억의 상실, 그 기억들이 모여서 건축물의 문화적 가치를 부여한다는 거지. - dc App
*역사적 건축물에서 완결성을 원하는건 비뚤어진 욕망이야. 너는 왕정이 끝난 국가에서 마치 절에 승려가 살듯이 왕이 들어가 살면서 생명력있는 완결된 궁궐을 꿈꾸고 있잖아. 그러면서 경희궁이 완결성을 잃게된 사건들을 현재에서 소급해들어가고 있어 그리고선 현대적 관점에서 과거행위에 대해 따지고 있어. 완벽주의적이고 집착같아.
삶은 생사의 연속이고, 건축물 또한 여러 삶들의 궤적임.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공간은 생명력을 잃은 공간이 되고, 또 다시 누군가에게 생명력을 부여받을 수 있겠지. 현상의 변화든, 주어진 상황의 변화든 연속성의 단절은 건축의 생명력을 잃게 만듦. 하지만, 곧 새로운 생명을 다시 잉태하고, 새롭게 부여받은 건축의 의미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걸 둘러싼 상황들이 어떻게 변모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생명력을 잃었다는 내 말을 너무 부정적으로 해석하진 않았으면 좋겠음. - dc App
*과거의 기억은 정문, 정전, 침전, 편전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어. 대원군이 행각은 뜯어가도 그 큰 전각들은 뜯어가지 않은 것은 쓸모 없어서야 아닐거야. 나름의 역사성 보존이지. 고종이 석어당에 가졌던 애착처럼. 역사적 기억을 간직한 전각들마저 이리저리 팔려나가고 헐린건 그뒤에 있었던 일제시기였고.
*너가 역사적 건축물이 생명력을 잃은걸 너무 부정적이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경희궁에 대한 완벽주의도 좀 내려 놓으면 좋겠어. 궁궐 순환의 과정중 긴 연휴에 들어갔다가 망국을 맞이했을 뿐이야. 대원군은 경희궁을 폐궁한게 아니야
건축물은 순간으로써 존재하고, 매 순간 변화하기에 완벽하고 올바른 원형이란 존재할 수 없겠지. 그러나 분명 큰 변화는 언제나 찾아옴. 공간이 변화할 수도 있고, 사람이 변화할 수도 있음. 그 변화로 기존의 공간이 갖던 생명력은 상실하고,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겠지. 경희궁의 경우에는 공간이 크게 변화했고, 그것으로 인해 그 장소를 영위하던 사람들의 문화적 가치는 상실되었겠지. 하지만 역사는 흐르고, 또 다시 의미를 부여받게 될 거야. 그게 공간이고, 공간성의 변화라고 생각해. 하지만 공간성이 변한다고 해서 공간 자체가 사멸하는 것은 아니라서, 새로운 가치를 지니게 될 거야. 순환의 과정 중에서 기존의 생명력은 잃었지만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지. - dc App
단순히 궁궐이란 틀이 유지되었다는 점에 집착해서 공간의 변화를 무시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 dc App
사실 너와 크게 의견의 차이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단순히 궁궐의 틀이 유지되었다고 해서 공간성이 유지되는가, 이 점에 대해서만 차이가 있는 것 같아. 그리고 그건 개인의 판단과 개성에 맡길 문제이지, 토론으로 의견을 전복시킬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음. 나는 볼일이 있어서 더 이상 댓글에 매달려 있을 수 없을 거 같은데, 또 다른 생각 차이가 있다면 나중에 확인하도록 할게. - dc App
*결과적으로는 현재 경희궁 상태 보면 생명력 잃긴 했는데. 그것에 대한 허망함을 가지고 대원군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현대의 관점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오류가 있었다고 봐. 너가 계속 못마땅 한 와중에 누군가 대원군의 중건을 칭송하는걸 봤다면 감정적으로 날이 설 것 같긴 해
*내가 볼땐 BABO는 역사적 건축물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야. 정말 할 수만 있다면 과거로 들어가서 빼곡한 궁궐속, 아니? 조선 팔도를 다니면서 온존한 전통건물, 기능을 수행중인 살아있는 전통건물을 보고싶어하고 그리워하는것 같음. 그 마음이 유독 파괴가 심한 경희궁에도 투영되는것 같음.
*그럼에도 아닌건 아닌거야. 과거는 현재와 달라. 또한 과거의 행위가 현재의 결과를 알고서 일어난 것도 아니야. 경희궁은 주요전각을 남긴채 긴 연휴에 들어갔다가 망국을 맞이한거야. 역사적인물인 대원군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어. 살아숨쉬는 경희궁을 보고싶은건 현대인의 욕망이야
#경희궁의 생명력 유지 부분에서 의견이 갈리는데 흥선군 철폐 이후에도 유지되었고 가능성 있다는 관점에 대해서도 어쨌든 '궁역 전체를 보지 않는 편협' '전각 몇 동에 집착' 같은 스탠스를 한결같이 유지하는데, 정말로 그부분에 관해서는 의견 차이를 메꿀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이네 그 전각 몇 동, 일제가 훼손하기 전까진 보존된 유구가 정말 고작 수준의 가치인지, 단지 왕실의 '일시적인 이어' 하나가 그 물리적 실체를 아직 유지하던 공간의 정통성을 그순간 송두리째 파괴시켜서 경희궁의 생명력이 그순간 없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정말로 동의를 못하겠네 그 요소 하나가 정말로 그만큼 집착할 만큼 다른 요소를 압도하는 요소인지를 모르겠어
결국 경복궁 중건 망국론이랑 결이 비슷하다 느껴지는데 흥선대원군 훼철 이후에도 경희궁은 행사장 등으로 사용됨 일제의 파괴 서울시의 파괴 등등의 최종적으로 거쳐서 결과적으로 생명력을 잃은 거지 훼철 순간에 이미 연속성이 끊어졌다는 주장은 비약이 지나침
우리 게이들 뭐해? - dc App
향원정도 임란 전에는 존재하지 않은걸로 앎
고종이 병신인건 맞는데 고종 대신 세종대왕이 왔어도 나라 망하는건 절대 못막았다. 애초에 조선은 정조 죽은 이후로 그냥 끝이었음. 그리고 그 당시 열강들의 제국주의는 막을수 없음. 일본 아니었으면 소련한테 나라 먹혔을거고. 그나마 현실적인 방안이 스위스처럼 중립국으로 갔어야 했는데 어림도 없지. 정명가도, 대동아공영권을 외치는 왜놈들인데
ㄹㅇ 당시 조선은 쇄국을 하든 개항을 하든 망하는거 아닌가
조선이 메이지 유신 전부터 영토 면적 농작물 생산량 인구면에서 이미 일본에 딸렸음 처음부터 불리
물론 당시 서양 열강들의 침략이 거셌기에 뭘 하든 위태로운 상황이었던 것은 맞음. 그러나 일본도 외세의 침략을 계기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 1853년의 일임. 일본은 조선과 달리 1500년대부터 서양과의 교류가 있었기에 근대화에 개방적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고려해도 조선 정부는 너무나 무능했음. 당시 고종의 목적은 군주권의 강화, 하나에만 있었음. 고종도 근대화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만민공동회에서 근대화의 첫걸음인 군주권의 제한에 대한 논의가 나오기가 무섭게 독립협회는 해산되었음. 또한 근대화 개혁이라고 불리는 고종조 일련의 조치들도 결국 군주권 확대에 목적이 있었음. - dc App
BABO는 일본이 수백년간 서양과 교류하면서 얻은 것들에 대해서 과소평가하는 것 같아 마치 고종시기 몇십년 바짝 정신차려서 뭔가를 하면 제국주의 열강인 일본, 러시아와 비등해질 수 있었다는 듯이 말해
결국 망국이 예정된 길이었다 할지라도, 고종은 그 길을 가장 앞당긴 장본인임에는 틀림없음. 당대의 지식인들을 내쫓고, 죽이며, 겨우 근대화의 길이 열리는가 싶으면 또 다시 주자성리학을 주창하는 위정척사파 세력을 끌어들여 근대화를 끊임없이 방해했고, 결국 조선은 회복할 수 없을 만큼 근대 문명에서 뒤쳐지게 되었음. - dc App
조선의 집권층은 일본이 개항한 지 몇 년이 되도록 그들이 서양과 어떤 수교를 맺었는지조차 몰랐고, 도리어 자기 나라 앞에 이양선들이 알짱거린다며 일본을 걱정해주고 있었음. 개화파의 설득으로 겨우 갑오개혁을 하나 싶더니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자 돌변해 김홍집을 비롯한 개화파들을 모조리 살해한 것이 고종임. 망국으로 가더라도 그렇게까지 가지 않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는데, 그 기회를 모두 스스로 걷어차 내 버린 것이 고종의 통치방식이었음. - dc App
그렇게 따지면 정조는 근대화를 위해서 무엇을 했어? 수원화성을 건설한 것은 낭비나 군주권 강화가 아니라 근대화를 위한 것이었어? 열강은 하루아침에 탄생하는 것이 아니야. 그 시기 일본은 무엇을 했는 지 봐
그니깐 본질적인 문제는 조선의 통치이념이었던 성리학임. 조선 후기 사상의 주류는 격물치지를 통해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는 이선기후, 즉 리를 기에ㅡ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입장이었고, 기에 해당하는 서양 문물을 무조건적으로 배척하였음. 즉 근대화를 위해선 성리학적 세계관에서 탈피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고종은 오히려 같은 시기 반대로 위정척사파를 옹호하며 다른 어느 임금보다도 근대화의 길에 역행했음. 정조의 화성 건설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이용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함이었고, 근대화와는 무관한데 왜 언급된 건지 모르겠고. - dc App
수원화성이 근대화와 무관하니까 언급됐지. 궁궐 건설이 근대화에 역행한 군주권 강화와 자금 낭비라면 같은 잣대로 정조의 수원화성에 대해서도 비판할 수 있어야 하는거 아니야? 에도시기 급격한 경제발전을 이룩할때 정조가 한건 뭐가 있어. 원인을 고종에서 찾는건 근시안적이야
정조조에는 근대적 통치시스템에 대한 지식이 없었고, 고종조에는 이미 많은 지식이 전파된 상황에서도 성리학적 통치이념을 고집했음. 시대적 배경의 차이일 뿐이지. 정조 또한 성리학적 가치를 우선시하고 지식을 독점하려 하였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여지가 충분함. 정조는 박지원과 같은 실학파 지식인들을 본인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다 하여 비난하였음. 근본적인 문제는 조선의 폐쇄적인 성리학적 통치시스템에 있는 것이고, 고종은 그 중에서도 문제를 해결할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개화세력을 모두 배척했다는 점에서 가장 큰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는 거임. - dc App
독재권력 강화에 올인한건 대원군이지 고종은 독립협회 세운다고 돈 지원하고 의회 설립 허가했음. 독립협회는 대놓고 친일노선 타다가 찍혀서 나가리된거 - dc App
정조대 부터도 있어온 조선 자체의 한계점을 인정한다면, 근대화라는게 고종대에 입헌군주정 해본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게 아니라는 것도 알잖아. 경복궁 중건을 원인으로 결론 내놓고 역사를 거기에 짜 맞추려고 하다보니까 자꾸 망국직전 고종 재위 기간에만 비판이 매몰되는거지
고종은 당시 조선의 정치인 중에선 차라리 유능한 편에 가까움. 흔히 좋게 평가받는 급진개화파는 북한에 돈 지원하면 평화로워질거라는 수준의 대가리 꽃밭인 애들에 불과함. 적어도 고종은 러시아와 영국 등 열강들의 이해관계를 이용해서 세력 균형을 맞춰보려는 시도라도 했음. 독립협회를 비롯한 급진개화파는 순전히 일본이 근대화시켜줄거라 믿었고. 통치 시스템... 이미 구한말의 통치체계 자체는 근대화 됐음. 입헌군주제? 그거 한다고 뭐 해결이나 되겠음? 소위 개화파 내각은 결국 탁상공론만 벌이며 제대로 뭘 해내지도 못했음. 진짜로 조선이 근대화되기 시작한건 광무개혁 시기임. 조선의 재정 건전성 또한 광무개혁 시기에 비약적으로 좋아짐. - dc App
결과론적으로 보면 그 개화파라는 애들 다 쳐내고 고종 중심으로 진행된 개혁이 가장 성공적이었음. 입헌 군주제니 뭐니 국력의 신장이 없이는 허울 뿐임. 고종이 추진한 광무개혁이 상대적으로 성과를 낸건 비록 '군주권 강화'라 하지만 실질적인 근대 문물 도입, 경제 등 발전에 초점을 뒀기 때문임. 물론 고종이 잘했다는건 아님. 어쨌든 실패했으니까. 여러 실정도 있었고 - dc App
저능아 참 많노
이씨조선은 그 존재 자체가 한민족의 억압과 짱깨에게 충성을 위해 짱깨벌레와 따까리 매국노들에 의해 설계된 시스템임
고좆새끼가 ㅇㅇ 협회 하면서 근대화하려는애들 전부 패죽인 장본인이구만 잘했다 ㅇㅈㄹ ㅋㅋㅋ 그래서 나라 팔아먹음?
고좆이 독립협회 박살낸 이유가 입헌군주제 요구해서구만 지랄을 하네 ㅋㅋㅋ
이씨조선 짱깨 식민지는 국가의 모든 역량이 짱깨벌레에게 충성하기 위한 시스템이었기 때문
예송논쟁이란 것도 결국 어떻게 하면 짱깨벌레를 더 공손하고 예의있고 섬기는 일일까에 대한 고민인것
조선도 일본처럼 당시 고가치 광물이었던 구리광상 많고 자기 나라 백성들 노예로 팔아넘겼으면 근대화 성공했지.
고종은 당시 자기가 할수있던 최선은 다했다 본다 진짜 서구문물 좆까라 할거면 지애비처럼 쇄국을 하던가 했겠지 다만 일국의 군주의 위치에 있는 입장에서 너무 급진적인 개혁을 주도할수도 없는 일이니 한계도 명백함
고좆이 독립협회 박살낸 이유가 입헌군주제 요구해서구만 지랄을 하네 ㅋㅋㅋ <- 그야 독립협회 제일 큰 축중 하나가 서재필인데 뭘 믿고 같이 일함? 당장 갑신정변으로 나라에 일본군 불러왔다가 국외추방 당한 애를 어떻게 믿고 맡길건데
사실 국외추방도 아니지 ㅋㅋㅋ 진작 반역죄로 정해진 애들이 미국으로 도망쳐서 안돌아온걸
왜 일본 근대화는 찬양하면서 일본이 가라유키상이랑 노예 인신매매하면서 외화 번 걸로 근대화한건 생각 안하는거지? 근대화할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나? ㅋㅋㅋ
고종은 걍 청일전쟁 전범임 ㅇㅇ 그냥 조선이 청나라랑 짜고 일본 확실하게 밟고 엿먹이려다가 쳐발린 게 청일전쟁. 전쟁에서 졌는데도 승복을 안하고 우왕좌왕하다가 이번엔 러시아공사관으로 튀는 세계사에서 전무후무한 짓을 함. 이런 새끼를 이왕가로 대접해준 일제가 참 별난 놈들이면 별난 놈들임. 그냥 전쟁에서 져갖고 일본에 먹힌 건데 맨날 수동적인 피해자 역할만 강조하면서 일본 땜에 중국 땜에 러시아 땜에 미국 땜에 영국 땜에 남탓만 하는게 한국인들 인식 현실
ㅋㅋㅋㅋㅋㅋ 고종이 잘했단다 갑신정변 이후에 일본세력 축출하고 동학농민운동 일어나기 약 10년동안 조선은 아무것도 한 게 없음. 그냥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 아무것도 안함. 이 때 10년이면 많은 걸 바꿀 수 있는 격동의 시기였는데 아무것도 안하다가 동학농민운동 터지고 톈진조약 뻔히 있는 거 알면서도 청나라 끌어들이고 국토를 전쟁터로 만든 게 고종임 ㅇㅇ 국뽕새끼들도 이 부분에서 변명이 안되니까 조정은 톈진조약을 몰랐다는 둥 청나라에 군대파견 요청한 건 고종 의사가 아니었다는 둥 개소리만 해대는 실정 ㅋㅋㅋ
대체 고종이 뭘 잘함? 일은 일대로 벌려놓고 도망가서 게릴라를 펼친 것도 아니야 순순하게 일본에 항복한 것도 아니야. 실컷 일본 도발해놓고 그냥 가만히 있다가 바로 청일전쟁 전진기지로 전락한 게 당시 조선임 ㅋㅋㅋㅋㅋ 차라리 그냥 청일전쟁 패배 후 일본 밑으로 들어갔으면 훨씬 조선 대접이 좋았을듯
정조가 살아 있어도 비슷했다. 그냥 조선은 왜란 호란에서 경제 복구에 실패한 좀비 국가였음.
갑신정변 박살낸 새끼가 고좆인데 뭘 믿음? 고좆새끼는 저떄쯤이면 알아서 쳐 꺼졌어야 정상인데 권력 안놓으려고 온갖 외세 끌어들였다가 나라 뜯어먹힌거지 병신아
민씨 척족 등용해서 나라씹창낸 새끼 누구? 온갖 개화 기회마다 다 걷어 찬새끼 누구? 일본에 나라 팔아먹은 새끼 누구? 일본 왕공족 된 새끼 누구? ㅋㅋㅋ
근데 그 당시 입장에서 보면 왕조가 구시대의 산물이 아니고 현존하는 권력의 중심이니까 경복궁을 중건하기로 결정한 다음에는 200년전 조선전기의 모습을 유지하기보다는 당시에 사는 사람 입장에서 업무보고 생활할수 있는 공간을 만든거지 그때는 문화재 보존 이런 인식은 없었으니.
청나라가 명나라 시대 자금성을 덮어씌우고 영국왕실이 귀족저택을 구입해 버킹엄 궁전으로 중축 개축한거랑 다를바 없음
경희궁은 그 특유의 정전까지 향하는 꺾어서 올라가는 긴 길이 축이 되는 배치가 인상적이더라 장락전 용비루 봉상루도 아깝고 남아있었으면 조선 중기양식도 더 많이 남아있었을 텐데 그것도 아쉽고 어차피 자재 뜯어온거 거의 못써먹었다 하고 남은것도 짓다가 한 번 태워먹은거 생각하면 애초에 훼철 안하고 지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음 서울시한테 부관참시 당하고 있는것도 매우 안타깝고
근데 고종이랑 흥선이 삽질한거 있다 는건 확실하겠지만 그거랑 근대화를 바로 잇기는 좀 복잡하지 않은가 싶음 일본놈들도 어쨌든 오랫동안 난학으로 어쨌든 지들 주도적으로 서양지식 수용하려는 움직임도 있고 그랬잖음 조선이 몸뚜껑 열어보는거 아니다 엣헴할때 해체신서 번역하기도 하고 또 걔네도 근대화할떄 이와미 은광으로 벌어들인돈 거의 싹날렸는데도 죽었다 살아날뻔 할정도로 재정부담이 상당하다고 들어서... 조선이 근대화 기반이 더 불리한 거까지 생각하면 운산금광 + a로 그만한 재정감당이 될런지도 의문이고
게시글 항상 잘봤고 사진 좋았어요 근데 개인적인 견해이니 의견은 존중합니다만, 동의할순없네요. 잘한점도 있고 못한점이 있는데 우리모두 전부 흥선대원군만의 탓을 돌리는 시각은 버리는게 맞다봅니다
역사라는게 그걸 우리가 백퍼센트 판단할순없어요. 그시대사람은 흥선대원군을 어케생각했는지 우리가 알수도없거니와 어떤 평가가 있었다하더라도 결과적으로 평가는 후대사람이 하는거죠 우리기준엔 흥선대원군 마냥 나쁘지않습니다
원래 한민족이 약소국가로써 한이 많고 예전부터 사돈이 땅사면 배아파하는 마인드가 어느정도 있기에 경복궁건설할때나, 이명박청계천을 할때나 63빌딩지을때나, 경부고속도로 건설할때나, 롯타할때 한민족은 항상 반대는 극렬히 했었어요
하지만 그런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줏대있게 정책 밀고나간 지도자들이 전 참 존경스럽던군요 결과는 전부 대한민국에 도움되는것이였습니다. 경복궁? 진짜 대한민국 아이덴티티, 본질에있어서 정말 중요한 가치라보고있고 결국 내나라 내궁전이 멋지고 그걸 시기하는거자체가 잘못됐다봅니다
서원 철폐는 참 아쉬워
님 주장 다 따져봐도 경복궁 중건의 문제점이 경복궁 중건의 이점(효과)을 상쇄하지 못함 경복궁 없었을 당시 잔존했지만 소실or파괴된 '부분' 나무 보다 무리했어도 경복궁 중건으로 인한 역사성 복원(역대 조선왕조의 숙원사업이자 지금 우리가 영유할수있는 가치- 존재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궁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랜드마크 문화자산가치 관광효과 모두 축소됐겠지 나무보다 숲을 봐야지 흥선대원군의 과는 많다는점에 동의하지만 무리무리였던 중건이라 할지라도 위의 댓글처럼 조선은 이미 망해가고있었고 그게 경복궁 중건이 원인의 핵심이라 하기는 선넘안 비약이라봄 즉, 동의하지 않음
결론적으로 서원철폐와 무리한토목사업으로 인한 나라경제휘청+근대화 골든타임 놓쳤다 한들 경복궁 중건은 '공' 이라고 생각 이유는 결과론이라 하더라도 이익이 컷고 당연히 평가받아야함 만약 흥선대원군이 추진하지 않아서 없었다면? 상상하기도 어렵네
경복궁 중건과 망국을 직접적으로 연결한 것은 과했음. 하지만 요즘 청와대를 새로 짓겠다고 국가 예산 대부분을 쓰고, 그것도 모자라 돈을 잔뜩 찍어낸다면 100년 후에 그것이 큰 가치를 지닐지라도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함. 국가가 존재하기 위한 3개 요소 중 하나는 국민인데, 그 국민이 원하지도 않는, 죽은 뒤에나 후손들이 영위하게 될 이익을 좇겠다고 국가가 강제적으로 그런 사업을 벌이는 것은 국가의 책임을 버리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임. - dc App
ㄴ근데 그런식으로 얘기하면 그당시 서원보존도 해서는 안 될 일 아닌가? 100년 후에는 가치가 있을지 몰라도 그때는 놔두면 중앙정부 단일주체도 아니고 천 개 주체가 민중 빨아먹는걸 놔두는 꼴인데 당백전 짤깍대는 것보다 끔찍한 꼬라지가 났을지도 모르지
당백전이 무슨 의미를 뜻하는지 모르나봄. 지금 사실상 잡는게 불가능한 인플레이션인데도 세계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은 잡겠다고 아득바득 우기는게 왜 인지도. 어차피 망해가는 나라에서 인플레이션은 못잡는다. 뭐 인플레이션을 못잡아서 무너지는것이기도함. 괜히 로마제국은 인플레이션으로 망했다고 하는것 아님. 근데 중앙정부에서 그걸 공표하고 인플레이션에 항복한다? 그 순간 모든게 끝장이다. 경제의 기반인 신뢰성이 무너진다. 그리고 사실상 무정부상태나 다름없음. 당백전은 무슨 대단한 이유조차 아니고 그냥 왕실이 사치하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경제 ㅈ망을 감수한것.
님 의견 존중은 하는데 나도 첫댓 주장에 동의
일단 님이 조선후기 경복궁을 비판할 생각없다 여러 관점에서 살펴보자 고 글에 밝히긴 했지만 개인적으론 비판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음 글에서 서원철폐 전기 경복궁 흥선대원군 고종 그리고 걔네를 평가하는 이런저런 관점이 산발적으로 제시되는데, 다른 기준으로 보면 초점이 잡히지가 않음 비슷한 현상에 대한 평가 기준도 자꾸 바뀌고 이러니까 대표적으로 서원철폐 경복궁중건에 대한 태도라든지 이러니까 혼란스러운데, 의도가 후기 경복궁 비판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이 글이 초점이 딱 잡히거든 논리도 논거도 다 일관성을 갖추게됨 이런 글을 읽으면서 특정 의도를 배제해 달라는건 좀 힘든 주문임...
2222 백성의 고혈을 짜내 나라를 망치는 서원을 철폐한 것은 귀중한 유산을 날린 것이라 잘못됐고 경복궁 중건은 백성들을 힘들게 했으니 잘못됐다는 것을 보면 백성이니 국가니 거창한 말로 포장했지만 그냥 조선 전기 경복궁이 보고싶다는 말로밖에 안 읽힘
향교 서원 날린게 수천개인데
재미있게 읽었는데 왜이리 민감하게 구는 사람들이 있는거지...진짜 이 나라에서는 혹자가 말한대로 '의견의 차이' '용납 불가한 나에 대한 모욕'으로 여기는건가. 의견 교환이 아니라 '니 말인 틀렸으니 내가 설득 들어간다'만 오지게 하고 있네 댓글에서
반박하는 애들은 그나마 논거라도 있고 자기가 글쓴이의 어떤 워딩과 논리에 자극받았는지 설명이라도 하지 너야말로 다른 생각 못받아들이고 그저 '니 말이 틀렸으니 내가 설득 들어간다' 시전하는 인간들로 퉁치고 이해하는것 같네 아, 니의견 부정하는거 아니고 나도 걍 내의견 말한거^^ 서로 부정하지 말자ㅎㅎ
네이놈!!
3줄 요약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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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대원군은 고종의 애비인데 왜 왕 패싱당한거냐
고종부터가 왕족 방계 출신으로 알고있음. 자세한건 역사스페셜 대원군편 보셈
이승만 없었으면 남한 쿨하게 버리고 일본에서 막을 생각하지 걍 생각 존나 짧노 ㅋㅋ 이승만이 외교 하나는 줄타기 존나 잘한거 맞는데
지가 틀린건 이지랄~ ㅋㅋㅋㅋ
북한에 박정희가 나타나면 혼자서 뭐할건데? 애초에 경제개발계획 자체가 장면 내각 계획이었는데 ㅋㅋㅋ
그건 내각 초기에 대통령이랑 내각이랑 의견 충돌이 있어서 였고 점점 자리 갖춰가고있다는 학술적 연구 결과가 있는데 지혼자 다 부정하고 박정희만 쳐빨고 있네 ㅋㅋㅋ 팩트는 박정희가 없었어도 알아서 굴러갈 계획이었단거고 박정희 집권하면서 이승만이 외교하면서 벌어다 놓았던 미국 원조가 위태위태해졌다는거 ㅇㅇ 반미시위 선동 정치권에서 시작한게 박정희인것도 모르노?
경제개발계획이란게 니가 생각한대로 만들면 아다리 맞게 발전하는게 아님 ㅇㅇ 당장 군부새끼들도 차별화하려고 새로 만드려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따라한 개발계획은 남들도 다 있는 간단한 계획으로 폄하하노 ㅋㅋㅋ
행정무능력자는 차별화 못하고 남이 만든 계획 파쿠리한 사회주의 정권인 박정희 정부가 할소리고 ㅇㅇ
박정희가 반미한건 본인이 반란으로 나라 먹으니까 미국군대가 진압하려고 한거랑, 남로당 경력 때문인데?
장면 내각이 이승만보다 뒤에 나온 정권인데 파쿠리도 못한 ㅇㅈㄹ하고 있노 ㅋㅋㅋㅋ 아니 씨발 이딴 수준으로 역사타령 하는거냐?
어 그렇게 말해봤자 미국에서는 박정희보고 사회주의적이라고 했고 이승만한테는 60년대 경제발전의 기초를 쌓았다고 했어 ㅇㅇ
그래서 그게 장면 계획 파쿠리한거랑 뭔상관이냐니까? ㅋㅋ ㄹㅇ 대가리 멍청해서 진지하게 주장하고 있는거노?
선동해서 사람 죽이고 다닌 정권 옹호하는 애가 양민학살에는 선택적 분노하시니 보기좋네요 ㅋ
박근혜가 혼자서 생각 못하는것도 박정희 닮아서 그런거노? ㅋ
팩트는 미국 주류에서는 이승만이 기초를 닦고 계획은 장면이 세웠다고 말한다는거임 ㅇㅇ
맞는데?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이승만 외교 잘한거 맞고, 박정희 정권은 나라에 하등 도움 안된게 팩트임 ㅇㅇ
하버드에서 배우긴하지 ㅇㅇ 따라잡기 효과의 예시로
어 김일성 한국버전이 미리 기술개발해서 자체 제작 라디오 기술 자체 자동차 개발 기술 갖고 있었던 덕분에 박정희 정부가 날먹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ㅇㅇ 니논리면 전세계 여론조사 지도자 1등은 시진핑이야~ ㅋㅋ
지금 경복궁이 없었다 생각하면 정말 아찔해. 이런 댓글 달라고 쓴 글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경복궁의 가치는 부정할 수가 없음. 대원군이 중건하지 않었다면 조선전기 경복궁의 형태는 세세한 형태를 알수도 없어서 복원도 불가능했어. 그리고 망국의 '원인'은 경복궁 중건이 아니야. 철종대 세도까지 거슬러 가는 문제고
또 너가 그 경복궁 자리를 빈터로 남겨놨을경우로 if를 생각하는 거라면 이후에 있을 일제가 그 노른자땅을 가만두지 않았을것도 고려해야돼. 궁궐 건물이 들어차있어도 헐고 식민지 건물을 지은 일본인데, 이미 빈터로 남겨진 넓은 부지였다면 더 수월하게 제국 건물들을 지었겠지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라, 그렇게 빈터에 세워진 총독부 등 식민지 건물들은 철거할 명분도 없었을거고, 해방후에도 계속 남겨졌을거라는거야 실제로 총독부가 철거된건 그자리가 비교적 오래되지 않은 궁궐이기 때문이고 근정전 경회루 광화문 등이 있기 때문인거지, 수백년간 폐허였고 궁궐이라는 기억도 없는 공간이었다면 그자리에 뭐가 들어선들
당연히 현재 경복궁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님. 다만 조선 초기 경복궁과 대원군이 재건한 경복궁은 그 배치가 전혀 달랐으며, 중건으로 인해 조선 초기 경복궁의 형태에 대한 정보가 아예 없어지다시피 했다는 점이 글의 요점임. 또한 경복궁 중건은 망국의 직접적 원인은 아니지만, 조선을 망국의 길로 이끈 고종이란 인물이 집권하게 된 주요 원인이기에 궁극적 원인이라고 볼 수 있음. 애당초 그런 인물을 왕위에 앉힌 것이 대원군이긴 하지만. - dc App
반발심이나 복원해야된다 하는 의식도 없었을거라는 점을 생각해봐야해. 냉정하게 보면 그자리는 조선전기 궁궐의 그 무언가가 아니라, 총독부의 무언가들로 가득했을거라고. 현실에선 역사의 아이러니로 어찌저찌 복잡하게 흘러가면서 멋지고 웅장한 경복궁을 볼 수 있게 된거에 감사할 따름이야
그 조선전기 궁궐 배치와 흔적들은 대원군이 아니었어도 일제에 의해서 찾아볼 수 없게 됐을거라는게 내 요지야 실제 역사에서 그 부지를 일제가 어떻게 파괴, 활용했는지 보면 어렵지 않게 유추가능하잖아
임진왜란 이래 경복궁은 조선왕조에서 줄곧 신성시되던 공간이었음. 비록 경복궁 터 폐허였으나 일반인의 출입이 엄금되었고 조선왕실이 유존한 기간 동안 경복궁 터는 그대로 남아 있었을 것임. 만약을 가정했으니 덧붙이자면 경복궁 중건 이외에 모든 것이 지금과 같음을 가정했을 때, 조선총독부 건물은 건축물로써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고, 일제강점기 쓰인 역사보다 현대 대한민국의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난 역사의 현장으로 지금까지 남았을 거임. - dc App
국회의사당, 중앙청, 중앙박물관으로 쓰이기까지 해방 이후 역사의 수많은 질곡이 담겨 있는 장소이고, 오히려 마지막에는 박물관으로 사용되었기에 경복궁 터와 연계되어 옛 고궁 터에 자리잡은 근대 건축물과 박물관으로 수도의 중심에 위치한 좋은 역사적 명소가 되었을 수도 있음. 또한 총독부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해당 원위치에 있던 중요한 유구들은 이전하여 보존되었음. 광화문은 철거해서 없어진 것이 아니라 동쪽 담장으로 이건되었고, 총독부 동북쪽으로 석물들이 옮겨져 남아있었기에 지금 옛 영제교를 볼 수 있는 것임. - dc App
또한 과거에는 지금처럼 지하를 깊게 파서 건물을 짓지 않았기 때문에 서울도서관과 같이 한 층 띄우는 식으로 유구와 근대건축물을 동시에 보존하는 방법도 있었을 거임. 마지막까지 왕실이 거처한 창덕궁은 일제에 의한 파괴가 적었던 것을 볼 때 중건을 고집하지 않고 동궐-서궐 체제로 양궁을 모두 사용했다면 30년 사용하고 버려진 경복궁과 250년 동안 인조, 숙종, 영조, 정조, 순조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경희궁이 갖는 문화적, 건축적 가치가 더 높았을 지는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임. - dc App
내말이 그말이야 조건전기의 흔적은 그경우에도 지워지게 되는거니까 중건으로 지워졌다고 아쉬워할일은 아니라는거지. 그렇게 세워진 총독부 밑 여러 부속건물들은 철거되지 않았겠지. 어차피 궁궐터였대봤자 사진한장 없는 곳이니 총독부 철거 명분이 없었을거고.
총독부 건물이 좋은 역사적 유적이 될거라는 말에는 공감해. 서울역처럼 어떤식으로든 활용했겠지.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그렇게 되면 너가 말한 경복궁의 조건 전기 흔적은 영영 미궁으로 빠져들어가는거야. 총독부 및 여러 건물들 역시 살아있는 역사 유적이 돼버리는거니깐. 그 아래의 유구보존은 불가능이야
위에 건물이 올려졌다면 유구가 남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겠지. 내 글의 요점은 경복궁에 취해 흥선대원군에 대해 무작정 찬양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지, 경복궁의 현재적 가치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님. - dc App
인정하기 불편하겠지만, 댓글까지 읽어보면 맥락이 이미 경복궁의 현재적 가치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됐어. 경복궁과 비교해서 역사적으로 유구한 경희궁의 가치를 생각해보자는건 은연중에 너가 경희궁쪽의 가치를 더 높게 치는거고 서궐과 동궐 양궁 남아있고 경복궁 빈터엔 제국주의 건축물이 들어선 상황을 계속 가정하잖아.
그리고 너의 그 건축적, 문화재적 바램을 조금 더 정당화 하기 위해 '경복궁 지어서 나라가 망한것'이라는 거친 명제까지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넣고 있어.
250년간 왕실의 중심 궁궐이었던 경희궁과 같은 기간 폐허로 남아 있던 경복궁 중에서 당시에 더 큰 역사적 가치를 지닌 장소는 경희궁이라는 것은 사실임. 다만 현재적 가치라는 것은 21세기 대한민국, 서울의 랜드마크로써 수많은 해외 관광객이 찾는 장소라는 점에서의 가치를 말하는 거임. 중건을 안했으먼 일제에 의해 제국주의 건축물이 지어졌을 것이라고 먼저 가정한 것은 너고 나는 그 건축물들 또한 역사적 가치를 지녔을 거라고 말했는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네. - dc App
경복궁 중건은 경희궁의 건물을 뜯어오는 것을 전제로 해야지만 성립되는거고, 그래서 너가 경희궁의 우위를 주장하는건 경희궁이 있으면 좋았을텐데~로 끝나는게 아니라 경복궁이 없어야 된다로 연결되잖아. 경복궁 존재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게 아니면 뭐야
심지어 조선전기 유구 훼선 시켰다고 경복궁을 또 한번 비판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내가 경복궁이 아니었으면 식민지 건물들에 의해서라도 훼손은 됐을거라고 개연성을 얘기한거고 그러니 너는 옳다구나, 경복궁 없어도 그자리에 총독부 있는것도 좋은 건축적 유산이라고 받아쳤지. 니 주장의 처음부터 끝까지 중건후 경복궁의 존재를 배제한 이점만 생각하고 있는데
그 주장들 중 대체 어디서 경복궁의 현재적 가치를 찾을 수 있겠어. 심지어 근대화 실패까지 경복궁 탓을 하면서 경복궁의 존재가 없어야만 되는 가정을 자꾸 하는데. 차라리 경복궁의 가치를 부정한다고 솔직하게 말해야 논리가 정연해지고 너대로 제대로된 주장이 가능하지 않을까
대원군은 경복궁 중건으로 인해 당백전을 발행하였고 청전을 수입했으며, 이것으로 인해 화폐제도가 크게 흔들렸음. 그걸 기회로 집권한 고종이 청전을 하루아침에 금지시켰고, 다시 난리가 나자 이번엔 당오전을 발행했음. 이 일련의 조치가 화폐가치를 박살냈고, 이후 망국때까지 국가는 곤궁함에서 벗어나지 못했음.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경복궁이 경제 파탄의 신호탄이 된 격이고, 청전 회수와 당오전 발행까지는 예상할 수 없었어도 경복궁 중건으로 나라가 거덜날 것은 예견 가능한 일이었음. 결국 국가 재정의 위기가 경복궁에서 비롯된 것이고, 국가 재정은 국가가 존재하도록 받쳐주는 기둥과도 같음. 당시 상황들을 살펴보면 재정이 부족해져서 열강들에게 여러 권리를 매각하고 그것으로 재정을 충당했고, - dc App
그게 열강들이 한반도에 발을 들이미는 빌미가 되었음.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경복궁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음. - dc App
너는 신호탄을 굉장히 늦게 쏘는구나 경복궁 중건의 문제점을 아무리 나열하더라도, 경복궁을 중건하지 않았을때 근대화가 가능했는가?에 대한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망국의 원인이 경복궁에 있다고 할 수 없는거야. 경복궁 중건 시점이 1860년대지. 이때 개화파가 주장한게 뭐있어? 개항이 다야. 76년에 개항할거 68년에 개항하면 근대화 돼?
그리고 조선의 성리학적 통치이념이 문제였다고 지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원철폐를 아쉬워 하는 건 모순점이라고 생각해. 오로지 건축적으로만 본다면서도 경복궁 비판할땐 역사적 가치를 끌고와서 비판하고, 서원 얘기할땐 건축적 가치를 가지고 비판하고. 시시때때로 원하는대로 판단의 기준점이 달라지는 것 같아
성리학은 잘못되었지만, 서원건축은 한국건축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쉽다는 거지, 본문에서도 서원철폐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인정했음. 그리고 지금도 창덕궁을 부숴서 새로 어디 궁궐 짓는다고 하면 난리날텐데, 그게 창덕궁의 건축적 가치 때문이 아니면 뭐임. 똑같이 경희궁 부숴서 경복궁을 지은 건데, 당시를 기준으로는 지어지지도 않은 경복궁이 이미 존재하던 경희궁보다 가치가 높을 것이라는 건 말이 되지 않음. 본문 마지막 부분의 내용은 고종에 대한 비판이지, 경복궁의 가치에 대한 비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음. 흥선대원군이 마치 아무것도 없던 곳에 경복궁이라는 한줄기 빛을 내려준 구원자인 마냥 떠드는 애들이 많아서 흥선대원군에 의해 없어진 것도 많다, 이걸 말하려고 하는 거지. - dc App
경복궁 때문에 경희궁이 없어졌는데, 경희궁이 없어져서 아쉽다는 걸 왜 자꾸 경복궁을 비판하는 걸로 둔갑시키는지 모르겠네. 경복궁을 중건해서 나라 경제가 파탄났고, 그걸 결정한 대원군을 21세기 관광지 경복궁을 바라보는 관점만으로 봐선 안된다는건데. 문화재적 가치로는 경복궁의 가치가 크지만, 그걸 역사적 평가로 직결해서는 안된다고. - dc App
건축적으로 서원의 아쉬운 만큼 경복궁이 가진 건축적 가치에 대해서도 같은 기준에서 평가해야지. 망국의 원인 찾겠다고 경복궁은 조지면서 조선후기 부패 온상지 서원에 대해서는 '철폐 당위성 인정함' 끝이야? 서원도 같은 선상에서 영혼까지 탈탈 털든가, 아니면 경복궁의 건축적 가치를 인정 하든가. 이도저도 아니고 원하는대로 기준을 달리하면서 경복궁 죽이기에만 전
님이 주장하는 그당시 관점으로 바라보자는 의견을 수용해서 댓글애들이 경복궁 중건->재정파탄->근대화 실패 로 이어지는 논리가 과연 견고한가 검증하고 있으니 님 관점을 충분히 수용한 필드에서 얘기하고 있는거 같은데 님도 댓글애들이 무작정 현대 관점만 얘기한다고 둔갑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적어도 여기 댓글에선 아무도 흥선대원군을 일방적인 구원자로 여기는 것 같지는 않아보이는데
념하고 있잖아. 그리고 당시에도 이미 폐가가 된 경희궁의 가치를 그렇게 올려놓고, 경복궁은 경희궁을 부수고 지었다고 그렇게 비판해놓고 갑자기 그걸로 경복궁을 비판한건 어니었다 하면 어떡해. 경희궁 아깝다는 얘기를 경복궁이랑 상관없이 갑자기 생각나서 무맥락으로 툭 끼워넣은건 아니잖아 이 글이
대체 어디서 경복궁의 건축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거임? "경복궁 중건으로 국가재정이 파탄났다"는 경복궁 중건이 불러온 영향과 그 결정에 대한 비판이지. 당연히 경복궁이랑 경희궁 둘 다 남아있으면 좋지. 근데 경복궁 짓느라고 경희궁이 없어졌다는건 단순한 사실이지 내가 경희궁의 건축적 가치를 언급하면 그게 경복궁의 건축적 가치를 비판하는거임? - dc App
이 글은 너가 경복궁의 건축적 가치조차 인정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돼. 똑같이 역사적 비판을 받을 서원에 대해선 건축적 가치를 언급하면서 아쉽다 하는데, 경복궁에 대해선 건축적 가치를 인정하는 내용은 다시 읽어봐도 단 한 줄도 없으니깐. 니 맘속으론 인정하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여기 쓰인 글은 그부분은 생략됐거 비판에만 중전을 둔 맥락으로 쓰였어.
내 글의 취지가 "경복궁 좋은건 다 알겠으니 흥선대원군이 없앤 것도 알아보자"라서 굳이 경복궁의 가치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음. 비판의 주된 골자는 경제 신경쓰지 않고 중건을 결정한 대원군의 판단과 기껏 지어놓고 제대로 사용도 안한 고종이지 경복궁 자체가 아님. 오해할 만한 소지가 있었다면 양해 바람. - dc App
다음으로 역사적 가치에 있어서 이미 넌 경희궁이 경복궁에 비해 가치가 더 높다고 말했어. 그런데 네가 경복궁 비판의 핵심으로 꼽은 재정파탄을 가지고 경희궁도 똑같이 비판받을 수 있어. 광해군이 전후복구에도 모자란 돈으로 궁궐건축에 광적으로 집착하면서 만든게 경희궁이지. 정원군 옛집에 왕기가 서렸다는 얼토당토 않은 얘기로 말이야. 그렇게 무리한 공사를한게
광해군 자신의 몰락을 가져왔고 그 시기가 이미 17세기를 지나는 중이었어. 그리고 집권한게 인조였고 인조는 청의 발전된 문물을 도입하는데 매우 부정적인 쇄국적 정책을 폈지. 경복궁 중건이 파탄낸 만큼 서원의 파탄, 경희궁의 파탄도 컸어. 경복궁중건을 비판하자고, 서원과 경희궁이 아깝다하는건 모순이야. 방금 너가 모두 있으면 좋지~하고 한건 본문의 맥락을 벗
250년 전 왕들이 살았던 궁궐 터와 몇년 전까지 왕들이 살던 궁궐 중 택하라면 누구라도 후자를 택할 것이라고 생각함. 광해군도 흥선대원군처럼 궁핍한 나라 살림에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인경궁 경운궁 다 중건해가지고 욕을 먹었고, 그건 광해군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영역이지 그렇다고 해서 창덕궁 경희궁이 나쁘다는건 아니잖아. 똑같이 경복궁도 만들어진 배경에 문제가 있는 거지 경복궁을 비판하는게 아닌데 자꾸 역사에 대한 평가를 문화재에 대한 가치로 직결시키는거임? - dc App
스스로 본문의 맥락에서 벗어난거라고 생각해. 결국 네 머리 속으로는 이런 관점도 저런관점도 다 가지고 있고 넓게 보고 있었다고 할순 있겠지만. 적어도 이 글의 논지는 너무나 명확하게 경복궁의 어두운점만 조명하면서 경희궁과 서원은 피해를 본 아까운 건축물이라고 반대선상에 둔건 맞으니까. 그부분을 꼬집는거야. 무언가를 비교 판단하는 글은 판단 기준점이 형평성이
글 어디에서 경복궁을 비판하려는 목적으로 경희궁이랑 서원이 아깝다고 했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흥선대원군이 없앤 경희궁에 대해 말한다면 그 자재로 만든 경복궁에 대한 내용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함. 그걸 가지고 경복궁을 비판했네 하면서 매도한다면 없어진 경희궁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보는건가? - dc App
형평성이 있어야겠지. 경희궁 가치 문제는 중건된 경복궁에 더 높은 가치를 주는 사람도 많을거야. 광화문, 흥례문, 근정문, 근정전, 경회루, 강녕전, 향원전... 등등 하나하나가 정말 경희궁의 그 어떤 전각과도 맞바꿀 수 없는 멋진 건축물을 만든게 후기 경복궁이라서.. 왕 몇명 더 살았다고 경희궁이 낫다? 난 동의 못하고. 누구라도 경희궁이 낫다 한다는 주
신빙성이 없어. 니 주관적인 생각을 관철 시키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나와 생각이 같다하고 과장하는 것에 불과해 그건. 그리고 경희궁 훼철로 다시 오면, 뜯어갈건 뜯어가더라도 어찌됐든 유구는 남았을거잖아. 서궐도에서 건물 모습도 확인 되고. 복원의 길이 열려있는건데. 지형을 높엿다 낮췃다 파헤치고 건물짓고 유구까지 훼손한건 일제야.
경희궁 얘기에 뒤따르는 경복궁 얘기가 아니라, 너는 경복궁 얘기를 먼저 하면서 그것이 심지어 유구한 역사를 가진 경희궁을 훼철해서 만들었다니 이 얼마나 아까운가!하소연 한 거잖아. 그건 잘못됐지. 경희궁은 어디 공짜로 하늘에서 부재들이 내려와서 지은건가? 그리고 궁궐 공사할때 이쪽 궁궐 전각 저쪽 궁궐로 옮기는건 이전에도 그랬고 합리적인거야.
나는 경복궁이 중건되기 이전의 상황을 바탕으로 아무것도 없는 경복궁과 그래도 250년 동안 역사가 녹아 있는 경희궁 중에서는 경희궁의 가치를 더 높게 샀음. 하지만 너 말대로 현재의 관점에서는 더 크고 웅장한 건축물이 남은 경복궁을 높게 평가하는 것도 일리 있는 주장인 것 같음. 다만 당대의 관점에서는 경희궁을 보존하는 쪽이 더 낫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임. 여력이 생긴다면 경희궁을 보존하면서 경복궁을 중건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지. 정작 뜯어온 목재를 제대로 사용도 못했다는 점은 아쉬움을 더 크게 함. - dc App
빈집 방치하면 폐가돼서 못써. 경희궁 수십년 방치된 이래 대원군때도 이미 상당수 폐가 됐고. 그걸 21세기 관점에서 문화재 보수 보존라도 하자는건 아닐거잖아 니 주장이. 놔두면 어차피 없어질 궁궐이 경희궁인데, 마치 경복궁 중건만 아니면 경희궁은 번듯하게 있는건데 파괴된 것 처럼 얘기하는건 설득력이 부족해
그리고 조선 전기 유구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마치 절대 건들면 안되는 영역을 경복궁이 훼손한것으로 엄청난 재앙인 것 처럼 다루는데, 그렇게 유구를 중요시한다면 경희궁 유구까지 대원군이 훼손했을까 하는 부분도 생각해봐. 뜯어갈때 바닥 돌까지 파내서 다 가져갔을것 같진 않아. 그 유구는 가만 두기만 했어도 지금 복원이 다 되는 부분이고,
다만 인조 때 인경궁, 경운궁 옮겨지은 일 같은 경우에는 지은 지 얼마 안된 궁궐이었고, 이외에는 대체로 한두 동 이동시키는 수준, 그것도 건물의 원형이 남게 옮겨 지었는데, 경희궁의 경우처럼 200년 넘게 쓴 궁궐을 통째로 다른 궁궐 짓겠다고 옮겨버린 사례는 조선 역사상 없었음. 그리고 경희궁도 1860년에 철종이 이어했다는 기록이 있음. 당시 경희궁 상태가 어땠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주요 건물들은 쓸만했던 수준이니까 왕이 가서 살았겠지. - dc App
그럼 너라 바란다고 했던 경희궁도 있고 경복궁도 있고 다 있는 그림이 나왔겠지. 유구를 건든건 일제야. 지형을 낮췄다 높였다 한 바람에 건물의 원 위치는 찾울수도 없게 됐어. 그리고 대원군은 이 글대로 숭정전 흥화문 같은 경희궁의 핵심 전각은 그대로 놔뒀어. 나름대로 경희궁이 가진 역사성을 최소한도는 보존했다 봐. 그뒤 권역 전체를엉망으로 만든건 일제지
본문에서도 그렇고 1865년까지 간의대며 일영대 등이 남아 있었다고 쓴 걸 뭐 그렇게 과장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당연히 유적에 대한 인식이 없던 시절인데 새로 중건한 궁궐에 옛 궁궐 유구는 파괴되겠지. 다만 임란 이후 경복궁은 잡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공간이었기에 중건되지 않았다면 조선 왕실이 남아 있는 기간 동안은 유구가 제대로 남아있었을 거란 얘기임. - dc App
알았어 그럼 정확하게 경희궁의 어떤 전각이 훼철된게 아깝다고 하는거야? 콕 찝어서 얘기해 줄 수 있어? 나는 이문제를 확실히 해야겠어. 중건 한참 후인 1910년 당시에도 경희궁에는 숭정전, 흥화문, 회상전, 황학정, 정심합, 사현합 등은 있었다고 나와. 대원군도 남길건 남긴거 같은데. 너가 수랏간이나 기타 행각들이 아쉬운건 아닐거고
궁궐은 그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로 돌아가는 공간이지 건물 하나하나에 별도로 가치를 매기는 것은 의미가 없음. 중요한 것은 외전-내전-후원 이 궁궐 전체의 시스템이고 각각의 건물들이 모여서 만드는 시너지이지 각각 건물들이 따로 존재한다면 그 가치는 적어질 것임. 건축물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더불어 존재함. 따라서 그 위치에 따라 가치는 크게 달라질 수 있음. 각 건물들의 개별적 가치만을 평가하는 것은 건축물의 절반만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임. - dc App
그 유기적으로 엮어주는 행각이나 부속건물들은 유구만 남아있으면 복원 가능 한 것들이야. 실제로 지금 궁궐의 많은 부속건물들이 그런식으로 복원됐고. 경희궁의 중심 전각들이 남은건 정말 중요한 사실이야. 숭정전이 수랏간보다 개별 건물로서 가치가 높은건 부정할 수 없어. 계속해서 경희궁의 어떤 건물이 아까운건지 말해줘
아니 동아시아 궁궐의 유기적인 군집구조가 중요한 특징인거야 맞겠지만 궁역의 확대축소는 있을 수 있는 일이잖음;; 그중에서 정전 편전 침전정도 남아있으면 어떻게든 궁궐 기능을 할수있는건데 경희궁 서궐도 풀패키지가 아니면 경희궁이란 실체라 이미 사라진 거냐 왜 바로 평가기준을 개별 전각수준으로 해체해버리는건데
아까운 것은 개별 건물이 아니라 궁궐이라는 하나의 생명력이 단절되었다는 점임. 중건 이전과 이후 경복궁은 완전히 다른 건물이듯이 경희궁은 왕실의 이궁으로써의 공간성이 유지되어 내려오고 있었는데 딸랑 건물 몇 동 남은 거 가지고 공간성이 어떻게 지켜지겠음. 숭정전이 아직 남아 있지만 경희궁의 숭정전으로써 갖던 가치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 공간이 해체되었으니 이제 숭정전은 개별 문화재로의 연구 가치는 남아있을지 몰라도 건축물로써의 생명력은 다한 것임. - dc App
왕은 한 명인데 동시에 3개 4개의 궁궐을 영유할 수는 없는 법이야. 어떻게 모든 궁궐이 동시에 수랏간 서까래 하나 안빼고 풀패키지로 생명력을 유지해? 대원군이 창덕궁으로 들어갔으면 그건 그것대로 경희궁이 생명력을 잃었다 할거야? 전각들 다 놔두라고? 빈집 수십년 놔두면 폐가돼. 경희궁이 100%여야 한다는 그런 비합리성을 주장하는거야 지금?
그래서 왕들은 자주 이어를 해서 궁궐을 옮겼잖아. 각 궁궐에는 최소한의 관리인력이 있었을 테고. 그런 상태에서 보존되는 경우와 건물 몇 동 방치해두는건 경우가 다르지. - dc App
근데 전기 경복궁 유구의 경우에는 왕실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관리를 했다는 점을 들어 연속성을 인정하지 않았나 경희궁의 경우에도 덕수궁 건설 이후에도 홍교로 잇고 국가행사도 치를만큼 왕실의 공간으로 인식을 한 듯한데 경희궁이라는 공간의 생명력이 단절되었다고 보기엔 비약같음 게다가 남은 건물 몇 동이라는데 그 몇 동중에 정전이랑 침전있잖음;; 편전짓고 행각+문만 정비하면 어쨌든 궁궐 코어 복원이 계속 가능한 상태인데 전기 경복궁 터보다는 양호한 상태 아니냐 흥선대원군의 훼철 즉시 생명력이 죽었다고 보긴 무리가 있지
니네 집에 있는 가구들 싹 다 치우고 짐만 잔뜩 쌓아두면 그건 창고지 더 이상 니 집으로써의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거잖아. 겉모습만 똑같다고 해서 같은 공간이 아님. 물리적으로야 같은 공간이겠지만 공간성이 달라지는데 어떻게 같다고 볼 수 있겠음. - dc App
우리집은 같은방을 어떨땐 서재로 썼었고 몇년간은 그냥 방으로 썼었고 어떨땐 창고로 썼어가지고 그래도 우리집 약간 구석에 있던 어떤 방이었다는 연속성은 유지가 됐는뎅 편전으로서 선정전이 빈전으로 변해갔다고 물론 너말처럼 정체성의 일부 변화야 있겠지만 계속 선정전이긴 하잖음
위에 있는 ㅇㅇ 유동닉이랑 나는 다른 사람이야. 댓글이 섞이고 있는데.. 앞으로 난 내 댓글 앞에 *붙여서 구분지을게
*궁궐은 정치공간이야. 니가 어떤 다른 정체성을 부여하는진 모르겠지만. 서궐은 정동처럼 주변에 각국 영사관들이 많이 밀집해 있던 곳도 아니어서 다시 들어가서 누릴 혜택이 없어. 궁궐을 이어하는건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지 문화재 보존차원이 아님. 그런점에서 서궐을 인력 붙이고 비용까지 대면서 유지했어야한다는건 주장이 비효율로 많이 기울었다
*경희궁도 이미 못쓸 부재들이 많았어. 가뜩이나 혼잡한 구한말에 수십년동안이나 더 오래 비워두면서 경복궁 2/3나 되는 거대한 경희궁을 수리해가면서 100% 유지하라? 그 비용은 공짜야? 왕이 창덕궁-경희궁 왓다갓다 이어하면 된다고? 정치적 필요성이 있어야 서궐로 가는거야. 왜 고종이 서궐로 가야돼? 궁궐 보존이라는 명목이면 그건 주객전도고, 현대적 관점이
ㄴ 그니깐 윗댓에서는 그 정치공간인 궁궐의 정체성이 건물 몇 동만 남아있어도 유지된다는 거잖아. 효율성을 따지자면 경복궁 중건 자체가 극도의 비효율인데 갑자기 효율적이니 마니 하는 얘기가 왜 나오는거야. 애초에 경복궁을 중건했다는 것부터 비효율을 전제로 깔고 위엄을 높이겠다는 건데. - dc App
저 상태의 경희궁이 궁궐로써 가치가 잔존하는가 여부를 따지고 있는데 논점을 흐리지 말기 바람. - dc App
*훼철 이후에도 경희궁 정체성이 유지됐다는건 인정하는거야 그럼? 그리고 대원군은 경복궁 정체성만 살짝 살리려는게 아니라 왕실 전체가 거기에 살러 들어간거야. 왕실 가족과 그들을 위한 궁녀들 등등의 수많은 인원이 들어가 사는 일터와 거처들을 경희궁에서 가져오는건 효율, 합리성이지. 비어있는 경희궁 100%보존은 비효율 비합리지
뭔소리야 저 건물 몇동 남은 상태로는 궁궐로써의 정체성을 상실했다니깐. 애초에 중건 자체를 하지 않았으면 유지비용만 추가하면 되는걸 경복궁을 새로 지은 상황부터가 효율성은 무슨 초인플레이션이 터졌는데 효율성을 따질 명분이 어딨어. - dc App
*그렇게 경복궁 중건 사업비로 따지면 경희궁도 필요없다고. 창덕궁에 쭉 살면 되는거지 뭐하러 경희궁을 유지시키란 말이야? 내 요점은 이거야. 어차피 비어있는 경희궁을 뭐하러 100%로 유지시켜야되냐고. 그게 비효율 비합리성 아니냐고. 경희궁의 생명력이 영원히 보존되어야만 하는 당위성이 뭐야? 현대적 문화재 보존 관점?
*앞에선 경희궁의 가치를 여러왕들이 거쳐간 역사성에 두고 있는데. 그럼 그 왕들의 행위들이 있었던 핵심 공간인 정전, 침전, 편전, 정문 등등이 남겼으면 가치는 보존되는거지. 갑자기 전체 보존이어야만 된다는 비합리적인 주장을 하는거야 왜. 궁녀와 무수리들의 역사성까지 보존해야된다고 하는거야?
영원히 보존되어야 한다는게 아니라 보존되지 않은 상태에선 생명력이 없다고. 왜 자꾸 선후관계를 뒤집어서 이해하는 거야. - dc App
*단사람이 원래 댓글단 사람같은데 내가 꼽사리끼는 주제에 *달게 만들어서 미안하네 나는 #달겠음 #글쓴이가 유기적으로 보자고 했는데 그러면 조선왕실 왕궁 체제 전체 내에서 봤을덴 결국 북궐이든 서궐이든 동궐이든 자기 집의 방이고 옮겨다니고 고치고 할수있는곳 아니겠음? 어떨댄 누구 방이 되고 어떨땐 창고도 될 수 있는거임 그곳을 자기 집터로 놔두겠다고 덕수궁 홍교로 이어놓기까지 했잖음? 조선 당시시점에선 경희궁이 생명력을 상실했다고 판단할 근거가 희박함 꼴리면 이어하는 거잖음 경희궁이 흥선대원군 훼철이후로 결과적으로 궁궐로 영영 못돌아왔다 그래서 훼철시점 즉시 생명력 상실이란건 글쓴이가 본문에서 비판한 현대의 관점만을 투영한 것에 더 가깝지않음?
ㄴ 상황에 따라선 변화가 있을 수 있겠지. 근데 1칸만 없어진게 아니라 통째로 없어진 상황이잖아. 공간성 자체에 큰 변화가 생겼고, 나중에 같은 자리에 건물을 그대로 짓는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경희궁과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게 내 요지임. - dc App
읭 얘 어디갔어 - dc App
*그니까 너는 중건 때문에 훼철된 경희궁 생명력 잃었다 생각하고 그게 아깝다는 거잖아. 아까우면 당연히 중건은 없어야될 일이었다고 선후관계로 생각하고 있겠지. 안그래? 나랑 망하게햇다고 중건의 해악만 그렇게 주창하고, 경희궁의 역사성은 그렇게 비교우위에 뒀으면서 이제와서 경희궁이 보존되길 원한건 아니야라고 하는거야?
*네 댓글 보기 전에 조금 고쳣어. 아 그리고 계속 언급하는 공간성은 뭐야? 당시 왕실이 정치적으로 중요하게 여길 수 있는 가치야? 아니면 현대적 문화재 보존 관점에서 너가 생각한 가치야?
내가 종종 건축을 도시에 대응시키곤 하는데, 이를테면 이어하고 다니는 걸 긴 연휴기간으로 비유할 수 있음. 그런데 위의 경희궁 상황은 서울의 주요한 건축물(예를 들자면 시청, 의사당, 대통령실 등등) 몇개만 남기고 싹 없앴다가 다시 짓는 경우와도 같음. 사람들과 물리적 공간은 같다고 하더라도 연속성이 사라졌는데 실질적으로는 같은 공간이라고 볼 수 없다는 거지. 대개의 도시는 연속적으로 성장함. 건물이 하나 없어졌다가 다시 지어지고, 사람이 생사를 거듭하고. 그 연속성 안에서 하나의 도시가 유지되는 거지. 과격한 변화를 거친다면 그건 물리적으로 같은 장소라고 할지라도 같다고 볼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임. - dc App
*일단 주요 전각을 남긴 것에서 나는 단절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여러번 언급놨듯이 왕실 공간으로 이후에도 사용됐고. 그 '공간성'이라는것에 더 문제를 지적하면, 건물의 물리적 보존이라는게 왕실 차원에서의 정치적 필요성을 능가하는 가치라곤 보여지지 않음. 구한말 궁궐은 어디까지나 '정치공간'이야. 과거와 현재는 달라
*대원군이 경희궁 훼철할때 완전히 서궐을 소멸시키고 개방해서 민간이 들아와 살게 한 것도 아니잖아. 역사적 인과관계에 입각해서 생각해봐. 대원군이 훼철할 당시에는 조선이 장차 일제에 의해 망할거라는 생각을 못했어. 경희궁은 궁궐역사 으레 그렇듯 통상적인 긴 연휴기간에 들어간거야. 나중에라도 뜯어와서 들어오면 바로 궁궐역할 돼.
*경희궁이 훼철로 인해 공간적 연속성이 끊겼다는건 너가 현대의 관점에서 역사의 결과를 아는 상태에서 과거의 훼철에 자의적인 의미를 부과한것이야. 서궐은 연휴중에 망국을 맞이했을 뿐인거야. 훼철이 경희궁을 소멸시키진 않았다.
(*) 경희궁은 이미 보존되지 못했잖아. 중건도 이미 발생한 일이고. 지금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의 경복궁 역시 지난 세월 동안 축적해 온 역사가 있고, 또한 그에 따르는 가치를 지니지. 내가 중건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당시에는 지어지지 않은 경복궁은 축적된 역사가 존재하지 않고, 경희궁은 있기에 나는 경희궁이 축적한 역사를 존중하고 경희궁을 계속 사용하는 선택을 했겠지만 이미 벌어진 사건에 대해 내가 뭘 원하건 어떤 변화도 가져올 수 없잖아. 지금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해 없어야 될 일이었다고 가정하는 것은 의미도 없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음. 경희궁과 경복궁 둘 모두 있었으면 하는 건 내 생각이지만 당시에는 양자택일의 상황이었기에 아쉽다는 거지, 중건이 왜 됐냐 하면서 아쉽다는 - dc App
건 아니라는 거지. - dc App
중건의 해악은 중건 결과 발생한 경제 혼란에 대한 역사적 평가지, 경복궁 자체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고.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