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주인공은 영국의 코번트리 클라이맥스
1957년 모나코를 시작으로 97경기 참전, 컨스트럭터 및 드라이버 챔피언십 각 4회(1959, 1960, 1963, 1965년)에 44폴 40승 104포디움이라는 인상적인 경력을 남기고 1969년 캐나다 그랑프리를 끝으로 참전을 마침.
얘네는 처음엔 모터스포츠와는 큰 관련이 없던 엔진 회사였음. 기껏해야 애스턴 마틴이 얘네의 엔진을 쓴 정도였고. 1차 세계대전에는 서치라이트용 발전기 엔진을 만들었고, 전간기에는 버스나 펌프용 엔진 등 상업용 엔진 개발에 주력했음. 40년대 말부터는 지게차와 선박용 디젤엔진 등을 만들고 있을 정도니까...
그러던 중 영국 정부에서 더 가볍고 강력한 휴대용 소방펌프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고, 이 때문에 코번트리는 FW(Feather Weight, 깃털처럼 가벼운 무게라는 뜻)라는 이름의 새로운 알루미늄제 OHC 엔진을 만들어냄. 이 엔진은 높은 추중비로 런던 모터쇼에서 이목을 끌었고, 콜린 채프먼이나 시릴 키프트 등 모터스포츠 업계인들에게도 관심을 받음.
이를 본 코번트리의 사장 레너드 리는 모터스포츠에서 성공하면 더 큰 홍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FWA(Feather Weight engine for Automobiles)라는 이름으로 차량용 엔진을 개발함.
코번트리는 르망 24시에 출전한 키프트 1100으로 모터스포츠를 시작했는데, 비록 리타이어하면서 성적은 거두지 못했지만 점차
유명해지기 시작했음. 그리고 F2 규격에 맞춘 1.5L FWB 엔진으로 점차 폭을 넓혀갔고, 1957년 쿠퍼에서 클라이맥스 엔진을 쓰면서 드디어 F1에도 닿기 시작했음.
그리고 1958년 스털링 모스가 아르헨티나에서 2리터로 개량된 FWF 엔진으로 코번트리의 첫 승을 따내게 됨. 하지만 아쉽게도 2.4리터 엔진을 쓴 페라리의 마이크 호손에게 드라이버 챔피언을 놓쳤고, 이는 1959년 잭 브라밤이 2.5L로 배기량을 키운 FPF 엔진을 단 쿠퍼-클라이맥스로 첫 챔피언을 따내며 설욕함.
이후 규정이 1.5L 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으로 자리잡았고, 코번트리는 FPF를 공급하면서도 새로운 FWMV 엔진을 개발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로터스, 쿠퍼, 브라밤 등 명문 팀들이 코번트리 엔진을 썼고, 그동안 짐 클락과 브라밤 등이 여러 우승을 따냄.
하지만 1966년부터 배기량 규정이 1.5리터+과급기 조합이나 3리터 자연흡기로 바뀌면서 새 엔진이었던 FWMW 프로젝트는 실패했고, 결국 FWMV를 개량한 2.0 엔진이나 구식의 FPF 엔진만이 소수 사용되었음.
한편으로 코번트리 스스로도 F1에서 철수할 각을 보고 있긴 했음. 1962년부터 일찍이 레너드 리가 투자 대비 효과가 크지 않고 손실이 난다면서 철수 예정임을 발표했고, 비록 1969년까지 팀들이 코번트리 엔진을 사용하긴 했지만 3리터 엔진 개발에 실패하면서 구식화된 클라이맥스 엔진은 F1에서 떠나게 됨.
게다가 루츠 그룹에서 알루미늄 OHC 엔진에 싱크로메시를 장착한 트랜스액슬 승용차인 에이펙스 프로젝트에 코번트리를 끌어들이며 코번트리는 모터스포츠 쪽에서 힘을 빼야만 했던 것도 있고. 이후 에이펙스 프로젝트는 1963년부터 1976년까지 40만 대가 팔린 힐먼 임프가 되었음.
이 시기 동안 코번트리는 재규어에 인수되었고, 나중에 BMC와 재규어가 합병하면서 브리티시 모터 홀딩스가 되었음. 1964년 5월에는 영국 왕립 자동차 클럽(RAC)에서 자동차 업계에 기여한 공로를 기리며 레너드 리에게 드와 트로피를 수여하기도 했음.
이후 코번트리는 영국 자동차 산업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동안 여러 곳으로 분할되었고, 1971년 힐먼 임프의 엔진을 단 스포츠카인 클랜 크루세이더를 마지막으로 자동차 엔진 역사에서 퇴장함.
이게 낭만이지 시발ㅋㅋㅋㅋㅋㅋ 람보는 좀 배워라ㅋㅋㅋㅋㅋ
응 현기가 엔진 더 잘만들어
부릉부릉~~~~
이런 망한회사. 몇십년뒤에 꺼내서 감성팔이하면 팔리겠지? 부가티처럼
영국 자동차 대부분 망했지뭐
재규어 랜드로버 다 인도꺼
람보르기니도 이런 헤리티지가 있어야되는데 허참..
wec 오래오래 해먹으면서 헤리티지 쌓아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