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가 혼란스러워지면서 예전과 달리, 북방 유목민족들에 대한 통제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들은 당나라가 멸망하고 중국 대륙이 혼란스러워지자 상대적으로 강력한 세력이 됨.

대표적으로 거란, 여진 그리고 탕구트가 있으며, 이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중시하면서 자신들의 문자를 만들려고 노력함.

자신들의 문자를 만드는데 있어 중국 정착민 문화였던 한자漢字를 바탕으로 하였지만 독특한 면을 보이기도 함.

그중 대표적으로 거란 문자에 대해 알아보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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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요녕성에서 출토된 986년에 세워진 야율연녕의 기념비. 거란대자로 쓰여짐.)

먼저, 거란인들은 중국의 한자漢字를 변형해서 거란대자를 만들었음.

거란대자는 한글자마다 고유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 표의문자로, 중국 한자漢字의 원리가 거의 그대로 쓰였다고 볼 수 있음.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글자를 하나하나 창조해야 해서 불편한 점이 존재하였음.(그래서 대부분의 문명권에서는 표음문자가 대다수였고 일본의 경우는, 중국의 한자漢字 그 자체를 일본어 표기에 사용하기도 하였지만, 한자漢字를 변형해서 표음문자인 가나문자를 만들어 저런 불편함을 해소하였음. 중국의 경우도 이러한 불편함을 알아 중세 초기부터 반절의 방식으로 음을 나타내기도 하였고, 근대 이후에는 한어병음(대륙)이나 주음부호(대만)을 사용하였음.) 

그래서 거란인들은 영어 알파벳과 같이 표음문자를 만들기로 결심하였는데, 자신들 언어의 여러 음운들을 집산해서 그 음운 하나에 문자 하나를 대응하는 방식으로 위의 문제를 해결하였음.

이것을 거란소자라고 불리는데, 이후 제자원리를 보면 알겠지만 표의문자였던 기존 문자에 비해 여러 문자를 한글자로 조합하는 방식을 택해서 작게 쓸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후대 사람들(연구자)이 기존 거란 문자와 구분하기 위해 '소자'라고 붙였을 것으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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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소자로 쓰여진 거란의 청동거울. 거란이 고려에 선물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현재 한국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음.)

저 글자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매우 이상할 수 있는데 이를 보기 쉽게 옮겨놓은 것을 보면 매우 친숙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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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거란소자를 바탕으로 한 문장인데, 한글자 안에 여러 문자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음.

현재 거란 문자 자체가 해독이 안되어서 저 각각의 문자들이 어떤 발음을 내는지도 더 연구가 되어야겠지만, 한글자에 여러 표음문자를 같이 쓰고, 한글자 내에서도 비슷한 위치에 비슷한 글자가 반복적으로 쓰이는 것을 보면 자음 글자와 모음 글자를 따로 만들어 썼으며, 자음과 모음의 위치도 같은 제자 방식(여기서는 한글자를 구성하는 방식)에서는 정해져 있음을 유추할 수 있음.

이것을 보면 어딘가 친숙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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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음. 한국에서 쓰이는 한글이 저런 방식으로 한글자를 만들어가는 원리를 가지고 있음.

저 위에 중국에서 연구중인 거란소자 자료를 보면 더욱 명확한데, 거란소자도 저런 원리를 가지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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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칸에 써놓은 것임.(물론 거란대자도 거란소자처럼 이런 형식에 써놓았는데, 통일성을 주기 위해 그런 것 아닌가 추정해 봄.)

즉, 나는 한글의 제자원리에서도 북방유목민족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함.

https://www.newsis.com/view/NISX20181203_0000490831


그런데 저런 것 고려도 안하고 이런 논평이 나오기도 하고

거란 문자 나무위키 문서 한번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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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망상을 써놓았던데(근데 웃긴 것이 분명히 중국 영향이 짙은 것에 대한 문서를 보면, 지들이 중국과는 구별되며, 중국 영향이 없다고 난리를 쳐놓음.)

고려는 몽골이 점령하자 그 어떤 민족보다도 자신의 문화를 버리고 몽골 문화를 지배층 수준에서 받아드린 종족이고, 몽골 다루가치의 꼭두각시로 있던 고려왕도 원나라 황제에 간청해서 대대손손 몽골 공주와 혼인할 정도였음.

중국도 중국만의 문화를 지키고, 페르시아도 페르시아만의 문화를 지키고, 아랍도 아랍만의 문화를 지키고, 러시아도 러시아만의 문화를 지키고, 일부 통치받던 북인도 지역도 인도만의 문화를 지켜나간 것에 비하면 큰 반전임.

즉, 몽골 지배하의 고려는 북방 유목민족의 문화를 매우 적극적으로 받아드렸고, 지금 한국 문화에 저 당시 몽골 문화가 지대하게 영향을 준 것을 보면 한국은 그 어떤 종족보다도 북방민족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음.(물론 북방민족의 영향력과 문화가 압도적 우위)

또한, 몽골 지배전에도 거란의 저런 아이디어가 고려에 들어왔을 확률이 매우 높음.(애초에 거란소자로 쓰여진 유물이 고려에 있었으니)

또한, 거란 문자가 이후 금나라의 여진 문자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는데, 여진이 강해지자 여진에게 조공했던 고려 입장에서, 여진의 영향력도 강했고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우니 교류가 빈번했었음.

즉, 저런 제자 방식이 조선 세종이 한글을 만들기 전부터 이미 반도에서 저런 방식이 소개되어졌을 것임.

그리고 애초에 오랑캐라고 멸시하던 이민족의 영향을 받는 경우도 매우 많은데, 조선의 경우 일본을 오랑캐라고 업신여기고 현재도 마찬가지이지만, 일본 문화는 근현대 한국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당시 송나라를 매우 비호감으로 봤던 탕구트족이 세운 서하도 중국 문화의 지대한 영향을 받고 서하 문자를 만들 때 한자를 참고했음.

즉, 저 서술은 그냥 뇌피셜만 써놓았으며, 일리가 없음.



결론: 한글 그 자체가 북방유목민족인 몽골족의 파스파 문자를 참고해서 만들었다는 것이 꽤 유명하고 아직도 꽤 설득력 있는 가설로 연구가 되어지는데(한국 학계 제외하면), 한글의 한 글자 형성 방식도 거란과 여진 문자에서 유래했을 확률이 매우 높음. 현재 중국과 일본에서 북방민족문자 연구가 가장 활발하고 선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아마 저런 문자가 해독되면 될수록 그 증거가 쌓여갈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