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와 기싸움하는 조선인 발견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은 황제로서의 체통과 존엄을 드높이기 위해 황실 품위유지비를 대폭 증액했다. 1897년부터 1907년까지 10년간 내장원이 거둬들인 총수입은 4,350여만 원이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을 황실 품위유지비(황실 제사 및 능과 전각의 수리 비용 등)로 사용했다(장영숙, 「대한제국기 고종의 풍경궁 건립을 둘러싼 제 인식」, 『한국민족운동사연구』 103,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20, 77쪽).
익명(138.199)2024-09-27 11:51
답글
특히 고종의 즉위 40주년을 맞은 1902년엔 기념비각 건립, 외국사절 초청에 따르는 잔치와 기념식 준비에 200만 원을 지출했다. 1902년 정부 예산이 758만 원이었던 사실과 비교하면 엄청난 액수가 투입된 것을 알 수 있다(이윤상, 「고종 즉위 40년 및 망육순 기념행사와 기념물―대한제국기 국왕 위상 제고 사업의 한 사례」, 『한국학보』29, 2003, 138~139쪽).
익명(138.199)2024-09-27 11:51
답글
1903년 고종이 일본으로부터 사들인 군함 양무호가 제물포에 입항했다. 배의 성격은 순양함이었는데 실상은 갑판에 소구경 포 몇 문을 장착한 고물 석탄 운반선이었다. 배의 도입 가격이 무려 110만 원(일화 55만 엔)이었다. 이 돈도 빚을 내서 마련한 것이었다. 문제의 양무호는 외적 침략 방어용이 아니라, 즉위 40주년 칭경예식 때 서양 외교관을 위한 예포 발사용이었다.
익명(138.199)2024-09-27 11:51
답글
전국의 판소리 명창·광대·기생·무동(舞童) 170여 명을 모아 명창 김창환이 이끄는 전속단체를 만들어 대대적인 연습에 돌입했다. 기념식 때 황제가 황궁에서 행사장까지 이동하기 위해 포드의 2인승 오픈카인 '모델 A' 한 대를 특별 수송해 왔고, 어차(御車) 운용을 위해 일본인 기사를 비싼 월급 줘가며 채용했다. 또 귀빈용 인력거 100대와 칭경예식 때 착용할 대례복을 일본에 주문했고, 외국사절 접대용 고급 물품 300점을 청나라에서 수입했다.
익명(138.199)2024-09-27 11:52
답글
주한 미국 공사 앨런은 본국에 보낸 보고서에서 분에 넘치는 고종의 칭경예식 행사 준비에 대해 "작년의 흉작으로 수천 명이 기아선상에 있고, 수백 명의 사망자가 나왔는데도, 황제는 사치하면서 돈을 헛되이 쓰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외국의 차관을 얻으려고 모든 방면에서 획책하고 있다.
그는 우리 공사관과 인접한 토지에 금년 10월 자신의 즉위 40주년을 기념해 초대받은 외국사절을 위한 커다란 양옥 건물(덕수궁 석조전-필자 주) 두 채를 건축 중이다. 다가오는 축하연을 위해서 매우 넓은 회의장도 건축 중이다. 궁정에는 상근으로 고용된 무희(기생)가 80명이나 된다"(와다 하루키, 『러일전쟁』1, 한길사, 2019, 624쪽)라고 비판했다.
익명(138.199)2024-09-27 11:52
답글
응 외국은행에서 외채 끌어다 석조전 짓고 예산 758만원인 시절 200만원짜리 파티열었어
고종이 외국은행에서 끌어다 쓴 빚 갚자고 시작한 게 국채보상운동임
한국 교과서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진실
익명(138.199)2024-09-27 11:53
답글
경복궁은 그 이전에 지었던거고 덕수궁은 그 이전에 있었던거야 ㅄ아
익명(1.230)2024-09-27 11:54
답글
현재 한국 예산이 656조니까 지금으로 치면 대략 200조에 육박하는 파티를 열었던 거임
그냥 파티 한 번에 200조 플렉스하는 인간이 고종
그렇게 고종이 흥청망청 진 빚은 결국 조선총독부로 넘어가서 총독부가 갚음
익명(138.199)2024-09-27 11:54
답글
좆병신아 경운궁(덕수궁)에 석조전을 언제 지었는데
고종이 외채 끌어다 지은 궁전이 석조전이야 병신아
익명(138.199)2024-09-27 11:55
답글
그는 우리 공사관과 인접한 토지에 금년 10월 자신의 즉위 40주년을 기념해 초대받은 외국사절을 위한 커다란 양옥 건물(덕수궁 석조전-필자 주) 두 채를 건축 중이다. 다가오는 축하연을 위해서 매우 넓은 회의장도 건축 중이다. 궁정에는 상근으로 고용된 무희(기생)가 80명이나 된다
------------------------
외채 끌어다 석조전 짓던 게 고종이라니까? 경복궁도 대원군이 백성들 고혈 짜가면서 지었는데 정작 경복궁은 안 쓰고 새로운 신식 건물 필요하다고 석조전 새로 지은 게 고종. 당시 미국 공사도 고종의 사치를 보며 기함했음
익명(138.199)2024-09-27 11:57
답글
그리고 고종이 외국사절을 그렇게 초청한 이유는 더이상 국력으로 나라를 지킬힘이 없었기때문이야 그러다보니까 게속해서 외국군대에 의지할려고 하는 모습이 비춰져서 그렇지 고종이 파티를 좋아해서? ㅈ까는 제대로 쳐 알지도 못하는새끼가 기사 몇줄보고 나불나불나불
익명(1.230)2024-09-27 11:58
답글
200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ㅈㄹ하네 진짜 어떻게 계산이 그렇게되냐? 북한의 예산이 형편없이 적은데 외국애들 초청해서 파티하면 200조짜리냐? ㅋ
익명(1.230)2024-09-27 12:04
원래는 장식용 나무 심어져 있었네
명색이 궁인데 흙밭에 암것도 없이 휑한게 이상했었음
익명(122.47)2024-09-27 08:57
원래 잘 관리하던거 조선인이 다시 관리하면서 흙밭에 폐허로 만든거잖아
정원 어디갓어 ㅋㅋㅋ
개추
직찍은 개추야
대박
생각보다 유지 잘된거네
개좆센 진짜 똥송하구나
일제시대 조선인 탄압했다더니 조선시대엔 절대 구경도 못하던 궁궐 관광다니는 사진에 나온 조선인들은 뭐임? - dc App
친일파
친일파가 왜 망국의 상징인 조선옷을 입고 다님? 양복입어야지 - dc App
친일파라고 다 뭐 흑화한 윤치호처럼 미개한 조센풍습 싹 버려야한다 이랬던게 아님. 그냥 대세 따라간 인간들이 대부분이라서 일상적으로는 계속 지들이 익숙한 조선식 생활방식 유지했음. 그리고 일본 정치인 관료들도 가끔 ‘민심행보’ 용으로 조선옷 입는거 보여주기도 했가
NO무는 뭐고?
노무현은 살아있다
노무현은 살아있다
진짜 존나 멋있자
다
노무?
웃긴게 일제시대때 창조 백조 신청년 시인부락 등 각종 한글 문예동인지가 활발히 창간됐다. 조선이나 대한제국 시절엔 꿈도 못꾸던
정조의 한글편지도 발견되고 홍길동전 한글버젼도 있는데..
흙바닥좀 어떻게안되나
정보) 고종은 외채 끌어다 궁궐을 짓는데 사용했으며 자동차나 선박 사는데 사용함 그 돈을 갚자고 나선 게 국채보상운동임. 교과서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 진실
ㅈ까고있네 원제 궁궐짓는데 외채를 끌어다 써? 백동화 발행을해서 국내경제가 파탄난 경우는 있다만?
팩트와 기싸움하는 조선인 발견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은 황제로서의 체통과 존엄을 드높이기 위해 황실 품위유지비를 대폭 증액했다. 1897년부터 1907년까지 10년간 내장원이 거둬들인 총수입은 4,350여만 원이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을 황실 품위유지비(황실 제사 및 능과 전각의 수리 비용 등)로 사용했다(장영숙, 「대한제국기 고종의 풍경궁 건립을 둘러싼 제 인식」, 『한국민족운동사연구』 103,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20, 77쪽).
특히 고종의 즉위 40주년을 맞은 1902년엔 기념비각 건립, 외국사절 초청에 따르는 잔치와 기념식 준비에 200만 원을 지출했다. 1902년 정부 예산이 758만 원이었던 사실과 비교하면 엄청난 액수가 투입된 것을 알 수 있다(이윤상, 「고종 즉위 40년 및 망육순 기념행사와 기념물―대한제국기 국왕 위상 제고 사업의 한 사례」, 『한국학보』29, 2003, 138~139쪽).
1903년 고종이 일본으로부터 사들인 군함 양무호가 제물포에 입항했다. 배의 성격은 순양함이었는데 실상은 갑판에 소구경 포 몇 문을 장착한 고물 석탄 운반선이었다. 배의 도입 가격이 무려 110만 원(일화 55만 엔)이었다. 이 돈도 빚을 내서 마련한 것이었다. 문제의 양무호는 외적 침략 방어용이 아니라, 즉위 40주년 칭경예식 때 서양 외교관을 위한 예포 발사용이었다.
전국의 판소리 명창·광대·기생·무동(舞童) 170여 명을 모아 명창 김창환이 이끄는 전속단체를 만들어 대대적인 연습에 돌입했다. 기념식 때 황제가 황궁에서 행사장까지 이동하기 위해 포드의 2인승 오픈카인 '모델 A' 한 대를 특별 수송해 왔고, 어차(御車) 운용을 위해 일본인 기사를 비싼 월급 줘가며 채용했다. 또 귀빈용 인력거 100대와 칭경예식 때 착용할 대례복을 일본에 주문했고, 외국사절 접대용 고급 물품 300점을 청나라에서 수입했다.
주한 미국 공사 앨런은 본국에 보낸 보고서에서 분에 넘치는 고종의 칭경예식 행사 준비에 대해 "작년의 흉작으로 수천 명이 기아선상에 있고, 수백 명의 사망자가 나왔는데도, 황제는 사치하면서 돈을 헛되이 쓰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외국의 차관을 얻으려고 모든 방면에서 획책하고 있다. 그는 우리 공사관과 인접한 토지에 금년 10월 자신의 즉위 40주년을 기념해 초대받은 외국사절을 위한 커다란 양옥 건물(덕수궁 석조전-필자 주) 두 채를 건축 중이다. 다가오는 축하연을 위해서 매우 넓은 회의장도 건축 중이다. 궁정에는 상근으로 고용된 무희(기생)가 80명이나 된다"(와다 하루키, 『러일전쟁』1, 한길사, 2019, 624쪽)라고 비판했다.
응 외국은행에서 외채 끌어다 석조전 짓고 예산 758만원인 시절 200만원짜리 파티열었어 고종이 외국은행에서 끌어다 쓴 빚 갚자고 시작한 게 국채보상운동임 한국 교과서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진실
경복궁은 그 이전에 지었던거고 덕수궁은 그 이전에 있었던거야 ㅄ아
현재 한국 예산이 656조니까 지금으로 치면 대략 200조에 육박하는 파티를 열었던 거임 그냥 파티 한 번에 200조 플렉스하는 인간이 고종 그렇게 고종이 흥청망청 진 빚은 결국 조선총독부로 넘어가서 총독부가 갚음
좆병신아 경운궁(덕수궁)에 석조전을 언제 지었는데 고종이 외채 끌어다 지은 궁전이 석조전이야 병신아
그는 우리 공사관과 인접한 토지에 금년 10월 자신의 즉위 40주년을 기념해 초대받은 외국사절을 위한 커다란 양옥 건물(덕수궁 석조전-필자 주) 두 채를 건축 중이다. 다가오는 축하연을 위해서 매우 넓은 회의장도 건축 중이다. 궁정에는 상근으로 고용된 무희(기생)가 80명이나 된다 ------------------------ 외채 끌어다 석조전 짓던 게 고종이라니까? 경복궁도 대원군이 백성들 고혈 짜가면서 지었는데 정작 경복궁은 안 쓰고 새로운 신식 건물 필요하다고 석조전 새로 지은 게 고종. 당시 미국 공사도 고종의 사치를 보며 기함했음
그리고 고종이 외국사절을 그렇게 초청한 이유는 더이상 국력으로 나라를 지킬힘이 없었기때문이야 그러다보니까 게속해서 외국군대에 의지할려고 하는 모습이 비춰져서 그렇지 고종이 파티를 좋아해서? ㅈ까는 제대로 쳐 알지도 못하는새끼가 기사 몇줄보고 나불나불나불
200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ㅈㄹ하네 진짜 어떻게 계산이 그렇게되냐? 북한의 예산이 형편없이 적은데 외국애들 초청해서 파티하면 200조짜리냐? ㅋ
원래는 장식용 나무 심어져 있었네 명색이 궁인데 흙밭에 암것도 없이 휑한게 이상했었음
원래 잘 관리하던거 조선인이 다시 관리하면서 흙밭에 폐허로 만든거잖아 정원 어디갓어 ㅋㅋㅋ
저게 흙이아니라 자갈임 애초에 잔디는 무덤을 뜻하는거라 궁궐에는 안쓰임 이 무식한새끼야
더욱이 자갈을 깔게되면 외부인들의 발자욱소리가 잘들림
옛날사진이 더 좋아보이긴 처음이네
창의성이 돋보이네 저렇게 찍을생각을 하다니ㄷㄷ 근데 뭔가 흑백사진이 더 웅장해보이긴하네 촬영기술차이인가 싶기도하고ㅇㅇ 니사진도 좋아! 잘보고가
잔디 와 치웠대 흙바닥 볼때마다 이상하던데
잔디는 원래 궁에 못깔아 무덤을 상징하는거라
ㄴ미개하노
넌 벌초도 안하냐? 성묘안감? 고아야?
안가는데 언제적 벌초 성묘여 시대가 시댄데
거기다 작은 자갈을 깔아놔야 외부인의 발자욱소리가 더 잘들려
그래 그러시겠지
그런거 따지면 신체발부수지부모때문에 머리도 자르면 안되지
꽃심어놓은거 풀심은거 다 뜯어놨노 조선답다
일제의 잔재는 없애야 한당께 ㅋㅋㅋㅋㅋㅋ - dc App
고증상으로 꽃이나 풀이 없으니까 무식한 새끼야ㅋㅋ
ㄴ 응 존나 더럽고 지저분해 보임
일제황금기
아무리 마사토가 전통이라지만 잔디꽃들 그대로 두지
역시 일제시대가 낫네 조경도 해놓고 지금은 그냥 흙바닥 ㅋㅋㅋㅋㅋ - dc App
아니 왜 복원을 실제와 다르게 해놓는거지 ;;;;
궁궐에 잔디는 왜 뽑은거냐 대체
조선총독부 건물 하나보다 못하노.. 왜 부신거야 대체
갓 본 기
현재 덕수궁 국현건물이 예전에도 전시관이었나? 조선 미술전람회 같은 곳 열던?
역시 문화재 보존은 갓본
일본이 제국시대가 되면서 일본내에있던 성들을 전부다 부셔버림 지네 문화재도 관리안하던애들이다.구시대적 유물이라고
옛날엔 잔디밭도 많고 풀도 나무도 많았는데 지금은 잔디 다 밀고 돌로 덮거나 흙길로 만들어서 뭔가 좀 삭막하고 휑해 보이네
무덤이냐? 풀도 나무도 많게
또 가고싶다
돈덕전 이쁘다 - dc App
좆선 ㅋ
일제강점기 사진 가져와서 비교하누 구한말 사진도 아니고 ㅉㅉ 덕수궁은 고종황제 붕어 이전 사진을 가져와라 그때가 리즈시절이니 저 일본인들 나오는 사진은 전부다 고종 붕어 이후 덕수궁 대거 철거한후 사진임
흥미롭네
많이도 찍었네
석어당 원래 ㄱ자 건물이었구나 몰랐다
여자 처녀막+몸무게+나이 = 남자 키
중고 쿵쾅이 아줌마 = 난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