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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는 여성을 향한 모든 악의 축입니다

남성은 그의 충실한 심복이고요

아무리 그가 여성을 위한들

그는 벗어날 수 없는 한국남성입니다

한줄요약
현실을 짜집기 해서 기워 만든 정치적인 누더기, 정치해서 성공하다


페미니스트의 성서, 조롱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는 신성불가침의 책이자, 정말 크게 성공했고 해외로 번역되고 전미도서상 후보에 오르기까지 했던 대단한 책이다. 이 책이 처음 이슈됐을 때부터 읽고 싶었고, 기대와 불안, 두려움과 흥미 사이의 어중간한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군대 와서 읽게 됐다.

전체 분량 170페이지 밖에 안 되는 짧은 글이다. 난 또 한국 여성들의 모든 고통을 집약시킨만큼 엄청난 분량을 자랑하는 줄 알았다. 뭐, 실제로 읽어보니 집약시켰다기보다는......

이 글은 르포문학의 탈을 썼다. 첫 페이지 첫 문단부터 김지영의 인물정보를 줄줄이 읊으며 심각하리만치 건조한 문장으로 서술한다. 또한 종종 시대상을 반영하는 글에는 각주가 달리며 논문 인용 마냥 정확한 출처와 페이지까지 표기해 이 문장이 '현실'이었고 '사실'임을 끊임없이 말한다.

전반적으로 김지영의 일생과 그 일생 속에 엮인 여자들의 삶을 조명하며 이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그 삶이 얼마나 많은 억압과 핍박, 비합리적인 차별 속에 살아왔는지 서술한다. 사실성을 거의 극단적으로 추구한 르포에 가까운 르포문학인 것처럼 보이지만, 문학성은 0에 수렴하기 때문에 그냥 르포 내지는 칼럼으로 봐도 무방하다.(내가 이 글을 소설이라 부르지 않는 까닭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것이 결국 르포문학이 되지 못하고 그의 탈을 쓰게 된 것은, 소설이라는 매체의 기능인 오락을 전혀 추구하지 않았고, 심각하리만치 정치적인 프레임에 의해 사실들을 짜집기 하고 필요하다면 뇌피셜까지 사실인 마냥 편입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프레임이야말로 이 글의 핵심이자 정수이고, 이 글이 대성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오락을 전혀 추구하지 않았다는 말은 유머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유머가 없는 소설도 재미가 있을 수 있다. 재미란 말은 굉장히 폭넓게 쓰여 정의하지 힘들지만, 이 글은 그 폭넓은 모든 재미의 어떤 부분도 찾아볼 수 없다. 이 글은 '재밌어선' 안 되는 글이기 때문이다. 이것과 비슷한 사례가 몇 년 전에 게임에서도 있었는데, '라스트 오브 어스 2'가 바로 그렇다.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유발시키는 것이다. 불쾌해야 한다. 그래야만 '문제의식'을 느낄 것이고, 그 문제의식이야말로 작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82년생 김지영의 삶이 불편하다고? 잘 느꼈네. 이렇게 대한민국 여성들이 살아왔어. 굉장히 불편한 걸 사람들이 모른 척 했네? 무슨 문제 안 느껴져?

이 글은 철저하게 정치적이다. 하나의 프레임, 주제의식을 관철하기 위해 온갖 자료들을 긁어모으고 필요하다면 작가의 생각(이것은 충분한 검토 없이 튀어나온)마저 사실처럼 단언한다. 그리고 그 프레임은 도입부에서 이미 서술한 바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대한민국 여성들을 억압하는 가부장제는 최악의 적이며, 한국 남성들은 제아무리 여성을 위한들 어쩔 수 없는 가부장제의 주체다."

좀 더 쉽고 직관적으로 바꿔볼까?

"한국 남성들은 날고 기어봤자 여성들을 억압하는 존재다."

이는 김지영의 남편인 정대현과, 글 마지막에 에필로그처럼 마무리하는 김지영의 상담사(남자)의 독백으로 증명된다. 정대현은 김지영을 위해 헌신하고 양보하고, 그녀를 위해 많은 걸 노력할 수 있지만, 결국 아이의 양육은 김지영에게 떠넘기고 아이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한 김지영에 비해 정대현은 별로 희생한 것도 없고, 가부장제의 전형적인 모습을 답습하기 때문이다.

상담사는 더 심하다. 김지영의 얘기를 듣고 자기 아내를 생각하며 여자들이 희생한 것에 대해 생각하고 반성하고 성찰까지 하지만, 막상 병원에 임신으로 인해 퇴사하자 새로운 직원은 미혼모로 알아보자는 경제적인 마인드를 보여준다. 이런 마무리는 결국 가부장제의 주체되는 한국 남성이 아무리 한국 여성의 사례를 눈앞에서 목격하고 듣게 되더라도, 반성하고 성찰한다 할지라도 나아질 수 없는 존재라고 낙인을 찍는 것이다.

르포문학의 탈을 썼단 점에서 김지영에서 인용된 자료들이 거짓이라 말하진 않겠다. 하지만 이건 굉장히 교묘한 프레임과 짜집기라는 건 분명하다. 인용된 사실들이 진실이라 해서 나머지 인용되지 않은 부분들까지 사실인 건 아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생리통에 관한 부분이 그렇다.

김지영의 언니는 생리통에 대해 자궁을 신성히 여기기 때문에 그깟 자궁이 뭐라고 약을 안 만드냐며 불평을 한다. 김지영은 그러면서 언니의 농담에 생리통으로 아픈 와중에도 웃는다.

김지영에 적힌 왜곡된 사실이나 작가의 검토 없는 망상을 사실인 것마냥 써놓은 것에 대해선 수많은 반박들이 출판된 이래로 꾸준히 올라왔다. 그러니 내가 굳이 이곳에 중언할 일은 없을 것 같다. 특히 OECD 남녀 노동임금 격차는 통계를 해석할 의지도 보이지 않고 그대로 던져주면서 한 파트를 마무리하면 독자들이 머리가 띵할 줄 알았나보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띵하신 분들이 많으니 베스트셀러가 됐겠지만 말이다. 이 통계가 얼마나 곡해하기 쉽고 오해하기 쉬운 것인지는 이 또한 수많은 반박 자료들이 많으니 중언하지 않겠다.

절대 귀찮아서가 아니다. 모르면 스스로 공부해서 알아오는 게 이 바닥 국룰 아닌가? 물론 어쩔 땐 제시할 근거나 자료는 없고 우겨댈 때 쓰기도 하는 룰이지만, 이건 정말로 자신의 검색 능력이 지식인으로서 모자람 없이 갖춰진 수준이라면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나를 믿어라. 아님 말고.

무엇보다 김지영의 '빙의'가 일어나게 된 계기인 '맘충'의 경우, 제대로 알아볼 생각 없이 '여혐표현'이라는 이유로 가져다 쓴 것이 보여서 안타까웠다. 맘충이란 표현이 혐오 표현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분명한 맥락 없이 '엄마'라며 써버리고 그것이 실제 발화 상황(아이를 무책임하게 방치하며 뻔뻔한 소리를 내뱉었던 사람을 향해 만들어진 혐오 표현이었다)과 다를 때, 르포문학으로서 사실성이 훼손되고 정치적으로 썼다는 사실만 증명할 뿐이다.

최소한 김지영이 딸 정지원과 카페나 어딜 갔다가 애가 칭얼거리거나 울어서 급하게 토닥이며 달래는데, 주변에서 맘충 소리를 들어서 충격을 먹었다고 하면 비판하고자 하는 단어의 맥락을 충실하게 고증함으로써 비판에 힘이 실리게 된다.

하지만 글에선 그냥 김지영이 커피 마시다가 벤치에 앉아있었는데 지나가던 직장인 커플이 김지영을 보더니 혼자 있는 거 보니 맘충이라고 수근거리는 걸 듣고 충격 받아 남편에게 자기가 벌레라며 울며불며 하소연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사례를 제시하면 맘충의 맥락을 알던 모르던 '저딴 이유로 왜 욕하냐'는 반응이 나오게 된다. 어쩌면 고도의 정치질을 위해 이렇게 상황을 설정한 걸지도 모른다.

그 외에도 출석 다 하고, 과제 열심히 하고, 시험도 열심히 봤는데 학점이 2점대가 나왔다는 서술이 나온다. 나는 이걸 좀 더 설명해줄 줄 알았다. 하다못해 "교수가 남성들 올려치기하느라 여성들 내려치기 당함"이라는 문장이라도 있길 바랐다. 그런데 없다. 2000년대 서울 근교 대학에서 벌어난 일이다. 차라리 여기에 각주 달고 실제 있었던 사례로서 뉴스 자료라도 제시했으면 납득했다. 그러나 그런 거 없다.

그냥 글 내내 실제 자료들을 인용했으니, 그런 거 없이 서술해도 고증된 현실로 받아들일 줄 알았나? 난 잘 모르겠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서술도 결국 다 여성차별 때문이라는 암시를 깔았기 때문일까? 물론 이 글을 지배하는 틀을 생각하면 그렇게 해석하는 게 맞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고, 그래야만 한다. 상당히 교활하고 정치적인 글쓰기다. 이 부분은 너무 사소하고 조그만한 부분이라 반박한들 전체적인 틀이 위협받지 않기 때문이다.

뭐, 글이 가지는 모든 문제점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을 꼽으라면 이게 '소설'이라는 점이다. 이게 칼럼이나 진짜 기사라면, 다큐멘터리 인간극장 같은 거였다면 재미 따윈 아무래도 좋은 것이니 신경도 안 썼을 것이다. 필력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건 '소설'이었고, 그래서 문제다. 문장은 형편없는 걸 넘어서서 문학적인 표현이 0에 수렴할 정도로 심각하다. 하다못해 신문기사도 이 정도는 아니지 않나 싶다.

정세랑이 제일 못 쓰는 줄 알았는데, 정세랑 정도면 양반이었다. 조남주는 그것보다 못 쓴다. 막말로 백일장 상 탄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조남주보다 잘 쓴다. 이 처참한 필력엔 무슨 변명을 가져온들 변명도 안 된다. 그럴거면 소설이란 타이틀을 달면 안 됐다. 정치하실 거면 소설가 말고 칼럼니스트든 기고가든 기자든 뭐든 했어야죠. 왜 소설이랍치고 정치하세요.

결국 이 글은 남자를 악으로 규정한다. 그것도 개과천선의 기회 따위 없는 구제불능의 악. 이런 프레임으로 정치질과 장사질을 한 거다. 왜 페미니스트들의 성서가 됐는지도 잘 알겠다. 이게 왜 신성불가침인지도. 이 글은 그때 당시 성공할 수밖에 없었고, 성공해야만 했다. 사실을 짜집기한 정치질을 '현실'이라고 주장해야만 하니 말이다.

뉴스에서 살인 사건이 수도없이 나온다고 바깥에 나가기 무서워하는 사람을 보는 느낌이다. 이런 짜집기면 사실 남자라고 못할 게 없다. 균형있게 조명하며 결과적으로 여성혐오와 여성차별을 논하는 게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혐오와 여성차별만을 조명하고 논한 것은, 결국 남성을 악으로 규정하기 위해선 남성이 피해 받는 사실을 철저하게 곡해하고 왜곡하며 그로 말미암아 '배불러 터진 소리'로 만들어 부정해야하기 때문이다. 정치적이다.

한줄요약에 썼던 바와 같이, 이 글은 현실을 짜집기 해서 기워 만든 정치적인 누더기다. 이 누더기를 걸친 모든 자들을 동정해라. 이런 누더기만이 구원이 되는 불쌍하고 비루한 영혼들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