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2024년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우리나라의 노벨상 수상자는 2명임.


아직 과학 기술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는 한명도 없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



하지만 노벨상에 가까이 간 학자가 한명도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사고로 죽지만 않았다면 확실히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을 이휘소 박사가 대표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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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개발 관련 음모론으로 꽤 유명하지만 이휘소박사는 핵물리학이 아니라 입자물리학을 연구한 사람이고 당시 박정희의 측근이었던 제2비서실 비서관 김광모씨가 이휘소 관련 음모론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부정한 만큼 음모론일 뿐임.




그런데,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휘소 박사 말고도 노벨상에 매우 근접했던 한국 과학자가 또 있음, 바로 김성호 UC버클리대 명예교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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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교수는 tRNA의 구조를 밝혀낸 사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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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NA는 리보솜에서 단백질을 합성할 때 아미노산을 물어다 주는 분자로 생물학에서 매우매우 중요하고 이런 굵직한 물질의 구조를 밝힌 사람은 노벨상을 받은 경우가 많음.

예를 들어 DNA의 구조를 밝힌 왓슨, 크릭, 윌킨스, 프랭클린이나 (로잘랜드 프랭클린은 이미 죽어서 못 받음)
리보솜의 구조를 밝힌 벤카트라만 라마크리슈난, 토머스 A. 스타이츠, 아다 E. 요나스도 노벨상을 받았음.

또 인슐린, 헤모글로빈, 칼슘이온통로의 구조를 밝힌 사람들도 각각 노벨상을 받았다는 점에서 tRNA구조를 알아낸 것은 노벨상을 받기에 충분한 업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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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업적을 세우고도 상을 받지 못했는지, 지금부터 알아보자.






김성호 박사는 1966년 MIT 알렉산더 리치 교수 실험실의 박사 후 연구원으로 들어가 진전이 없던 tRNA 구조 분석 연구에서 tRNA 결정(Crystal)을 2년만에 만들어 냈음.

X선 회절 분석(XRD)에서 고순도의 결정을 만드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고려하면 큰 진전을 이루어 낸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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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972년 김성호 박사가 듀크대에 임용되고, 본인의 실험실을 차리면서 리치 교수와는 떨어지게 됨. tRNA 구조 분석은 여전히 진행중이었기 때문에 김 교수와 리치 교수는 서로 독립적으로 연구를 진행하지만 데이터를 공유하며 협력하기로 함.


그런데, tRNA의 구조가 거의 밝혀지고 일부 원소의 위치만 결정하면 됐을 때 쯤, 리치 교수(MIT 팀)가 김 교수(듀크대 팀)와의 데이터 공유를 중단하기 시작했음, 이상하게 여긴 김 교수가 MIT측에 문의를 하기도 했지만 리치는 자기는 데이터를 보내지 말라고 한 적이 없다고 할 뿐이었고 결국 이때부터 두 팀은 따로 연구를 진행하게 됨.

그러다 MIT팀이 1974년 자신들이 완성한 모델로 먼저 논문을 발표하고 김 교수는 7명의 공저자 중 가장 마지막, 즉 가장 기여도가 낮은 연구자로 표시함. 사실상 업적을 독점하려 한 것. 이런 상황에서도 김 교수는 MIT에서 발표한 것과는 다른 듀크대만의 모델로 연구를 이어나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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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열린 tRNA학회에서 리치 교수가 발표를 한다는 소식을 들은 김 교수는 발표할 때 듀크팀의 모델도 같이 언급해달라고 부탁하고, 아니면 자신이 보충 연설을 할 수도 있다고 했지만 리치 교수는 이를 무시했음.


그런데 이 발표를 들은 케임브릿지대 연구팀이 자신들의 연구와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고, 리치 교수는 MIT모델이 틀렸으며 케임브릿지에서 tRNA연구를 거의 마무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됨, 선수를 뺏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리치 교수는 그제서야 김 교수에게 연락해 듀크팀의 모델로 논문을 같이 발표하자고 함.


그렇게 리치와 김성호 교수는 급하게 마무리해서 듀크팀의 모델을 사이언스지에 투고했고, 한발 늦은 케임브릿지 팀의 논문은 2주 더 늦게 네이쳐지에 실리게 됐음.



선수를 뺏긴 케임브릿지 팀은 극대노했음, 학회에서 리치의 모델이 틀렸다는 것을 알려줬는데 논문에서는 이에 대한 감사나 인정은 전혀 없었고 이렇게 빠르게 내용을 바꾼 것은 케임브릿지 팀 내부의 정보를 빼돌린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임.

그래서 케임브릿지 팀은 상사인 크릭(DNA구조 발견한 그 크릭 맞음)에게 보고하고 크릭이 리치에게 항의하는 편지를 보냄.

리치는 오해를 풀기 위해 케임브릿지의 정보를 빼돌린 것이 아니라 듀크대에서 따로 연구하던 내용을 가지고 발표한 것이라고 고백했지만 크릭은 연구 성과를 독점하려고 듀크대를 배제했다가 자신이 틀렸다는 걸 알자 부랴부랴 연구결과를 뺏은 리치를 크게 비난했음.


그런데, 이 분쟁이 New Scientist 잡지에 실리면서 과학자들 사이에서 리치 교수의 부도덕한 행위가 알려지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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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tRNA연구가 거물 과학자들(리치도 핵산 연구의 권위자였음, 크릭은 말할 것도 없고) 사이의 스캔들이 되면서 노벨위원회에서 상을 주기가 애매해졌음.

크릭을 포함한 과학계의 거물들이 리치를 경멸했기 때문에 노벨상을 주고 싶지 않았을 것임, 그렇다고 김 교수에게만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tRNA 구조 발견은 노벨상을 받기에 충분한 업적이고 리치 교수가 욕심만 부리지 않았더라면 설사 케임브릿지팀에 역전됐더라도 거의 동시에 완성도 높은 모델을 제시했기 때문에 다 같이 노벨상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음. 따라서 김성호 교수는 매우 아깝게 노벨상을 놓쳤다고 볼 수 있다.



리치 교수도 결국 tRNA외에도 Z-DNA의 발견 등 굵직한 업적을 남겼음에도 노벨상을 받지 못하고 죽었으니 싱붕이들은 욕심을 부리다 더 큰 것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하자.




* 위 글은 이 기사의 내용을 많이 참고했음(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60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