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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기 다케마루
(若木竹丸, 1911년 1월 20일 ~ 2001년 1월 3일)

와카기 다케마루는 일본의 초창기 웨이트 트레이닝 선구자로,
1938년에 저술한 『괴력법(怪力法)』이라는 
책을 통해 당시 일본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근력 운동을 소개했다
그가 사용한 ‘괴력법’이라는 용어는, 오늘날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뜻하는 초창기 표현이다


운동을 시작한 계기
어린 시절에는 평범하게 자라다가, 
중학교 시절 선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 
자기 방어와 체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본격적인 트레이닝을 시작헌다

당시 일본에는 현대적인 트레이닝 이론이나 
장비도 거의 전무했기 때문에,
와카기는 거의 하루 10시간 이상을 순수 
근력운동에 몰두하며 독자적인 방법으로 체력을 쌓았다


 『괴력법』의 특징
1938년에 출간된 그의 책 괴력법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소개되었다

양동이, 시멘트, 철봉 등을 활용해 직접 만든 바벨과 덤벨

손가락 푸시업 등 맨몸 중심의 고강도 훈련법

체중을 이용한 저항 훈련과 근육 발달 기술

당시로선 획기적인 트레이닝 분할법과 
복합운동 개념의 초기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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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해지는 전설적인 일화들


실전에서의 위력
불량배와의 충돌 상황에서 헤드록 한 번으로 
상대의 머리를 압박해 즉사시켰다고 전해진다
이는 정당방위로 인정되어 무죄 판결을 받음


압도적 체격과 외모
당시 일본 사회에서는 그의 근육질 체형이 
너무 비범하고 시대를 앞서가서
길거리에서 여성들이 피하거나 기형아 취급을 받기도 했지만,
미군 병사들은 “Amazing!”이라며 감탄하고 
악수를 청했다고…


관에도 안 들어간 어깨
2001년 사망 당시에도 운동을 계속한 그는,
어깨가 너무 넓어 일반 관에 들어가지 않았을 
정도로 알려져 있다



최배달·기무라 마사히코와의 인연
극진 가라데 창시자 최배달, 유도 고수 
기무라 마사히코 등에게 체력 훈련 지도를 한 것으로 전해짐
최배달이 처음 그를 만났을 때는 키가 작다는 이유로 얕봤지만,
팔씨름에서 완패한 뒤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고백


특히 최배달이 자주 언급한 철학인
 “힘 > 속도 > 기술”에도 와카기의 영향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아마추어 복싱 챔피언과 스파링
아마 복싱 챔피언과의 스파링에서도 가볍게 승리했고,
유도 명문 강도관의 유단자들과도 기량에서 
밀리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다.


괴물 같은 기록
벤치프레스: 228kg
플로어 프레스(바닥에서 하는 벤치프레스): 300kg







 와카기 다케마루의 의미
와카기 다케마루는 근대 일본 트레이닝 
문화의 뿌리라고도 할 수 있는 인물
헬스장도 없고 전문 트레이너도 없던 시절, 
완전히 독자적인 방법으로 근력 강화에 성공했으며,
후대 무도인과 트레이너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삶과 기록은 오늘날에도 “운동 순수주의자” 또는
 “괴력의 상징”으로 회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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