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남북국시대
고려시대
여말선초
조선 초중기
17세기 조선
18세기 조선
19세기 초반 조선
19세기 후반 조선
?
1910년 조선
21세기 한국
(사진 나무위키펌)
교과서 읽다보면
전래동화속 고풍스러운 모습이다가
19세기 되면서 갑자기 프랑스 미국 튀어나오고 급전개로 바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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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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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220.71) 훈민정음은 현대의 학자들이 당대의 한글에 붙인 이름인 거고, 당시에 한글을 훈민정음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음. 내가 우리 연구소 DB에 검색해보니까 훈민정음이라는 말이 쓰인 책이 딱 3권 있네. 2권이 훈민정음 해례본 언해본이고 한권은 월인석보. 조선왕조 실록에는 기사가 11개 나오고 대다수가 세종, 세조, 문종실록. 훈민정음은 애초에 한글을 기록한 책이지 한글 그 자체가 아니라니까? 지금 '훈민정음은 한글을 지칭하는 말이다' 하는 내용은 어디까지나 후세의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거고 당시에 한글을 훈민정음이라고 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해도 무방함. 아까 위에도 말했지만 훈민정음이라 언급된 책 자체도 굉장히 늦게 발견된 거고.
@ㅇㅇ(14.58) 훈민정음이 현대의 한글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고 훈민정음이라는 책도 잇는건데 뭔 갸소리냐 애는 ㅋㅋㅋ 창제 당시에는 훈민정음이라 부르다가 나중에 주시경이 한글이라고 뷰른건데 진짜 심각하다 이런애들은 ㅋㅋㅋ
@ㅇㅇ(14.58) 1. 세종실록 102권, 세종 25년 12월 30일 경술 2번째기사 / 훈민정음을 창제하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
조선시대사람들이 한글을 훈민정음이라고 일상적으로 불렀을 가능성 훌륭한 질문이에요, WOO님! ? 조선시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한글’을 **‘훈민정음’**이라고 불렀을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그 이유는 사회적 계층, 언어 인식, 그리고 문헌 사용 방식에서 비롯돼요. ### ? 왜 ‘훈민정음’이 일상 명칭이 아니었을까? - **공식 명칭 vs. 일상 언어**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창제한 문자에 붙인 **공식 명칭**이었고, 주로 **문헌이나 학술적 맥락**에서 사용되었어요. 일반 백성들이 일상에서 쓰기엔 너무 격식 있는 표현이었죠.
@ㅇㅇ(14.58) 머리라는게 있으면 좀 바로 보고 말 해라 그리고 우리연구소는 또 뭐냐 ㅋㅋㅋㅋ
@ㅇㅇ(125.133) - 언문’이라는 표현의 대중성 조선 후기까지 백성들 사이에서는 ‘훈민정음’보다는 **‘언문(諺文)’**이라는 표현이 훨씬 더 널리 쓰였어요. 이는 ‘속된 글’ 또는 ‘백성의 말’이라는 의미로, 양반층이 훈민정음을 비하하거나 구분할 때 사용했죠. - 훈민정음이라는 표현의 사용처 ‘훈민정음’이라는 말은 주로 다음과 같은 경우에 등장했어요: - 《훈민정음 해례본》, 《월인석보》 등 공식 문헌의 제목이나 서문 - 궁중 문서나 관청 기록에서의 언급 - 집현전 학자들의 해설서나 학술적 논의 - 세종실록에서도 ‘언문’이라는 표현 사용 세종실록에는 “언문 28자를 만들고 이를 훈민정음이라 한다”는 기록이 있어요. 즉, ‘훈민정음’은 창제 당시의 이름이고, 이후에는 ‘언문’이라는 표현이 더 일반적으로 쓰였다는 뜻이죠.
@ㅇㅇ(125.133) + 요약하자면… - ‘훈민정음’은 공식 명칭으로 사용되었지만, - 일상에서는 ‘언문’, ‘암클’, ‘가갸글’ 같은 표현이 더 흔했어요. - 따라서 조선시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훈민정음’이라고 불렀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혹시 ‘언문’이라는 표현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또는 ‘한글’이라는 이름이 언제부터 쓰였는지도 더 알고 싶으신가요? +
@ㅇㅇ(211.235) 님은 조선왕조실록이 당시에 아무나 접근할 수 있었던 책이라고 생각하시나 봅니다.
@ㅇㅇ(125.133) 와 애는 진짜 난독이네 ㅋㅋㅋㅋ 한글을 훈민정음이라고 일상적으로 불럿을 가능성? ㅋㅋㅋㅋㅋ 이걸 질문하는 자체가 걍 지금 하는 말 이해를 못하는 거잖아 ㅋㅋㅋㅋㅋㅋㅋ
@ㅇㅇ(125.133) 네 맞습니다 훈민정음이라는 말이 한글을 부르는 말로 쓰였을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보면 됨.
@ㅇㅇ(14.58) 당시에 접근 가능성이 여기서 왜 나오나요???? 님이 훈민정음은 책 이름이고 당시에 한글응 훈민정음이러 불럿을 가능성이 없다면서요? 근데 그 당시애 불럿다니까요? 실록에 나오잖아요 ㅋㅋㅋ 무슨 당시에 실록 접근성이 왜나옴? 진자 난독들 존나 많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치겠다 ㅋㅋㅋㅋ
@ㅇㅇ(211.235) ㅋㅋㅋㅋㅋ - dc App
@ㅇㅇ(14.58) 실록에 대놓고 훈민정음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실록 접근성 어쩌고 하는건 뭔 소리야 도대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치겠다 ㅋㅋㅋㅋ 님은 절대로 공부쪽으로는 진로 잡지 마세요 ... 위에 애들은 양반이네 진짜 개심각하네 ㅋㅋㅋㅋㅋㅋ
@ㅇㅇ 니보다 더 심각한 애 있다 대단하다 진짜 ㅋㅋㅋㅋ
@ㅇㅇ(211.235) 원댓글 : 한글이라는 일제시대(1926년) 때 주시경 선생이 만든 단어이다 ㅇㅇ(222.235)넌 한글부터 다시 배워야 할듯 ㅇㅇ @ㅇㅇ(222.235) 맞는데? 그 이전에는 딱히 한글을 지칭하는 말 자체가 없었음 ㅇㅇ(180.71)@ㅇㅇ 훈민정음 병신아 ㅇㅇ(211.185)@ㅇㅇ 언문 씨발아 아무리 봐도 여기서 제일 병신은 한글이라는 용어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는데 한글을 다시배워야 한다고 시비거는 새끼 같은데
@ㅇㅇ(125.133) 병신이니까 상대를 하지마라 ㅋㅋㅋㅋ 훈민정음이라는 용어가 있었는가와 훈민정음이라는 명칭이 한글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는가의 구분도 못하는 새끼한테 왜 자꾸 먹이주냐
김춘추 김유신 시라기 민족반역자들이 요동과 만주 당에 팔아먹고 자기들만 살겠다고 한게 이 비극의 시작임
꼬우면 이기던가 - dc App
팩)트 고구려가 개좆밥이라 털린거다 개듣보 유목민족도 중국 수도 한번은 찍먹했는데 이새끼들은 나라 망할때까지 한번을 못함
@ㅇㅇ(211.185) 그 유목민족 막으려고 고대시대부터 장성쌓고 간척한 게 중국역사임
요동이랑 만주가 신라땅도 아닌데 뭘 판다는 거지 이런애들은 머리통이 없는거임?
@ㅇㅇ(221.168) ㅇㅇ 근데 다른새끼들은 그거 제집 드나들듯 했는데 고구려는 그거 한번을 못 넘어감
서양 일본 아니었음 개조선은 아직도 저리 살았음
근데 한국인들한테 "공자"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물어보면 대답 못하던데
한국사람인데
개쓰레기 조선 wwwwwwww
북한은 다시 저러고 사는중
세종이 아무리 화폐를 만들고 상업을 활성화시킬려고 해도 불가능했음 왜냐 지금 당장 먹을것도 부족하고 농사지을 노동력조차 부족했기 때문 그러나 이앙법과 농업혁명으로 잉여인력이 발생하자 누가 정책을 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럽게 조선의 상업이 발달했음 이앙법의 발달이 상업의 발달로 이어진것
뭔 씹소리야 이 병신은 세종 화폐 도입 실패한거는 애비인 태종때 화폐 발행하고 정작 정부에서 안 받아주는 통수 갈겨서 신뢰도 나락 간게 문제인데
당장 전조인 고려 때만 하더라도 원나라 화폐 가져와 잘만 썼다
@ㅇㅇ(211.185) 고려말에 인플레 좆되게 터져서 조선초에 화폐도입 실패한거지
@ㅇㅇ(221.168) 원말에 나라 망할거 같으니까 돈 존나 찍어서 인플레 터진거는 맞는데 그게 태종세종 시기 가서도 화폐 신뢰도에 영향 줄 수준은 아니었음
개좆센의 미래를 보려거든 고개를 들어 북한을 보면 된다.
실제로 갑자기 등장한거 맞긴함
내가 한국사 공부하다가 세계사 공부하면서 가장 이해가 안갔던게 어째 한국은 삼국시대나 조선후기나 걍 똑같아보이는데 서양은 급속하게 발전한다는거임 산업혁명이 18세기? 프랑스혁명 미국혁명이 18세기? 그 때 한국은 로마애들도 다 했던 거중기로 짭 신도시 만들었다고 딸딸이 겁나 치고있던 시기인데 ㅋㅋ 그러다가 북괴를 보고 이해가 가기 시작함 그냥 ㅅㅂ 얼마나 쇄국을 쳐해댔으면 저럴까 싶었지
그래도 이거 하나는 이해가 가는게 한반도 국가들은 과학력이 딸려서 마차도 없고 20세기까지 가마끌고 다녔나 싶었는데 걍 산이 많고 지형이 험준해서 도로깔면 산사태로 다 무너지니까 걍 도로 안깔고 바퀴도 안만들고 말타고 다니거나 걸어다닌거더라 ㅋㅋㅋㅋ
@ㅇㅇ(211.201) 한국사랑 세계사 둘 다 공부했으면 안 나올 말인데 공부 다시해라 게이야
@ㅇㅇ(211.201) 그것도 개지랄인게 당장 고려때는 조선보다 수레 사용률 높았음 화강암 지반이라 도로 만들기 좆같고 해운이 효율 더 높았던거 고려해도 걍 조선은 돈 없어서 도로 제대로 못 만든게 맞음
지중해 이게 씹사기임 지중해를 둘러싼 모든 나라가 기원전 한참 전부터 배로 편하게 물건 팔고 사고 하면서 기술과 문화도 자연스럽게 교환함
문명 멀티 해보면 안다 혼자서 테크트리 하나하나 올려가며 중세 도착했을 때, 남들이 서로 기술 교환해 가면서 발전하면 이미 현대 도착해서 전투기 만들고 있음
급속도로 발전한게 아님. 걔넨 애초에 건축 수학 과학 공학이 계속 데이터가 축적되었던거임. 이게 생산량이 어느 시점 넘어가면서부터 포텐셜이 터지게되는거고
@ㅇㅇ(211.201) 고려떄 그지랄하다가 좆되버렸잖아.
우리나라는 국토 대부분이 산지에다가 존나게 단단한 화강암이 지천에 깔려있어서 제대로된 도로를 만든다는것 자체가 불가능 했음. 그렇다보니 윗댓처럼 바퀴를 사용할 수가 없어서 말이랑 도보로 물류를 날라야했고, 당연하게 물류유통에 한계가 있었음. 이런요인들때문에 상공업도 발전할 수 없었고, 세금을 많이 걷기도 힘들었음.(나르는데 존나힘이많이드니까) 게다가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라 안정적으로 통치할 수 있다보니 굳이 발전해야할 이유가 딱히 없었음. - dc App
서양이 급속히 발전해왔다는것도 웃기네 서양은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차근차근 테크쌓아올리면서 꾸준히 발전해왓음. 암흑시대엿다는 중세기에도 데이터 축적하면서 야금술, 천문학, 수학, 건축술 꾸준히 발전해왔고. 그렇게 쌓아올린 기술이 과학혁명으로 포텐셜 터지면서 급발전한걸로 보이는거지 2000년동안 퇴행만 거듭한 조센이랑 다르다
팩트)한반도 역사 자체가 전부 날조 거짓말이라서 그럼. 전부 중국역사 베껴서 즈그 역사인것마냥 구라친게 한국사의 진실임. 요즘 국뽕요소로 써먹는 갓이라는 모자도 원나라에서 유행하던거 ㅋㅋ
구한말 대한매일신보 기사 중에 가장 웃긴거 "오호 통재라 우리 동포여 예전에 우리가 아프리카 토인종을 불쌍히 여겼더니 오늘에 이르러서는 어찌 그들이 우리를 더욱 불쌍히 여기게 될 줄 알았으리오" <대한매일신보> 1907년 6월 21일 자 누가보면 씨발 19세기 길거리 똥바닥인 이씨조선이 문명국인 줄 ㅋㅋㅋㅋ
정작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조선은 극동의 모든 나라에서, 아니 이 세상에서 가장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의 나라이며, 조선 민족은 가장 문명이 뒤쳐진 인종이다. 조선인은 자치에 전적으로 적합하지 않다." -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제26대 대통령 - 이렇게 말함 ㅋㅋㅋㅋㅋㅋ 이러면서 진짜로 한민족을 아프리카 수준급 미개토인으로 만들어놓은 이왕가는 잘만빨아재낌 ㅋㅋㅋㅋ
이씨조선 씹새끼들이 민족이 어쩌구 지랄하는게 ㄹㅇ 역겹더라 우리 2천만 동포여, 노예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과 기자 이래 4천년 국민 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홀연 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시일야방성대곡-
자국민을 즈그 소유물인 노비로 40%나 부려쳐먹은 양반새끼들이 우리동포?? 진짜 일제보다 더 지랄맞은 불법 쿠데타 유교탈레반 정권 이씨조선씹새끼들 ㅋㅋ 난 가장 역겨운게 이씨좆센에 부역한새끼들이 "4천년 유구한 역사, 2천만의 민족" 이딴 말 싸지르는게 ㄹㅇ 역겹더라 ㅋㅋ 어딜 근본도 없는 불법 유교탈레반 정권이 자랑스러운 2천만 한민족을 즈그들 가족인마냥 5천년 유구한 역사를 함부로 언급하노? ㅋㅋ 어쩌면 이 새끼들이 일제보다 더 잔혹하고 악랄한새끼들임 ㅋㅋㅋㅋㅋㅋ
@ㅇㅇ(117.111) 팩트 40%도 아니다 70~80%다 그당시 한성 주변 노예 비율이 75%였음 ㅋㅋㅋㅋㅋㅋ
튀르크리 이집토마니아 인디엔느 티베토필리아 시누아즈리 자포네스크 각각 이슬람권 이집트 인도 티베트 중화권 일본을 지칭하는 문화이고 동남아와 몽골도 명칭은 따로 없지만 어느정도 인지하고있는데 반해 선진국 혹은 지역강국 중 조선만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민족의 역적 이왕가가 자랑스러운 한민족의 문화를 500년동안 잔혹하고 간사하고 치졸하고 악랄하게 탄압해왔기 때문이다
찬란했던 고려청자와 금속활자 등의 고려 문화는 민족의 역적 매국노 이왕가가 자기들의 세속만을 추구하여 문화를 보잘 것 없이 퇴보시킨 결과 전 세계인들이 한국은 현대문화인 한류말고 없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게 하였다 저 매국노 민족의 역적 이왕가가 종묘에서 제사를 지내지 못하도록 출입금지를 시켜놔야 옳다고 생각한다
대한제국 치하에서 자력 근대화가 불가능한 이유 건양 원년(1896년) 노비매매문서 자매문기 발견 참고) 신분제 1894년 갑오개혁 때 폐지 1894년 4월 12일 김옥균 시신 사지 찢어버리고 대가리 효수 갑오개혁 당시 내각총리대신이었던 김홍집은 정병하와 함께 1896년에 보부상한테 돌 맞고 집단 구타당해 사망 후 그 자리에서 시신이 갈기갈기 찢기며 대가리 효수당함
유명한 1898년 김홍륙독차사건(이 사건으로 순종의 건강이 악화되고 일찍 사망하는 계기가 됨) 1896년 아관파천 때 고종과 함께한 김홍륙 대한제국 선포 이후인 1898년 커피에 아편을 넣어 독살할려다 발각 재판없이 고종이 즉결 처형 후 연좌제 시행하여 아내 유배
당시 법무대신(지금으로 따지면 법무부 장관) 신기선이 연좌법(죄인의 가족에게 중형을 내리는 법), 노륙법(죄인의 스승, 아들, 남편, 아버지를 죽이는 법) 부활시키자고 상소올리고 서양요리 금지시키자고 상소문 올림. 그 후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하던 독립협회(서재필과 윤치호가 소속) 해산. 참고로 연좌제와 노륙법은 1894년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또한, 1905년 형법대전에 태형을 그대로 기재함으로써 병합 때까지 폐지하지 않으며 일제가 1912년 조선태형령을 시행하는데 기틀을 만들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사건들을 보고도 저 고종새끼가 직접 자력 근대화를 하는게 가능하다고 봄? 부관참시는 유럽에서도 18세기까지만 저질렀던 일을 19세기 극후반 거의 20세기 초입에 들어설 때 저지르고 자빠져있는데 이래도 일제가 한반도 침략과 수탈에 미친 잔혹하고 악랄한 집단이야? 불법 쿠데타 유교탈레반 정권 이씨조선 빠는 국뽕충새끼들은 대가리 오함마로 후들겨 깨버려야한다
역적 매국노 전주이씨 가문을 항상 기억하고 새겨야한다 이조(李朝) 아니 전주이씨 가문(李家)은 원 간섭기에 벗어나 다시 자주국으로서 도약해나가려는 고려(高麗)왕조 공민왕 전하와 우왕 전하의 뜻을 거스르고 신하 주제에 감히 항명하고 역적을 자처하여 불법적으로 함경도지방에 거주하는 다루가치출신 여진족 유교탈레반을 끌어모아 모반을 일으켜 권력을 찬탈하고 감히 한민족을 참칭하며 고려왕을 폐위시킨 후 스스로 고려왕을 자칭하고 한민족의 시조 단군왕검이 세운 조선(朝鮮)이라는 국호를 남용하며 한반도를 500년간 불법통치하여
고려청자를 빚은 도공과 화포, 금속활자를 제조한 기술자를 천민노비로 강등시키고 근대화를 막으며 자랑스러운 한민족의 문화예술과 과학기술을 간사하고 치졸하게 탄압하고 퇴보시킨 잔혹한 악당무리이다 전주이씨 가문의 불법통치는 계략이 사악하다 못해 쓰면서 토가 나올정도이며 그 계략은 먼저 원 왕조시절 천민 한족 거지가 세운 나라인 명(明)의 속국을 자처하고
명이 쇠락하자 자신들의 조상인 중원을 점령한 여진족의 후예 만주족 오랑캐 수장에게 무릎을 꿇어 외교권을 바친 후 중화를 자칭하는 것들의 지방정부로 전락하며 마지막에 아예 주권까지 만주족 오랑캐와 서양 오랑캐에게 넘기려다 결국은 왜놈에게 넘겨버리는 비열한 짐승들이라는 것이다 한민족 동포들은 전주이씨강점기 500년을 항상 기억하고 머리에 새겨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한다
@ㅇㅇ(117.111) 뭔 개소리야 최무선 집안은 조선에서도 관직살이 하면서 잘먹고 잘살았는데
@ㅇㅇ(117.111) 조선이 아무리 병신이어도 백성들 굶어뒤지든 말든 철저히 알빠노하던 고려보다는 나아 씹련아 ㅋㅋ
@ㅇㅇ(211.185) 그래서 양란이후로 기근 두 번오고 예송 환국 삼정의 문란 일으키고 자빠졌노? 고려보다 나은 것도 전기 뿐이지 후기는 그냥 둘 다 씹창임
@ㅇㅇ(117.111) 후기는 둘다 씹창 ㅇㅈ 근데 고려는 초기부터 씹창이었음
@ㅇㅇ(117.111) 그리고 양란 이후의 기근은 전쟁으로 황폐화된 토지+소빙하기 쳐맞은건데 깔려면 다른걸로 까야지 런못한조 같은 병신이나
@ㅇㅇ(117.111) 기술자들은 고려시대에도 향 부곡 소에서 반쯤 노비처럼 살았는디
공자는 북조선사람이다
그야 일본이 다 발전 시켜줬으니깐 - dc App
걍 아프리카 토인 수준
고등학교 졸업하고 빨간약 먹고 보니까 광복 이전은 그냥 인도급이었더라
대영제국 왕관의 가장 큰 보석인 인도가 조스로 보이지?
인도? 진짜 한국인들은 지들 수준을 기괴할정도로 부풀려서 생각함 막상 전세계 10위급이라다던가 인도급이라던가 너넨 그 당시 전 세계 꼴지임 ㅇㅇ
군벌 호족이 쿠테타해서 짱깨에 나라 이름 받고 조공바치며 500년 점거함.. 그냥 개병신민족
지금도 그러는중
북한보면 조선인들끼리 다스리게 놔두면 어떻게 되는지 알수있음
임진왜란 때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가옥들은 수혈식이었음.
우리가 아는 형태의 초가집도 사실 18세기 이후에나 정착된 것.
고려시대에 수도인 개성에도 움집이 있었다더만 존나 미개한 민족인듯
@ㅇㅇ(219.254) 움집이 있었다 수준이 아니라 개성 시민 대다수가 수혈주거였음
동양 전반적으로 그럼 일본도 19세기까지 수혈거주 있었다
@ㅇㅇ(221.168) 수도가 그지랄이었다는게 문제임
그거아냐 해외나가면 한국인이 적이다
우리나라 역사는 정치사뿐만아니라 생활사부분도 거의 대부분 거짓이지. 조선시대때까지도 움집사는 서민들 많았는데, 그래서 조선여행온 한 영국탐험가는 조선사람둔의 일반주거형태를 보고 자기가 방문한 여러 아프리카부족 토인들도 저거보단 나은집에 산다고 했지.
아프니
근본이 없이 짜맞춰진 역사라
구라에 구라에 구라를 이미 세겹이상 구웠기 때문에 구라 한꺼풀 벋기는걸로는 역사의 실상을 알수 없음 요즘 급식들은 민속촌이나 고택마을같은 곳에 가서 옛날 한옥보고 옛날사람 이렇게 살았구나 하는데 실상 그런집들 백이면 백 1970년대 이후에 다시 지어진거임. 원래 한옥의 한칸 크기는 지금 야붕이들 슈퍼싱글침대 그정도 크기임.
일본이 근대화시켜주기전까지는 고대시대였으니까 화폐경제도 제대로 발전못한 조선 수준 ㅋㅋㅋ 중국은 기원전부터 화폐경제였는데 조선 수준 딱 보임 - dc App
실제론 신라 고려 조선 다 달랐는데 고증 좆도 안하니까 세트 돌려쓰는거지
그렇게 수백 년 동안 딱히 아무것도 안 바뀐 게 맞음. 그러니까 산업 혁명이 엄청난 거지
똥 빵 즈
똥 센 징
대 중 화
대 황 본
미안한데 내 주변은 다 행복찾고 결혼해서 잘살더라 결혼못한 고독사확정 도태남들끼리 모여서 진짜 지랄들을 하는구나 어차피 저거 다 예능이고 결국 주변에 능력있으면 다 결혼하더라 너가 여기와서 남의 이혼사례 보면서 결혼 안하길 잘했다고 딸딸이 쳐봤자 팩트는 넌 그냥 외롭게 살다가 고독사할 팔자라는거고 그이상 그이하도 아님 병신새끼 나중에 후회하지마라
단청 ㅇㄷ? - dc App
왜 저러냐고? 지들도 모르거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시절 문화 복식 건축물 제대로 남아 있는게 없음
그러니까 사극들 보면 무슨 시발 RPG아머 입고 돌아다녔던거임
조선시대 주거환경 연구논문 찾아본적 있는데 수원화성 지을라고 한양에서 노인네들이 실사 갔다와서 한 보고에는 아직도 백성들이 반지하 움집에서 살고있다는 거였음 - dc App
사실은 조선 초중기만 해도 짤에 나온 저런 느낌 건축이 아니었는데 말이지...
고려 목조 건물이 다 화르륵 해버리는 바람에 막상 대중문화 쪽에서는 제대로 고증하기가 힘들어져 부렀어
@H1B4S9 몽골 또 너야?
건강한 미필 40대 남성이 군필 이대남 새끼 하나 골라잡고 야차룰 뜨면 3분내로 때려죽인다 ㅇㅇ 브런치 처먹고 스마트폰 쓰는 곳이 군대냐? 유치원이지 씨발 ㅋ.ㅋ
이 새끼 한대 쳐 맞으면 살려달라고 빌듯
이딴 댓글 세개짜리가 실베오냐 조작하네 디시..
역사는 이거 하나만 알고 있으면 된다 조선은 개쓰레기 나라다 <<
ㄹㅇ
한글이라는 일제시대(1926년) 때 주시경 선생이 만든 단어이다 - dc App
넌 한글부터 다시 배워야 할듯
@ㅇㅇ(222.235) 맞는데? 그 이전에는 딱히 한글을 지칭하는 말 자체가 없었음
@ㅇㅇ 훈민정음 병신아
@ㅇㅇ 언문 씨발아
훈민정음이나 언문이나 한글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그게 일상적으로 한글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지는 알 수 없음. 하물며 저 둘은 한자어인데 당시 백성들의 언어 생활에서 한양은 서울이라는 말로 훨씬 많이 불렸고 왕도 임금이라는 말로 더 많이 불렸던 걸 보면 저 둘이 한글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을 가능성은 거의 없음. 애초에 한글이라는 말을 따로 만들어야 했단 거 자체가 저 둘이 지칭하는 말이 아니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임. 차라리 암클이라고 하면 모르겠는데 암클 설도 요즘엔 사장돼갖고.
@ㅇㅇ 한글지칭하는 말 맞는데요 뭔 소리?
@ㅇㅇ(211.235) 이렇게 글을 써도 이해를 못하면 별 수가 없음. 그냥 일부러 못알아듣는 척이던가 아니면 순수하게 멍청하던가.
@ㅇㅇ 일상적으로 한글을 지칭하는 말이 맞다구요... 에휴...;; 자기소개 하는건가???
@ㅇㅇ(211.235) 훈민정음은 문자 체계에 가깝고 문자 그 자체를 이르는 용어는 아니긴 함
@ㅇㅇ(211.235) 멍청한게 맞나보다
@ㅇㅇ 디시는 진짜 어메이징 하다... 한국어로 말해도 이해를 못하면 뭐 어째해야 하지 에휴
@ㅇㅇ(14.58) 용비어천가랑 혜례본 보면 다 나옵니다 뭘 알고나 좀 아휴 ㅋㅋㅋㅋ
@ㅇㅇ(211.235) 그 해례본이 40년에 와서야 겨우 한권 발견된 건 알고 있음? 그 정도로 잊혀진 책이었는데 훈민정음을 일상적으로 한글을 이르는 말로 쓰진 않았지
@ㅇㅇ(211.235) 용비어천가고 나발이고 씹조센에서 책이란건 지금의 책 같은걸 생각하면 안됨 유교경전 아니면 인쇄된 게 극히 적어서 지배층 사이에서 돌려보던 거라 생각하면 된다 홍길동전이 책이 많이 팔려서 베스트셀러가 된 줄 아냐? 책으로 써진 건 극히 일부고 구전으로 전해져갖고 입소문을 타서 유명해진거다. 일반 백성들은 용비어천가 그딴거 알 필요도 없고 안다해도 책을 읽어서 안게 아니라 구전으로 아는 시대인거임
무식한 새끼니까 이해시키려 하지 말아라 ㅋㅋㅋㅋㅋㅋㅋㅋ
@ㅇㅇ(14.58) 혜례본은 그 근거가 적힌 책인거지 그게 늦게 발견된거랑 무슨 상관이니 ㅋㅋㅋ 진찌 개멍청하네 ㅋㅋㅋ
@ㅇㅇ(14.58) 그래서 조선 사신들이 중국이나 일본 갔다오면 허버허버 책 싸갖고 오기 바쁘던 시대였음
@ㅇㅇ 님은 혹여나 공부쪽으론 진로 잡지 마세요 ㅠㅠㅠ
@ㅇㅇ 조선사신이 무슨 일본가서 책을 싸오노 ㅋㅋㅋㅋㅋ 디시로 역사 배우는 수준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 넌 절대 공부쪽으론 진로 잡지 마라
@ㅇㅇ(211.235) 참고로 언해본도 언해본 그 자체가 처음 발견된건 아니고 언해본이 쓰여져있는 월인석보가 처음 발견된거고 이것도 일제시대 초반에 발견된거임 니가 해례본 얘기를 꺼내니까 해례본 얘기를 한 거지.
@ㅇㅇ(211.235) 언해본은 처음부터 단독 간행된 책도 발견된 적 없고 현재 언해본이라고 부르는 것도 월인석보에 적혀져있는 걸 묶어서 언해본이라고 부르는 거다.
@ㅇㅇ(14.58) ㅇㅇ 디시나 열심히 해라 . 사람마다 잘하는게 다른데 어쩌겠어... 위에 저 친구랑 손잡고 디시 열심히 하자
@ㅇㅇ 일제 이전에 한글편지도 많이 쓰이고 표석도 여러개 있음. 그냥 너가 원종단한테 쳐낚인거임
@ㅇㅇ(211.235) 조선 사신들 통신사 가갖고 일본에서 책 사와다가 보따리 장사한건 유명한 기록인데 부정보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ㅇㅇ(222.99) 지금 한글이 근대 이전에 많이 쓰였나 아니나를 얘기하는게 아닌데 이새끼는 또 뭔 저지능자야 하 씨발
@ ㅇㅇ(110.46) 조선통신사가 무슨 일본 책 장사를 함 ㅋㅋㅋ 니가 물고 빠는 디시발 자료임? 개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ㅇㅇ 너랑 비슷해
@ㅇㅇ(222.99) 많이 쓰였단 것도 어폐가 있음. 편지를 쓴다는 행위 자체가 문방사우를 구비할 수 있는 부유층에 해당된 얘기기 때문임. 니가 말하는 그 한글 편지들 많이 전시된 한글 박물관을 가봐도 절대다수가 중인들과 양반 집안 여자들의 편지임. 사람들이 한글이 쉽다고 한글을 배우면 누구나 다 쓰고 언어생활 했다고 인식을 하는데, 언어생활은 단순히 글자만 익힌다고 되는게 아니라 매체와 기록물의 발전이 필수적임. 그래서 인쇄술의 발달이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거다. 뭘 봐야 늘지 지금처럼 보통교육이 있던 시대도 아니고 간행물도 극히 적었고 주위에 다 까막눈이던 시기에 어떻게 일반 백성들이 언어생활을 영위했다는 거짓말을 국가가 당당하게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서양도 18세기까지 문맹률이 엄청났던 시기에 말이야.
주시경이 한글 명칭을 처음 만든 건 아니고 다른 지식인들이 쓰던 표현을 차용한 거임
@ ㅇㅇ(110.46) 해유록 정도는 읽어보고 오는게 글 아니다 니 지능으론 그것도 이해 못할듯 ㅠㅠㅠ
그리고 조선 내내 한글을 언문이라고 불렀다 정식명칭은 훈민정음이나 언문이 주로 쓰였음 뭐 위에 한 놈은 지칭하는 명칭이 없었다는 헛소리를 하냐 조선 시대에 한글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꽤 배운 사람이고 명칭을 모르겠냐
@ㅇㅇ(222.99) 표석이 많다고 하는데 내가 알고 있는 거랑 달라서 검색해보니까 지금 전국에 남은 한글 표석은 5개 뿐이라는데? 그 마저도 4개는 국한문혼용체고. 우리가 지금이야 한자를 욕하고 구어와 문어가 분리돼있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당시에 필기구와 종이가 얼마나 비쌌는지를 생각해보면 그럴 수 밖에 없던 시기임. 지금처럼 종이 한장 허투로 쓸 수가 없던 시기란 거임. 사관들도 사초를 쓰고 중요한 내용은 실록에 옮기고, 사초를 쓴 종이는 다시 빨아서 쓰던 시기다. 뭐 일반 백성은 바닥에 쓰면 된다고 하는데 해봐라 그게 잘 되나. 농민들은 인간관계가 극히 좁은 마을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그거 쪼그려 앉아서 땅에 그리고 있을 시간에 그냥 구두로 전하는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시기다. 무엇보다 새벽에 일어나서 밭일하고 오후에
@ㅇㅇ(220.71) 드러눕던 시기에 뭐 어떻게 한글을 배우냐? 종이와 필기구도 없고 공부를 하려고 해도 불빛도 없고 책상도 없는 시대에. 선비들이 공부 존나 했다그러지? 그것도 지금 같은 그런 공부를 생각하면 안되는게, 상기의 이유로 현대인에 비하면 굉장히 능률이 떨어지는 공부를 할 수 밖에 없던 시기임 의자가 있길 하냐 제대로 된 책상이 흔하던 시기길 하냐? 이런 상황에서 백성이 한글 공부? 한글 관련해선 정말 국가가 퍼뜨려놓은 거짓말이 너무 많고 사람들 머릿속에 뿌리깊게 박혀서 하나하나 얘기하려면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다. 그렇다고 납득을 하는 것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