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카공화국은 카리브해의 에스파뇰라섬에
위치한 나라로, 섬의 동쪽을 차지하고 있으며
서쪽은 아이티공화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이 두 나라는 같은 섬을 공유하지만,
언어·문화·역사적으로 큰 차이를 지닌다.
사족을 붙이자면, 에스파뇰라섬은 콜럼버스가
신세계에 처음 도착했을 당시 가장 먼저 상륙한 섬 중 하나로,
이후 스페인의 식민지로 오랫동안 지배를 받았다
도미니카공화국에 야구가 전해진 과정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 나라의 역사부터 살펴봐야 한다.
스페인 사람들이 에스파뇰라섬에 식민지를 세우면서
아프리카에서 많은 흑인 노예들을 데려왔고,
이들이 주로 모여 살던 지역이 지금의 아이티다.
반면, 스페인계 농부들이 정착한 동쪽 지역이
현재의 도미니카공화국이다.
‘도미니카’라는 이름은 카톨릭의 도미니코 성인을
수호성인으로 삼은 데서 유래했으며,
수도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도
‘거룩한 도미니코’라는 뜻을 가진다.
프랑스는 에스파뇰라섬을 스페인으로부터 빼앗으려 했고,
아이티 흑인들에게 접근했다.
흑인들은 프랑스 혁명사상의 영향을 받아 스페인과 싸웠고,
그때부터 프랑스어를 쓰며 프랑스 문화를 따르게 되었다.
‘삼총사’의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도
아이티 흑인과 프랑스인의 혼혈이다.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공하자, 아이티 흑인들은
스페인계 백인들이 살던 도미니카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로써 아이티는 흑인 최초의 근대 독립국이 되었고,
도미니카는 흑인에게 지배받은 최초의 백인 국가가 되었다.
아이티는 도미니카인을 가혹하게 착취했고,
그 여파로 두 나라는 지금까지도 사이가 좋지 않다.
현재는 도미니카가 훨씬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어,
아이티인에 대한 차별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도미니카는 아이티의 지배에서 독립했지만,
곧 스페인이 다시 식민지로 삼으려 하면서 다시 싸움을 벌였다.
결국 재독립에 성공했지만, 내부 분열과 혼란이 이어졌다.
재미있는 점은, 당시 대통령 부에나벤투라 바에스가
“프랑스도, 스페인도 못 믿겠다”며 미국에 편입을 청원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미국 대통령 율리시스 그랜트에게
“우리를 미국의 주로 받아달라”고 요청했다.
미대통령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추진했지만 상원에서 부결처리된다.
도미니카에서는 쿠데타와 혼란이 이어졌고,
권력자들은 미국 은행에서 돈을 빌려 포퓰리즘 정책만 펼쳤다.
이로 인해 부채가 급증하자,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개입해 예산과 세금 정책을 미국 고문이 통제하게 했다.
부채는 줄었지만 주권은 침해되었고,
도미니카에 파견된 미국인들은 산과 농장밖에 없는
환경에 지루해했다.
미국인들은 도미니카에서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공터에서 야구를 하기 시작했다.
야구는 18세기 미국에서 시작돼 1860년대
미군을 통해 쿠바와 푸에르토리코로 전파되었고,
스페인어권 사람들을 통해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퍼졌다.
스페인어권에서는 야구를 영어 발음을
그대로 따서 “Beisbol”이라 부른다.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 회계사 페드로 미겔 카라티니는
영어와 스페인어에 능통해 도미니카인들에게 야구를 전파했다.
그는 ‘도미니카 야구의 아버지’로 불린다.
1907년, 카라티니는 도미니카인들로 구성된
최초의 야구팀 티그레스 델 리세이를 창단했다.
티그레스가 미국인들과 경기를 하며 인기를 끌자,
이를 지켜보던 쿠바계 이민자들도 경쟁심을 느꼈다.
쿠바는 미국-스페인 전쟁 여파로 혼란을 겪었고,
많은 쿠바인들이 도미니카의 산페드로 데 마코리스로
이주해 살았다.
1910년, 이들은 에스트레야스 오리엔탈레스(동쪽의 별들)라는
야구팀을 창단하며 본격적인 라이벌 구도가 시작됐다.
아이티에서 반미감정이 커지며 미국인의
토지 소유를 금지하는 법이 통과되자,
미국은 이를 무시하고 해병대를 파견해 아이티를 점령했다.
도미니카에서도 반미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해병대를 보내 도미니카까지 점령했다.
이로써 1916년부터 1924년까지 도미니카는
미군정 하에 놓이게 되었다.
미군정 시절 도미니카 야구 인기가 더욱 높아졌고,
1921년 산토도밍고 야구팬들이
“티그레스가 자존심을 지키지 못한다”며 새 구단
레오네스 델 에스코히도(에스코히도의 사자들)를 창단했다.
호랑이 팀에 맞서는 사자 팀이 생긴 셈이다.
1930년 대공황 속에서 도미니카는 혼란에 빠졌고,
이때 라파엘 트루히요가 권력을 잡았다.
트루히요는 미국을 동경하며 도미니카를 선진국처럼
만들고자 했고, 산림 보호 정책도 그 일환이었다.
야구를 매우 좋아했지만, 대도시 외 시골에서
야구 대신 투계 도박이 성행하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트루히요는 농장주들에게 농한기엔 일꾼들이
야구를 하도록 지시해, 야구가 도미니카 전역으로 퍼지게 했다.
1937년 도미니카 선수들이 미국 네그로 리그에 진출하자
트루히요는 큰 보상을 주며 격려했고,
이로 인해 젊은이들이 야구에 몰렸다.
같은 해, 도미니카 4번째 구단
아길라스 시바예나스(시바오 지역의 독수리들)가 창단되었다.
팀이 4개로 늘자 1951년 도미니카 정부는 프로야구 리그인 LIDOM(도미니카 프로야구 리그)을 창설했다.
초기에는 썸머리그였지만, 농번기 관객 감소와
미국 메이저리그 일정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곧 윈터리그로 전환되었다.
이 덕분에 선수들은 겨울에 도미니카에서 뛰고,
여름에 미국에서 활약할 수 있게 되었다.
1959년 쿠바가 공산화가 되면서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이 쿠바에서 활동할 수 없게 되자,
자연스럽게 그들은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눈을 돌렸다.
쿠바를 떠난 스카우터들은 도미니카에 몰려들었고,
이로 인해 도미니칸 선수들이 미국 프로야구에
진출할 기회가 크게 늘어났다.
덕분에 도미니카는 야구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며,
오늘날까지도 미국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들을
배출하는 나라로 알려지게 되었다.
트루히요가 1961년 암살된 후 도미니카는
오랜 정치 혼란을 겪었고, 사람들은 정치에 대한 희망을 잃어갔다.
이때 야구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고,
1983년 5번째 팀 토로스 델 에스테(에스테의 황소들),
1995년 6번째 팀 히간테스 델 시바오(시바오 자이언츠)가
창단되었다.
현재 LIDOM에는 총 6개 팀이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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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 나도 좆같았었는데 일단 어쨌든 일 하나는 진짜 잘하기는 하네.. 대통령 되자 마자 윤석열 이 새끼 하고 비교 하면 나라가 이 정도로 바뀌냐 와.. - dc App
조선족 - dc App
짱깨
그랬는데 윤미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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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 - dc App
공짜 = 아니 근데 한국애들은 이게 유료 인지 무료 인지를 말하는게 그렇게 어려운건가?.. - dc App 이거 계승하실분 찾습니다 그냥 달고싶은 글에 댓 다시면 됩니다
쿠바 놀로갔을때 도미니카공화국 애들이랑 마셨는데 야구 얘기하면서 친해짐
응우옌 애미뒤졌나진짜 그냥 씨발 실베에 글쓰기버튼을 쳐만들어 씹창년아 뭐냐이게
팩트)이런글 썰고 예전 힛갤처럼하면 디시도 일베처럼 순식간에 극우노인 정치사이트로 테라포밍된다
김유식이 시킨 대로 할 뿐인데
역시 졸스신
푸홀스다
타이거스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오오오오오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재밌다
간만에 유익한 글 잘 봤습니다.
하여간 검둥이놈들
MLB에서 도미니카 향우회는 대한민국의 호남향우회 포지션임
자이언츠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구단명이구만
저 나라는 야구선수가 막 위인 취급뿐이 아니라, 정치인까지 되고 그런다고 함
도미니카 쿠바 붙으면 누가이김? - dc App
도미니칸 메이저리거들 출전하면 도미니카가 쿠바 씹압살함 메이저 빼고 붙으면 비슷하거나 쿠바 약우세
쿠바는 뒤진지 오래임. 베네수엘라가 도미니카랑 비빌만 함
도미니카는 푸에르토리코가 안되었네
도미공 역대 야구 goat 누구?
타티스
여자 처녀막+몸무게+나이 = 남자 키
중고 쿵쾅이 아줌마 = 난쟁이
괜히 잘하는게 아니구나 그냥 야구의 나라네...
전성기 선동열이 도미니카 타선 잠재울수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