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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사진 속의 인물, 임종국이 남긴 말이다.


그는 1929년 경상남도 창녕군,

천도교 지도자를 역임했던 아버지, 

평범한 주부인 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1952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였다가

집안 사정으로 2년 만에 자퇴를 하였다.


그 후 시인 이상의 전집을 펴냈는데,

자료 수집의 과정에서 유명 작가들의

일제 강점기 시절 친일 행적을 발견하고,

이에 분노한 임종국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연구를

시작하여 <친일문학론>을 저술하였다.


<친일문학론>에 적힌 인물 중에는

임종국의 아버지 임문호도 있었는데,

임문호는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의 식민지 정책과 대외 정책에 대해

동참할 것을 수차례 선동한 적이 있었다.


임종국은 집필 중 부친의 행태를 알게된 후

매우 괴로워 했었는데,

그의 아버지는 괴로워하는 그를 보고

'내 이름을 그 책에 넣어라.

책에 내 이름이 없다면, 그 책은 죽은 책이다.'라고 말하였다.


<친일문학론>은 초판 1,500부가 발행되었는데,

한국에서는 큰 관심을 갖지 못 했고,

1,000부는 역사 연구를 위해 일본이 사갔다.

나머지 500부까지 팔기 위해선 13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이후 미친 듯이 친일 인물 관련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중학생인 아들과 몇 달씩 도서관에서 자료를 수집한 것은

예삿일이요, 조선총독부 35년치 관보 2만 매를

전부 복사하였다.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의 10년 분을

일일이 필사하는 정성을 들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친일인물들의 행적을 낱낱이 기록한

'친일인물카드는' 훗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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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1989년 폐기종으로 사망한 임종국의 유지를 이어 받은

민족문제연구소는 2001년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시작해

2009년 11월 8일에 저서를 공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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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한 일제 하의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

참회와 반성이 없었다는 해방 후의 현실이 문제였다.


민족사에서 우리는 부끄러운 조상님을

면할 날이 없게 되는 것이었다.


- 임종국의 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