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초 신성로마제국의 보헤미아 왕국(현 체코의 전신)에서는 후스파(Husitství)라고 불리는 개신교 세력이 성행했다. 이들은 로마 가톨릭에게 이단으로 찍혀서 여러차례 침공을 받았으나 보헤미아인들은 이에 맞서 싸우며 수십년에 걸쳐 자신들의 신앙을 유지했다.
하지만 1431년, 연이은 전쟁과 이상기후로 인해 보헤미아 전역에 몇년 동안 흉작이 들었다. 후스파 역시 이 시점부터 점점 쇠락해서 군대는 제대로 된 보급조차 받지 못할 정도였다.
후스파의 장군이었던 얀 차페크 (Jan Capek)는 신앙심이 밥먹여주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 다른 일거리를 찾아 떠났다. 이들은 용병이 되기로 한 것이다. 그들이 간 곳은 바로 옆나라 폴란드였다.
카를로비바리 산맥을 넘어 대평원으로 들어선 보헤미아 용병들은 당시 독일 튜튼 기사단과 영혼의 한타싸움을 벌이고 있던 폴란드 왕 브와디스와프 2세 (Władysław II Jagiełło)에게 찾아갔다. 안 그래도 병력이 부족했던 폴란드에게 수십년동안 전쟁으로 단련된 보헤미아 용병들은 정말 귀중한 인재들이었다. 브와디스와프 2세는 이들에게 장비와 봉급을 주기로 약속하고 고용계약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폴란드는 보헤미아인들이 그토록 싫어하던 로마 카톨릭을 믿었으나 신보다 돈이 더 급했던 용병들에게 그런건 별 상관 없었다. (어쩌면 둘 다 같은 서슬라브 민족이라서 이야기가 통했을 지도 모름.)
1433년부터 보헤미아 용병들은 슐레지엔를 가로지르며 북쪽으로 전진했다. 보병 7천에 기병 350기였던 이들은 지나가면서 만나는 독일인 마을과 도시들을 그야말로 불태워버렸다. 요즘으로 치면 초토화전술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튜튼 기사단은 로마 카톨릭을 믿었으므로 보헤미아 용병들에게는 조국을 침략했던 가톨릭 진압군과 다를게 없는 썅놈들이었다. 수도원과 성당은 불태워졌고 사제와 신부들은 산채로 타르에 익사 시켰다. 간혹 튜튼 기사단에 종군하는 보헤미아인을 잡으면 '반역자'라고 부르며 참수했다. 1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불태운 도시는 약 12개에 달했으며 긁어모은 전리품만 해도 몇년치 봉급에 가까웠다. 보헤미아 용병들은 폴란드군과 연합작전을 벌이기도 하면서 1433년 9월, 항구도시 단치히(Danzig, 현 그단스크) 기슭까지 진군했다.
그리고 그들 눈 앞에는 발트해(Baltic Sea)가 펼쳐졌다.
보헤미아 용병들은 끝도 없이 펼쳐진 검푸른 수평선을 보고선 전부 넋을 잃었다.
평생을 산과 숲으로 둘러쌓인 내륙에 살던 보헤미아인들에게 바다란 난생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저 성경에서나 들어봤을 뿐이다.
차페크 장군도 발트해의 웅장한 위압감에 경도되어 말을 몰고 그대로 바다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보라, 형제들이여.
내가 너희들에게 고백하노니, 우리가 세상의 끝에 도달하였은즉, 바닷물이 앞을 가로막으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노라.
보헤미아 용병들 정말 자신들이 세상의 끝자락에 왔다고 생각했다. 한편 단치히 수비대는 용병들이 금방이라도 폴란드군과 연합하여 도시를 공격할 거라고 여기며 가슴을 졸였으나 그런 일을 일어나지 않았다.
단치히 수비대 측에서 기록한 내용에 따르면, 보헤미아 용병들은 전쟁이 끝나기라도 한 것 처럼 갑옷을 벗어둔 채 바다에 뛰어들어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고 전해진다. 그 모습은 마치 여섯살 어린아이 같았다고 한다. 어떤 용병들은 큰 항아리를 가져와 바닷물을 열심히 퍼담았다. 그렇게 며칠을 신나게 놀던 보헤미아 용병들에게 폴란드 기사단이 찾아와 그들의 전공을 치하하고 해변에서 일부 용병들에게 기사작위를 내려주기도 했다.
1433년 겨울, 튜튼 기사단과 휴전협정을 맺은 브와디스와프 2세는 보헤미아 용병들은 자신의 궁전으로 불러들였다. 차페크 장군과 그의 부하들이 맡은 임무를 훌륭히 수행 해주었다며 막대한 상금과 선물을 내렸다. 주머니가 두둑해지고 명예까지 챙긴 보헤미아 용병들은 자랑스럽게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후 몇년 동안 보헤미아 왕국 전역에는 용병들이 겪고 온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졌다.
"산을 넘어 독일인 이단자들을 무찌르며 나아가다보니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그 곳에는 온통 물만 가득했다. 그 물은 소금으로 가득하여 짜디 짰다."
처음에 사람들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치부했지만 일개 병사들 뿐만 아니라 장군인 얀 차페크까지 같은 이야기를 해대니 신빙성이 있었다. 증거를 내놔보라고 하면 병사들은 항아리에 담긴 '소금물'을 접시에 담아 보여주며 으스댔다. 차페크 장군은 '소금물로 목욕을 한 자'라는 이명을 얻었다. (옛날에는 소금값이 금값이었으니까.)
종교전쟁이 끝나고, 신성로마제국이 멸망하여 보헤미아인들이 체코라는 자신들의 나라를 가지게 된 먼 훗날에도 바다를 보고 온 보헤미아 군인들의 이야기는 여러 세대를 거쳐 전해져 내려왔다.
20세기 초에는 체코의 예술가들이 민족주의를 고취시키기 위해 이 이야기를 가지고 여러편의 시와 소설, 그림 등을 써냈다.
3줄 요약
1. 중세 말기 보헤미안(체코) 용병들이
2. 폴란드의 사주로 튜튼(독일)과 싸우다가
3. 바다 처음 봄
ㅊㅊ = ㅍㅋ
ㄹㅇ 좆같이 거슬림
뭐 이딴걸 이렇게 쓸데없이 길게 쓰냐? 나무위키 베껴언거가지고 실베가기? - dc App
바다가 짜지 않으면 좋을탠데
얼어붙어서 좆됨
이집트에서 눈 온거 보고 좋아하던 짤 생각나네
우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출처 = 펨코 - 8700 1080
킹덤컴 하세요 여러분
바다보고 담배 때리면 그저 낭만 그자체
히틀러가 복수했네
아아...이것은 '바닷물'이라고 하는 것이다
지중해는 안짠가? 말이되나
체코는 지중해랑도 멀어서ㅋㅋ
체코는 지중해 북해 그 사이의 내륙국임
재밌네 ㅋㅋ
아르민.... 바다 너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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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땜에 바퀴벌레 친척소리 나오잖아 ㅋㅋ
바퀴깡ㅋㅋ
촌놈들 - dc App
운지왕 후스
저기서 누가 배타고 건너오면 새로운 신이라고 개종할기세네
대빵은 지슈카 아니였노
저때는 얀 지슈카 죽은뒤
보지 헤프게쓰고 미투한다음 안그런척
이쯤 되면 마음의 병 아니냐?
형냐 나 감동해서 눈물나
소금이 복사가 된다고!
바다 못보고 눈 못보고 죽는애들 많을듯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장례 치르는 클리셰도 있잖음
「난징대학살」 이라는 날조에서 30만 마리가 도살 되었고 일본병의 중국인 위안부 매춘부가 40만 마리가 존재했다고 날조하는 중국공산당 시나징의 날조 음모론부터 분쇄하는 것이 좋다 w w w 시나는 티베트를 침략해 120만명을 학살했는데 난징 사건 날조로 일본을 두들기는 바보 배설물 민족 시나징 w w w w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뭔 모에 고어 포르노 만화노?
보헤미안=보지 헤프게 쓰고 미투하고 안한척함
ㅋㅋㅋㅋㅋㅋㄹㅇ - dc App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보헤미안보면 그거밖에 생각 안남 시발 너무 적절해서 ㅋㅋ
응 아르민이 먼저말했어~
좋은 글이다. 글은 외국책이나 블로그에서 봤다고 치고 짤은 어떻게 구했냐?
구글에 영어 키워드 여러개 넣고 검색하면 저런 삽화 잘 나옵니다
병신년이노
우미다~~~~~
'자유'다
진격의거인 배끼지마라
오 - dc App
T-KT 들어라
귀여워 - dc App
비슷한 예로 조선인들의 중국 기행문에서는 만주의 광활함에 대한 감탄이 빠지지 않는다. 조선에는 지평선이라는 게 없으니까.
ㄴ전라도에도 없음, 항상 산 같은 거 하나 툭 튀어나와서 거슬리게 함
킹덤컴 딜리버런스
바다를 알고 봐도 놀라는데 태어나서 처음보면 정말 황홀할듯
이글 보고 미디블 토탈워 가기로 했 은 무슨 시발 햄탈 간다 시발려나 - dc App
로망이 있다 - dc App
보헤미안이 뭔데 시발 난 보헤미안 랩소디밖에 모른다ㅇㅇ - dc App
보헤미안 = 보지 헤프게쓰고 미투 안한 척
싱벙갤아니네
보지 헤프게쓰고 미투하고 안그런척?
내륙국이라 소금값이 금값인데 ㅅㅂㅋㅋㅋ 나라도 금이 지평선 너머 까지 꽉꽉 채워져있었다 하면 지랄말라고 할듯
내륙에서 살다 바다 처음 보면 놀라긴 할듯 - dc App
진짜신나게놀았나보다
중간에 어린 아이처럼 즐거워 하면서 바다에서 놀았다는 게 왜 이리 감동적이면서도 역설적이게 들리냐...
오
저새끼들보다 300년전 몽골족들은 헝가리 정벌전 1회 작전에 발트해 연안을 거치는 우회 기동을 했는데 저 지경으로 우물안 개구리였으니 몽골한테 줫 털리지 어떻게 토박이새기들이 지구 반대편에서 온 칭키아이들보다 즈그 동네 지리를 모르냐
어쩌라고 ㅋㅋㅋ 열등감에 24시간 쩔어사냐? 몽골얘들이 왜나와
몽골인이 디씨함? 열등감 얘기가 왜나옴 미친놈인가 ㅋㅋㅋㅋㅋ
찌질이
중세유럽인들 전술이라는게 튼튼한 성벽 두르고 그 안에 꽁꽁 숨어있는게 십중팔구라서 전략 전술 개념은 없었다고 봐야지. 수백년에 걸친 십자군 전쟁에 매번 깨진게 무슬림들이 잘 싸운 것도 있지만 갑옷하나 믿고 개돌밖에 모르는 유럽군들의 무지함도 원인이었을 듯~~
이거 무슨 후스파 로리 주인공 만화 있지 않았냐
붉은 눈의 빅토르카
로망이 꿈틀거리는 시대였구나 문명과 로망은 반비례 하는거 같다
조사병단ㄷㄷ
민족을 위하여 투쟁~ - dc App
뭔가 낭만이 있다
나는....자유다.
커엽노
실제 바다 본 반응 동영상이라도 있을줄 알았는데 뭔 글만 잔뜩 써놨노
중세 유튜브는 뭐꼬 - dc App
ㄹㅇ
이 갬성 때문에 중세퍼거스 중세뽕에 취할수밖에 없음
이게 이해가 잘 안되는 사람은 국토는 좁은데 3면이 바다인 한반도에서 살아서 그런 것도 있고 유럽 중세가 바이킹, 이슬람, 마자르 족한테 두들겨 맞느라 쫄아서 성벽 두르고 꽁꽁 숨어 살았던 봉건제의 시기였다는 걸 잘 몰라서 그럼. 봉건제가 유지되려면 농민들은 노예처럼 영주의 토지에 속박되어 살아야 했기 때문에 다른 세상은 커녕 자기 동네 벗어나는 것도 하기 힘들었거든. 기사들도 십자군 전쟁 전까지는 방어에 올인하는 전사였지 원정경기는 뛴 적이 없었고... 물론 저 15세기 전반은 십자군 전쟁도 끝나고 지중해 중심 무역도 발달하던 시기였긴 하지만 그건 지중해 주변 국가 얘기고 유럽 내륙지방 국가들은 여전히 울타리 치고 살았지. 그러니 페스트 한방에 유럽인구 3분의 1이 뒈지지 ㅋㅋ
네 다음 아랍인~
팩트:이게 이해가 잘 안되는 사람은 3줄이 넘어가는 댓글은 잘 안본다
14.33 저능아 급식
보헤미안 랩소디, 보헤미안 스캔들
이럴 역사 정보글 매우 좋다 계속 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