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북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한 프랑스는 광범위한 땅들을 통치하기 위해 치안 유지 및 통역, 잡무등을 맡을 현지 무슬림들을 고용했다. 이들을 통틀어 아르키(Harki)라고 불렀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군의 보조병으로 활동하며 저항세력 토벌에 동원됐던 아르키들이 제일 인지도가 높았다.
적대부족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아르키에 입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출세를 위해 아르키에 입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단순히 생계를 위해서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르키들의 봉급은 프랑스군의 1/3(삼분의 일)도 안됐지만, 이는 알제리 현지인들 최저임금의 2배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그리고 적어도 아르키가 되면 '제국의 2등 신민'으로 신분 상승을 할 수 있었다.
2차례의 세계대전과 인도차이나 전쟁을 거치며 많은 병력수요를 감당해야 했던 프랑스 국방부는 알제리인들에게 국방의 의무를 지우는 법안을 통과 시켰다. 많은 알제리인들이 유럽과 베트남으로 끌려갔다. 반면 아르키에 입대하면 적어도 고향을 떠나지 않으면서 군복무를 대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군대에 가고 싶지 않았던 알제리인들이 대체복무 개념으로 입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알제리 독립전쟁이 일어나면서 상황은 악화됐다. 이제 알제리인들은 독립군인 알제리 민족 해방전선(FLN)이나 프랑스 둘 중 한 곳에 붙어야만 했다. 과거 프랑스군에서 복무했거나 아르키였던 이들이 FLN에 들어가서 저항운동을 하는 케이스도 매우 많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아르키들은 프랑스에 자신들의 충성을 입증하기 위해 같은 민족에게 매우 잔인해져야만 했다. 알제리 독립전쟁 기간동안 프랑스군이 저질렀다고 알려진 잔학행위의 상당수는 아르키들을 앞세워서 벌인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전쟁의 양상이 FLN쪽으로 기울자 아르키 지원자 수도 급감하기 시작했다. 프랑스군은 조직적 징병을 시작했고 길가던 알제리인들을 무작정 납치하여 아르키로 복무 시켰다. 전쟁이 한창이었던 때엔 연인원 최대 50만명의 아르키들이 프랑스군 휘하에서 복무했다.
1962년, 마침내 알제리가 독립을 쟁취하게 되자 아르키들은 팽 당하고 말았다. 프랑스는 철군을 하면서 대부분의 아르키들을 현지에 버리고 갔다. 알제리는 프랑스의 단순한 식민지가 아닌 '해외 영토'였으나, 그 영토에 살던 아르키들은 프랑스 시민이 아니었다.
아르키들에게는 엄청난 보복이 돌아왔다. 알제리 인들에게 아르키들은 '민족 반역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신생 알제리 정부는 아르키를 비롯한 프랑스 부역자들을 있는대로 잡아다 감옥에 집어넣고 미친듯이 고문하고 사형을 집행했다. 아르키들의 가족들 역시 엄청난 핍박에 시달렸다. 이렇게 사망한 아르키들과 그 친인척들의 숫자는 6만~15만명에 이른다고 추정된다.
죽기 살기로 알제리를 탈출한 4만 5천명의 아르키들은 프랑스에 정착했다. 이들은 현대 알제리계 프랑스인들의 근간이 됐다. 알제리 정부는 아르키 출신자들을 여전히 민족 반역자로 규정하며 귀국을 불허하고 있다.
프랑스 제5 공화국은 약 40년 동안 공식적으로 아르키의 존재에 대해 침묵해왔다. 그러다가 2001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아르키들을 추모하는 기념비를 설치하며 프랑스 정부의 책임론을 거론하기 시작했고 재향군인회와 아르키 출신 복무자들의 지속적인 항의집회를 통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2021년, 마크롱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아르키 복무자들에 대한 배상법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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