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명나라 자체가 일본이 점령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사이즈를 가진 국가들임 일본의 인구는 1,400만 조선의 인구는 1,200만 명나라의 인구는 무려 7,000만으로 조선은 일본과 인구 차이가 별로 없었고 명나라는 인구수 자체가 일본을 압도하는 동북아시아 초강대국이었다.
명나라를 먹는 것 자체가 불가능 인 게 명나라는 동북아시아 초강대국으로 300만에 달하는 군대를 보유하고 있던 국가로 일본군이 사용하는 조총들보다 강한 화약무기 다수를 보유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왜군을 상대하기 위한 부대를 따로 만들 정도로 일본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조선을 공격하면 제후국인 조선을 구하기 위해 명나라가 개입할게 뻔한 상황이기 때문에 일본이 조선,명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시나리오로 히데요시는 정신병에 걸렸는지 명나라-조선 정복에 매달리기 시작한다.
침공 과정에서 제일 큰 실수를 하니 조선의 곡창지대 전라도를 패싱하고 한양에 직공을 선택한 것으로 일본군은 수도만 점령하면 끝이라고 생각했으나 선조가 런을 치면서 전쟁이 장기전 양상으로 변하게 되는데 이때 왜군의 공격을 피한 전라도 육군,수군은 전력을 온존히 보존했다.
곡창지대였기 때문에 무한보급을 통해 조선 최강의 수군,육군,의병들을 토해내기 시작하는데 김천일,고경명,김덕령 같은 한국인들이 알만한 의병장들이 튀어 나오기 시작했고 전라도 수군 역시 경상도 수군과 연합함대를 구성 일본군을 해전에서 박살내기 시작했다.
조선수군의 전력의 90%가 전라도 좌-우수영 소속 함대로 좌수영 24척, 우수영 25척 경상우수영 4척이었으며 일본군은 골칫거리인 전라도를 함락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이치-웅치 전투들에서 권율이 이끄는 전라도 육군에게 패배하고 진주성 전투에서 패배하며 전라도를 함락시키지 못했다.
전라도 수군-육군 지휘 라인업은 황금라인업으로 수균 이순신,이억기 육군 권율 임진왜란을 상징하는 명장들이 전라도 수군-육군을 모두 이끌었고 행주대첩,한산도 해전 같은 굵직한 전공들을 연달아 세우며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데 성공했다.
명나라군의 참전으로 히데요시의 목표가 꼬이기 시작하는데 일본의 조선침공 명분이 바로 명나라 정복이었기 때문에 명나라는 제후국인 조선에서 전쟁을 끝내기 위해 무려 11만에 달하는 대군을 조선에 파병 조선은 천군만마를 얻는데 성공했다.
11만에 달하는 명나라군이 지상군 역할을 해주면서 조선은 17만에 달했던 지상군 규모를 3만으로 줄였고 조선수군 역시 명나라군이 지상전에서 탱킹을 해주자 마음놓고 일본군을 때리며 재해권을 장악 일본의 보급로가 모두 차단당하며 전쟁에서 고전하기 시작한다.
명나라군 조직 중에 제일 잘싸운 군대는 척계광의 절강병이라고 불리는 남병들로 이들은 오직 전투만 하고 약탈은 벌이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조정은 명나라 조정에 북병들 말고 남병들을 조선에 파병해달라는 요청을 했고 이들의 병법인 절강병법을 도입했다.
무엇보다 조선에서 이 인물이 등장하면서 히데요시의 조선,명나라 정복이 죄절되는데 바로 우리의 영웅 빛 그자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등장으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수군이 일본군을 박살내기 시작하면서 전황이 뒤집히기 시작한다.
수군이 조선수군에게 박살나면서 보급로가 끊기고 조선수군이 연전연승 한다는 소식에 육군,의병들 역시 사기가 진작되어 적극적으로 일본군을 공격했기 때문 결정적으로 한산도 해전에서 충무공이 일본수군을 초전박살 내면서 사실상 히데요시의 대륙진출 야망에 사형선고를 내려주셨다.
히데요시는 얼마나 화가 났는지 해전 금지령을 내렸고 칠천량 해전을 제외한 모든 전투들에서 일본수군은 조선수군에게 박살 나는 것이 일상이었고 명량에서 고작 13척에 불과한 조선수군에게 또 박살 나면서 사실상 해전을 포기하고 왜성을 쌓고 농성을 하기 시작했다.
공적들로 인해 이순신 장군의 명성은 명나라에도 알려지기 시작했고 조선백성,명나라 모두 흠모하는 인물이 되었으나 알다시피 이런 명성을 질투한 선조의 견제 역시 받아내면서 일본군을 박살내는 믿기 힘든 업적들을 계속 세우시며 조선의 수명을 무려 300년이나 늘리셨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병사하며 7년 전쟁이 끝났는데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으로 인해 자기의 세력을 모두 잃은 반면 전쟁에 참전하지 않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세력을 온존히 유지 종국에는 세키하가라 전투를 통해 일본의 권력을 틀어잡는데 성공한다.
히데요시의 외아들 히데요리는 죽음을 맞이했고 히데요리가 후사없이 사망하면서 히데요시 가문의 대는 끊겼는데 일본의 학자들은 대체 왜 히데요시가 아무런 이득도 없는 조선,명나라 정복에 대한 이유를 모르는데 그래서 나온 애기가 바로 히데요시 노망설이다.
전후 이에야스는 조선,명나라와의 국교회복을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고 자신은 전쟁터에 단 1명의 군사들도 보내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끝내 조선,명나라와의 국교를 회복하는데 성공 이에 대한 답례로 조선인 포로 일부를 조선에 송환시켜주었다.
ㄴ역알못 짱개야 ㅋ 그리고 결과적으로 명이 조선을 도운건 맞지만 처음 조선이 원정을 요청했을때는 명은 조선이 왜와 합심해서 처들어온게 아닌지 경계와 의심을 가졌다 결국 명의 조선 원정 파병도 전쟁터를 조선 내지로 국한시켜 명에 직접적 피해가 가지 않기 위한 명의 국익 때문이었음
중국이 한국을도운게 ㄹㅇ 제조지은이라불린 이유가있구나,.평생 중국에 감사하며살아야지
ㄴ역알못 짱개야 ㅋ 이때문에 명의 파병이 어느 정도 왜에 대한 전쟁 억지력을 준 면도 있지만 명은 단지 조선 내에 전란을 국한 시키는 소극적 태도와 여러 조선내 작태로(주둔지 백성을 괴롭히거나 왜에 뇌물을 처박아 먹으며 시늉만 내는 식등) 조선은 적극적 전쟁 수행을 못한채 장기간 늪에 빠져 농지 등 제대로 관리를 못하니 상당한 피해 역시 누적됨
특히나 짱개가 초기 왜 주력을 너무 쉽게 후방으로 퇴각 시키면서 전쟁이 상당히 장기전에 지지부진해진 측면은 더욱 그러함 한마디로 조선이 왜에 넘어가 발판으로 다시 수군을 동원해 다이렉트로 천진 등 상륙했다면 짱개 내지는 이미 있때 난징환장급 대파티각
@ㅇㅇ 저 병신 국뽕이랑 얘기하지마ㅋㅋㅋ 논리라는게없음ㅋㅋ
ㅋㅋ 이젠 역사글도 짱깨새끼가 처갈기고 있노 나라망함 - dc App
도요토미가 일시적으로 통일은 했는데 그 군사력을 그냥 냅두면 조만간 열도에서 개지랄날테니 소모도 할겸 조선반도로 들어간거
팩트)아니다
군사력을 소모할거면 다른세력껄 소모해야지 왜 지 군사력을소모함?ㅋㅋ 걍정신병걸려서임
명사(明史) 권 322 열전 제210 외국 3 수길이 사망하자 조선도 환란이 평온해졌으나 군대의 손상 등 피해가 많았으며 명나라가 끝날 때까지 왜와 통교를 금한 내용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수길이 사망하자 여러 왜구는 돛을 올려 [바다를 통해] 돌아가고, 조선의 환란 역시 평온해졌다. 그러나 관백 (수길) 이 동국 (東國, 조선) 을 침략하면서부터 전후 7년 동안 수십 만의 군대가 손상되고 수백 만 량의 군향 (軍餉) 이 소모되어, 중국 조정과 조선은 최후까지 승산이 없었다. 관백이 사망하여 전쟁의 재앙이 비로소 그칠 수 있었고, 여러 왜구 역시 모두 퇴각하여 열도의 소굴을 지키게 되어 동남 [연안] 지역에 조금씩 편안하게 잠잘 수 있는 날이 찾아왔다. 수길 [의 가문] 은 모두 2대 만에 망하였다.
중국 조정과 조선은 최후까지 승산이 없었다. 중국 조정과 조선은 최후까지 승산이 없었다. 관백이 사망하여 전쟁의 재앙이 비로소 그칠 수 있었고, 관백이 사망하여 전쟁의 재앙이 비로소 그칠 수 있었고,
@ㅇㅇ(211.234) 아니, 뭐 2차 세계 대전도 히틀러가 죽으니까 종전이 된건 맞는대.. 이미 왜군은 작살이 난 상태여서 더 이상 전쟁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는대..
@ㅇㅇ(211.234) 1차 세계 대전도, 독일군이 밀려서 폐망을 한것이 아니라, 독일제국내에 혁명이 나서 무너져 내린것 이기는 한대.. 그렇다고 해서 히틀러 마냥 유대인들의 반란으로 1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망을 했다고 믿는거냐?
@ㅇㅇ(38.246) 임진왜란에 대해서 아는 게 없는 것 같은데, 조명연합군은 전투에서 단 한번도 왜성을 함락시킨 적이 없고, 히데요시 뒤지고 나서 '사로병진책'이라고 해서 조명연합군이 대공세를 전개했는데 전부 실패했다.
@ㅇㅇ(38.246) 선조실록105권, 선조 31년 10월 12일 갑자 7번째기사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 삼로의 군사가 패전하다 이때 동로(東路)의 중국 군사는 2만 4천 명이고 우리 군사는 5천 5백 14명이며, 중로(中路)의 중국 군사는 2만 6천 8백 명이고 우리 군사는 2천 2백 15명이며, 서로(西路)의 중국 군사는 2만 1천 9백명이고 우리 군사는 5천 9백 28명이며, 수로(水路)의 중국 군사는 1만 9천 4백명이고 우리 군사는 7천 3백 28명이었으니, 모두 합하면 10여만 명이었다. 군량과 무기도 이에 비등했는데, 삼로(三路)의 군대가 흔적도 없이 무너지니, 인심이 흉흉하여 보따리를 싸 가지고 있었다.
@ㅇㅇ(38.246) 그리고 히데요시는 1599년에 제3차 대규모 파병을 준비하고 있었음.
@ㅇㅇ(38.246) 도요토미는 조선 남해안을 `북아일랜드‘처럼 만들려했다 입력 2019.08.19. 오후 9:00 수정 2020.12.27. 오후 6:11 한겨레 노형석 기자
@ㅇㅇ(38.246) 정유재란 최후 결전터 순천왜성 400여년 전 조선 재침한 왜군들 들머리 해자·성벽 견고하게 쌓아 영구주둔 통치 노렸던 기반 시설 유물 발굴 작업없이 부실 복원
@ㅇㅇ(38.246) 한반도에도 ‘북아일랜드’ 같은 땅이 생길 뻔했다고 한다. 귀가 쫑긋해졌다. 지난달 중순, 답사하러 간 전남 순천시 해룡면 순천왜성에서 박천수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는 섬찟한 가정을 들려주었다. “16세기 일본 지배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후계자만 확실히 정하고 죽었어도 왜군은 물러나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가 선 이 땅은 지금까지 일본 영토로 남아 있을지도 몰라요. 지금의 영국령 북아일랜드 같은 일본 땅이 한반도에 수백년 건재했다고 생각해보세요. 오싹하지 않나요?”
@ㅇㅇ(38.246) 빈말이 아니다. 순천왜성 유적들의 면면과 왜성을 둘러싼 400여년 전 전란의 역사를 면밀히 들여다본 전문가들이라면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이다.
@ㅇㅇ(38.246) 1592~1593년의 임진왜란에 이어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재침한 왜군은 남해안의 전라·경상도 해안 일대 수십 군데에 견고한 왜성을 쌓았다. 이들은 부산포를 중심으로 왜성들 사이에 탄탄한 물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주력했다. 왜성끼리는 물론이고 일본 본토와도 군량과 무기를 보내는 보급 순환 시스템을 만들었다. 지역 통치망도 구축해 주민들한테 세금을 거두고 부역시키는 등 직접지배 정책을 폈다.
@ㅇㅇ(38.246) 히데요시는 한반도 남부 왜성에 6만여명의 주둔군을 당번처럼 본토 병력과 교대시키면서 대공세를 준비하다가, 1598년 8월 갑작스럽게 죽었다. 곧이어 측근 중신들이 전면 철수 결정을 내린다. 어린 아들 히데요리가 집권했으나 영주들의 권력투쟁으로 후계구도가 불투명해지자 전쟁을 계속 치를 상황이 못 되었던 것이다. 왜군을 강토에서 단독으로 몰아낼 힘이 딸렸던 조선으로서는 불행 중 다행이었다.
@ㅇㅇ(38.246) 선조실록 102권, 선조 31년 7월 14일 정유 1번째 기사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 경기도 관찰사 정경세가 강화를 청하는 왜인의 오만한 서계를 아뢰다 경상도 관찰사 정경세(鄭經世)가 아뢰기를, "이달 5일에 울산 만리성(萬里珹) 밖에 강화를 청하는 왜인이 서계를 가지고 왔는데, 중국 사람이 평소부터 절친했던 사이처럼 맞이하여 경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 서계의 내용이 지극히 패만(悖慢)함으로 베껴서 올립니다."
@ㅇㅇ(38.246) 하였는데, 그 서계는 다음과 같다. "멀리 있어 만나지 못하고 있는데 안부가 어떠한가? 내가 지금 서신을 보내 오 노야(吳老爺)를 【중국 장수 유격(遊擊) 오유충(吳惟忠)을 가리킨다. 】 불러서 함께 3국의 화평에 대한 일을 의논하고 싶은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내년에 대군을 발동하여 조선을 정벌할 계획인 바, 올해는 잠시 휴식하였다가 내년에는 기필코 정벌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조선과 요동의 인민들은 모두 죽게 될텐데 나는 천성이 남을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 이를 가엾게 여기는 뜻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오 노야를 직접 불러 의논하여 강화를 도모하려는 것이다. 그대가 이러한 뜻을 국왕에게 고하여 오 노야로 하여금 오게 하면 좋겠다.
@ㅇㅇ(38.246) 이만 줄인다. 고 총병(高總兵) 【고언백(高彦伯)을 가리킨다. 】 창하(窓下)에 올린다. 평청정(平淸正)"
@ㅇㅇ(211.234) 아니.. 진주대첩, 행주대첩, 한산도대첩 모두다 도요토미 히대요시가 뒤지기 이전에 발생한 전투인대. 정신이 오락가락하내. 니 애비 애미가 핵폭탄 맞았었냐?
@ㅇㅇ(38.246) 역시 넌 아는 게 없구나 ㅋㅋㅋㅋㅋㅋ 진주대첩 · 한산도대첩 : 1592년 행주대첩 : 1593년 사로병진책 : 1598년.
@ㅇㅇ(211.234) 그렇니까, 도요토미 히대요시가 언제 뒤졌는지 계산이 힘들구나? 핵폭탄 맞았으면 그만 좀 한글 쓰고 인간과 어울릴려고 노력은 그만해라 병신아.
@ㅇㅇ(38.246) 니가 니 입으로 왜군은 작살난 상태여서 전쟁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며 ㅋㅋㅋㅋㅋㅋ 근데 조명연합군은 전투에서 왜성을 한번도 함락시키지 못했고, 도리어 사로병진책 대공세를 했다가 대패를 당했쥬? ㅋㅋㅋㅋㅋㅋㅋ 도대체 누가 작살이 난 거냐? ㅋㅋㅋㅋㅋㅋㅋ
@ㅇㅇ(38.246) 역시 임진왜란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었네 ㅋㅋㅋㅋㅋ 갑자기 핵폭탄이 왜 나오노? ㅋㅋㅋㅋㅋ 우리 반일국뽕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살아라 ㅋㅋㅋㅋㅋㅋㅋㅋ 거의 신앙이네 ㅋㅋㅋㅋㅋㅋ
@ㅇㅇ(211.234) 임진왜란 -1592년 시작, 발생하자 마자 진주왜 한산도에서 깨지고, 북관에서도 깨지고, 그 다음해 행주에서 개박살이 나고, 그냥 줄줄이 박살이 났는대 지금 뭔 미친 망상을 하는거냐? 방사능 원숭이 쇄키니까 덧쌤 뺄샘도 힘들어 하고 한글쓰기 히들어 하는 것 같구만. 불쌍타.
조선 왕만 잡으면 끝나는 게임이라 생각했는데.. 그 왕이 튀는건 ㄹㅇ 계산에 없던게 큰듯ㅋㅋㅋㅋㅋ - dc App
제조지은소리를괜히한게아님,.그냥 한국인은 평생 중국에 감사하며살아야지
이순신 제독 아니었으면 저때 짱개는 난징대학살각 짱개는 이순신 제독에 삼배구고두례 해라 ㅋ
결과적으로 명이 조선을 도운건 맞지만 처음 조선이 원정을 요청했을때는 명은 조선이 왜와 합심해서 처들어온게 아닌지 경계와 의심을 가졌다 결국 명의 조선 원정 파병도 전쟁터를 조선 내지로 국한시켜 명에 직접적 피해가 가지 않기 위한 명의 국익 때문이었음
이때문에 명의 파병이 어느 정도 왜에 대한 전쟁 억지력을 준 면도 있지만 명은 단지 조선 내에 전란을 국한 시키는 소극적 태도와 여러 조선내 작태로(주둔지 백성을 괴롭히거나 왜에 뇌물을 처박아 먹으며 시늉만 내는 식등) 조선은 적극적 전쟁 수행을 못한채 장기간 늪에 빠져 농지 등 제대로 관리를 못하니 상당한 피해가 역시 누적됨
특히나 짱개가 초기 북상해 고립되어 지친 왜 주력을 너무 쉽게 후방으로 퇴각 시키면서 전쟁이 상당히 장기전에 지지부진해진 측면은 더욱 그러함 한마디로 조선이 왜에 넘어가 발판으로 다시 수군을 동원해 다이렉트로 천진 등 상륙했다면 짱개 내지는 이미 있때 난징환장급 대파티각
ㄴ당시 짱개에게 위협이 된 곳은 두개 전선인데 특히나 1449년 토목보의 변이라고 몽골은 이후도 북원으로 존속하며 수시로 위협했고 짱개 명 군주가 사로 잡히기도 했음ㅋㅋㅋ 동북방 만주는 여전히 여진족이 날뛰고 있어 명은 조선을 우대해
양면 전선 나아가 조선까지 합세된 3면 전선의 부담을 줄이고 지금의 만주 동북 3성 일대는 조선이 여진에 대한 세력 지배력을 가지며 견제해주고 있었음 이런 조선의 견제가 깨어진게 임진왜란이었고 결국 반만년 노예 짱개는 다시 피지배 정복당함 ㅋ
결과적으로 명이 자국 국익차원에서 조선을 도와준것도 맞지만 명 내지로 피해만 가지 않으면 된다는 짱개식마인드가 결국 임진왜란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서 당시 조선이 견제하고 있던 왜와 여진족 중에서 여진족이 급격히 커져버리는 우를 범하게 되면서 짱개 명은 결국 멸망
초기에 인구비교 어쩌구 하는게 별 의미가 없는게 몽골<-- 이거하나가 다 반박가능함
'조센징' 새끼들 이순신 딸딸이치는데 현실은 명나라가 보호해줘서. 살아남은거임 비으응신ㅋㅋㅋㅋ
임진왜란 터진 게 1592년(선조 25년) 4월 13일, 왜군이 부산포 상륙한 거 알제? 그때부터 '조센징'관군 개털리고 한양까지 20일 만에 뚫림ㅋㅋㅋㅋㅋㅋㅋ
'조센징'선조 이 새끼는 4월 30일에 한양에서 튀기 시작함. 평양으로 가고, 다시 의주로 가고, 결국 명나라에 도움 청하면서 버티긴 했지만, 진짜 속내는 완전 다른 거였음. 이 새끼 목적지는 의주가 아니라 요동, 즉 만주 땅이었음.
@똥쳐묵는 좆센징ㅋㅋ(203.25) 왜? 조선 다 포기하고 명나라 영토로 들어가서 “나 이제 명나라 백성 할게요~” 하면서 살겠다는 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바로 요동내부책(遼東內附策)이라고 불리는 개판 계획임.
@똥쳐묵는 좆센징ㅋㅋ(203.25) 내부(內附)라는 말 자체가 ‘외국인이 본국에 귀속되다’라는 뜻이잖아? 선조 본인이 조선 왕국 버리고 명나라 속민 되겠다는 거 ㅅㅂ 진짜 나라 팔아먹는 수준 아니냐? ㅋㅋㅋㅋㅋㅋㅋㅋ
@똥쳐묵는 좆센징ㅋㅋ(203.25) 선조실록에 이 좆같은 논의가 어떻게 나오는지 세세히 봐라. 선조 25년 6월 24일 임자 1번째 기사에 보면, 선조가 대신들 모아놓고 “요동으로 가는 일”을 논의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서 선조가 직접 “차라리 요동으로 들어가서 명나라 백성으로 살자” 이런 식으로 말함ㅋㅋㅋㅋㅋ 실록 기록 그대로: “요동으로 가는 일을 대신들과 논의하다.” 이게 그냥 가벼운 토론? ㄴㄴ 진지하게 추진하려던 거임ㅋㅋㅋㅋㅋㅋ
@똥쳐묵는 좆센징ㅋㅋ(203.25) 왜냐면 이미 평양에서 도망칠 때부터 이 생각 품고 있었음. 평양에서 왜군 추격당하니까 “ 요동으로 피신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선조가 그걸 받아들여서 추진한 거 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똥쳐묵는 좆센징ㅋㅋ(212.32) 선조가 의주에 도착한 후에도 이 계획 포기 안 함.명나라 쪽에 이 계획 전달하려고 논의함.
@똥쳐묵는 좆센징ㅋㅋ(212.32) '조센징' 선조가 “요동으로 내부하자”는 서신을 명나라에 보내려 했음. 이 때 유성룡이 “이건 안 돼요, 명나라가 우리를 버릴 수 있어요” 하면서 막음ㅋㅋㅋㅋ
@똥쳐묵는 좆센징ㅋㅋ(203.25) 하지만 '씹센징'선조 이 새끼는 자기 목숨만 챙기려고 '조센징'백성들 다 버릴 태세였음.ㅋㅋㅋㅋㅋㅋ
@똥쳐묵는 좆센징ㅋㅋ(212.32) 백성들? “니들 왜군한테 죽든 말든 나 알 바 아님, 나 요동 가서 편히 살게” 이런 마인드ㅋㅋㅋㅋ ㅅㅂ 국뽕충들아 이게 너네가 미화하는 ‘조선의 왕’이냐? 그냥 비겁한 도망꾼 새끼지 ㅋㅋㅋ
@똥쳐묵는 좆센징ㅋㅋ(212.32) 어전회의에서 이항복이라는 신하가 요동 내부책 지지하는 발언 하니까, 유성룡이 회의 끝나고 따로 불러서 “야 이 개경솔한 새끼야,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하냐?” 하면서 나무랐음.
@똥쳐묵는 좆센징ㅋㅋ(212.32) 이게 선조수정실록에 기록돼 있음. 유성룡이 “어떻게 경솔히 나라를 버리자는 말을 하냐?” 이런 식으로 책망함. 이항복은 서인 쪽이었고, 유성룡은 동인인데, 당파 싸움도 섞여 있지만 어쨌든 선조의 계획이 얼마나 미친 짓이었는지 알 수 있음.ㅋㅋㅋㅋㅋ
@똥쳐묵는 좆센징ㅋㅋ(212.32) 만약 이 계획 성공했으면 조선은 명나라 속국이 아니라 그냥 소멸, '조센징' 백성들은 왜군한테 학살당하거나 노예 되거나 ㅋㅋ 선조는 요동에서 명나라 귀족 흉내 내며 살았을 텐데? 진짜 배신의 극치임ㅋㅋㅋㅋㅋㅋㅋㅋ
@똥쳐묵는 좆센징ㅋㅋ(212.32) '조센징'선조가 왜 이런 미친 생각 했냐? 임진왜란 초반에 관군이 너무 빨리 붕괴됐기 때문임. 신립이 탄금대에서 배수진 쳤다가 1시간 만에 전멸, 이일도 패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똥쳐묵는 좆센징ㅋㅋ(203.25) 왜군이 한양 코앞까지 왔으니까 선조 패닉 상태. 한양에서 도망칠 때 백성들이 궁궐 불태운 것도 이 병신 '조센징'새끼 탓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똥쳐묵는 좆센징ㅋㅋ(203.25) 백성들 입장에서 “왕이 우리 버리고 튀는데 왜 우리가 나라 지켜?” 이러면서 분노 폭발. 그런데 '조센징'선조는 그걸 더 키워서 아예 나라 포기하려 함ㅋㅋㅋㅋㅋㅋ
@똥쳐묵는 좆센징ㅋㅋ(212.32) 실록에 보면 선조가 평산(지금의 평안북도 쪽)까지 도망간 후 요동 내부 의사를 내비침.
@똥쳐묵는 좆센징ㅋㅋ(212.32) 호조판서 홍여순 같은 신하들도 맞고 쫓기고, 백성들이 칼 들고 항의함. ㅋㅋㅋㅋㅋㅋ 이 와중에 선조는 “요동 가자” ㅋㅋㅋ 진짜 리더십 제로 인 '조센징'새끼. ㅋㅋㅋ
@똥쳐묵는 좆센징ㅋㅋ(212.32) .'씹센징' 국뽕새끼들 선조가 요동 가려던 건 전략적 후퇴였어!” 이런 개소리 할 텐데, ㄴㄴ 실록 보면 명백히 ‘내부’ 즉 귀속해서 명나라 백성 되겠다는 거임.
@똥쳐묵는 좆센징ㅋㅋ(212.32) 그냥 피신이 아니라 완전 귀화 수준. 게다가 세자(광해군)한테 선위(왕위 물려주기) 하려던 것도 여러 번 있었음.ㅋㅋㅋㅋㅋ 선조실록에 선위 소동 기록 존나 많음.
@똥쳐묵는 좆센징ㅋㅋ(212.32) 윤두수 같은 신하들이 “선위 하세요” 하니까 세 번이나 아뢰고, 양사(사헌부·사간원)에서도 압박. 하지만 선조는 진짜 선위할 생각 없고, 그냥 책임 떠넘기려던 거 ㅋㅋ '조센징' 이 새끼 임진왜란 7년 내내 선위 운운하면서 신하들 갈아넣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똥쳐묵는 좆센징ㅋㅋ(203.25) 결론적으로 요동내부책은 선조의 비겁함과 무능함의 정점임. 이 계획 때문에 신하들 분열되고, '조센징'백성들 신뢰 잃고, 결국 명나라 군대가 들어와서 겨우 '조센징' 나라 지킴.ㅋㅋㅋㅋ 국뽕충들아 “선조가 나라를 지켰다”는 미화 그만하고 공주좀해라 ㅋㅋㅋㅋ
@똥쳐묵는 좆센징ㅋㅋ(212.32) 국뽕에 차 국사 공부를 열심히 하다보니 결국 빨간약을 먹어버린..
조센징들의 역사를 보자면 삼국 이전은 잘 몰라서 삼국부터 써본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고구려, 백제 - 당나라에 멸망ㅋㅋㅋㅋㅋㅋ 고려 - 원나라 항문빨이ㅋㅋㅋㅋㅋㅋㅋㅋ 조선 - 명나라, 청나라 항문빨이ㅋㅋㅋㅋㅋ
조선 이후 - 일본 식민지ㅋㅋㅋㅋㅋㅋ병신 1945년 독립 후 1948년까지 미군정 신탁통치 1950년 센적센 내전ㄷㄷ 1950년대 이승만 시대ㄷㄷㄷㄷ 1960년대 ~ 1970년대
@똥쳐묵는 좆센징ㅋㅋ(203.25) 하하호호 박정희 엔터테인먼트~~ 1980 - 신군부 이후 1980년대 후기에나 들어서 민주화가 됨ㅋㅋㅋㅋㅋ
21세기까지 집단주의와 미개하고 열등함 악습, 문화들을 버리지 못하고 자국민들을 징집하면서 노예로 삼는 것을 포장하는 것만 봐도 남조선은 선진국, 자유민주주의 흉내를 낼 자격이 없는 전체주의 국가-> 개센징국ㅋㅋ ‘
@똥쳐묵는 좆센징ㅋㅋ(203.25) 미개한 조센징’들이 고대 - 중세 - 근대 - 현대까지 다른 국가나 민족을 복속시켜 식민지로 만들거나 멸망시킨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똥쳐묵는 좆센징ㅋㅋ(203.25) 수치의 역사만 반복한 이유는 바로 수뇌부들이 무능하기 때문이고, 외세에는 조아리지만 자국민들은 노예로 삼는 강약약강 기질을 가졌기 때문임ㅋㅋㅋㅋㅋ
@똥쳐묵는 좆센징ㅋㅋ(203.25) ’조센징‘ 기득권자들은 항상 하층민들이나 일반 ‘ 조센징’들을 역사적으로 노예로 삼았음에도, 노예 ‘조센징’들의 이렇다 할 성과가 있는 혁명 한 번 일어난 적이 없다 ㅋㅋㅋㅋㅋ
@똥쳐묵는 좆센징ㅋㅋ(203.25) 그만큼 ‘조센징’ 이라는 민족 자체가 노예에 특화된 것인데 그럼에도 민족 자체가 쓸데없이 생명력만 질겨서 멸종을 안 하고 살아남은 것은 조금 신기하기도 하다 ㅋㅋㅋㅋ
@똥쳐묵는 좆센징ㅋㅋ(162.128) 지구상에서 일본과 중국을 가장 무시하는 민족은 ‘조센징’ 들이 유일하지ㅋㅋ일본, 짱깨강대국 두 사이에 끼니까 지들도 동급인 줄 안다ㅋㅋㅋㅋㅋㅋ병신인가
@똥쳐묵는 좆센징ㅋㅋ(162.128) 미국, 일본 없었으면 진작 망했을 나라 주제에 갑자기 수십년간 성장을 시켜주니까 지들이 잘나서 공짜로 북조선과의 체제경쟁에서 이긴 줄 안다ㅋㅋㅋㅋ진짜 병신들인가
5000년 중국 속국 조센징들이 그럼그렇지 뮈ㅋㅋㅋㅋ 이순신 빠는새끼들은 진짜 병신이냐??
이딴글이 실베로 올라오는거 보니 진짜 디시수준 알만하네 ㅋㅋ 당시 평화에 찌들어 중앙군조차 제대로 편성하지 못해서 전쟁초기에는 꼴랑 2~3천 동원해서 도원수에게 내맡길 정도로 군제가 개판이난 나라가 조선이었는데 통일과정에서 당시 전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십수만단위의 직업군인을 양성하고 장기간의 침략전쟁에 동원가능한 국력을 갖춘게 일본이었는데 이런말 하면 뭐 또 일뽕이 어쩌고 매국노가 어쩌고 이딴말이나 씨부리겠지 팩트는 우리나라는 선조가 런안치고 만력제가 정신이 안나가서 조선 안도와줬으면 무난하게 일본한테 먹혔다는거임. 명이 도와주고 나서도 일본이 경상도에 왜성쌓고 존버하는거 밀지도 못했던게 현실인데 뭐? ㅋㅋㅋㅋㅋ 진짜 국뽕도 병이다 병이야.
독도는 우리땅이다
결국 명나라한테 구걸해서 목숨 부지한거잖아ㅋㅋㅋㅋㅋ 좆센징들아ㅋㅋㅋㅋ
똥센징
기반 다털리고 지는 노망으로 뒤지고 가문은 멸문당했는데 이게 진게아니면 뭐임?
1번부터 틀렸잖아. 그럼 청일전쟁은?
시작부터 한양으로 쳐 달리지말고 경상도 전라도부터 천천히 후방이랑 곡창지대 확보해가면서 기어쳐올라갔으면 역사가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하긴함
USA 캘리포니아 대학.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discover誌“1998년 6월호「일본인의 뿌리」 ”고대 한국인의 선조가 일본의 원주민인 조몬인.아이누족을 정복하므로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탄생시켰다.”
ㄴ18세기 고증학자 토우테이칸은, 고대논문 「일본결척」을 인용하여 “응신왕 시대에 백제가 봉녀(縫女) 2명을 보내주어 비로소 임금과 신하들이 한복을 입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 서민들은 옷을 입지 않은 벌거숭이 모양이었다”고 지적했다. 여왕 등극 때에는 참여한 만조백관 모두가 백제옷을 입었다고 전해진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조선)황제 폐하(皇帝陛下)의 수(壽)가 남산(南山)처럼 높고, 덕(德)은 동해(東海)에 젖으시어... 성종 28권, 4년(1473 계사 / 명 성화(成化) 9년) 3월 13일(계묘) 3번째기사 일본국 경극전 경조윤 좌좌목씨 등이 사람을 보내 와서 토의를 바치다
정종실록 1권, 정종 1년 6월 1일 경자 6번째기사 1399년 일본국 사신들에게 군기감으로 하여금 불꽃놀이를 베풀게 하여 구경시키다 일본국(日本國) 사신이 예궐(詣闕)하니 주식(酒食)을 하사하고, 날이 이미 저물게 되자, 군기감(軍器監)으로 하여금 불꽃 놀이[火戲]를 베풀게 하여 구경시켰다. 왜사(倭使)가 놀라서 말하였다.
그저 조센징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며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로마서10:9-10
첫짤 레고밟았노
개소리도 씨발 청나라는 그럼 명보다 인구가 많아서 명나라 정복했냐?
여자 처녀막+몸무게+나이 = 남자 키
중고 쿵쾅이 아줌마 = 난쟁이
명나라의 참전+히데요시의 급사로 인한 일본군의 철수로 조선정벌이 실패한거지 딱히 조선군이 잘싸워서 실패한게 아니란다. 그라그 도요토미 정권교체는 임진왜란과는 하등 관계없는데 왜 자꾸 엮지?
그런데 인구도 적은 청나라한테 둘 다 패하고 정복 당했잖아.
웃기게도 선조가 런 빨리 친게 도움된 케이스임. 전쟁 초 별 방비도 없다가 조선이 두달간 육상 털렸는데 보급 챙기고 게릴 라 다니면서 두달 이후부턴 육상도 연승만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