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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한참 전인 1936년부터 50구경보다 강력한 기관포를 찾고 있었고, 히스파노를 가져다가 1938년에 테스트를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온 걸 확인해서 M1로 명명하여 쓰기로 함


이 와중에 미국이 격발불량을 막겠답시고 임의로 약실 길이를 원본보다 4.06mm 늘린 설계가 오히려 격발불량을 초래한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약실 길이를 0.8mm 줄이는 미봉책을 택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음. 그리고 이 신뢰성 문제는 1943년부터 헬다이버와 일부 콜세어(F4U-1C)들에 AN/M2를 장착해 운용했던 미 해군을 집요하게 괴롭히게 됨


뭔가 개량을 해보려고 해도 이미 생산라인이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던 상황이라 사소한 개량을 위한 설비 변경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악으로 깡으로 견뎌낼 수밖에 없었음. 이 와중에 유격 문제를 잡기 위해 탄약에 윤활유를 떡칠하는 방안도 제시되었지만 당연히 이 개씹썅구리스내나는 제안은 반려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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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새 기관포가 필요했던 해군은 1944년 7월에 영국제 히스파노 Mk V를 참조해서 AN/M2를 개량한 T31을 AN/M3로 제식화했지만 끝까지 미스파노의 신뢰성 문제를 완전히 잡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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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미 육군은 M1을 나름대로 손대면서 15mm 기총을 만들다가 독일제 MG151을 긴빠이하는 데 성공했고, 1942년 9월부터 이걸 역설계해서 15mm T17 기관총을 개발함


하지만 존 브라우닝 사후 자동화기 설계능력이 썩 좋지만은 않아서 미스파노를 어떻게든 쓸만하게 만드는 것조차도 버거워했던 미국이 MG151을 제대로 베끼는 게 쉬웠을 리가 없었고, 1943년 5월 24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된 테스트에서 T17E1로 70발을 쏜 후에 폭발이 일어나 주요 부품들을 싸그리 해먹는 사고가 터짐


자폭


이후 T17E2를 거쳐서 구조를 보강하는 등 수정을 거치고 MG151에 들어간 걸 모방한 전기격발기를 단 T17E3이 나왔고 나중에는 주요 부품들이 5천발 쏠 동안 파손되지 않게 만드는 수준에는 도달하면서 그런대로 쓸만한 물건을 만들어내긴 함


하지만 최후기형 T17E5까지 가서도 원본보다 15kg가 더 나갈 정도로 무거웠고, 무엇보다 이 때는 이미 전쟁이 끝난 뒤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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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미스파노로 돌아와서, T31과 동시에 개발되던 파생형인 T31E1과 T31E2는 각각 M23과 M24로 명명되었음. 둘의 차이점은 각각 기계식 / 전기격발식이라는 거였는데 1947년 M24가 미 공군에 채택되고 M23은 버려짐


한편 해군은 1945년 4월에 자살공격기들을 더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는 발사속도가 높은 기관포의 필요성을 느껴서 1944년 11월부터 연구되고 있던 T34 기관포를 가져다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몇 달 후 일본이 항복하는 바람에 흐지부지되었지만 나중에 구조적인 면에서 T34에 큰 영향을 받은 Mk.12 기관포가 개발되어 크루세이더와 스카이호크에 탑재되었음. 물론 어느 쪽도 신뢰성 문제를 100% 잡지는 못함


이렇듯 미국은 피나는 노력을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큰 재미를 보진 못했고, 미국판 히스파노의 계보는 M24와 Mk.12를 마지막으로 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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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미국을 비롯한 몇몇 서방 국가들은 2차대전 말 독일이 Me 262에 장착하기 위해 개발했던 리볼버 기관포인 MG 213을 획득하고 동시에 그 개발자들도 포섭하면서 후대의 수많은 리볼버 기관포들을 낳게 됨


MG 213의 개발자로는 베르너 융그만, 안톤 폴리처, 프레드릭 린더가 있었는데 융그만은 1949년 30mm 버전인 MG-213C의 설계도를 영국으로 가져갔고, 영국은 그걸 토대로 ADEN 기관포를 개발함


폴리처는 1948년 프랑스로 가서 40~50명을 고용해 DEFA 기관포를 설계했고 린더는 1947년 오리콘 사에 들어가서 훗날 오리콘 KCA로 발전하는 302RK 리볼버 기관포를 개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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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MG213 개발을 총괄했던 오토 폰 로스니처는 1947년 미국으로 넘어가서 스프링필드 조병창에 들어감.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MG 213 2정을 넘겨받았고, 그 중 하나가 스프링필드 조병창에 보내져서 T74로 명명된 후 1946년부터 분석 및 역설계됨


스프링필드 조병창은 이를 토대로 하여 20mm 리볼버 기관포인 T110을 개발함. 이후 T110은 T160으로 발전했고 T160은 M39라는 정식 명칭으로 미 공군에 도입되어 F-86H, F-100, F-5 등의 전투기에 탑재되었음


M39를 기점으로 미국은 20mm 기관포 탄약 규격을 20×110mm에서 20×102mm로 바꿨고, 후술할 발칸도 이 탄약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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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 역시 휴즈 사에서 개발한 Mk.11 리볼버 기관포를 사용함


이 기관포의 최대 특징은 포신이 두 개라서 번갈아가며 쏜다는 건데, 그래서 전압에 따라 최대 발사속도가 분당 5,100발로 거의 발칸에 준하는 수준이었고 건포드에 넣었을 땐 발사속도를 약간 낮췄어도 분당 4,000발로 매우 높았음. 하지만 또또또 신뢰성 문제가 발목을 잡아서 극히 제한적으로만 쓰이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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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39는 꽤 쓸만한 기관포였지만 미군은 더 발사속도가 높은 기관포를 추구했고, 여기에서 빛을 발한게 개틀링이었음


현대적인 개틀링 기관포의 시초라고 하면 단연 발칸이지만 사실 크랭크 대신 전기모터로 구동되는 개틀링은 이미 1893년에 시연된 바 있음. 이 아이디어를 되살려보기로 한 게 바로 제너럴 일렉트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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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제너럴 일렉트릭은 15mm 개틀링인 T45, 또는 발칸 A형으로 분당 2,500발의 발사속도를 달성함


무게가 193 kg이라 아주 무거웠고 개틀링이면서 발사속도도 무지하게 느렸지만 설계를 개선하기 위한 데이터를 얻는 목적으로는 충분했고, 개틀링 방식이 분당 6,000발에 달하는 발사 속도와 충분한 부품 수명을 동시에 확보하면서도 고장률을 확연하게 낮출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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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에 나온 T171E1 또는 발칸 C형은 무게 165 kg에 분당 발사속도가 4,000발이었고 고장률은 9,000발당 1발 꼴에 부품 교체는 1만 2천 발마다 해주면 되는 높은 신뢰성을 달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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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71E2 또는 발칸 D형부터는 한층 더 개량되어 무게가 118 kg으로 더 가벼워짐. 부품 수도 576개에서 448개로 크게 줄었고 처음에 목표로 했던 분당 6,000발의 발사 속도를 달성하는 데 성공함으로서 양산형 발칸의 전신이 됨


중간에 약실 관련 문제가 생겨서 1956년에 설계를 살짝 수정한 T171E3이 나왔고 20만 발을 시험 사격한 끝에 문제를 해결했음을 입증함. 그렇게 1956년 12월 T171E3 개발은 사실상 완료되었고 마침내 1957년 12월에 M61이라는 정식 명칭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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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F-105에 탑재하기 위해 링크 없이 급탄하는 M61A1이 나왔고 이게 그 이후 대부분의 미군 전술기들에 들어가는 표준 기총으로 자리잡아 반세기 넘게 잘 쓰이고 있음

Behold, the Lamb of God who takes away the sin of the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