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다들 조선 후기가 식량문제로 고통 받았다는건 다들 잘 알텐데
왜 그런지, 뭐가 원인이었는지는 그냥 두루뭉실하게
탐관오리 때문이었음
그냥 조정이 나쁜놈들이었음
뭐 이런식인데
사실 또 틀린건 아닌데
단순히 이렇게 넘어가면 재미없으니
우리 좀더 왜 이런 꼬라지가 된건지 더 심도있게 파고 들어가봐요
그럼 이야기 속으로 휘비고 디비고 레츠고~
조선 후기 식량난을 그냥 쌀이 부족해서 굶었다고 하면 설명이 너무 단순합니다
물론 흉년 들면 생산량 자체가 줄어드는 건 맞습니다
근데 진짜 문제는 전국 어딘가에는 곡식이 있는데,
그 곡식이 필요한 지역과 필요한 사람한테 제때 못 가는 상황이 자주 터졌다는 거죠
쉽게 말하면 조선 후기 식량 문제는 흑흑 쌀이 없음 굶어가 아니라
창고, 유통, 행정, 가격, 빚 문제가 한꺼번에 꼬인
그러니까 식량 행정 시스템의 마비를 보여주는 케이스 였습니다
18세기 조선은 그래도 식량관련 행정 시스템이 어느 정도 제대로 굴러갔습니다
대표 장치가 환곡인데요
환곡은 쉽게 말해 관청이 운영하는 공공 쌀 대출입니다
봄이 되면 백성들이 전년도 수확한 곡식을 거의 다 먹고
새 곡식은 아직 안 나오는 춘궁기가 오는데,
이때 관청 창고에서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 추수 뒤에 갚게 하는 제도였습니다
원래 취지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백성 굶지 말라고 만든 구휼 장치였고,
동시에 관청이 비상시에 풀 수 있는 비축미 창고 역할도 했음습니다
여기에 장시, 포구, 상인, 세곡 운송 같은 곡물 유통망도 붙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18세기에는 관청 창고 + 지역 시장 + 상인 유통이 같이 잘 맞물려 돌아가면서
어느 정도 식량 충격을 버텼던거죠
비유하면 대충 18세기 조선은 집에 라면 박스도 쌓아두고,
동네 마트도 돌아가고,
택배도 어느 정도 오는 상태였습니다
완벽한 현대식 물류는 아니어도,
굶어죽기 전에 버틸 장치가 몇 개 있었던거죠
어느 지역이 부족하면 창고에서 풀고,
창고가 부족하면 다른 지역에서 사오고,
흉년이 심하면 국가가 진휼을 시도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을 물류도 창고도 없는 원시 미개 우가우가 농업국처럼 보면 좀 상황이 틀립니다
사실 진짜 문제는 이 시스템이 19세기로 갈수록 점점 망가져가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로 터진 건 환곡의 변질입니다
원래 환곡은 배고프면 쌀 빌려줄게였는데,
후기로 갈수록 쌀 빌렸지? 이자 내라 쪽으로 변합니다
환곡에는 모곡이라는 이자 비슷한 게 붙었는데,
이게 점점 지방 관청의 수입원이 되어버린거죠
백성을 살리기 위해 창고를 여는 게 아니라, 관청 운영비 뽑아내는 세금처럼 쓰이게 되었고
쌀 안빌리거나, 억지로 쌀을 떠넘겨서 모곡을 받아내는 행위들이 생겨났습니다
여기에 탐관오리들은 덤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장부미스매칭 입니다
이게 제일 중요한데요
환곡은 백성이 빌린 쌀을 가을에 갚아야 합니다
근데 흉년이 들면 백성이 당연히 못 갚죠?
여기서 관청은 선택해야 했습니다
1. 못 받을 쌀은 못 받는다고 인정하고 손실 처리할 것인가?
2. 일단 장부에는 받을 쌀로 계속 남겨둘 것인가?
후자로 가면 서류상으로는 멀쩡해 보입니다
예를 들어 백성에게 100석을 빌려줬는데 40석밖에 못 갚았다고 가정해보죠
나머지 60석을 탕감하지 않고 나중에 받을 예정으로 남겨두면 장부에는 아직 60석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 창고에는 그 쌀이 없습니다
이게 바로 종이에만 존재하는 쌀, 즉 장부쌀 입니다
이게 왜 치명적이냐면, 평소에는 안 들킵니다
문서에는 우리 고을 환곡 재고 있음 이렇게 적혀 있지만
흉년이 와서 진짜로 창고를 열어야 할 때가 오면? 창고에는 쌀이 없는거죠
장부에는 있는데 현실에는 없습니다
사람은 종이에 적힌 쌀을 끓여 먹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환곡 시스템이 겉보기에는 살아 있는데 실제 구휼 능력은 제로인 상태가 된거죠
이때 관청은 부족분을 메우려고 또 백성한테 더 걷거나,
이자곡을 더 압박하거나,
억지 징수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환곡은 백성 살리는 제도가 아니라
백성 등골 빼서 빈 창고 메꾸는 제도가 되는거죠
여기서 정퇴와 탕감도 중요한데요
정퇴는 갚는 날짜 미뤄줌 이고,
탕감은 못 갚는 빚 깎아줌입니다
이걸 무조건 많이 해줘야 한다는 뜻이 아니고
핵심은 장부와 현실을 맞춰야 한다는 거죠
못 받을 쌀을 계속 받을 쌀처럼 적어두면 관청 장부는 멀쩡하지만
현실은 창고가 텅텅 비어있는거죠
탕감은 손실을 인정하는 거고,
정퇴는 납부를 미루는 건데,
이걸 현실에 맞게 처리하지 못하면 미수금만 쌓이고 장부쌀만 늘어나게 됩니다
자 그럼 여기까지 왔으면 당연히
병신임? 쌀 걍 사면 그만 아님? 이럴텐데요
여기에 연쇄로 터지는게 방곡입니다
방곡은 쉽게 말해 곡물 반출 금지인데요
어떤 지역에 흉년이 들었는데 창고가 비었으면 원래는 다른 지역에서 쌀을 사와야 합니다
그런데 19세기로 갈수록 각 지역도 불안해지고
우리 쌀 밖으로 나가면 우리도 굶는 거 아님?
상인들이 쌀 빼가서 가격 장난치는 거 아님?
이런 불안 때문에 지방에서 곡식 반출을 막아버립니다
그러면 쌀 있는 지역은 못 팔고,
쌀 없는 지역은 못 사고,
상인은 괜히 막힐까 봐 거래를 꺼리고,
쌀부족 지역의 쌀값은 더 뜁니다
창고가 비었으면 유통이라도 살아야 하는데,
유통까지 막히는 거죠
이게 조선 후기 식량난의 핵심 구조입니다
1. 창고가 불안해지니까 지역들이 쌀을 잠금
2. 지역들이 쌀을 잠그니까 유통이 막힘
3. 유통이 막히니까 쌀부족 지역은 쌀값이 오르고 더 굶는 악순환이 생김
그러니까 전국 총생산량이 충분했냐 부족했냐만 사실 완벽한 설명은 아닌거죠
중요한 건 쌀이 어디에 있었고, 누가 살 수 있었고, 운송될 수 있느냐 없느냐, 관청이 풀 수 있었느냐 인거죠
시장에 쌀이 있어도 가격이 폭등하면 빈민은 못삽니다
지방 재정 문제도 컸는데요
사회가 발전하고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조선 후기 지방 관청은 돈이 점점 더 필요해졌습니다
그런데 세금 체계가 현대처럼 깔끔하지 않으니까 환곡 이자나 각종 부가 징수에 기대는 일이 커집니다
그러면 관청 입장에서는 환곡을 탕감하기가 싫어집니다
백성 입장에서는 님 그거 우리 못 갚겠음 인데,
관청 입장에서는 그거 깎아주면 우리 재정 구멍남 이자 받아야됨 상태가 되는 거죠
사실상 복지 제도가 지방 재정 빨대가 된 셈입니다
19세기 식량난을 전부 유통 탓으로 돌리면 그것도 틀리긴 합니다
흉년은 실제로 있었고, 가뭄,홍수,냉해 같은 자연재해가 오면 생산량 자체가 줄었습니다
다만 생산량이 줄었을 때 국가가 비축미를 풀고,
상인 유통이 움직이고,
지역 간 곡물 이동이 가능하고,
가난한 사람이 살 수 있게 가격을 완충하면 피해는 당연히 줄어듭니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는 이 완충 장치들이 삐걱거리면서 문제가 커진거죠
18세기에는 환곡 창고가 어느 정도 실제 재고를 갖고 있었고,
지역 간 곡물 교역도 움직였고,
국가와 지방이 아직 컨트롤할 힘을 어느 정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괜찮았습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창고와 시장이 서로 받쳐줬습니다
창고가 급한 불을 끄고,
시장이 지역 차이를 메우고,
환곡이 춘궁기를 넘기는 식으로 시스템이 돌아간거죠
그런데 19세기에는
환곡이 복지에서 세금처럼 변하고,
실제 창고 재고는 줄고,
장부쌀은 늘고,
지방 관청은 환곡 이자에 매달리고,
지역들은 불안해서 방곡을 걸고,
그렇기에 흉년 충격을 직격으로 먹었습니다
그러니까 조선 후기 식량난은 단순한 쌀 부족이 아니라
식량 행정 시스템의 붕괴였습니다
쌀이 있어도 필요한 곳으로 못 가고,
창고가 있어도 실제로 비어 있고,
시스템이 있어도 구제가 아니라 수탈로 작동하는 상황이 된거죠
관련 논문은
추천드리고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좆노잼글 읽어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애플코리아 그게 너한텐 굉장히 중요해 보이네, 그게 별거 아니면 왜 대답을 못함? wwwwww
@ㅇㅇ(180.182) 메이지 시대 이시카와현 세입(歳入)은 조선 후기 중앙정부 세입(100만 석)과 비교하면 규모가 비슷하거나 다소 큰 수준이었습니다 조선 따따따잇 wwwwwwwwwwwwwwwww
@ㅇㅇ(180.182) 우리 센징이가 물고 빠는 조선 일본 지방 수준에서 컷 wwwwwwwwww 메이지 시대 이시카와현 세입(歳入)은 조선 후기 중앙정부 세입(100만 석)과 비교하면 규모가 비슷하거나 다소 큰 수준이었습니다 조선 따따따잇 wwwwwwwwwwwwwwwww
@애플코리아 그러니까 카가번의 100만석은 세입이야 생산량이야? 대답해봐 원종아 wwwww
@ㅇㅇ(180.182) 우리 센징이가 물고 빠는 조선 일본 지방 수준에서 컷 wwwwwwwwww 메이지 시대 이시카와현 세입(歳入)은 조선 후기 중앙정부 세입(100만 석)과 비교하면 규모가 비슷하거나 다소 큰 수준이었습니다 조선 따따따잇 wwwwwwwwwwwwwwwww
@ㅇㅇ(180.182) 원준단 분노의 자국 무료변호 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
@애플코리아 이게 그렇게 어렵나? 왜 못하지? 혹시 본인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정신병이 와서 견딜수가 없는거임? wwww
@ㅇㅇ(180.182) 메이지 시대 이시카와현 세입(歳入)은 조선 후기 중앙정부 세입(100만 석)과 비교하면 규모가 비슷하거나 다소 큰 수준이었습니다 우리 센징이가 물고 빠는 조선 일본 지방 수준에서 컷 조선 따따따잇 wwwwwwwwwwwwwwwwwwwwwww 대답 했잖아 센징아 wwww
@ㅇㅇ(180.182) 조센징 = 정신병 wwwwww 팩트에 쳐맞고 정신 못차리쥬? ww
@ㅇㅇ(180.182) 우리 센징이가 물고 빠는 조선이 이시카와현(카가번) 하나에 세입 따잇당한데 ㅠㅠㅠㅠ 니가 원하던 세입타령조차 좆털린다는데? ㅠ
@애플코리아 그게 세입이 아니라 수확량이라고 원종아 wwwww
@ㅇㅇ(180.182) 조센징 < 일본 전체도 아니고 일개 지방인 이시카와현(카가번) 하나 수준에서 조선 전체 세입양 따이는데 왜 개조선 물고 빨면서 말대꾸함? ww 애미가 숫자 안가르쳐줌?
@애플코리아 歳入 뜻부터 알고와 조센징 새끼야 www
@ㅇㅇ(180.182) ai랑 기싸움하는 저지능 자폐 조센징 wwwwwwwwwwwwwwwwwwwwwwwwwww
@애플코리아 18세기 현재의 이시카와현 지역(가가, 노토 지방)은 에도 시대 가가번(加賀藩)의 핵심 영지였습니다. 당시 이 번의 공식 쌀 생산량(표고)은 약 102만 5천 석(石)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비옥한 토지와 적극적인 신전(新田) 개발 덕분에 실제 수확량(내고)은 130만 석 이상에 이르렀습니다.
@애플코리아 원종아 바바, 세입이 아니라 수확량이라고 wwwwwwww
@ㅇㅇ(180.182) 메이지 초기 이시카와현(구 가가번 지역)의 세입은 조선 후기 국가 세입보다 “명확하게 더 큰 편”이 맞다.
@ㅇㅇ(180.182) 우리 센징아 조선보다 많다는데 왜 니 맘대로 망상해 w
@애플코리아 그렇게 악다구니를 써봐야 수확량이 100만석이라고 기록 되잇는데 무슨 의미고....
@ㅇㅇ(180.182) gpt 그록 어디다 물어봐도 똑같은데 도태앰생원준단 새끼야 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w
@ㅇㅇ(180.182) 도태앰생원준단 새끼가 ai랑 기싸움하면서 뇌피셜 찍찎 싸지르는게 진짜 개쳐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애플코리아 원종아, 니 생각에 내가 가져온 저건 머일거 같노? wwwwwww
@ㅇㅇ(180.182) 니가 문해력 독해력 쳐박살난 원준단이라 해석을 못하는거임 ㅇㅇ
@애플코리아 대답 못하고 도망 다니면서 계속 수확량 100만석을 세입이라 우기노 wwwwwwwwww
@ㅇㅇ(180.182) 메이지 시대 이시카와현 세입은 조선 후기 중앙정부 세입(100만 석)보다 규모가 비슷하거나 다소 많았습니다.
@ㅇㅇ(180.182) 우리 센징이는 세입을 읽을 줄 모르나요? w
@애플코리아 카가번은 일본 내에서도 가장 부유했던 번으로 쌀 수확량이 유독 많아서 카가백만석이라 불리기도 했다
@ㅇㅇ(180.182) 우리 조센징씨는 애미가 세입이란 단어를 안 가르쳐준게 분명하군요 ww
@애플코리아 또 저능아 답게 단어 하나에 집착해서 물고 늘어지노, ㄹㅇ 지능 떨어지는 짓은 다 하네 wwwww
@ㅇㅇ(180.182) 우리 센징이 세입으로 줫털려서 반박은 못하겠고 공격은 하고싶고 ㅠ
@ㅇㅇ(180.182) 자아는 존나 비대하고 센뽕인데 아는건 없고 아는게 없으니 우기는거 말곤 할 줄 아는게 없네 ㅠ
@애플코리아 처음엔 카가번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가 갑자기 이시가와현으로 바꿔서 수확량에 대해 떠들어댄 이유는 아마 카가번과 이시가와현의 쌀 수확량이 다르기 때문이겠지, 이런식으로 교묘한 말 바꾸기로 진실과 거짓을 교묘히 섞어가며 사람들을 속이는게 너 같은 놈들 패턴이고, 그래서 니가 처음 이야기한 카가번의 100만석이 생산량인지 세입인지 확실히 해 두는게 중요한거다 원종아 wwwww
@애플코리아 자아는 비대한대 현실은 시궁창이라 일본에 자아의탁을 하고 정신 병자 처럼 지껄이고 다니는게 우리 원종이들 정체 아니었노 wwww
@ㅇㅇ(180.182) 다음생엔 좀 똑똑하게 태어났으면 좋겠다 ㅇㅇ 너 보고 있으면 좀 불쌍함 멍청한데 자존심 . 자아는 존나 썌서 아나부터 열까지 팩트로 쳐맞아도 아닌데 아닌데? 우기는 거 말곤 할 줄 아는게 없잖아..
@애플코리아 그래서 카가번100만석은 수확량이나 세입이냐? wwwwww
@애플코리아 지금 덜 떨어진 자폐아는 너 아니야? wwwww
@ㅇㅇ(180.182) 덜떨어진 자폐아 새끼야 메이지 시대 되면서 카가번이 이시카와 현이 된거야 제발 아는 거 없으면 아는 척 좀 하지 말렴 노비의 후손이라 아는척 하고싶은건 알겠어 하지만 그래봐야 너만 조롱당할 뿐이야
@ㅇㅇ(180.182) 좀 많이 안타까워서 그래.. 모든 AI가 이시카와 현이 조선보다 세입 많다는데 꾸득꾸득 아니라고 우기고 있잖아.. 너같은 애들은 왜 존재하는걸까 국가도 너같은 애들은 무가치하다고 필요 없다 생각할꺼같은데 하루빨리 사라져주는게 너가 국가에 대해 애국 할 수 있는 유일한 애국임ㅇㅇ;;
카가번은 봉건 시대 지역명이고, 이시가와현은 행정구역 재편으로 탄생한 지역임, 넌 애초 카가번이라 했으니 이시가와현이 아니라 카가번 기준으로 말 하는게 맞겠지 원종아? 말장난 그만하고 대답해보렴, 카가100만석은 생산량이냐 세입이냐? wwww
@ㅇㅇ(180.182) 왜 조센징은 조선 말 100만석 기준이면서 왜 일본만 카가번으로 해야하나요? ww 우리 센징이의 우기기는 정말 끝도 없답니다 나이는 50줄을 향해 가지만 머리는 6살에 멈춰있어요
@애플코리아 그야 니가 카가번이라고 했으니까 원종아 wwwww
@ㅇㅇ(180.182) 안타까운 센징이죠 정말 하긴 나이만 잔뜩 먹고 이룬건 없고 국뽕이 인생에 있어 유일한 동앗줄 같은거니 센뽕은 어느정도 이해는 갑니다만 열등한 주제에 감히 깝치진 맙시다 ㅎ
@애플코리아 그리고 카가번은 이시가와현으로 행정 구역이 개편되면서 훨신 커졌는데? 둘을 어케 동일시 하겠노?
@ㅇㅇ(180.182) 우리 센징이도 마음 깊은 곳에선 카가번이 조선보다 잘살았다 세입이 많았다 란걸 인지 한 단계까지 온거죠 그러니까 이렇게 생떄 쓰기 시작한거고 이정도만 해도 큰 발전이라 생각합니다
@애플코리아 모든 거짓과 말장난이 뽀록나서 더 할 말도 없으니 쓸데없는 소리나 지껄이고 있노 원종아 wwwww
@ㅇㅇ(180.182) 모든 팩트로 반박하고 AI마저 내 말을 인정하며 동조하는데 우리 조센징은 본인이 주장한 것 조차 근거를 못 들고오는 도태앰생원준단이란거죠
@ㅇㅇ(180.182) 우리 도태앰생 원준단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 뇌피셜이 끝이지만 전 조선시대 기록과 AI 에게 물어봐서 가져온거임 ㅇㅇ 걍 조선도 원종이 하고 ai도 원종이 시키죠 wwww 온 세상이 원종NIDA~
@애플코리아 이렇게 우리 원종이의 정신병은 더 깊어만 가는구나.... wwwwww
@애플코리아 왜 카가번100만석이 생산량인지 세입인지 대답을 못하누? 세입!! 생산량!! 대답을 해보라니까 wwwww
@애플코리아 결론은 조선이 자기 백성을 먹여 살릴 기본적인 행정 능력마저 상실한 병신같은나라였단거 아님?ㅋㅋ
@ㅇㅇ(180.182) 메이지 시대 이시카와현 세입(歳入)은 조선 후기 중앙정부 세입(100만 석)과 비교하면 규모가 비슷하거나 다소 큰 수준이었습니다 우리 센징이가 물고 빠는 조선 일본 지방 수준에서 컷 조선 따따따잇 wwwwwwwwwwwwwwwwwwwwwww 국뽕인데 문해력 독해력 개쳐박살난 ww
@ㅇㅇ(180.182) 메이지 초기 이시카와현(구 가가번 지역)의 세입은 조선 후기 국가 세입보다 “명확하게 더 큰 편”이 맞다.
@ㅇㅇ(180.182) 국뽕 개센징 울먹울먹 w
@애플코리아 그래봐야 하이닉스에 닛케이 올킬당하는 열등민족아님?
고려때는 지방을 향리가 대를 걸쳐서 다스려가지고 백성들 편의도 봐주는게 가능했는데 조선은 년단위로만 부임하고 자기 연고지는 절대 배정 안받으니까 백성들에게 아무런 책임감 없는 현감들은 백성 알빠노하고 수탈 작정하고 한거 같은데 맞니
목사vs신부나 마찬가진데 그것만으로 좋은제도다 아니다 평가하긴 어려움
@븜사람 그건 향리가 존나 착하다는 가정하에 가능한거지 보통 그렇게 돌아가지 않으니까 조선이 뺑뺑이 돌린거지 지금도 공무원 뺑뺑이 돌리자너
알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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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특히 18세기 말~19세기 들어서 농민들 배고파서 개죽음 당한 건 단순히 “쌀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조선이라는 병신같은 봉건체제가 완전히 썩어 문드러져서 유통이고 행정이고 다 맛이 간 상태에서 관리새끼들과 양반새끼들이 쌀을 자기들 배불리는 도구로 만든 게 진짜 핵심이었음.
@똥처먹던 후센징ㅋㅋ(203.25) '조센징' 국뽕들은 “조선은 세계 최강 농업국이었다”면서 환곡이고 창고고 다 완벽했다고 개소리 하잖아ㅋㅋ 이개 개소리인게
@똥처먹던 후센징ㅋㅋ(203.25) 환곡은 봄에 농민들한테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이자 조금 붙여서 돌려받는, 일종의 공적 구호+비축 시스템이었거든??
@똥처먹던 후센징ㅋㅋ(203.25) 근데 19세기 들어서 이게 완전히 “관리들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함. 지방 수령들이 창고에 쌀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고 장부엔 적어놓고, 실제로는 그 쌀을 즈그 '조센징' 들끼리 팔아먹거나 이자로 갈아타면서 이익을 챙김.
@똥처먹던 후센징ㅋㅋ(203.25) 그러니까 장부상으로는 “국가 비축량 세계 1위”인데 실제 창고 열어보면 텅텅 비어있는 기가 막힌 상황이 수두룩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시발
@똥처먹던 후센징ㅋㅋ(203.25) 장부살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 거임. '조센징' 농민들은 봄에 굶주려서 환곡 빌리러 가면 이미 이자가 미친듯이 붙어있고, 못 갚으면 땅 뺏기고 노비로 전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됐지.
@똥처먹던 후센징ㅋㅋ(212.32) 좆선후기가 얼마나 개병신 개판오분전이었는지 감이 안잡히제?ㅋㅋㅋㅋ 거기다 방곡령이라는 미친 정책까지 시행했음ㅋㅋㅋㅋ
@똥처먹던 후센징ㅋㅋ(212.32) 지역마다 곡물 반출 금지령 내려서, 한 지역에 쌀이 넘치면 다른 지역으로 못 보내고 썩히게 만들었음ㅋㅋㅋㅋ 가격이 폭등하면 관리인 '조센징' 새끼들이 더 이득 보니까 일부러 그렇게 막아놓은 거임
@똥처먹던 후센징ㅋㅋ(212.32) 그래서 경상도에 쌀이 썩어나가는데 전라도나 충청도는 기근으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비응신 같은 상황이 수시로 발생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똥처먹던 후센징ㅋㅋ(212.32) 이게 바로 조선 후기 식량문제의 본질임 생산량 자체가 부족했다기보다는, 쌀은 있는데 그걸 제대로 돌리지 못하는 썩은 행정과 탐관오리들의 이익추구가 진짜 원흉이었던 거지ㅋㅋ
@똥처먹던 후센징ㅋㅋ(203.25) 국뽕 조센징새끼들이 제일 긁히는이유가 이거임 좆조선은 인구 폭증에도 불구하고 농업기술이 발달해서 먹여살렸다”면서 자랑하는데, 그 농업기술이라는 게 철저히 수작업+인력에 의존한 후진 시스템이었음
@똥처먹던 후센징ㅋㅋ(212.32) 19세기 유럽은 이미 기계화와 화학비료로 생산성을 미친듯이 올리고 있었는데 조선은 여전히 소와 사람으로 논밭 갈고, 기후변화(소빙기 말기) 한 번 오면 바로 직격탄 맞는 구조였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병신
@똥처먹던 후센징ㅋㅋ(203.25) 게다가 양반+지주층이 토지를 독점하면서 소작농들은 소출의 절반 이상을 세금+소작료로 뜯겨나갔지... 세금도 실물세 중심이라 수확이 조금만 줄어도 바로 파탄 나는 구조였고ㅋㅋ
@똥처먹던 후센징ㅋㅋ(203.25) 결국 19세기 들어서 대기근이 터질 때마다 민란+봉기가 줄줄이 터졌음ㅋㅋㅋㅋ 1811년 홍경래의 난, 1862년 진주민란, 그리고 결정타인 1894년 동학농민운동까지 터진거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똥처먹던 후센징ㅋㅋ(203.25) 이 모든 게 “배고파서” 터진 거였음ㅋㅋㅋㅋㅋㅋㅋㅋ '조센징' 국뽕들은 “동학은 외세에 맞선 민족운동”이라고 미화하지만, 실제 농민들은 “관리새끼들 때문에 우리가 굶어죽는다”면서 창고 열고 쌀 퍼오고 관리들 때려죽이면서 시작된 거였다ㅋㅋㅋㅋㅋ
@똥처먹던 후센징ㅋㅋ(203.25) 그만큼 조선 후기 식량문제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조센징' 후진국 국가 시스템 전체가 썩어서 농민을 착취하고 방치한 구조적 문제였던 거임ㅋㅋㅋㅋㅋ
@똥처먹던 후센징ㅋㅋ(203.25) 결론은 조선 후기 식량문제는 그냥 기근이 아니라, 좆 조선이라는 나라가 근대화에 완전히 실패한 증거임 그걸 아직도 “U ri 조상님들 대단했다”면서 미화하는 새끼들 보면 ㄹㅇ 한심해서 웃음도 안나오고 걍 존나 애처롭다....ㄹㅇㄹㅇㅋㅋㅋㅋ
좆선왕조실록을 통해 들여다 본 찬란한 역사 다음은 ‘조선왕조실록’ 중 시대 역순으로 극히 일부만 추린 자료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흉년·기근)구제가 안되어 구덩이에 시체가 뒹굴고 있습니다[고종42(1905)-2-8] *항간에 굶어 죽고 얼어 죽는 사람이 많은 데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애처로운 이 궁핍함 역시 너무 참혹하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종41(1904)-1-30] *한성부 5서 안에서 얼어 죽은 시체를 거두어 묻는 돈이[고종34(1897)-1-14]
@ㅋㅋㅋㅋㅋㅋㅋ(203.25) *떠돌아다니며 얼어 죽거나 굶어죽음을 면치못하고 있다[고종31(1894)-10-13]ㅋㅋㅋㅋㅋㅋ *굶주린 백성들이 부황이 든 것은 어느 곳이나 같으니 참혹하고[고종21(1884)-11-9]ㅋㅋㅋㅋㅋ *(북방은)기근과 호표의 재변으로 10집에 9집은 비었습니다[고종17(1880)-12-28]ㅋㅋㅋㅋㅋㅋㅋ *해마다 흉년이 들어...굶어 죽은 시체가 곳곳에 있지만[고종13(1876)-8-9]ㅋㅋㅋㅋㅋㅋ *굶어 죽는 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고종2(1865)-6-10]
@ㅋㅋㅋㅋㅋㅋㅋ(212.32) *조센징 백성이 굶어 죽어 구렁을 메웠는데도...[철종5(1854)-1-25] *굶주려 죽는 경우가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으니[헌종3(1837)-11-10] *
@ㅋㅋㅋㅋㅋㅋㅋ(212.32) 조센징 사망자가 수십만 명이고...살아갈 재산이나 생업이 있는 백성이 극히 적은데, 지금은 그런 조센징 백성도 끼니를 잇기 힘들어 부황에 시달리니, 재산이나 생업이 없는 백성은...길바닥에 시체가 잇따르고...[순조21(1821)-8-22]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시발
@ㅋㅋㅋㅋㅋㅋㅋ(203.25) *굶어 죽은 시체가 길에 깔려 있습니다[순조10(1810)-3-7] *굶어죽은 사람을 헤아리기 어렵다고 한다[정조19(1795)-10-2]☞조선의 전성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병신
@ㅋㅋㅋㅋㅋㅋㅋ(203.25) *제주의 굶주려 죽은 백성이 6천여 명입니다[영조41(1765)-12-16] *기근이 겹쳐 이르러 사망한 사람이 거의 반이나 되니[영조28(1752)-2-19] *굶어 죽은 시체가 서로 베고 누웠는데[영조18(1742)-3-5] ☞조선의 전성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203.25) *굶어 죽은 시체가 깔려 있으나 썩은살을 덮어주지 못하여[영조8(1732)-3-5]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조센징‘인류가 거의 다 죽어 없어질 지경입니다.[경종2(1722)-2-21]‘시체가 즐비하며...[숙종30(1704)-5-19]
@ㅋㅋㅋㅋㅋㅋㅋ(203.25)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 *씹좆선 제주에서만 굶어 죽은 백성이 수천에 이르니[숙종42(1716)-윤3-19] 파도 파도 끝이읎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203.25) *극도로 곤궁하여 굶어죽은 시체가 들에 가득하니[선조12(1579)-5-22]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굶어 죽은 시체가 들에 깔려있고, 굶주린 백성이 시체를 뜯어 먹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대낮에 성안에서 사람을 죽이는데도 막지 못합니다[명종13(1558)-3-6] *사망한 자가 태반이고···열집 중 아홉집이 비었습니다....<중략>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 여기까 적을란다
고구마는 심지어 재배법까지 존나 퍼뜨렸는데 물량이 없던 이유가 쌀이랑 똑같이 양반새끼들이 독점해서 그럼 그래서 우리가 고구마도 감자처럼 일제때나 먹을 수 있었음
난독이 있어서 한줄도 안읽었는데 아무튼 조센징이 미개해서 그런거 맞제?
그러니까 현대 금융에서 호황기에는 돈이 많으니 좀 빼돌리고 유용해도 문제가 없는데 불황이 오면 돈이 없어져버려 횡령한게 바로 드러나버리는 것과 비슷한 원리네 이것 때문에 시중에 돈줄 막히고 은행도 망하는 것과 비슷하노
전라도
소빙하기는 영향 적음? 경신 대기근 때뭄에 크게 고생했는데
시간이 충분히 지나서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구나 누구 잘못으로 결론나도 영향 받을 사람 없으니 백성이 게으르고 무지해서 농사를 제대로 안 짓고 망쳤는지, 관이 세금을 받고도 업무를 소홀히 했는지, 제삼 세력이 끼어들었는지 명백하게 나오는구나
개조센 미개한 새끼들이라서 걍 미국 일본 없었으면 똥밭에서 뒹굴다 뒤질 새끼들이였음 ㅋㅋㅋㅋ
저때 탐관오리 조병갑 있었나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