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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전기는 말 그대로 필수적인 존재이다.


와이파이부터 지하철, 가로등, 컴퓨터, 세탁기, 냉장고까지 전기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이렇게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전기지만, 전기는 사실 꽤나 까다로운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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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적이 예로 산업 혁명이 시작된 지 벌써 300년이 다 되어 감에도 불구하고 전기 생산 수단이 하나로 통일되지 못했는데


여기에는 각 생산 방식마다 크나큰 단점이 하나씩 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전기, 그리고 전기 사용량 자체의 문제도 있다.




먼저 들어가기에 앞서 쉬운 이해를 위해 전기를 음식, 전력수요를 배고픔으로 치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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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매일 식사를 한다.


하루에 몇 끼를 먹는지, 그리고 얼마나 먹는지는 물론 개인차가 심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보통 매일매일 먹는 음식의 총량은 비슷하다는 것이다.




전기도 비슷하다.


보통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가전제품인 공유기와 냉장고 등은 하루 24시간 내내 돌아가고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시설인 병원, 산업 지구 역시 하루에 정해진 시간만큼 운영한다.


따라서 보통의 경우, 일일 전력 수요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인정 대부분 비슷하다.


이를 뜻하는 단어가 바로 기저부하(base load)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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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느 날 우리가 만약 달리기 등 격한 운동을 했다면


당연히 평소보다는 배가 더 고파질 것이고,


그날만큼은 평소에 먹던 것보다 더 많은 음식을 먹을 것이다.




비슷하게, 전기도 특정 상황에서 수요가 치솟는 경우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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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에 제일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여름철 에어컨이다.


날씨가 매우 더워지는 여름에는 모두가 에어컨을 사용한다.


그런데 에어컨이라는 물건 자체가 원채 전력을 많이 소모하는 것은 둘째치고서라도,


한두명도 아니라 전국민이 각종 시설에서 이걸 반나절 동안 켜놓으면 당연히 전력 수요는 폭증한다.


여름철에 에어컨 때문에 전력난이 온다는 기사를 매년 최소 한 번 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인데,


이렇게 특정 상황에서 전기 수요가 올라가는 것을 바로 첨두부하(peak load)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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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여름철에는 대략 이러한 모양의 그래프가 만들어지게 된다.


초록색이 기본 전력 수요인 기저부하이고 살구색이 추가 수요인 첨두부하이다.



주의해야 할 점은 꼭 여름철에만 첨두부하가 생기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원래 전기 수요는 인간이 활동하는 낮-저녁 시간대에 최고치를 이루고 이후 새벽 시간대에 감소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기저부하와 침저부하는 항상 공존한다.


그러나 에어컨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1) 전기 소모량이 엄청나며

2) 특정 계절에만 편중되고

3) 특정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사용된다.



의외로 1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에어컨이 전기 잡아먹는 괴물로 유명하지만


냉장고, 공유기, 압력밥솥 등은 에어컨과 비슷하거나 혹은 더 많은 전기를 소모한다.



그러나 위 세 기기는 1) 하루종일 사용되거나 2) 아주 잠깐만 사용된다.


냉장고와 공유기는 보통 24시간 내내 돌아가고, 이들이 사용하는 전력은 자연스럽게 기본값, 즉 기저부하의 일부로 포함된다.


압력밥솥도 전기를 많이 사용하지만 하루에 기껏해야 두 번, 1시간 이내로 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에어컨은 전기 소모량도 엄청난데 특정 시간대에만 집중적으로 사용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질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그냥 전기 생산량을 늘리면 되는 거 아닌가요? 발전소 더 지읍시다."



얼핏 보면 꽤나 달콤한 제안이지만 이는 전혀 말이 안 되는 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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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다른 자원은 물이나 석유, 가스 등은 대개 쉬운 보관이 간단하다.


식수는 저수지에, 석유와 가스는 저장 탱크만 만들어 두면 그만이다.



그러나 전기는 현재의 기술로는 보관 혹은 저장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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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를 저장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간단한데


배터리 기술, 즉 전지의 발전이 엄청나게 더디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간 해당 분야 연구가 계속되어 왔지만, 아직까지 전지 기술은 기껏해야 자동차 한 대를 일정 시간 동안 구동시킬 수 있는 선에서 머물고 있다.


당연히 일개 도시는 고사하고, 한 가정이 하루 동안 사용하는 전력조차도 일개 전지에 저장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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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양수발전이라고 해서 남는 전력으로 물을 위쪽으로 끌어올렸다가,


전기가 모자라면 다시 방류시켜 일종의 수력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이는 이런 류의 시설이 그렇듯이 지형을 엄청나게 타며 건설비도 싸지 않다.


의외로 효율은 80%로 정도로 제법 높은 편이지만 어쨌든 상용화에는 무리가 있다. 



여기서 나오는 결론은 간단한데


전기는 필요할 때마다 일일이 수요에 맞춰서 생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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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발전소를 많이 지어뒀다가, 안 쓸 때는 끄고, 쓸 때만 가동시키면 되잖아요!



이것도 말처럼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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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현재 대한민국의 전력 생산 비중보다 살펴보자.


석탄, 천연가스, 원자력이 각각 1/3씩 차지하고 약간의 신재생이 추가된 형태이다.



먼저 인간이 발전량를 조절하는 것이 불가능한 풍력이나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를 제외하면


남은 셋 중 석탄과 원자력은, 안타깝게도 발전 유연성이 극히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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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원자력이 왜 유연한 전력 생산 수단이 아닌지는 이 논문에 잘 나와 있다(OECD).


해당 논문 자체는 엄청나게 복잡하기에 길게 설명하지는 않겠다.


다만 세줄로 요약하자면


1) 원자력 발전은 내부의 핵분열 생성물, 냉각재 온도, 연료 온도, 중성자 군형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정말 많다. 

2) 한 번 발전량을 조절할 때마다 저걸 다 다시 계산해야 한다.

3) 발전량 조절폭이 커질수록 복잡함이 커지고 사고 위험과 비효율성이 증가한다.



즉 원자력은 꾸준히 많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데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설이지만


수요에 맞춰 생산량을 조절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아마 폐기물 재처리와 더불어 원자력 발전의 제일 큰 문제점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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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석탄 발전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여기는 핵분열 생성물이니 냉각재니 등 복잡한 요소는 덜하다.


그러나 석탄 발전소의 경우, 출력을 지나치게 자주 바꾸면 내부 온도의 급격한 변화로 열응력과 압력응력이 발생한다.


이런 압력은 결과적으로 발전소의 기계 수명을 크게 단축시키는 데다가


출력이 낮아지만 연소 효율마저 감소하게 된다.



즉, 원자력과 석탄 발전의 장단점은 명확하다.


막대한 전력을 꾸준한 속도로 생산할 수 있지만


소량의 전력이라도 할지어도 단기간에 생산량을 늘리는 것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저 둘은 기저부하(base load) 상태에서 전력을 생산하는데 주로 쓰이며


첨두부하 상황(peak load)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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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첨두부하 상황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멈추고 가동할 수 있는 석유 발전소나 천연가스(LNG) 기반 발전소가 널리 사용된다.


천연가스가 난방 외에도 전력 생산에서 자리를 잃지 않는 한 가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대한민국이 전력 생산의 1/3 가량을 비싼 수입 LNG로 충당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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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모든 전력 생산 방식을 통틀어서 제일 첨두부하에 적합한 생산 방식수력 발전이다.


위 그래프를 보면 알겠지만, 수력 발전소는 완전히 정지한 상태에서도 대부분이 불과 10분만에 최대 출력에 도달할 수 있다.


참고로 대체용으로 많이 사용되는 LNG는 터빈 종류에 따라 1시간에서 12시간까지 다양하며


석탄과 원자력은 안타깝게도 대부분이 12시간 이상이다. 



사실 수력발전은 발전량 조절도 제법 용이한데


그 이유로는 터빈 속도가 기본적으로 느리고, 물의 수냉 효과로 터빈을 빠르게 돌려도 과열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 꼽힌다.



그러나 전술했듯이 수력 발전이 가능한 지형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이 방법은 널리 통용되지 못한다는 점이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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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특정 계절에만 일어나는 첨두부하 문제를 해결할 제일 간단할 방법은 따로 있다.


그건 바로 송전망을 통해 이웃 국가로부터 전기를 수입하는 것이다.


이를 슈퍼그리드(Supergrid)라고 부르며, 국가들은 이를 통해


전기가 모자랄 때 급히 이웃 국가로부터 잉여전기를 수입할 수 있다.


유럽연합은 실제로 국가별로 전력 생산량의 15% 정도를 수출하도록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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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건 유럽이나 북미에서나 통할 이야기고


불신이 만연하고 정치적 상황이 어지러운 동아시아에서는 어림도 없다.


과거 저렇게 동북아 슈퍼그리드라는 프로젝트가 추진되기는 했지만 당연히 무산되었다.



그리고 지금 세계가 돌아가는 꼬라지를 볼 때 


이차 전지가 발전하기를 기다리는 게 저 동북아 슈퍼그리드보다 더 현실성이 있을 것이다.




세줄요약

1) 전기를 일정한 양으로 생산하기는 쉽지만 갑자기 발산량을 늘리기는 어렵다

2) 원자력, 석탄 발전은 발전량의 급격한 증가가 어렵고, LNG와 수력발전은 비교적 쉽게 가능하지만 각각의 문제점이 있다

3) 이러한 현상은 결국 전기를 보관하는 전지 기술이 발전해야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여담


대한민국의 누진세가 살인적으로 비싼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슈퍼그리드나 수력 발전이 모두 상용화되기 어려운 환경이기에 


첨두부하 상황에서는 비싼 LNG나 제한적인 양수발전을 사용하는 것이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대안이다.



그렇기에 기저부하로 감당이 되는 수준의 일반적인 전기세는 타국 대비 평균 혹은 비교적 낮게 유지하되,


첨두부하를 일으키는 과다한 전기 사용에는 누진세를 적용해 비싼 전기요금을 내는 구조가 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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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나 지적 사항이 있으시면 댓글에 적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