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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도 좆노잼 똥쓰레기 역사글이나 쓸려고 왔습니다


오늘은 남자가 가장 가까이 해야하는


술,여자, 도박중에서


도박 관련 이야기를 좀 해볼려고 합니다


그럼 잔말 말고 바로 시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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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비고~디비고~레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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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투전은 조선판 카드게임이라고 보면 됩니다


종이로 만든 길쭉한 패에 사람, 새, 짐승, 물고기 같은 그림이나 글귀를 적어서 끗수를 표시했고,


60장 또는 80장짜리 한 벌로 여러 방식의 놀이를 했습니다


뭐 일단 기본지식이니 대충 이정도로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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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울이 상업 도시화가 되어가면서


투전은 단순히 동네 주민들이 돈따먹기 하던 시스템을 떠나


유흥판에서 무뢰배(양아치,건달정도) 들이 굴리던 돈벌이 시스템이 되어갔습니다


조선 후기에 신분 높고 낮음을 떠나 도박이 사회문화 현상처럼 퍼졌고,


서울에서는 무뢰배가 도박 유흥을 주도한 핵심 세력이었는데요


특히 무뢰배 중에서도 왈자와 악소가 굉장히 문제있는 집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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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무뢰배가 뭐냐 물으신다면 


요즘식으로 하면 그냥 도시 건달, 일 없는 양아치, 유흥판 주변에서 사는 불량배 정도로 보면 됩니다


17~18세기 서울의 무뢰배를 다룬 다른 연구는 이들을 지배층이 보기에는 불량한 무리였지만,


동시에 도시에서 생계를 유지하려는 무항산자(안정된 재산 없는 사람들의 새로운 삶의 방식) 라고 보기도 했는데...


사실 걍 조폭 새끼들이죠 뭐 ㅋㅋ


쉽게 말하면 조선 후기 서울이 커지고 돈이 돌면서,


정식 직업,토지 없이 도시 주변부에서 먹고사는  잉여들이 생겼고,


그중 일부가 도박,유흥,범죄 쪽으로 붙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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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자는 대충 서울 유흥판에 익숙한 양아치끼 있는 놈들..이라 보면 되는데요


검계에서 나온 애들 아님? 하는데


왈자는 좀더 포괄적인 느낌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얘들의 핵심 세력에는 하급관리도 있었고,


특히 액정서 하례와 군관들이 도박을 해서 큰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액정서는 궁궐 내부 잡무를 맡던 관리이고,


하례는 그 밑의 하급 인력이었습니다


즉 도박판에 완전 밑바닥 앰생만 있었던 게 아니라,


궁궐,관청 주변 하급직, 군관 같은 애매한 신분층도 끼어 있었던 거죠 


현대로 말하면 공무원 하급직 + 군 관계자 + 기생 남친 + 건달 + 사채꾼이 한 자리에 모여서


도박 땡긴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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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기방도 낍니다


조선 후기 도박판은 자연스럽게 기방과 연결됐습니다


현대도 조폭들이 그렇지만


왈자가 기부, 즉 기생의 기둥서방이나 기생과 밀접한 관계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도박이 기방에서 열리거나 도박자금을 빌려주는 물주가 제공하는 장소에서 벌어졌습니다


술 마시고, 노래 듣고, 기생 만나고, 분위기 달아오르고, 야 투전 한 판 ㄱ?로 넘어가는거죠


그러다 돈 잃으면? 옆에 물주가 형님, 돈 빌려드릴게요


그리고 여기서부터 인생 박살 나는 루트 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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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변이란 위치도 중요했습니다


지금은 한강 하면 낭만, 산책, 치맥 이런 이미지가 있지만,


조선 후기 한강변은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공간이었고, 무뢰배의 활동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이야 상상도 못하겠지만


이때 한강변은 도시 외곽 유흥지대 역할도 한 거죠


관청 눈은 도심보다 덜하고, 사람은 모이고, 술과 돈과 뒷거래가 붙기 좋으니


도박판 벌이기 딱 좋았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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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뢰배들은 도박 유흥을 주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박을 통해 사채놀이도 하면서 돈도 땡겼는데요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소송, 폭력, 환곡 같은 방법을 썼습니다


환곡? 그거 나라에서 쌀 빌려주는거 아니냐? 그게 도박이랑 무슨 상관이야?


싶으실텐데 설명하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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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곡은 원래 곡식을 빌려주고 갚게 하는, 배고픈 사람들 살리려고 만든 제도인데,


조선 후기에는 지방 재정과 착취 구조에 엮여 망가진 대표 제도인건 다들 아시죠?


여기에 이 조폭들도 한몫 했씁니다


환곡을 받을 때는 보증인을 세우게 되어 있었는데,


서울 무뢰배들이 사람을 도박으로 끌어들인 뒤 도박자금 빌려준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이 보증인이 되어 관청에서 환곡을 받아내는 방식을 쓰고


그걸로 도박빚을 받아낸 뒤, 대상이 환곡을 못갚으면 협박하는 방식을 썼습니다


그냥 도박빚 갚아라 하면 사적 채무라 배쨀수 있으니


환곡을 끌어와서 빚이 관아 제도와 보증 관계를 타게 만든거죠 


이러면 소송,폭력으로 압박할 명분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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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과정을 요약하면 


1. 기방이나 한강변에서 판을 벌임

2. 돈 있는 사람, 술 취한 사람, 허세 부리는 사람, 한탕 노리는 사람이 들어옴

3. 잃은 놈이 돈이 부족해짐

4. 물주나 무뢰배가 돈을 빌려줌

5. 못 갚으면 이자 붙고, 협박 들어가고, 소송 들어감



사설 도박장 옆에 대부업자 붙어 있는 구조랑 비슷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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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투전이 놀이였다면 이게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이게 조폭들이나 사설 대부업체, 유흥과 같이 연결이 되면서


문제가 된거라 볼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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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다들 


조선시대에서 도박, 특히 투전을 사회문제로 지적하고 뿌리 뽑을려고 했다는 사실에


왜 그런거지?? 싶으셨을텐데 


사실상 투전판이 


사설 카지노 + 사채업 + 룸쌀롱 + 추심업이 합쳐진 도시문화로 변질 되는 측면도 있어서 


이를 뿌리 뽑을려고 그렇게 난리를 친거라 보시면 좀더 좋겠습니다


남자가 마땅히 즐겨야 할 3가지 이지만


인생 망치지 않게 적당히 즐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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