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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도 좆노잼 똥쓰레기 툭하면 조선 역사글이나 싸재끼러 왔습니다


오늘은 다들 알지도 모르겠지만


조선의 부동산 업자, 가쾌에 대해서 알아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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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비고~디비고~니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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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먼저 가쾌(家儈)란 무엇이냐..를 집고 넘어가야 겠죠? 


조선 후기~대한제국기 한성부 쪽에서 활동하던 부동산 중개인들을 말하는 용어 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공인중개사 비슷한 사람인데, 정확히는 집,땅 매매, 임차, 전당을 알선하고


문서 작성이나 보증까지 끼던 중개 브로커에 가깝습니다


집주름, 집주릅, 집거간, 가거간 같은 말로도 불렸고,


대도시에서는 가쾌라는 표현이 쓰였죠


사실 '쾌' 자체가 중개 상인, 즉 거간을 뜻하는 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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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조선후기에 집사는건 진짜 골치 아픈 일이었습니다


현대인은 집 살 때 등기부등본 떼고, 건축물대장 보고,


근저당 확인하고, 공인중개사 끼고, 계약서 쓰고, 확정일자를 받을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툭하면 집사기다 전세사기다 뭐다 터지는 마당에


조선 후기 한양은?


저 집 주인이 진짜 주인임?

전에 누가 잡혀놓은 빚 있음?

문서가 진짜임, 위조임?

이 집에 분쟁 있음?

저 동네 물길, 길목, 장사, 관청거리 어떰?

이사 날짜 괜찮음?


이걸 본인이 다 알아서 해야했는데요


인터넷 없고 부동산 앱 없던 시절 존나게 막막했겠죠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등장한 게 부동산 중개인, 즉 가쾌였습니다


가쾌는 누가 집 팔려는지, 누가 돈 급한지, 어느 집 문서가 깨끗한지, 어느 집은 분쟁 냄새 나는지


아는 인간 데이터베이스였다고 보면 될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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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쾌의 업무는 대충 이랬습니다



1.매매 중개


집 팔 사람과 살 사람을 연결했습니다




2.임차 중개


전세,월세 비슷한 거라 보면 됩니다


집과 토지 등 부동산의 매매,임차,전당을 중개했습니다




3. 전당 중개.


여기서 전당은 쉽게 말해 집을 담보로 돈 빌리는 건데요 


주택담보대출 조선 버전 인데,


은행 시스템이 아니라 사적 거래와 문서, 보증, 관청 인증이 뒤섞인 좀 복잡한 거래였습니다




4. 문기 작성,보증


조선 후기에는 가옥 매매, 전당, 대차를 중간에서 주선하는 가쾌가 있었고,


거래하려는 사람들은 이들에게 부탁해 문기를 작성하거나 보증인으로 세워 거래를 성사시키기도 했습니다


거래가 진짜라는 걸 사회적으로 보증해주는 인간 도장 노릇도 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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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를수록 한양에서 이들의 역할이 중요해졌는데요,


한양은 조선의 수도임. 관청, 궁궐, 시장, 양반, 상인, 역관, 군인,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 다 뒤섞이는데


사람이 몰리면 집값이 오르고 당연히 중개인도 생깁니다


그러면 당연히 수수료를 받는 사람도 생기고 또 그러다 보면 저새끼 사기꾼 아님? 소리도 나오기 마련이죠 


개항 이후에는 상황이 더 복잡해집니다


외국인 거주와 상업 활동이 늘고,


한성부로 지방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도시화,상업화가 진행되자 부동산 거래 증빙 문제가 중요해졌습니다


그래서 한성부는 1893년에 가계, 즉 집 소유 인증 문서를 법제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하게 됩니다


대충 말해서 



야 이제 집 거래가 너무 많고 외국인까지 끼니까 대충 종이에 내 집임 쓰고 끝내면 나라가 터지겠다


문서 제도 만들고, 중개인도 관리하자



이렇게 된거죠


이러면서 가쾌가 일개 동네 브로커에서 끝난 게 아니라,


한성부의 부동산 관리 시스템으로 일부 포함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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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들이 바로 현대 한국의 공인중개사의 직계조상인데요 


가쾌들이 모여 사무실을 차린 게 복덕방 입니다


조선 말기에는 복덕방이 100여 개, 가쾌가 500여 명 있었다고 하고 


가쾌 → 복덕방 할아버지 → 부동산 중개업소 → 공인중개사 사무소


-> 대충 이런 계보가 이어진다 보면 되겠습니다 


즉 공인중개사는 의외로 유서깊은(?) 직업이라 볼수..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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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택권의 성시전도시에는 집주름이 천 냥을 매매하고


백 냥을 수수료로 받는다는 식의 묘사가 나오는데


이를 근거로 18세기 후반~19세기 후반 가쾌의 중개수수료가


거래가의 10% 안팎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편입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씨발 소리가 나오죠 


집값 10억이면?

중개수수료 1억


지랄 시나이데 싶은데, 당시에는 정보가 곧 돈이었습니다


지금은 등기부등본, 지도, 시세, 실거래가, 네이버부동산, 직방, 호갱노노 다 있지만


저때는 가쾌 머릿속이 데이터센터이자 모든 정보가 들어있었습니다


저 집 주인 장남이 도박해서 급매 가능함

저 집은 문서가 꼬여서 건드리면 송사 남

저 골목은 장사 잘 되는데 여름에 물난리남

저 집은 겉보기엔 좋아도 전세 잡힌 같음


이런 정보가 사람 입에서만 돌아다니던 시대다 보니까 


중개업자가 먹는 중개수수료가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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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로 이때도 이미지는 개좆이었습니다


장사를 하니 천하다 봤고


중개껴서 남의 거래껴서 수수료 먹다보니 이미지가 좋을래야 좋을수가 없겠죠


거기다 이새끼들 뭔가 사기꾼 스멜남이 대략적인 이미지 였습니다


당대 양반층도 가쾌를 꽤 부정적으로 봤습니다


1753년 영조 때 기사에 부마도위 후손 윤성동이 집주름으로 전락했다는 내용이 나오고,


그를 무뢰배처럼 표현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실제로 아는 분은 알만한 


당대 유명 검계 소속이었던 표철주도


나이들어서는 가쾌로 활동했습니다


박지원 작품에서도 중개업자는 권모술수에 능한, 좀 교활한 이미지쪽으로 묘사됩니다


현대 부동산 중개업 이미지랑 묘하게 겹치는, 그런 거시기한게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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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쾌와 복덕방이 늘어나니까 당연히 문제도 생겼습니다


가짜 문서, 허위 거래, 수수료 과다, 외국인 관련 부동산 문제, 담보 문제 등등



그래서 1890년에는 객주거간규칙이 제정되어 한성부에서 허가제처럼 운영되었고


또 1893년 가계제도가 실시되면서,


가쾌는 한성부로부터 가쾌 영업 인허장인 첩장을 받아야 했고,


가옥 매매,전당 때 당사자 양쪽에게 보수를 받고 계약을 중개하는 직업으로 제도 안에 포함되었습니다


처음엔 사적 브로커였는데, 대한제국기쯤 가면 허가받은 부동산 중개인 비슷한 위치가 된거죠


물론 지금 공인중개사처럼 국가시험 보고 자격증 따고 그런건 아니지만


그래도 결국 님 사기치면 처벌+허가 받고 하셈 


이렇게 방향이 정해진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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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가계에 대해서 알아봐야 할거 같은데요


가계는 쉽게 말하면 집 소유에 관한 관청 인증 문서 입니다


1893년 한성부에서 처음 발급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개항지,개시지(시장)에도 시행되었습니다 


한성부는 집 거래를 안정시키려고 가계제도와 가쾌제도를 엮었습니다


집 팔 때 중개업자 거치셈

문서 제대로 쓰셈

새로 산 사람은 새 가계 받으셈

부실기재하면 가쾌도 책임져 씨발아


제2차 가계 발행 때 가옥 매매는 반드시 가쾌를 경유해야 했고,


계약서에 부실 기재가 있으면 가쾌를 처벌했습니다


그러니까 가쾌는 부동산 거래 안정성 담당자 역할도 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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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조선 말~대한제국기의 국가 행정력이 그렇게 좆치 않았다는 겁니다


가계제도는 원래 모든 민가를 조사해서 일일이 가계를 발급하고,


소유권 이전도 가계를 근거로 하려는 구상이었지만


실제로는 거래가 필요할 때 구문기 같은 기존 문서를 근거로 가계를 발급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가계를 받은 집에 대해서는 소유자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전체 불법 거래를 막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정부에서 앞으로 모든 스마트폰 거래는 국가가 발급한 정품 인증서(가계)가 있어야만 법적으로 인정한다! 라고 선포했습니다


원래 계획은 전국에 있는 모든 휴대폰을 공무원들이 일일이 조사해서 인증서를 먼저 쫙 나눠주는 것이었죠


하지만 정부의 인력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전국 모든 집을 찾아가 휴대폰을 조사하는 게 불가능해지자, 정부는 방침을 바꿉니다


그럼 일단 전수조사는 포기하고, 니들끼리 중고 거래할 때 찾아오면 그때 인증서 끊어줌!


여기서부터 문제가 터집니다





철수가 영희에게 스마트폰을 팔려고 합니다


국가 인증서(가계)를 받으러 구청에 가면서,


예전에 자기가 처음 폰을 살 때 받았던 옛날 영수증(구문기)을 증거로 제출합니다


결과: 정부는 영수증을 확인하고 철수에게 '정품 인증서'를 발급해 줍니다.


이 폰은 이제 국가가 소유권을 보장해 주니 안전합니다 




문제는 딴 곳에서 일어납니다


길동이가 훔친 스마트폰을 춘삼이에게 몰래 팔려고 합니다


당연히 옛날 영수증(구문기) 같은 정당한 서류가 없으니 국가에 인증서를 신청할 수 없겠죠?


두 사람은 그냥 정부 몰래 뒤에서 돈과 폰을 주고받습니다


결과: 정부는 애초에 전국의 모든 휴대폰 목록을 쥐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 둘이 뒤에서 서류 없이 폰을 바꾸든 말든 알아챌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허위 가계, 몰래 파는 사기, 전당포에 집 잡히는 문제 같은 게 발생합니다


이러면 가쾌도 역할이 좀 거시기 해집니다


제대로 일하면 거래 안정화의 핵심 롤인데,


나쁜 놈이면 사기짱짱맨이  되는거죠


제도가 엉성하면


중개인이 착해도 사고 나고,


중개인이 나쁜놈이면하면 그냥 헬게이트 열리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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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가쾌를 무조선 애미없는 놈이라 보면 좀 애매합니다 


실제 연구에서는 가쾌가 부동산 거래를 문란하게 만들었다기보다,


거래의 전문화와 활성화에 기여했고, 한성부와 협력,갈등하면서


가계제도와 인허 가쾌제를 운영한 주체였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무조건 나쁜놈 좋은놈보단


그냥 그 시대의 시대상이라 보는게 더욱 좋을듯 싶습니다 


가쾌는 조선 후기 도시화가 낳은 부동산 전문직이었만


다만 법과 행정이 덜 정비된 시대라서,


전문직과 브로커, 보증인과 투기꾼, 정보상과 사기꾼의 경계가 흐릿했다...


정도로 정리하면 좋을듯 싶습니다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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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izn.donga.com/3/all/20170807/857078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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