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


현장조사] 2018 0424 : 네이버 블로그
+ 정확하게 이렇게 생긴 골목에서 자람. 응답하라 1988 덕선이네보다 훨씬 열악한 빛도 안드는 지하실에서 살았었음.

목동에서 태어나고, 지하에서 자람.

본인 5~6살때 부모님 주택청약 일산에 당첨되어서
서울 목동 바퀴벌래 끓는 반지하방에서 일산으로 이사옴.

매일매일 집주인 아줌마한테 쿠사리 들으며 살던거 아직도 기억남.

나는 대문 앞 연탄을 부수는 것으로 복수하곤 했음.

반지하만 알고 살던 나에겐 큰 충격.
신식 아파트에 모든 동네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새로 이주해와서 서로 허물없이 친해짐.


아직도 기억하는데, TV에서 전설의 용사 다간 킬리만자로편 새 로봇 카옹 등장하던 날, 집에 컴퓨터가 생김.
윈도우 없고, 도스만 있었음. 삼촌이 대충 게임 실행하는 법 알려줌
cd.. cd jazz the rabbit, cd *.exe...
뭔지도 모르고 걍 외웠었음.

그래도 요즘 BIOS 인터페이스 마냥 화살표로 왔다갔다 해서 엔터 누를수있게 되어있었음.
그렇게 우연히 PM2(프린세스메이커 2) 라는 폴더를 찾았고 그렇게 겜창 얼리어뎁팅 성공.


96년 초등학교 1 빠따로 입학(본인 빠른 90). 국민학교 틀딱 타이틀 회피성공.
회사 다니던 아버지가 관련 업종에서 사업을 시작.

꽤나 성공적이어서 97년 IMF도 별 타격없이 넘어서고, 집이 30평대에서 50평대로 바뀌는 신세계를 경험.
하지만 집에 돈도 많아져서 그런지 3학년때부터 방과후 온갖 학원에 시달리고 밤 10시에 집으로 퇴갤함.
헬조선 혐오 1스택 적립.


PC 통신 시대의 개막. 어둠의 전설+바람의 나라 열심히 함.
피씨방이 우후죽순 난립하기 시작함.
디스켓에 포켓몬 레드/블루 + VGB 에뮬 담아서 항상 들고다님.
1998년 스타 브루드워 출시. 스타 안하는 남자들은 존재하지 않았음.
무한맵 초반러쉬 옆치기 금지 따위의 암묵적 룰이 있었음.
어느순간 PC통신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ADSL 광고가 줄창 나오기 시작. 당시 스티븐 유 씨가 굉장한 인기였음.

중학생

Dasmariñas City – Asia Times

+ 필리핀 Dasmarinas. 이런 동네에 백화점들만은 거대하고 삐까번쩍 했던게 정말 아이러니했다.


이미 초2때 안경을 쓰기 시작했고, 살이 점점 올라오더니 반 최고 뚱뚱맨 포지션으로 등극.
여자한테는 말도 못붙이고, 친한 남자애들하고만 어울려 다님.
ㅂㄹ친구 한놈이 집에서 야동이란걸 처음 보여줌. 신세계 입갤.

중1 여름방학, 방학 때 집에서 컴퓨터만 잡고있는 날 보기 힘들었는지
강제로 필리핀 1달 어학연수행 비행기에 태워 보내짐. 본인 하루전에야 통보 받음.
이때부터 아버지와의 관계가 급 악화되기 시작함.

내 기억으론 거기에 온 한국 아이들이 초3부터 중3까지 다양했음.
보통 중2~3들은 지들끼리 몰려다니면서 현지에서 인싸짓했고
나는 초딩들이랑 다니면서 피자헛 같은거 사먹고 다님.
지금 생각해봐도 엄청 물가가 쌌음.
결과적으로 영어 실력도 늘긴했으나, 귀국 후 아버지와의 관계는 냉랭 그 자체.

직접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본인 분에 못이겨 종종 TV, 핸드폰, 가구 등을 뿌시곤 했음.

거의 매일밤 부모님은 부부싸움을 했고, 내가 나서서 엄마에게 이혼을 종용함.
결국 이혼에 성공.
2004년부터 내가 군대가기 직전까지(6~7년) 아버지의 연락을 회피함.


고등학생 & 전문대생


실업계 입갤. 사실 공부를 하기 싫어했어도, 반에서 중간 이상은 가는 성적이었기에 선생님들은 만류했지만
단지 야자가 하기 싫어서 실업계로 감.
당시 실업계(특히 공고) 분위기는 진짜 살벌한걸로 유명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본인 학교는 정보고로 괜찮았음.
일진들도 자기들끼리 놀기 바빴고, 딱히 누굴 갈취하거나 괴롭히거나 하는 것 없는 낭만이 있던 학교였음.
본인 첫 중간고사 시험 전날에 다음 과목만 잠깐씩 공부하고 시험을 침.
체육빼고 전부 1등급을 받아버리는 사고가 발생.
방학식때 성적우수상 폭격을 맞고 강제 모범생이 되었음.

이때까지는 그냥 방과후에 게임만하려고 실업계에 왔던건데
갑자기 성적이 다 1등급에 순위도 전부 1이 찍히니 엄청난 희열을 느낌
엄마 졸라서 학원 등록하고 모의고사 준비하면서 고2때까지 전교 1등 안놓침.
고2때까지 내신 평균 1점대. 심지어 이 성적은 와우(WoW) 출시하고 인생 와창내면서 동시에 나온 성적.
당시 수능에 직업탐구영역(실업계전용) + 정시 실업계특별전형이 생기면서
고3 담임은 나를 학교 최초로 연세대 보낼 생각에 싱글벙글함.
모의고사 성적대로면 최저 등급만 맞추면 되니, 거의 따놓은 당상이었음.
근데 고3때 사춘기가 옴. 병신.

갑자기 아무것도 하기 싫고, 수능도 보기 싫어서 고3 수시 1학기 받는 학교들 몰색함.
내 기억으론 실업계전형 있던곳이 홍대 건대 있어서 넣었고, 나머지는 듣보아니면 전문대길래.
나름 안전빵이라고 생각한 전문대도 한개 넣음.
지금 내가 봐도 개병신새끼였던게, 수시를 넣고 서류 합격시 "심층면접"이란게 있었는데
이게 뭔지도 미리 안찾아보고 시험장 가서야 뭐하는지 알게됌.
홍대심층 당일 그냥 혼자 교복입고 오면서 닭꼬치 하나 사서 먹으면서 왔는데
무슨 부잣집 도련님 같은 애들이 부모님들이랑 같이 차타고와서 내리면서 막 뭐 달달 연습하는거임
보니까 심층면접이 영어로 된 지문 분석해서 그걸 면접관 앞에서 설명하는게 절반이고

나머지는 특정 주제에 대해 자기 생각을 서술하고 면접관이랑 이야기 하는 거였음. 
당연히 광탈함ㅋㅋ

이때 그냥 또 모든게 줫같아져서 건대 면접은 가지도 않음ㅋㅋㅋㅄ.

이때만해도, "아 그럼 그냥 수시2학기 쓰고 수능 대충보면 되겠네 ㅅㄱ"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뿔싸. 하나라도 지원한 원서가 합격이 되면 무를 수 없다는걸 전문대 합격 이후 알게됌 ㅋㅋ


뭐 아무튼 합격이고, 수능 안봐도 된다는 생각에 그날부터 탱자탱자 놀면서 학교다님ㅋㅋ
선생님들은 당시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무튼 그렇게 수능도 안치고 졸업하고,
전문대 장학금 받고 들어감. 구로에 있는 학교였고 실내건축이었음.
아니 근데 싯팔 맨날 T자가지고 손으로 제도하는 과제를 산더미같이 내주는거임.
통학하는것도 줫같은데 자꾸 밤새 서서하는 과제 내주는게 줫같아서 자퇴를 알아봄.
근데 자퇴하면 장학금 다 뱉어야 된대서, 다음학기 수강신청도 안하고 걍 알아서 제적되게 내비둠.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뿌리부터 썩었구나를 느낌.
그렇게 남은 반년을 집에서 히키처럼 지내다가,
운전면허라도 따라는 엄마 말에 운전면허 취득 후, 국토방방 동네친구들(ㅂㄹ친구) 태우고 일주 다니기 시작함
그래도 미래에 대한 걱정은 있었음.
당시 네이버에서 블로그 스킨 제작하는거에 맛들려 있었는데,
반응도 나름 좋았어서 포토샵 관련해서 먹고 살라고 찾아봤더니 시각 디자인과를 가라는 거임.
그래서 찾아봤더니, 거긴 미대입시를 해야된대.
몇개월만에 되겠냐?
그래서 전문대 시디과를 감.
내신 100프로 반영이라 또 장학금받고 들어감.

그 사이 살도 엄청 많이 빠졌고, 키도 180 이고.
본인 처음으로 여자들한테 나름 먹힌다는걸 알아버림.
중2 빅뱅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힙합만 들어온 힙찔이여서
노래방에서 랩 정도는 당시 수준들보다 월등히 잘 했었음.
가사도 쓰고 자작곡도 만들고 하던 시기라서
뭔가 지금은 식상해진, 과 랩퍼라는 포지션으로 여기저기 붙어다니면서
싫어도 여자애들이랑 친해지는 법을 금방 터득하게 되더라.
당시 꽃보다 남자가 유행했는데, 진짜 학과에 입학하는 남자가 4~5명밖에 없어서
시디과 F4같은 개소리 같은게 유행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생각해도 쥐구멍에 숨고 싶어진다.

그러다가 CC한번 했었는데, 한 학기만에 헤어지고 바로 군대로 런함.

군생활


ROKAF 15th Special Activity Wing_Intro : 네이버 블로그

+ 당시 15혼성비행단 로고. 혼성이라는 단어가 "남여 혼성" 이라고 잘못 인지되어서 그런지 지금은 이름이 바뀌었음


고딩때 따놓은 컴퓨터자격증으로 공군에 전산병으로 지원했고
운이 좋아서 대부분 고학력에 똑똑한 사람들하고 군생활 했음.
서연고, 항공대 항공정비과, UCLA도 있었고.. 아무튼 그 사람들하고 생활하면서
좆문대 출신의 나로써는 한국에선 가망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함.
우리 엄마는 이런 개떡같은 아들놈 키운다고 몇년째 밤낮 일하고 있었고
나는 살림에 보탬이 하나도 안되는 씹 불속성 효자였음.

앞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군 입대전에 아버지하고 다시 연락이 닿았음.
입대전에 만약 내가 군대에서 사고가 나면
거진 7년동안 나와 연락이 안되던 아버지는 얼마나 황망할까, 라는 생각이 있었음.
그래서 다시 재회하고, 서로 묵은 감정들이 잘 풀렸다고 느꼈고 이미 재혼도 하신 상태였음.
우리 엄마하고는 정반대로 여유로운 삶을 영위하고 계셨음.

그리고 한번은 휴가를 나와서 미래의 계획에 대해 아버지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음
내 생각들을 이야기했고, 나는 당시 학비가 거의 없다시피한 독일에 대해 이야기를 했음
아버지는 거기서 나한테 한가지 제안을 함.
전역 후 본인 집으로 들어와서 살면, 유학비용을 본인이 대주시겠다는 거였음.
솔직히 고민이 많이 됐음. 근데 바로 마음이 기울었음.
엄마한테 나는 짐덩이인 아들이었고, 밤낮 일하는데 보탬하나 못한 ㅅㄲ였으니.
바로 엄마하고 상의한 끝에,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함.

휴가 복귀하면서 독일어 입문 책을 몇개 반입했고, 이후 짬이 날때마다 연등하면서 독학했음.
군대에서의 만남들은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고, 난 그래서 아직도 당시 내 선후임들에게 너무나 감사함.
10년도 더 지난 지금도 아직도 맞선임 맞후임하고는 연락이 닿음

원래는 글 하나에 다 적어보려고 했는데
역시 글은 쓰다보면 내용이 항상 길어지네.

반응 좋으면 독일편도 적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