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에 가끔 올라오는 글들 중에

'왜 배달하고 있누? 노가다해서 기술배우면 발전이라도 있지'

이런류의 글들이 종종 올라오는데

이십대 중반 ~ 삼십대 초반까지

현장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며 청춘을 바쳤던 내 얘기를 해볼게.



재미없고 조금은 긴 글이 될테니 관심 없으면 지금이라도 뒤로 가기.

내가 경험하고 느꼈던 것이므로 모든 현장과는 다를 수 있으며

반박시 니말이 맞다 치자.



나는 고졸이고 재수를 했으나 실패하고 군대를 갔다오고

집 형편이 어려워져 다른 공부를 할 수 있게 집에서 서포트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이일 저일 하다가 이십대 중반 노가다까지 가게 되었어.


노가다는 크게 보면 건축, 설비, 전기로 볼 수 있고

내가 했던 대부분은 전기쪽이였어.

내가 처음 노가다를 시작했을 때 초보 일당이 7 ~ 7만 5천원이었던 걸로 기억해.

내 기억으론 당시 최저시급이 5천원 초반이였던 거 같아.

퇴사 할땐 15 + @ 를 받았지. @는 밑에서 설명할게.


일을 그만 두고 돈 되는 공구는 다 팔고 찍었던 사진인데

전기일을 좀 해본 사람이라면 공구 보면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대충 알거야.

개인 공구값을 다 하면 못해도 150~200만원 정도는 쓴 거 같네.

안전화나 벨트 작업복 기타 등등 이런것들까지 하면 훨씬 더 되고.


노가다를 잘 모르는 게이들을 위해 조금 설명하자면

노가다(건설현장)은 건물주(의뢰)가 시공사(건설사)에 맡기면 시공사는 협력업체(건축, 설비, 전기)에

다시 분야별로 공정별로 구역별로 입찰 등을 통해 하청을 주고

하청업체는 팀원(기술자)들을 데리고 있는 팀장들에게 다시 일을 맡기는

한마디로 하청이 하청을 주는 형태야.

일반 현장이 대형 현장보다는 일당이 1~2만원정도 비싸고 단기간 공수가 높을 수 있는데

단타바리로 계속 현장을 옮겨다녀야 하고 일을 못 잡으면 쉬어야지.

대형 현장은 공사기간이 길어서 안정적이야.

때문에 길게 놓고 보면 대부분의 경우에 다들 대형 현장을 좀 더 선호하지.


내가 있었던 현장은 롯데월드 타워, 고덕 삼성반도체, 수원 삼성전자,

천안 삼성디스플레이, 탕정 삼성디스플레이, LG 화학,

그밖에 제약회사, 화장품공장 등등 다녔어.

가장 오래 있었던 곳은 고덕이랑 탕정 천안 정도야.

팀은 두군데 있었고.


나는 노가다를 시작할때 이곳에서마저 실패하면

나는 더이상 어딜가도 실패할 사람이다 생각하고

악바리로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어.

조공으로 시작해서 첫 사수가 진짜 성질 개같은 사람이였는데

아무도 그 사람 밑에서 오래 못 버텼는데 나만 끝까지 버텼지.

다들 힘들어 나가떨어질때 나는 끝까지 풀공수를 채웠고

하나라도 더 배울려고 계속 물어보고 시키면 무조건 했어.

그때는 박근혜 정부였고 주52이시간 근무가 없어서

한달 주6일 일하고도 40공수 이상 하는 달이 많았어.

말이 40공수지 그걸 계속 하다보면 진짜 힘들어.

지금 되돌아봐도 어떻게 그랬을까 싶고

그 당시 내모습을 생각하면 진짜 악바리라는 단어로밖에..

지금 생각하면 그돈 받고 어떻게 그렇게 일했나 싶다.

근데 사람이 뭔가 계속 열심히 하다보면 손에 익기 시작하고

조금씩 잘하게 되고 주변에서 인정받게 되고 그러면

그게 재미가 붙게 되고 점점 더 열심히 하게 되는 선순환이 될 때가 있어.


내게 전기를 제대로 알려준 첫 팀장은 내게서 뭘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점점 날 신뢰했고 남들보다 맡기고 키웠어. 갑자기 좀 눈물이 날라하네.


중간 과정은 각설하고

좀 자부심을 가지고 말하자면

나는 일했던 기간 통틀어서 상위 0.1%라고 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고

그만큼의 인정은 받았고 반장은 당연히 달았고 준팀장급 정도로 일했어.

전기에도 분야가 많지만 내가 할 줄 아는건 트레이 부스덕트 레이스웨이 포설 단말이였어.

소방전기 배관 빼고는 거의 다 했고 이중 트레이 부스덕트 단말은 걍 누가봐도 쌉인정이야.

내 물량 못따라가. 그리고 누구보다 깔끔하게 일했고. 빠꾸 없고.

위에서 말한 +@는 준팀장급으로 팀원을 데리고 현장을 나눠서 일한 적도 있기 때문에

공수 X 팀단가에 +@를 따로 팀장에게 받았어.

그래서 보통 25~35공수씩을 했는데 (당시 주52시간이 생기고부터 35이상 공수는 힘듬)

많이 버는 달은 500이상씩 벌었어. 많이 번 해는 세 전 5500만원이 넘어가더라.

그리고 나는 직영팀 소속이라 퇴직금도 쌓여가고 있었고.

나는 팀원들이랑 숙식을 하며 살진 않았고

월세로 따로 살고 내차로 출퇴근 했어.

나중엔 방2개 전세집을 얻었 살았어.


근데 얻은 만큼 나도 모르게 잃고 있던 것들이 있었어.




내가 그만둔 이유


1. 힘들다.

그래 나는 내가 하는일에 자부심은 있었어.

남들이 노가다라고 하지만 나는 내가 하는 전기일이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 나름의 기술이 필요하고

깊게 들어갈수록 지식도 있어야 하니까.

나는 일끝나고 집에와서도 내일 할 작업 이번주 할 작업 미리미리

도면체크를 하고 필요한 자재를 생각하고 각종 일생각이 가득했어.

그냥 몸만 집에 있지 머리는

계속 현장에 있는 워커홀릭인 사람이였어.

아무것도 없는 텅빈 공간에 도면의 것들을 완성하고 감리에 통과되고

뭔가 모를 무에서 유로 바꿨다는 보람도 있었고 돈도 벌었고 인정도 받았으니까.

근데 몸은 너무너무 힘들었어.

평소 75~80 몸무게였다가 60키로 초반까지 빠진적도 있었는데

저녁을 못먹어서 그랬어.

함바집 저녁은 맛도 없고 밥 다 먹고 퇴근하다가는 교통은 지옥이였어.

주차장에 주차하고 집까지 올라갈 힘도 없어서 차에서 잠든적도 많았고

집에 올라가면 씻을 힘도 없어서 먼지 다 뭍었는데 옷만 벗고 쓰러져 잠들곤 했어.

하루에 만보씩 걷는건 우습고 워낙 무거운걸 다루다보니 군데군데 상처나 멍도 많았고

근육통을 달고 사는건 당연하고 먼지와 소음은 말도 못하고

주로 실내에서 일했지만 때가 안맞아 여름 겨울에 실외에서 일한적도 많아.

늘 몸에 5kg 이상되는 헬멧 벨트 공구 등을 달고 있었고

눈에는 보안경 코와 입에는 마스크를 달고 살았어. 소음이 많아 귀마개를 해야 할때도 많았고.



2. 위험하다.

당연히 고소작업이 많고 천고 높은 곳은 18m야.

내가 했던 일 특성상 감전의 위험도 많았어.

후공정 퓨처구간에 증설이 있어 활선 옆에서 작업하는 경우도 많았으니까.

이미 돌아가고 있는 판넬 활선 옆에서 단말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후공정이 아니래도 일부 턴온한 상태로 작업하는 경우도 많고.

일하다 보면 실제로 각종 사고를 직간접적으로 겪게돼.

전국에서 가장 안전한 현장이라는 삼성현장에서 조차 말이야.


3. 스트레스

노가다가 뭔 스트레스야 하겠지만

경력이 쌓이고 내 지위가 올라갈수록

상대해야 할 사람들이 많아져. (이건 다른 대부분의 직업도 해당될듯)

위로는 팀장, 관리자들 회사 사람들, 감리들, 다른 팀장들, 안전 관리자들

같이 일하는 경력 더 많은 반장들, 경력 더 없지만 나보다 나이 많은 형님들

밑으로는 내가 일 시키는 팀원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나는 어느새 싫은 소리를 매일 하며 살고 있었어.

현장에선 일이 우선인 사람이라 짜증도 많이 내고 화도 내고

다른 공정이나 다른 업체들이랑 쌈닭처럼 잘 싸우거나 시비라도 걸면 불같았어.

가끔은 그냥 아무 간섭없이 일만하는게 오히려 힐링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지.

내가 나서서 목소리를 내야 하는건 그만큼의 스트레스를 동반해.

이건 사람 성향에 따라 좀 다를수가 있겠네.

처음엔 내가 견뎌야 할 과정이다 생각하고 견뎠지만 갈수록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어.



4. 미래

나는 내 팀을 꾸리는 걸 목표로 삼았고

못해도 내가 35살쯤 되었을 땐 뭐가 되지 않을까 하며 살았어.

틈틈히 나는 전기관련 공부도 했어. 그냥 이분야에 모르는게 없고 싶었어.

대학나오고 자격증 있는 관리자들이랑 대화가 자연스럽고 싶었어.

내가 그사람들 보다 현장도 잘알고 이론도 잘 알고 싶었어.

그런데 점점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더라고.

팀장이 되는길은 말처럼 쉽지 않아.

팀원이 10명이라 치면 내가 일을 하는 팀장이여도

밑에 반장급 1~2명 기공 1~2명은 무조건 있어야해.

근데 사람의 마음을 얻고 밑에 두는건 쉽지 않아.

더군다나 나처럼 비교적 이른나이에 짬밥이 쌓인 어린애한테 밑에서는 더욱더.

또 그런 사람들이 생겼다고 해서 아무나 나에게 일을 주지 않아.

인맥이 있거나 서로 상호간의 이득이 있어야 하는거야.

정치적인 부분도 있는거고.

가장 좋은 경우는 내 팀장이 일과 팀을 꾸려서 내보내주는건데

내가 일하는 팀엔 이미 그럴 사람이 있었고 게다가 친인척 관계였어.

그리고 팀장이 유능한 인재는 키웠으면 계속 내 곁에 두고 부리고 싶지

쉽게 팀을 꾸려주고 싶어 하지 않아.


겉으로 다 위해주는척 하지만 사람의 깊은 속내는 다 이기적이야.



5. 환경

현장(노가다)일은 결국 타지 생활을 해야해.

언제나 내 연고지에 내가 맡은 일이 있을 순 없어.

가정이 있는 사람은 가정과 떨어져 살아야해.

내가 가정을 꾸릴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건 그리 좋은 미래는 아닌거 같아.

가족과 함께 있지 않다는건 그만큼 내 가족과의 인생이 없다는거야.


노가다 일은 결국 배달과 같이 모두가 마지막으로 미루다 오는 곳이야.

사업에 실패한사람, 할 줄 아는 일 없고 취업이 안되서 오는사람,

그냥 온 사람, 뭐 도박하다 온 사람, 범죄를 저질른 사람

온갖 사람들이 다 모여들어.

밖에 배달하는 사람들 중 한 10명쯤 랜덤으로 갑자기 내일부터 니 동료라 생각해봐.

끔찍하지? 혹은 이갤 게이들중 랜덤으로 낼 부터 10명쯤 니 동료라 생각해봐.

가족보다 함께 있는 시간이 더 많아. 어때 끔찍하지?

물론 좋은 사람도 있어.


주변에 누군가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나 자신도 많이 바뀌고 인생도 바껴.



6. 성향

앞만 보고 가다가 조금씩 브레이크가 걸리니

나자신을 좀 돌아보게 되었어.

나는 이 일에 정말 맞는 사람인가?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때 내면에 평화가 온다는데

나는 홀로 있을때 내면에 평화가 오는 사람 같아.

노가다를 하면서 많이 바뀌었어.

남한테 피해 안주고 싫은소리 하기 싫은 그런사람이였는데

많이 드새지고 깡도 생기고 목소리도 커지고.

근데 나는 그릇이 여러사람 품고 팀을 꾸리고 할

사람은 아닌거 같았어.

싸움잘한다고 장군이 되는게 아니거든. 일꾼이랑 리더는 달라. 엄연히 달라.

술자리를 가지며 여러 회사 관리자들과 인맥을 쌓고 친분을 만들고

뭐 사내정치같은 그런거랑도 안맞아.




그래서 나는 더 늦기전에 다른것에 도전해보고자 퇴사했어.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는거라 위에 안적은 이유들도 있을거야.

몸이 부서져라 일했고 열정을 다 했고

몸이 성하진 않은데 노가다 했던게 후회는 없어.

다만 너무 힘들게 일만해서 청춘이였던 20대 추억이 별로 없는게 아쉬워.

돈은 현금이랑 차랑 부동산이랑 뭐 다 해서 한 8천쯤 모았던거 같네.

힘들어서 먹는거랑 입는거는 좀 소비를 했던거 같고

부모님 10~20% 드렸던 거 같고

환갑때 가족끼리 해외여행도 갔고 뭐 여튼..



노가다를 했던 때까지는 1막이라 생각하고

나는 2장을 열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있어.(뭔지는 비밀)

독하게 연락처에 있던 수많은 노가다 관련 사람을 다 지우고

한동안은 모르는 번호로는 연락도 안받았어.

다시 되돌아 가지 않으려고.



언젠가 진짜 내가 망해서 갈 곳이 없을 때 그땐 가야겠지..



다들 부업이든 전업이든 배달하면서도

자신만의 길을 준비하길 바래.




끝으로 사진 몇개



롯데타워 현장에서. 밑에 보이는게 석촌호수와 롯데월드




꼴에 단가 올라갔다고 안전화는 젤 좋은 15만원짜리 신고 다녔음




방2개 전세집 이사했을때 찍은 사진. 원룸 월세 살다가 투룸전세로 가서 기분좋아 찍은듯.




도면인데 내 핸드폰에는 언제나 일상사진 보다는 도면이 가득했어. 일벌레였어 일벌레.



전기실 일부 사진. 공사 다 끝났을때 사진은 아니야.

실제로 삼성반도체 전기실은 축구장 몇개보다 크다.



다들 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