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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 말기부터 시작된 왜구의 침략은 명의 건국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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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깔하던 명의 초대군주 주원장

조선에게도 틈만나면 전쟁협박을 해댔는데

왜구문제 역시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명 태조 주원장은 당장 일본에게 사신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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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도착한 명나라 사신들은

당시 북조와 대립하고있던 고다이고 천황의 아들

가네요시 친왕과 만나게 된다.

이떄, 주원장의 칙서를 보여주는데

내용은 일본측이 더 이상 왜구의 해적행위를 방치한다면

명 왕조에서 군사를 보내 해적을 멸하고

일본으로 와서 「일본국왕」을 체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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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노한 가네요시 친왕은 그자리에서

명의 사절 17명 가운데 5명을 살해했고, 양재와 오문화(吳文華) 등 2명을 3개월 간 구류하였다.

물론 왜구를 단속하라는 명령도 그냥 씹어버려서

왜구는 여전히 명의 산동(山東)、절강(浙江)、복건(福建) 일대에서 기승을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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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1년

가네요시 친왕은 명나라에 국서를 보내는데,

그 내용은 명사 일본전에 전문이 실려있다.

臣聞三皇立極、五帝禪宗、惟中華之有主、豈夷狄而無君? 乾坤浩蕩、非壹主之獨權、宇宙寬洪、作諸邦以分守。蓋天下者、乃天下之天下、非壹人之天下也。臣居遠弱之倭、褊小之國、城池不滿六十、封疆不足三千、尚存知足之心。陛下作中華之主、為萬乘之君、城池數千餘、封疆百萬里、猶有不足之心、常起滅絕之意。夫天發殺機、移星換宿。地發殺機、龍蛇走陸。人發殺機、天地反復。昔堯、舜有德、四海來賓。湯、武施仁、八方奉貢。臣聞天朝有興戰之策、小邦亦有禦敵之圖。論文有孔、孟道德之文章、論武有孫、呉韜略之兵法。又聞陛下選股肱之將、起精鋭之師、來侵臣境。水澤之地、山海之洲、自有其備、豈肯跪途而奉之乎? 順之未必其生、逆之未必其死。相逢賀蘭山前、聊以博戲、臣何懼哉? 倘君勝臣負、且滿上國之意。設臣勝君負、反作小邦之羞。自古講和為上、罷戰為強、免生靈之塗炭、拯黎庶之艱辛。特遣使臣、敬叩丹陛、惟上國圖之。


신(臣)은 삼황(三皇)이 등극하시고 오제(五帝)가 종묘를 제사하심을 들었나이다. 그러나 다만 중화(中華)에 군주가 있는데 어찌 이적(夷狄)에 군주가 없다 하겠습니까? 땅은 넓고 한 군주만의 권력은 아니며, 우주만 지극히 넓고 여러 나라가 나뉘어 지키고 있으니, 대저 천하란 곧 천하의 천하이지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닙니다. 신은 멀리 약한 왜국에 있습니다.

좁고 작은 나라에 성지가 60이 채 안 되고 봉토는 3천도 안 되지만 족함을 알고 있습니다. 폐하(명 태조)께서는 중화의 주인이 되어 만승의 군주에 오르셨으니, 성지가 수천 개가 넘고 봉토는 백만 리나 되건만 아직도 부족함을 모르고, 항상 (다른 나라를) 멸하여 끊을 생각을 하십니다.

무릇 하늘이 살기(殺機)를 발하면 별자리가 옮겨가고 땅이 살기를 발하면 용이 뭍을 달리며, 사람이 살기를 발하면 천하는 뒤집힐 것입니다. 옛 요·순이 덕이 있어 사방의 바다에서 내빈이 왔고 탕, 무가 인을 베풀어 팔방의 국가가 조공을 바쳤습니다.


신은 천조에서 전쟁을 일으킬 계획이 있다고 들었는데, 소국(일본)도 적으로부터 나라를 방어할 방책이 있습니다. 문으로 논하면 공·맹의 도덕 같은 문장이 있고, 무를 논하면 손무(孫武)·오기(吳起)의 도략 같은 병법이 있습니다.


또 들으니 폐하가 수족과도 같은 장군을 뽑아서 정예 군대를 일으켜 신의 국경을 침범한다 합니다. 수택(水澤)의 땅에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섬(일본)이 스스로 방비를 갖추고 있는데 어찌 기꺼이 무릎을 꿇고 받들겠습니까? 순종한다고 반드시 살아남는 것이 아니고, 거역한다고 반드시 죽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 만나서 하란산(賀蘭山) 앞에서 박희(博戲)로 승부를 가리는 것을 신이 어찌 두려워하겠습니까?

군주가 승리하고 신하가 지면 한동안은 대국의 마음이 차겠습니다만 신하가 승리하고 군주가 지면 오히려 소국에 수치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예로부터 화의를 강구하는 것이 상책이고 전쟁을 피하는 것이 강한 것이라 한 것은 생령을 도탄에 빠지는 것을 면하고 백성을 간난에서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특별히 사신을 보내 황궁에 예를 갖추오니 이 점을 헤아려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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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한 이런 내용의 국서를 받은 주원장은 격노하여

일본을 정벌할까 고려했지만

원나라 시절에도 실패했던 경험을 되살려

포기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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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7년 일본에서 사자로 온 여요(如瑤)가 승상 호유용(胡惟庸)의 모반을 지지하였으며

화약과 도검 등의 병장기를 숨겨두고 홍무제를 죽이려던 음모가 있었음이 발각되어,

이후 아시카가 막부에 의해 재개될 때 까지 명과 일본의 관계는 단절되었다.

반란을 일으킨 호유용은 모기에 물려죽는 처형을 당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