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db68674e3dd68a361e8d9ad41c03e6f785edfab5f92dae4f8565c37ea30357c0318898a

태종의 장남이자
태종의 첫 왕세자 양녕대군

유교 국가인 조선은 장남의 왕위계승을 매우 중요시 했는데
정작 정종 태종 모두 장남이 아니라서 유교국가임에도
장남 왕위 계승이 이뤄지지 않은 시점에서

처음으로 장남이 왕세자가 된 사례였다.

왕이 된다면 조선 역사상 가장 강한 정통성을 가진 왕이 될 수 있었다.

7fed8174b58569f020ef87e54781756d63bd2ba0412708cdc38dfafe5f01704704fbf142d9faa10e644c

양녕대군이 17살이 되던 1410년 명나라 사신이 조선에 방문했고
이 때 양녕 또한 왕세자 자격으로 연회에 참석한다.

그리고 양녕은 여기서부터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29b2c728e9dd39a220b5c6b0119f2e2dfefd2ae1b536399a18bbf33a

바로 기생 봉지련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 때 양녕은 유부남이었는데 봉지련한테 홀딱 반해서
궁궐에 까지 불러서 쿵떡을 치는 추태를 부리는데
이게 태종한테 딱 걸려버린 것이다.

28b9d932da836ef038e987e641857d6b1b290d5ec705d79b95cf5c42a458c5f884f8

28b9d932da836ef038e987e64183726f8bf1c541a487ccae97b9fc583032917dfb54

그러자 양녕은 봉지련 없인 못산다고 징징거렸고
아버지 태종은 이러한 양녕을 용서하고
봉지련에게 비단을 주고 내쫓는다.


29eb8975b7866eac7ebcd4ec1bd77d2856623247201b7eb551a992af547b3dd5dbdeb7

하지만 양녕은 봉지련을 바로 잊고 소앵 초궁장 등등과 계속해서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심지어 매형의 첩과도 연애를 했었다.

하지만 태종은 이러한 양녕을 모두 눈감아 주고 있었는데

양녕은 여기서 멈추지않고 대형사고를 치게된다.

24b0d121e0ed69fe36ed85e040897568c2f77ebda4a4a9c80f9f7e7d1bdda64b889e75bd7cbc57b64323

당시 어리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이 여자가
명기+존예라는 소문이 돌았었다.

이 소문을 들은 양녕은 어리를 납치해서
성폭행한 뒤 아이까지 가지게 만들었는데

7cee8775bd8269b337e68eec42877335b66afce74ca72e6c3f718579b0cb45a84946ef

알고보니 이 어리가 중추원부사 곽선의 첩이었던 것이다.
쉽게 말해 고위 공무원의 첩인 것이다.


20bcc834e0c13ca368bec3b9029c7673f852cc13d4d05881633a8d9bafa782

이 소식마저 들은 태종은 양녕을 궁에서 쫓아내 버린다.

그러자 이 망나니 새끼는
"아빠도 첩 존나 끼고 놀면서 왜 나한테만 지랄이야" 울면서
징징거렸고 결국 양녕은 폐세자가 되어 동생인 충녕대군에게
왕세자 자리를 물려주게 된다.

그리고 뒤를 이은 충녕이 바로

7ced8870b1866eff3ff187fb1cc1231d035dcf03323e67ad9f4a

세종이었다.



a14004ad351bb45d9ef1dca511f11a39e97375c1ac152d50

그렇게도 강인하고 잔혹했던 이방원도
자식 앞에서는 아버지였는지

자식새끼한테 패드립에 가까운 소리를 듣고도
양녕이 불쌍해서 폐위되는 양녕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리고 태종이 죽을 때 세종에게 양녕이 잘못된 길을 걸을 것 같으면
죽여도 된다고 유언을 남겼지만 세종은 이런 못난 형을 죽이지 않고
남은 여생을 편히 보내도록 도와주웠다.

그러나 세종이 양녕보다 먼저 죽고
단종이 즉위하자 수양대군 편에 서서 정변에 가담했으며

단종을 죽이는걸 머뭇거리는 세조에게
빨리 죽여버리라고 재촉한 것도 양녕이었다.

단종은 양녕의 친조카였다.

- dc official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