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일간지 벨트(Welt)에 실린 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별표 달린 옮긴이 주석은 모두 제가 단 것입니다.
원문: https://www.welt.de/157801520
양복 1벌에 소요되는 60시간의 노동과 10000번의 바느질
필립 카시어 – 2016년 8월 22일
미친 개들과 영국 놈들이 대낮에 뛰쳐나오다.* 새빌로우에서 제일 오래된 양복점인 헨리 풀의 테일러들이 한여름에 트위드 양복을 선보이고 있다. 사이먼 컨디(왼쪽에서 4번째)가 7대째 가업을 이끌어가고 있다. * Mad Dogs and Englishmen are out in the Midday Sun. 노엘 커워드의 1931년 노래 제목. 열대 지방에서 대낮에 밖에 나가는 사람들은 영국인들밖에 없다는 걸 풍자한 노래.
90년대 초반 뉴욕의 칼라일 호텔 스위트룸에 들어온 양키(Yankee)는 그 양복점 최고의 고객들 중 한 명의 추천을 받고 찾아온 미국인이었다. 평생에 걸쳐 최대한 마지 못해 하는 투로 일을 시작해온 헌츠맨 앤 선즈의 마스터 테일러 브라이언 홀에게 그날이라고 유쾌한 기분이어야할 이유는 없었다. 그는 조수인 리처드 앤더슨을 옆에 두고 조금 투덜대면서 그 미국 남자가 청색 싱글 브레스트 수트를 맞추고 싶다는 사실을 접수했다.
남자가 넓게 퍼진 어깨를 원하자* 홀의 투덜거림이 한층 심해졌고, 남자가 펑퍼짐한 허리선을 원하자 홀이 시뻘개진 얼굴로 "선생님, 귀하께선 제 헌츠맨 고객상에 부합하지 않습니다"라고 정중히 말했지만 여기서"선생님(Sir)"이 "바보 멍청이(Vollidiot)"를 뜻한다는 건 누가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이 말이 헌츠맨에게 그저 달러 한웅큼이 아니라 그보다 많은 액수를 남기고 갈 수도 있었을 새 고객에게 새빌로우의 대변인이 던진 마지막 한마디였다.
__________________
* 80년대 유행했던 조르지오 아르마니 스타일.
리처드 앤더슨이 오늘 런던의 양복점 거리 13번지에 있는 자신의 작업대에서 그때의 만남을 회상하자, 그의 곱슬머리 아래로 "그땐 그랬지"라는 조소(嘲笑)가 떠오른다. 2001년 이곳에 남성으로선 지금까지 마지막으로 자기 가게를 연 앤더슨에게 홀과 같은 태도는 생각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의 옛사장과 스승을 여전히 칭송한다. "믿기 어려울 만큼 정확한 재단사였죠. 단지 처세술을 타고나지 못했을 뿐이지." 누구든 앤더슨이 크기 45cm 가위로 정확히 1mm로 천을 잘라나가는 모습을 본다면, 오직 어떤 비범한 사람만이 그에게 그런 능력을 전수할 수 있었음을 바로 알게 된다. 동시에 앤더슨이 홀 같은 사람의 통치를 겪으면서도 자기 자신은 스놉(Snob)과 군인이 뒤섞인 인간이 되지 않은 것에 대한 존경심 또한 우러난다.
- 최고의 맞춤복 제작 업체들
딱 170년 전, 헨리 풀이 이곳에 개업한 이래로 런던 메이페어 지구의 벽돌집들이 들어찬 이 골목길엔 양복점들이 있어 왔다. 헨리 풀은 – 앤더슨 앤 셰퍼드와 더불어 – 손으로 제작한 최고의 신사복 제작자라는 타이틀을 차지하려는 헌츠맨의 영원한 경쟁자 중 하나다. 헌츠맨은 오늘날까지도 선명한 허리선과 각진 어깨를 갖춘 구조적 재단을 꿋꿋이 고수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거긴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르는데, 그건 리처드 앤더슨에게도 해당된다. 이와는 반대로 앤더슨 앤 셰퍼드의 기본 형태는 "부드러운 외관(Softlook)"으로 이태리 제품을 연상시킨다. 헨리 풀은 적어도 한 가지 스타일만은 분명한데, 이 업체에선 별다른 요구가 없으면 말털과 아마포(Buckram)로 된 내부 조직이 들어간 옷을 받게 된다.
새빌로우는 리처드 앤더슨이 견습생으로 들어가던 1982년 이전에 이미 남성적 우아함의 최고 중심지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 기성복의 대두, 모즈(Mods)* 같은 청년운동을 통해 전파되는 유행,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대부분 이태리 출신의 디자이너들,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맞춤복 제작자들은 늘 적절하게 대응하진 못 했다. 그들은 몇십 년 동안 "주인님(Milord)"이라고 부르면 돈을 더 받을 수 있었던 지독히 보수적인 고객층을 지나치게 신뢰했다. 재봉사들의 작업장과 재단사들의 공간 사이에는 아무도 침범하지 않는 경계선들이 있었고, 70년대까지만 해도 브라이언 홀 같은 마스터 테일러가 길거리로 나서면, 견습생이 길 옆으로 비켜났다.
__________________
* 모더니스트(Modernist)의 준말로 스쿠터를 타고 록음악을 즐기던 영국의 청년 문화.
- 계속 -
재밌네요 ㅋㅋ - dc App
3부 연재입니다. 밤에 마저 해야지.
kk형... 다음 글 기다릴테니 까먹고 주무시면 안돼요 추천쾅
오 재밌다
잘 읽었습니다
kk횽 아주 재밌고 진귀한 글 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봤어요^^
우왕국. 이런 종류의 글들 때문에 백갤하는거 아니겠습니까. 잘 읽었습니다.
역시 kk형 ㅋㅋ 잘 읽었어요! 수고 많으셨어요!
이런거 좋습니다 ~ 잘읽었어여 ㅎ - dc App
이쪽 업계의 성지도 역시 도제식 위계질서가 엄청나네요‥ ㄷㄷ 정말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dc App
잘 읽었습니다.다음글 감사히 기다리겠습니다.
kk님, 이런 글을 읽을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여러모로 산업혁명 이후로 복식에 있어서도 유행이란게 참 크게 작용을 해서, 새빌로 같은곳들이 점점 힘을 잃는것 같아 보여 슬프네요. 글은 매우 잘 읽었습니다. 이걸 독일어로 읽어야 안까먹을텐데 게을러서 그러지를 않네요 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