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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범한 능력의 소유자인 리처드 앤더슨은 새빌로우에 남자로서는 가장 근래에 개업했다.


- 새빌로우의 번성과 쇠퇴


리처드 앤더슨의 도제 수업이 시작되었을 때, 헌츠맨 진열창은 아직 간유리였고, 그 어떤 것도 유행처럼 지나가버리는 것처럼 보여선 안 되었다. "그 진열창 뒤에선 짙은 색 나무 패널에 둘러싸여 무식하게 담배들을 피워댔죠"라고 앤더슨이 – 누구든 그가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 조명으로 환하게 밝힌 그의 매장에서 얘기한다. "홀과 그의 동료 콜린 햄믹은 매일 각각 어림잡아 담배 3갑은 피워없앴어요. 그래서 햄믹은 양복을 하루에 3번 갈아입었죠. 그는 티나 터너 공연 갈 때도 쓰리피스 수트를 입고 갔어요. 그는 미국 사람들을 위해선 일하고 싶어하지 않았고, 자신의 완벽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꽤 많은 실습생들을 데리고 있었죠. 그리고 몇 벌을 만들었는지, 그런 덴 정말 아무 관심이 없었어요." 앤더슨은 여기서 오늘날까지도 통용되는 – 단추 하나만으로 앞을 채우게 되어 있는 긴 재킷인 – 헌츠맨-룩을 창안한 남자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밖에도 햄믹은 70년대에 정기적으로 "그해의 남자 베스트 드레서(Best dressed Man of the Year)"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런던 사람들은 이러한 큰 사업을 잃었다. 헐리우드와 더불어 – 90년대에는 제임스 본드마저 브리오니로 갈아입었다 – 20세기 말에는 수많은 최고경영자들, 기업가들, 귀족들을 잃었다. 대다수 업체들은 그때부터 헨리 풀을 빼고는 더 이상 가족소유가 아니었고, 많은 업체들은 기성복을 새로 도입해보려 했다. 바로 그 무렵이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과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저질 영국 코미디쇼"*라고 말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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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 원문은 이렇다. "Savile Row is a bad English comedy, a melodrama lost in the past."

최근엔 당연히 브렉시스가 사람들 대화를 지배한다. 세계의 대다수 비지니스맨들과 마찬가지로 영국스러움으로 무장한 테일러들 대부분은 유럽연합에 기꺼이 잔류하길 원한다. 무엇보다 그들이 만든 맞춤 양복의 광채가 다시금 빛을 발하고 있다. "그건 요리사들도 마찬가지예요"라고 앤더슨이 말한다. "20년 전엔 요리사들에게도 관심 갖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는 요새 그의 밑에서 무급으로 6주 동안 실습하려는, 매주 30건에 달하는 젊은이들의 요청을 받는다. 공방의 평균연령은 점차 낮아지고 있어서, 40세 미만인 이들이 공방에 들어와 있다. 손으로 만든 세계 최고의 신사복을 제작하고자 하는 욕구가 견습생들을 불러모으고 있지만 "코트 제작자(Coat maker)"의 자격을 얻기까지는 4-5년 동안 인고의 세월을 겪어야하고, 재단사로서 치수를 재고 견본과 원단을 자를 수 있기까지는 9년이 걸린다.

리처드 앤더슨의 아틀리에에서 그가 거울 앞에서 치수 재는 모습을 보면, 도제수업이 왜 그렇게 오래 걸리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다. 그는 보지도 않고 그의 일꾼들이 처리해야할 번거로운 많은 절차들을 해결해버린다. 모든 측정은 정확하고, 끊임없이 살짝 당겨보고, 만져봐서 불규칙한 신체 부위가 아무리 작더라도 그냥 남겨두지 않는다. 들린 어깨, X자로 굽은 다리, 넓은 허리, 기다란 목, 불룩한 배, 작은 머리, 이 모든 것들이 그처럼 경험 많은 남자에겐 대수롭지 않다. 우리는 잉글랜드에 있는 것이다. 그는 이미 포장지로 된 재단 견본을 짜맞출 때 문제가 되는 부위에 대한 해결책을 생각해낸다. "타고난 자기 모습보다 더 나아 보이고 싶은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옵니다"라고 앤더슨이 BBC 앵커 음성으로 말한다. "우리에게 그럴 능력이 더 이상 없다 싶으면, 짐 싸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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