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밥에 김치, 간장만 먹고 일궈 온
국제시장적 시대정신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만
소득과 소비의 분리가 자본주의의 가장 큰 장점임에도
공산주의처럼 살아야만 버틸수 있었던 그 세월에
주름처럼 깊게 박힌 가치관들을 마주할 때면
반면교사처럼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깨닫곤 한다.
대가는 가치와, 또 그 가치는 만족과
정비례할 것이라는 전제를 못박아두고서
그 대가를 지불할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해당 가치와 만족이 허락되어야 한다는 듯한
내적 외적인 모든 통제는 천민 자본주의에 불과하다.
대가와 만족의 연관성을 집착하지 않을 때서야
낮은 대가로 시작된 만족이 결코
높은 대가로 얻게된 만족에 밀려나지 않고 양립하며
가격이 아닌 가치를 논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그 자유로운 자본주의의 시작 위에서는 정작
소득을 크게 이탈않는 한, 만족을 위해 지불되는 대가는
상대적으로도 절대적으로도 무의미해진다.
대가에 맞춰 만족을 감각하는 것이 아니라
만족을 위해서 대가는 감수하는 것이고
그저 그 수단으로만 자본이란 것이 쓰이며
나의 생산과 소득으로 계급화되거나 제한되지 않는다.
즉, 자본을 통한 해방과 자유가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론
호텔식이니 미슐랭이니 매번 대접해봐도
결국 집에 와서 열무김치에 밥 비벼먹던
맛 모르는 멋 없음이 그 훗 날 남긴
즐겁게 누리고 살라는 유언과는
너무나 큰 괴리감으로 다가온 동시에
종교적 구도자도 아니면서 스스로 한계 짓고 살아온 그 삶이
구원보다 회한만 줄 뿐이란 걸 목도하고 나니,
죽어서야 가장 비싼 맞춤 옷 입어 보는 그 삶으로부터
가장 먼 곳의 멋과 맛에 이르고 싶어졌고
자본주의 안에서 자유주의자로 산다는 방향이 잡히며
비로소
대가와 가치의 강박적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게되어
그 사이에서 유연하게 만족을 음미할 수 있게되었다.
그렇게
대가는 가치, 만족과 정비례한다는 착각으로
입던 옷보다 비싼 옷을 사입어야만 만족이 들고
그러기 위해서 더 큰 소득을 전제로 둬야 했던 나는
스파 브랜드에서 푼 돈으로 옷을 살 때의 만족이
백화점 편집샵에서 큰 돈의 옷을 사며 느낀 만족 후에도
병행하고 양립시키는데 유연해지며 능숙해질 수 있었고
소득의 양적 확장뿐 아니라 소비의 질적 확장에
주안점을 두며 삶을 풍요롭게 가꾸다보니
어느새 여러 도시의 맛집 추천을 부탁받고
멋의 비결을 빈말이라도 질문받는 행복에 이른 듯하다.
물론 직업적 성취나 가정의 번영 자식의 성장 등
행복할 삶의 꼭지는 얼마든지 더 있겠으나
그 행복들에 시너지가 된다는 점 만큼은
내 훗날 말로써 유언 남기지 않아도
일치되어 전달될 만큼과도 같다.
쓰고보니 이 글을 쓰게 만들 글이 삭제되어
다소 허무하지만 누군가에게만큼이라도
그저 공허한 긴 글이 아니었길 바란다.
네 줄 요약)
아톨리니를 못 살 소득에 구속될지언정,
아톨리니로 행복할 소비는 해방시켜둬라.
아톨리니 자리에 무엇이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그게 자유주의 자본주의다.
국제시장적 시대정신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만
소득과 소비의 분리가 자본주의의 가장 큰 장점임에도
공산주의처럼 살아야만 버틸수 있었던 그 세월에
주름처럼 깊게 박힌 가치관들을 마주할 때면
반면교사처럼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깨닫곤 한다.
대가는 가치와, 또 그 가치는 만족과
정비례할 것이라는 전제를 못박아두고서
그 대가를 지불할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해당 가치와 만족이 허락되어야 한다는 듯한
내적 외적인 모든 통제는 천민 자본주의에 불과하다.
대가와 만족의 연관성을 집착하지 않을 때서야
낮은 대가로 시작된 만족이 결코
높은 대가로 얻게된 만족에 밀려나지 않고 양립하며
가격이 아닌 가치를 논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그 자유로운 자본주의의 시작 위에서는 정작
소득을 크게 이탈않는 한, 만족을 위해 지불되는 대가는
상대적으로도 절대적으로도 무의미해진다.
대가에 맞춰 만족을 감각하는 것이 아니라
만족을 위해서 대가는 감수하는 것이고
그저 그 수단으로만 자본이란 것이 쓰이며
나의 생산과 소득으로 계급화되거나 제한되지 않는다.
즉, 자본을 통한 해방과 자유가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론
호텔식이니 미슐랭이니 매번 대접해봐도
결국 집에 와서 열무김치에 밥 비벼먹던
맛 모르는 멋 없음이 그 훗 날 남긴
즐겁게 누리고 살라는 유언과는
너무나 큰 괴리감으로 다가온 동시에
종교적 구도자도 아니면서 스스로 한계 짓고 살아온 그 삶이
구원보다 회한만 줄 뿐이란 걸 목도하고 나니,
죽어서야 가장 비싼 맞춤 옷 입어 보는 그 삶으로부터
가장 먼 곳의 멋과 맛에 이르고 싶어졌고
자본주의 안에서 자유주의자로 산다는 방향이 잡히며
비로소
대가와 가치의 강박적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게되어
그 사이에서 유연하게 만족을 음미할 수 있게되었다.
그렇게
대가는 가치, 만족과 정비례한다는 착각으로
입던 옷보다 비싼 옷을 사입어야만 만족이 들고
그러기 위해서 더 큰 소득을 전제로 둬야 했던 나는
스파 브랜드에서 푼 돈으로 옷을 살 때의 만족이
백화점 편집샵에서 큰 돈의 옷을 사며 느낀 만족 후에도
병행하고 양립시키는데 유연해지며 능숙해질 수 있었고
소득의 양적 확장뿐 아니라 소비의 질적 확장에
주안점을 두며 삶을 풍요롭게 가꾸다보니
어느새 여러 도시의 맛집 추천을 부탁받고
멋의 비결을 빈말이라도 질문받는 행복에 이른 듯하다.
물론 직업적 성취나 가정의 번영 자식의 성장 등
행복할 삶의 꼭지는 얼마든지 더 있겠으나
그 행복들에 시너지가 된다는 점 만큼은
내 훗날 말로써 유언 남기지 않아도
일치되어 전달될 만큼과도 같다.
쓰고보니 이 글을 쓰게 만들 글이 삭제되어
다소 허무하지만 누군가에게만큼이라도
그저 공허한 긴 글이 아니었길 바란다.
네 줄 요약)
아톨리니를 못 살 소득에 구속될지언정,
아톨리니로 행복할 소비는 해방시켜둬라.
아톨리니 자리에 무엇이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그게 자유주의 자본주의다.
고봉민 김밥이요??
그런 가정에서 자란 그런 아이들은 죽어도 몰라
시방 쪼까 거시기허구마잉
글 진짜 못쓰네 - dc App
쉬운말을 어렵게 풀거면 안쓰는게 나아. 일기장에
내용은 좋은데 글은 못 쓰시네요 딱 수능 마치고 논술 다니는 애들 느낌인데 - dc App
헤밍웨이는 독자가 글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면 그건 글쓴이가 자신의 얕은 지식을 감추려고 일부러 복잡하게 썼거나, 뜻이 잘 전달되게 쓸 능력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창과 1학년의 글같구나
뇌피셜..
글 존나 못쓰네.. 내 20년전을 보는듯 - dc App
문장 길이는 짧을수록 좋아 이런 식으로 쓰면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바로 퇴색되어버림
첨삭들 오지네ㅋㅋㅋ 난 잘읽고 간다 공감한다
그래도 행복을 위한 가치들에 우선순위란게 있고 보편적 우선순위서 옷이 가지는 포지션에 비해 아톨리니급은 대가가 과도하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