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제화의 마지막 세일.
그것은 12월 30일 로또 1048회 추첨일과 의미를 같이 한다.
즉 14.8과 관련 있다.
명동역 6번 출구로 나가서 조금 걸으면 금강제화 명동점이 나온다.
명동의 터줏대감과 같은 존재다. 보통 백갤 고인물이라면 신세계 본점 지하던젼이나
롯데백화점 헤리티지 매장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신세계 본점 지하던젼은
오래 전 철수해서 본관 6층으로 옮겼다가 다시 문을 닫고 본관 3층 구두매장에서 운영 중이다.
신세계 본점 6층의 '젠틀커브' 매장에 버윅, 로크, 까르미나 같은 구두들이 진열돼 있다.
그들에게 헤리티지 매장 철수한 이야기를 하니 "쌤통이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과연.
내가 봐도 단순한 애국심만으로 세일해서도 40만원 넘는 돈을 주고 7천번대를 살 이유는 없어 보였다.
실제로 오랜만에 7천번을 신어보니 이건 뭐 오징어 가죽이 따로 없었다. 한두달만 신으면 분명 축축
해변에 널부러진 미역줄기처럼 늘어질 것 같았다. 매장 직원들 역시 눈빛에 생기 없이 '누구든 올테면
와라'하는 식으로 장사하는 게 느껴졌다.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가서 명동 금강제화 본점에 가보았다.
예전에는 2층에 헤리티지 리갈 매장을 단독으로 운영했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2층으로 올라가려 했다.
그러나 매장직원이 황당하다는듯 "거기는 문 닫았어요" 라며 나를 말렸다.
그래서 돌아보니 1층 출입구 바로 우측에 작달만한 3개의 선반 위에 헤리티지 리갈 5천, 7천, 9천(블랙)이 엉겨붙어 있었다.
아니? 이게 한때 처치스를 위협하던 그 헤리티지 리갈이란 말인가? 로크 씹바르고 헤링슈 조지던 그 헤리갈이란 말인가?
은은한 오렌지 감귤빛 조명에 원목 선반 위로 으쓱 앞코 라스트를 내밀던 그 수려한 광경은 어디로 가고.
초라하게 랜드로바와 팀버랜드 곁을 지키고 서 있는 녀석들을 보니 내 가슴 한 구석이 아려 왔다.
"너희들 여기서 뭐하는 거니?"
그리고 직원은 내가 안중에도 없다는듯 마지막 재고정리를 하고 있었다. 세일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
내 눈에 9천번 블랙라벨 윙팁이 들어왔다. 한번 신어보겠다고 하니 맘모스처럼 생긴 여직원이 흠칫
놀라며 "손님, 저희 제품 좀 사보셨나봐요?" 되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신세계 본점 지하던젼
이야기를 꺼냈는데 영 알아먹지 못하는 눈치였다. 아마 신입직원인 것 같았다.
그래서 9천번 구두를 신어보니 이럴수가. 내 발에 딱 맞는 것이었다. 헤리갈, 역시 넌 나를 잊지 않았구나.
그러나 직원들은 심드렁한 표정에 간혹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팀버랜드를 파는데 여념이 없었다.
세일 마지막 날인데도 금강제화 명동점은 문전성시를 이루기는 커녕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아마 금강도 내년 쯔음에 유동성 위기가 오면 회사경영이 어려워질지 모른다. 그 때가 되면 헤리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9천번을 결제하려고 지갑을 꺼내던 순간 (선결제 후 취소하고 상품권 신공) 순간 어떤 백갤러의 말이 떠올랐다.
"어리석은 녀석, 너는 구두가 필요하지 않아. 너는 단지 코스프레를 했을 뿐이야"
그건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맞다. 나는 그냥 아이템 사냥과 코스프레를 즐겼을 뿐이다.
이 구두는 내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구두를 내려 놓고 금강제화 명동점을 나왔다.
연말 분위기에 한껏 취한 거리에 벌써부터 크리스마스 트리가 보였다.
사놓은 처치스도 한달에 한두번 신을까말까인데 과연...백갤러 고맙다.
내 지갑을 굳게 해줘서.
재밌네 ㅋㅋㅋㅋ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