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증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평생 병원을 가본 적은 없다. 어떻게든 낙천적으로 살아보려고 버텼다. 괜찮은 척, 별일 아닌 척, 웃으면서 살아보려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내가 그동안 괜찮았던 게 아니라 그냥 버티고 있었던 거라는 걸.
우리 집은 늘 가난했다. 어머니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능력이 없었고, 어릴 때부터 삶은 늘 불안정했다. 초본을 떼면 주소지가 수두룩하게 나올 정도로 이사를 많이 다녔고, 월세와 단기임대를 전전하며 살았다. 열아홉, 스무 살쯤에는 어머니가 전입신고를 제때 못 해서 국가에서는 갓 성인이 된 나를 병역 회피자로 의심했고, 나는 검찰 소환조사까지 받았다. 결과적으로 집행유예로 끝났지만, 어린 나이에 그런 일을 겪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 버거웠다. 지금 생각해도 참 스펙터클한 인생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도 나는 흔한 브랜드 운동화 하나 제대로 신어본 적이 없었다. 나이키, 아디다스 같은 건 남의 얘기였다. 교복 말고 사복은 엄마가 시장이나 여기저기서 구해온 옷들로 버텼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내가 또래보다 덩치도 좀 있었고 성격도 워낙 낙천적인 편이라 왕따를 당하진 않았다는 거다. 교우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돈이 없다는 이유로 남들이 10대에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을 나는 거의 해보지 못했다. 사실 10대뿐만이 아니다. 20대도, 30대가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고등학생 때는 행정실에서 교내방송으로 내 이름을 부르며 내려오라고 하는 일이 잦았다. 급식비가 안 들어왔다, 이것도 미납이다, 저것도 안 됐다. 내려가면 늘 돈 얘기였다. 어린 마음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죄송하다는 말밖에 없었다. 그게 얼마나 수치스럽고 무기력한 일이었는지 아직도 기억난다.
그 시절 나는 기숙사 학교에 갔다. 지금 와서는 그게 무료였는지 유료였는지도 헷갈린다. 다만 분명한 건 가족이 흩어져 지내야 했고, 나는 반강제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됐다는 거다. 집에는 누나, 엄마, 아빠, 그리고 내가 있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더는 같이 살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정확한 기억은 흐릿해도, 그때 느꼈던 막막함과 서러움은 아직 남아 있다.
내 삶은 내내 고됐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속은 늘 힘들었다. 나는 생각보다 순진했고, 착하게 살려고 했다. 그래서였는지 20대에는 사람을 너무 믿었다. 사람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결과는 금전사기였다. 그렇게 나는 20대를 빚 갚는 데 거의 다 써버렸다. 신용카드도 30대가 돼서야 처음 만들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술과 담배는 배우지 않았다. 힘들긴 했지만 그런 것에 기대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도 내일이 있으면 희망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다. 돌이켜보면 그거 하나는 정말 잘한 것 같다.
연애도 해봤다. 지금까지 여자친구를 여섯 명 정도 만났다. 그런데 그중 세 번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헤어졌다. 노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부모님이 있고, 언젠가는 내가 모셔야 할 것 같고, 나는 아직도 월세집에 산다. 예전처럼 몇 달마다 쫓기듯 이사 다니는 수준은 아니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삶이다. 과감하게 독립하고 싶다가도 결국 못 한다. 가족이라는 게 뭔지, 피라는 게 뭔지, 쉽지가 않다.
사람들 앞에서는 늘 허허실실 웃는다. 괜찮은 사람인 척, 긍정적인 사람인 척, 좋은 사람인 척 살아간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 모습은 다 가면이다. 진짜 나는 그렇게 밝지 않다. 그렇게 단단하지도 않다.
평생 돈이 없으니 결국 친구도 남지 않았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혼자 스스로를 가두고 살게 됐다. 숨쉬기 힘들 정도로 답답할 때가 많고, 가끔은 공황장애처럼 숨이 가빠지기도 한다. 사람 많은 곳에 가면 미칠 것 같은 순간도 있다. 그래도 어떻게든 정신력으로 버텨보려고, 무너지지 않으려고 발악하듯 살아왔다.
나도 안다. 병원을 가야 한다는 거.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거. 치료가 필요하다는 거. 그런데 이상하게 가지질 못한다. 왜 못 가는지 이제는 그 이유조차 희미해졌다. 그냥 오랫동안 이렇게 살아와서, 힘든 게 익숙해져서, 버티는 게 당연해져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까지 많이 버텨왔다. 남들이 모르는 시간을 혼자 견디며 여기까지 왔다. 낙천적인 척하며 살아왔지만 사실은 매일이 버티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내 이야기를 꺼내본다. 한 번쯤은 괜찮은 척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 않고,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솔직하게 적어보고 싶었다.
겉으로 웃는 사람도 속은 무너져 있을 수 있다. 멀쩡해 보이는 사람도 매일 겨우 살아내고 있을 수 있다. 나도 그랬다. 아니, 지금도 그렇다.
민감부분은 삭제했당..이건 삭제 안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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