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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와 타인에 의해 정의된다. 나 자신이 바라보는 나, 각자 다른 타인들이 바라보는 각자 다른 나... 존재란 인지에 의해 성립하고 나에게는 이 "존재함"을 향한 본질적인 욕망이 있다. 이건 그저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본질적인 욕구다. 식욕, 수면욕, 성욕과 완전히 같은...

또한 나는 단순히 인식됨에서 그치지 않고 존재의 지속적인 안정을 위해 스스로의 가치를 원한다. 즉 내겐 "가치 있는 인간"으로 인식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고 타인과 나누는 상호작용의 목적은 나의 가치를 확인받는 것에 있다.

그래서 만약 타인과, 혹은 나 스스로와 어떤 상호작용 이후 스스로의 가치를 확인할 수 없었다면 나는 필연적으로 불안해진다. 존재의 안정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든 이 불안함을 떨쳐내기 위해 가치를 확인받아야 한다는 강박에 빠진다. 이 강박은 나라는 인간에겐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테지만 그럼에도, 타인과의 관계에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치게 될 행동을 하고 싶게 만든다.

다행히도 나는 이런 행동을 이성을 통해 어느정도 제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안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 본질적인 결함이 나를 우울의 연쇄에 빠져들게 만들고 있다. 이 결함은 타인이 없애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다면 어느정도 완화해줄 수는 있다. 그렇지만 어떤 타인에게도 나를 깊게 이해할 의무는 없다. 그리고 나에 대한 깊은 이해는 상냥한 사람들에겐 나에게 어떤 행동들을 하기를 (주로 이타심에 의해) 강제하게 될 것인데 나는 그게 싫다.

그렇지만 정말 불행히도 누구에게도 나를 향한 그런 깊은 이해가 없다면 나는 커다란 불안과 강박과 우울과 끊임없이 홀로 싸워야 하고 나는 그게 너무 고통스러워서 때때로 타인에게 나를 이해해줬으면 하고 바란다. 그에 대한 죄악감으로 나는 타인에게 가능한 한 상냥하게 대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나는 이에 대해선 감히 확신하기가 힘들다. 확신해버리면 내가 너무나도 뒤틀린 인간임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따라서 내게 필요한 건 스스로의 가치를 향한 확고한 믿음일테지만 그런 걸 가지기란 내겐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결코 포기해버리진 않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살아야만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