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be8837fb08769f43aede9e5468071381ad09ee87fe72da99f3f86350c4c8395beb328a69f4e

나는 여러 모습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진중한 인간이 될 수도 있고 장난스러운 인간이 될 수도 있다. 계획적인 인간이 될 수도 있고 즉흥적인 인간이 될 수도 있다. 예의 바른 인간이 될 수도 있고 버릇 없는 인간이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모습들이 전부 나로부터 파생된 가지 같은 것이라면, 진짜 나는 무엇일까?

나뭇가지는 나무의 일부지만 나뭇가지를 나무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이 문제가 중요해지는 이유는, 이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의 요청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나무를 보여달라는 상대방의 요청에 나뭇가지를 보여주면 상대방은 만족할까?

여기서 나는 나무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애초에 나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즉 나는 원래 나무조차 아니었고 그저 나뭇가지의 묶음일 뿐이라면? 즉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저 상대가 보길 원할 것 같은 형태의 나뭇가지를 보여주는 것 뿐이라면? 그리고 이런 형식의 응답이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나만이 이런 것이라면? 내가 고립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것이 아닐까?

이런 양면성 자체를 나라고 볼 수는 있다. 즉 나뭇가지의 묶음 자체가 나라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하다. 사람들이 서로 바라보는 나무의 몸체가 나에게는 없다. 결국 난 이질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 사실이 날 쉽게 사랑받지 못하게 하고 외롭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든 사랑하는 인간을 이해하고 싶어할 것이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안정감을 얻고 싶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내부에 진정한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속을 아무리 들여다보려 해도 그 편린밖에 보이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내가 자신을 숨긴다고 생각할 것이고 따라서 난 부분적이라도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므로 나에게 두려움과 불신을 가지게 될 것 같다.

이런 스스로의 불안에 위로를 건네볼까? 예를 들어 모든 인간이 사랑하는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고 싶지는 않아할 것이고, 너머에 진정한 내가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보여주는 모습만으로 날 사랑할 수 있는 사람도 분명 존재할 것이라는 말은 어떨까? 솔직히 별로 위로가 안 된다. 그런 사람은 살면서 딱 한 명 뿐이었으니까. 그 한 명조차 나는 실망시켜버렸으니까… 

몸체를 가진 사람들이 부럽다. 내 몸체는 어디로 사라져버린 걸까? 분명 옛날엔 있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때로 되돌아가고만 싶다. 아니, 만약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똑같이 몸체를 잃을 것 같다. 나도 나를 보여준다는 게 가능했으면 좋겠다. 사실 어쩌면 아무에게도 몸체같은 건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나는 왜 고립됐는가? 다른 끔찍한 이유가 있는 걸까? 질문들은 많다. 나는 결국 어떤 사랑을 주고받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