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화를 보기 위해 부석사에 갔다.


영천, 군위, 의성, 안동, 영주로 이어지는 국도를 타고 부석에 다다랐다.


무량수전을 지나 뒷길을 따라 올라가 갈래길에서 오른쪽으로 꺽어 조금 오르면 조사당이다.


선비화는 사당 문켠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의상은 아득한 사람, 그의 손길이 나무가지를 타고 잔잔히 잎새로 살아있는 광경이 낯설다.







내려가는 길에 조문국 사적지에 들렸다. 망루에 올라 주위를 들러보니 산들이 첩첩한 가운데 너른 땅이 자리 잡고 있어서 옛적엔 먹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것 같았다. 몇 달 전 합천 초계분지를 다녀온 뒤부터 목양에 대한 꿈을 자주 생각한다. 내 전생 어느 즈음에 목동이 아니었을까라는


단정도 해보곤 한다. 저 옛 소국小國 어딘가, 풀숲에 내 몸을 뉘이고 따가운 햇살을 삼키며 양들을 사위할 목적도 잊은 채 잠든 모습을 상상했다.




집에 와서 오영수의 '메아리'를 읽었다.



 "피난살이를 부산에서 했다. 아무리 버둥거려 봐도 살 수가 없었다, 살아 갈 재간이 없었다. 무슨 짓이든 못할 게 없겠으나 할 짓이, 할 일이 없었다. 약만 주면 살릴 줄 뻔히 알면서도 그렇지 못해 아이까지 죽었다. 영선고개 판잣집마저 헐리게 되자 별 작정도 없이 그만 떠 버렸다. 진주에서 몇 달 동안 살았다. 목수나 미장이 뒷일꾼으로도 다녀 봤다. 한 달에도 며칠, 그나마도 작자가 달아 품삯은 고사하고라도 제 몫에 돌아오지도 않았다. 그의 아내가 양은그릇을 받아 이고 장사로도 나서 봤다. 주로 촌마을을 찾 아다녔다. 본전도 더 깎지 않고는 팔리지 않았다. 할 일이 없었다. 살아갈 수가 없었다. 산청으로 들어갔다. 여기서는 더 할 일이 없었다."  -오영수 '메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