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엔 살면서 여러가지 것들을
관찰하는게 좋았다.
한 가지 현상을 대할 때면
그 현상 안에 여러 가지 추상적인 개념과
구체적인 것들이 내 머리 속에 들어오곤 했다.

그것들은 하나 둘씩 쌓여 내가 이 세상을 보는
창문이 되기도 했다.
삶의 정착점이 죽음이고,
어떠한 의미도 무의미가 되버리는 과정 중에
사실 의미란 공상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끊임없이 삶의 매순간을 여러 의미들로
채워감으로서 난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이 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 관계는 여러 가지 망상과 의미를 가장한 무의미로
구성되있을지라도 내겐 살아가는 방편이 된다.
난 생을 나름의 방식대로 살아갔다.
삶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게
생을 경험하고자 했다.

요즘 나는 어떠한 것도 마주하기 싫다.
또 나 라는 개념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는게
두렵다.
끔찍한 미래가 연상되고 그러한 미래를 생각할 때
살고 싶은 의욕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하는 걸 피하고 아무런 논리도 없이
시간을 무의미한 말과 행돌들로 채워갈 뿐이다.

게다가 난 요즘 내가 어떤 것도 결코 할수 없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초자연적인 무언가가 내게 동력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
그런 생각들이 간절할때도 있다

내게 생으로의 자유가 부여되기를 기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