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는 것이어서, 30년이 지난 무덤 가에서는 사별과 부재의 슬픔이 슬프지 않고 슬픔조차도 시간 속에서 바래지는 또 다른 슬픔이 진실로 슬펐고, 먼 슬픔이 다가와 가까운 슬픔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인데, 이 풍화의 슬픔은 본래 그러한 것이어서 울 수 있는 슬픔이 아니다.
우리 남매들이 더 이상 울지 않는 세월에도 새로 들어온 무덤에서는 사람들이 울었다. 이제는 울지 않는 자들과 새로 울기 시작한 자들 사이에서 봄마다 풀들은 푸르게 빛났다.
문장에 대한 내 생각
박웅현은 김훈이 슬픔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여러 번 사용한 것을 센스가 있다고 생각하며 각각의 슬픔을 이리저리 해석하는 재미가 있어 이 문장을 뽑은 것 같은데 나는 이걸 절대 잘 쓴 문장으로 보지 않는다. 잘 썼다기보다는 한국어 어휘의 빈약함을 느낄 뿐이다. 지난 슬픔과 현재의 슬픔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왜 그 두 뜻을 가르는 우리말 어휘를 사용하지 않는가. 슬픔이라는 말만 반복하며 잔뜩 폼만 잡은 모양새다. 나도 글을 쓸 때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때가 많아 이 부분이 눈에 걸려 언급하는 것이다.
내가 이 문장을 바꿔 쓴다면 이런 식의 문장이 되지 않을까.
(내용의 변화가 있다)
슬픔은 지나간다. 30년이 지난 무덤가에 선 그녀에게 그의 부재로 인한 슬픔은 사라지고, 눈물 흘리던 옛날이 고정된 과거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그녀를 애상에 젖게 한다. 지나가 버린다는 것.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 바람에 깎여 모래가 되는 바위처럼 그렇게 슬픔은 풍화되고 마는데, 이는 자연의 섭리여서 우수에 잠긴 그녀의 눈에서 이제 더이상의 눈물이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별건 아니고 내가 비슷한 내용을 글로 쓰면 이런 식으로 표현할 것 같다고...
더 잘 읽히는듯. 나는 이렇게 쓸래. 절대로 무뎌지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던 슬픔에서조차 무뎌져 이제 더이상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다. 삼십년전의 나처럼 울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이 상황 자체가 서글퍼 괜시리 마음 한쪽이 아려온다. 저들과 나 사이에는 얼마만큼의 거리가 있는걸까. 아니다..세월이 흐른걸까로 해야하나. 모르겠다 글쓰기는 어렵네. 그냥 읽기나 해야
겠다 ᆞㅅᆞ
재밌다
좀 부끄럽다
30년의 세월이, 눈물도 이별의 슬픔도 점점 무뎌지게 했고 이제는 망자를 향해 울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에 추모객들은 서글픔을 느꼈다. 막 이별한 어느 유족의 울음소리가 조용한 공원묘지에 울려 퍼졌다. 계절이 지나가듯 무뎌진 슬픔과 절절한 슬픔은 공존하며 흘러갔다.
재밌다222
서글픔이라는 단어가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