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환 때문에 만사가 귀찮다. 저녁에 회의가 없었더라면,
하루종일 선잠에 시달렸을 거다. 굳이 입지 않아도 되는 작업용 점퍼를 걸치고
'미라클'을 손목에 한 번 뿌린 후 비벼서 양 귓볼 뒤 쪽에 발라 준 다음, 이제는
더러워질대로 구겨지고 때가 낀 스니커즈를 신고 문 밖을 나갔다.
계단을 내려갈 때 마다 오른 무릎에서 통증이 있다. 나도 모르게 미간이 접힌다.
층,층, 층, 계단 수만큼 짜증도 비례했다. 욕질을 안 한 날이 없다. 어찌나 상스런 말들을
해댔는지 주위가 놀란던 적이 있다.
해는 저 세계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채 마르지 않은 빗물이 곳곳에 웅덩이져 있었다.
차가운 공기를 들이키자 황폐한 폐에 까슬한 모래바람이 인 것처럼 마른 기침이 난다.
폐렴은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그럼에도 그대로 방치해 둔 건 작년 봄 치료를 받았던
내과에서 여름과 가을에 걸쳐 메세지를 여러 번 보내 왔던 것을 결부시켜
이것대로 귀찮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질환은 만사를 게을러지게 한다.
회의는 절차대로 쓸모없는 결과를 낳고, 다음 주에 또 하나를 낳기로 하고 급히 마무리됐다.
규약대로 발언하고, 서류상으로 처리할려고만 하면, 현장을 못 따라가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럼에도 제대로 반박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런 형식들이 원칙에 입각하여 재고됐기 때문이다.
어디든지 관료주의적 사상가들이 발언권을 잡기 시작하다보면, 회의는 변비증을 앓듯 지체되다가
원론을 '재론'하거나 결론 도출없이 유예, 유야무야 되기 십상이다.
씻지 않고 있기에 향수는 짙은 장미향만 남았다. 이 냄새는 언제나 좋다.
마빈 게이 'love party', 'all the way around', 'since i had you'를 즐겨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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