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럽네.", 상상하던 것을 떠올리며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상상. 동시에 그렇게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현실 기억 속 조각들. 나는 끝내 믿어버리고는 마음을 굳힌다. 그럼 그렇지. 정말 그렇겠네. 그리고 다시 '부럽네.', '나와는 상관 없지.', '그래도 잘되서 다행이다.' 싶고 그냥 그럴 뿐이지.
멈춰있는 거 같던 삶을 움직이게 해준 노동을 한지 이제야 3개월이 지났다. 언젠가 배웠던 거 같은 것들은 일터에서는 모두 소용이 없었고 하루를 온전히 마치려는 기분이 들려면 시킨 거나 똑바러 해놓을 수 밖에 없는데 올해가 지나기 전에는 그런 수준이 될 거 같기도 하고 기분이 이상하다. 금전적인 목적지야 매일 확인 하고 있지만 실체가 없는 거나 다름 없는 일솜씨 같은 것에 욕심을 부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라며 고민을 하고는 타협은 '시키는 거라도 똑바로 할 수 있었으면' 뿐이 됐다.
집 근처 중고서점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강신주를 검색해서 책을 드문드문 보다가 3ds max 책은 뜯을 수 없어 표지만 보다가 이런 저런 구경들을 하다가 결국 나와서는 빙 돌아 집에 갈 수 있었다. 속 마음은 이랬다. '내가 이런 일탈을 할 수 있어도 그건 이틀의 휴일이 주어진 지금 뿐 인거겠지?', '사도 보지 않을 거고 지금 볼 것도 많은 걸. 그리고 굳이 책이 아니라 영상으로 보는 게 더 즐겁기도 할거고. 다큐멘터리..를 보는 게 내게는 더 나을거야.', 멀찍이 떨어졌다. 그런 환경 이니까 그렇다. 이런 나를 부정하는 사람은 영하 16 17도의 날씨에 숨을 불어가며 스틸파이프(전선관)나 만지는 일을 해봐야 똑바로 된 자기 인정 겸 타인의 삶에 대한 감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흥미를 가졌던 건 kamikita ken의 신보(작년 인지 재작년도 포함) 였지만 모두 들어 보고는 3곡 밖에 남지 않았다. 나머지는 듣기가 싫어서 한참을 들어보고 가사도 헤아려 봐야 듣고 싶어 질 거 같았다. 그 후에는 랄라스윗의 이중생활을 들었다. 술을 살 때 편의점 직원 분들 눈치를 보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나도 참 그런 거 좋아했는데 싶었다. "안녕하세오~, 안녕히 가세오~." 나도 인사 잘 했었는데. 일이 좋기도 했었는데. 일만 본다면 말이다.
경제적 척도로 남들과 경쟁을 하며 살라는 거라는 의식이 박혀 있는지, 기억 속 사람과도 그런 걸 비교하며 혼자 만족 하거나 즐거워 하거나 괴로워 하거나 그러고 있다. 그런 건 사는 게 아닌데. 괴로울 바에는 어째서 살아야 하는 걸까.
피자가게 프랜차이즈를 하는 상상을 했다. 생각보다 기준이 엄격한 거 같아 개인이 만족하며 가게를 운영 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거 같았다. 시골의 한적한 곳에서 피자와 음료와 술이나 만들어 내어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프랜차이즈가 안된다면 식자재를 자체 공급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너무 힘들지 않은 곳에 가게를 열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아마 문제는 육류이지 않을까. 원산지 표시가 엄격 하기도 하니까. 확정은 아니다. 테이크아웃 위주의 가게를 운영 하고 싶은 건 맞는 거 같다. 힘들지 않게 배달도 하지 않고 밤 늦게 까지 영업 하지도 않는 걸로.
매일 아침, 이 아닌가. 오전 6시 55분 쯤 지하철 역에서 나오면 눈 앞의 녹색 도로 표지판이 휑 하고 움직인다. 차가 지나갈 때 마다 휑 하고는 한 바퀴라도 돌 것처럼 30도 정도 앞뒤로 삐걱이며 움직이는데 참. 해도 안뜬 그 시간에 바람 쌩쌩 부는 데 그걸 보고 있으면 기분이 묘해져서 마음이 아파진다.
과거의 인물들을 떠올리며 오늘의 나를 괴롭히는 걸 관두고 싶어도 이제는 적지 않은 기간 동안 그러고 살아서. 어떻게 관두고 현실에 잘 집중 할 수 있는 지 모르겠다. 내가 일터를 오가면서 일터 이야기와 부풀어 보이는 미래를 내세우며 그리 못난 건 아니라 자존심을 부리는 건 이런 속내가 숨었기 때문이다. 인연 이라는 글자는 사람과 연결 이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나는 노동과 관련되지 않은 인연도 부족하고 확장 조차 안하고 살고 있다. 더는, 그렇지 않고 살고 있다. 내 안의 세계는 지방의 저렴한 단독주택과 그곳에서의 삶, 해결 되지 않은 나라의 부름에 내가 걷고 싶은 길, 나와서는 무얼 먹고 살건가..뭐 그딴걸 고민해서 그런 거 같다. 눈 앞의 것들(전공은 못되도 준전공, 전기공사기사)만 해결해도 굶어 죽을 일은 없을 건데 말이다. 남들이 학업을 마치고 뛰어들까 고민하는 이 일을 나는, 운이 좋아서 리모델링 현장에서 모든 공정을 귀인께 교습 받고 있다. 되려 하루에 11만원을 받으면서 기본 공구를 지참해 교습 공구로 교습을 받고 있다. 잔심부름이나 자재 드는 거야 원래 그런 거지만. 이런 걸 생각하면 쓸모없는 고민 이지만, 그것 역시 과거에 대한 미련으로. 꿈. 이라며 허황된 생각을 하고 있는 거 같다.
성장 동력은 너무나도 적다. 한 사람에 대한 생각, 한 사람에 대한 나이의 생각, 몇 사람들이 지금은 몇 살 인지, 나는 그간 얼마나 시간이 지나 몇 살 인지, 잘 살겠지 라며 쓸모 없는 생각들을 하고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이렇게 랜선에서만 정체성을 띄우며 사는 거다. 모르겠다. 도무지 모르겠다. 하지만 모르겠다는 말은 항상 거짓말 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회피를 관두고 현실을 보면 이미 좆이 되어 있거나 좆으로 가고 있다. 현실을 보고 현실을 책임 지려 아둥바둥 하는 지금은 좆에서 멀어지고 있나 보다.
에픽하이 빈차가 좋은 이유는 가사 구절 마다 공감이 되기 때문이다. '내게 요구 되는 건 늘 높게 뻗은 두손 보다 조금 위.', 복잡한 인간관계가 역설 이라는 구절은 나같은 벽장이가 느낄 구절이 아닌 거 같아 잘 모르겠지만 가사만 듣고 있다보면 '음 음 그렇지. 음, 예아.' 싶은 거다.
한파 동안 오른손 손가락 끝들이 부었다. 일을 처음 할 무렵 이후로 처음 같다. 손톱 끝에 무언 가 닿을 때 마다 톡 톡 쏘는 게 조금 끔찍하고, 이것들을 견뎌내다 보면 직업에 걸맞는 손이 될거란 걸 알고 있다.
2월에 급여를 받으면 유니세프 - 아이 하나 잡고 후원 하는 걸 하고 싶다. 난민을 후원 하는 건 조금 그렇고, 소아암 협회 극소액(월 1만원) 이후로 두번 째 고정 지출을 만드는 것이다. 노동 할 이유를 제공 하기도 하지만 그냥, 그냥, 나는 고된 일 해도 나라를 잘 태어나서 자라 보니 한류 어쩌고 지랄 하며 외국인도 많이 찾는 나라에서. 뜨신 장판 위에 몸 지지며 쉬는 데 그것 조차 허락되지 않는 환경에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할 생명을 생각하면. 그냥, 그들이 조금 나아져야 내 속이 편할 거 같은 바램 때문이다. 내 적은 관심과 적은 돈 하나로 아이 하나가 아주 좋지는 않아도 그냥 저냥 삶의 질이 나아질 수 있다는데.
집에서 백수 할 때 듣는 노래와 지금의 듣는 노래가 뻔하고 비슷한 걸 보니 나는 음악을 썩 사랑 하지는 않는 사람이다. 그니까 관련된 직업을 가지는 것도 맞지 않고 어쩌다 관심을 갖는 청중 정도가 어올리는 그릇인 것이다. 노래 너무 잘 듣고 이서요 밍나.
오전만 끝나고 피시방에서 롤을 하는 데. 야스오를 두고 "저기 맵 중간에 왜놈 있잖아요. 저새끼 잡죠. 왜놈 주기죠." 하고 말 했다. 관광인이 많이 오는 지역 이라는 걸 알고 숙연해졌다. 게임 안에서 반일 감정으로 의인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왜놈이라 부르는 게 재밌어서 그랬다. 왜놈~! 역사를 두고 반성 할 줄 모르는....!! 이라며. 그렇게 열을 내는 것 조차 장난인 나는 똑바로 살기가 글러 먹은 지도 모르겠다.
Jay lee - spring rain을 듣고 생각이 나서 nanase - where is the love도 듣고 비슷한 분위기의 노래들을 찾아 듣는 건 꽤나 즐겁다. 근데 이 폭이 넓어지길 바라지만 더는 찾지 않고 있다. 이대로도 좋은 거겠지. 관심이 없는 거겠지.
'인연 함부로 맺지 마라.', 법정스님의 말씀 대로 살고 있나, 난? 그냥 인생을 외롭고 공허하게 만들었고 그럴 수 밖에 없다며 회피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 그런 거겠지. 대학을 자퇴하고 나서 쭉 계속 그 믿음 아래 스스로를 그런 길을 걷도록 만들었지.
오ㅏ 엄청난 일기에요...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