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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 전쯤, 지금은 국정조사 청문회 증인으로 유명해진 A씨와 B씨를 상대로 몇 차례 전화 취재했다.

A씨는 줄곧 세상 억울하다는 입장이었다. 때론 공격적으로, 때론 침울하게 답변했다.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이번 일로 처음 들었다."

"누가 난데없이 나 같은 일반인까지 끌어들였는지 모르겠다."

"의심받는 날짜에 대해선 택시비, 생수 한 병까지 영수증으로 가지고 있으니 제출하겠다."

"출입국관리소에 증명서를 끊어줄 테니 직접 확인해라."

"기사 쓴 언론사들에 대해선 언론중재위원회고 민사 소송이고 끝까지 쫓아가 법적 대응하겠다."

B씨는 그에 비해 느긋했다. “네~ 기자님”으로 시작해 “아니 글쎄, 이게 무슨 일이래.”, “최순실? 일면식도 없어. 네버, 네버. 사실무근!” 어느 때엔 '내가 정말 생사람을 잡나?' 싶게 여유로웠다.

최근 청문회에서 두 사람 모두 ‘최 씨와 일주일에 몇 번씩 만났던(혹은 통화했던) 사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제3자에 의해 ‘최 씨의 최측근’이라 불렸다는 사실도 증언됐다. TV로 지켜보던 내 얼굴은 새빨개졌다. (표현하지 않았지만) 한때나마 "이 사람들 정말 무고하면 어쩌지?" "말하는 내용이 사실이라면 지금 얼마나 힘들까?" 걱정했던 내 자신이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자려고 누울 때마다 억울해하던 그들의 목소리가 떠올라 하이킥을 100번쯤 날렸다. "어째서,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

텍사스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학과장으로 재직 중인 제임스 W.페니베이커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언어의 지문’을 남긴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단어'라는 단서가 있으면 그 사람의 성격, 심리상태, 지금껏 살아온 배경, 미래의 행동도 파악할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밝혀냈다. 그의 저서 ‘단어의 사생활(What our words say about us, 2016/출판사: 사이)’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거짓을 탐지하려고 할 때 ‘나’라는 단어는 정직함을 가장 잘 나타내는 표현이다. ‘나’라는 단어는 그 의미상 일종의 ‘신원 확인’ 역할을 한다......반면 유죄였던 사람들은 법정에서 3인칭 대명사를 많이 사용했다. 이들은 비난을 자신에게서 다른 곳으로 떠넘기려고 하고 있었다. 거짓말을 할 때에는 자기 자신과 말하는 내용을 멀리 떨어뜨려 놓는다. ‘그 여자와’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는 빌 클린턴의 주장은 이에 해당되는 예다.” "사람들은 진실을 말할 때 더 많은 단어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더 길고 복잡한 문장을 구사한다. 더 어려운 단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은 진실한 진술이 더 정밀하고 미묘한 차이를 잘 표현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진실한 진술을 하는 사람들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5&aid=0000489272


오늘 점심 때 집 피씨로 검색했던 책이다.


예전에 트위터에도 관련 글 남겼었다.


언젠가 꼭 볼 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