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살에 기사시험을 준비 한다. 23살에도 준비 했다. 멍청해서 떨어지지만, 56점 맞았지만 그래도 준비 한다. 노가다를 하는 순간 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거다. 내게 맞는 노동환경 이라고 생각을 하고 결정을 해서 나가는 거겠지. 이해관계가 맞으니까. 내가 그걸 할만 하니까 가서 그러고 있다가 이제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거겠지. 하지만 종종 오해를 살 때면 마음이 조금 괴롭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남이 잘 되는 걸 싫어해. 나도 그래.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경 쓰지 않거나 좋아지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을 뿐인 거라 믿어. 그렇게 믿어서 그렇게 살아갈 사람인 거다. 항변 하는 목소리가 커질 때면 눈을 감고 싶다. 단, 한번도 남에게 짖어본 적이 없구나. 폭력적 인게 싫은 나는 해당 되는 노동환경을 찾을 때 까지 이렇게 살겠지. 아마. 확실한 건 언젠가는 생계 수단을 위한 노동이 멈출 거라는 거. 내가 잘되길 싫어하는 사람들 에게는 안됐지만 그게 내 삶의 하한선 이라고 정해둔 이상 그건 명백히 이뤄질 거다.
현실을 인지하는 능력이 떨어지지 않아도 지나온 길은 조금 엉망진창 이어서 정리가 필요 하다. 정리가 필요할 정도면 그 무게에 견디지 못한 거고, 버거운 걸 억지로 한 셈이다. 삶이 만족 스러웠던 때가 있었지만 그건 눈 가리기에 불과 했다. 뛰거나 걷지 않으면 굶어 죽어. 이미 멸시를 사며 살고 있지만 이보다 더 나쁜 노동환경에서 더 나쁜 사람들을 만나며 더 나쁜 감상과 더 나쁜 생각으로 머리를 채우고, 주변을 둘러봐도 어리석음 밖에 남지 않은 환경에서 빛 한점 없이 홀로 자신을 움켜쥐며 살아야 한다. 이 기준은 남의 삶을 침해하는 타인의 무례함 으로 부터 생긴다. 남의 삶을 침해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환경에 노출 될수록 사람은 망가지기 쉽다. 익숙함에 젖어 똑같이 행동하며 연기를 하고, 더 나은 삶의 형태를 지닐 수 없다고 믿고 스스로 단정 짓고 나서 그렇게 머물게 된다. 그리고 천천히 주어진 환경의 색깔에 자신을 담근다. 이상을 꿈꾸던 자신이 알아차리지 못하게끔 현실이 된 현실은 천천히 그 사람을 갉아 먹는다. 노동에, 가정에, 주변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사회라면 굳이 할 필요 없는 책무들을 부여 하고 사람은 기꺼이 그걸 하며 살아간다. 안하면 생사여탈권을 가진 누군가가 불이익을 주니까. 그래서 나는 내가 원하는 환경에 날 올려다 놓지 못할 거라면 집 안에 나를 구겨넣고 싶다. 집이 생기면 무엇 이라도 할 수 있다. 안정적으로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집에 집착한다. 집의 외장 마감재에 집착 하고,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 올라갈 때의 공종과 공정을 눈여겨 보려고 노력 한다. 집이 생기면 내가 30대가 되어서 집 안에서 大 자로 뻗어 아무 것도 안한들 사회 마저 날 압박하는 일이 없을 테니까.
잠이 꼬여 배고픈 건지 밥 때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배가 고프면 밥때 같다.
아르바이이트 면접, 급여가 생각 보다 높았다. 건너 게시판의 누군가가 추노 한 것 같은, 같은 시급 이었다. 물건이 많이 와도 괜찮고 나는 정리 하는 데에서 즐거움을 얻고, 고용주가 누구던 그 편의를 들어주면서 돈을 받을 테니까 별로 상관 없다. 현장 일에 비하면 아주 쉬운 거 아닌가. 날이 튈지도 모르는 커버가 벗겨진, 제동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그라인더로 위험하지만 빠른 자세로 철을 자르고, 사다리를 타고, 일은 어려운 게 없지만 욕을 먹고, 일이 잘 안되서 속상해 하고, 그것 보다는 마음이 편할 거기 때문에.
형과 대화를 하며 내선공사 전공에 대한 험담을 했다. "전공 18만원 인데 외노자 들도 철근,외장목수 하면 20만원 받아. 하는 건 더 많은데 한 곳에서 골조 부터 마감 까지 건물 전공정 동안 오래 일할 수 있는 거 말고는 급여 측면에서도 장점이 없어. 왜 그런거지." 왜 그렇기는. 그럴만 하니까 그렇겠지. 어째선지 사람들은 돈을 벌고 모두 떠났고, 노조 같은 것도 만들지 않았고, 품셈을 공부해 금새 업면허로 업체를 차려 일감을 따서, 많은 금액을 남기고자 적은 인원으로 무리한 일을 하고, 그러다 보니 특고압을 다루는 외선 공사 보다 사건 사고가 많고, 그렇게 돈을 왕창 번 사장은 잘 먹고 잘살면서 업계를 떠나고, 사람을 부릴 줄 아는 소장들은 남아 각자의 사정으로 또 다시 자본가(사장) 밑에서 일을 해주고, 같이 큰 돈을 받아 적게 돈을 써서 남긴 다음 나눠 먹고, 계속, 계속. 어딜 가던 슬픈 일은 항상 맞닿아 있고, 이런 고용이나 안전에 대한 것에 이끌리는 나는 적성을 인정 했다. 그 일이 아니면 내가 살아 숨쉬며 노동 할 가치는 없기에. 노동에 뜻이 없기에. 한량 같이 살아가도 될 만큼만 이루는 게 목적이 되버렸다. 항상 그렇듯 어떤 경험을 해도 나는 이렇게 정신승리 하고 만다. 이건 내심 끝을 정해뒀기 때문이다. '일을 하며 살 거라면 그 일 말고 내가 세상에 할 일이 없어.', '근데 머리가 안되서 평생이 지나도 취득하지 못하고 만년 고시생이 될거라면 일을 안하거나 최소한 으로 하며 살고 싶을 뿐이야.'
토끼공듀에 입문 했다. 한 캐릭터의 전투력이 썩은 물(겜창유저) 까지는 아니더라도 고이려는 물(준겜창유저) 쯤 됐기 때문이다. 하하 토끼공듀 토끼공듀 ~.
사랑을 하며 사는 것도 좋겠지. 나는 나를 존나게 사랑한다. 존나 아낀다. 의식하는 사랑이 아니라 미지근 하고 무의식 적인 사랑이다. 손발가락 멀쩡하게 붙어 있길 바라니까 사랑 하는 고다. 이상한 논리 라도 괜찮으니 나는 나를 애낀다.
소방신문의 관계자가 인터뷰 하는 걸 흥미롭게 봤다. 기관들 끼리 힘 겨루기 하느라 제대로 지켜지는 게 없다는 건가 보다.
어, 아르바이트 붙었어. 이제 하루 중 내 9+2(출퇴근) = 11시간은 다시 고용주 거다. 그리고 주 5일 이고 주말에 쉰다. 휘 휘. 예레렐레레레레.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앞으로도 아마 편피노를 아마 2019년 겨울 까지 하지 않을까 싶다.
와 일기 엄청나 오늘도~! 토끼곤듀님 짱짱맨~!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