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학하고 첫학기였다
나이들어서 사춘기가 왔는지 방황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어
가을날씨에 단풍도 들고 혼자 참 많이 걸었다
그렇게 걸으면서
난 왜 여기 있을까 여기서 뭐하고 있는걸까
싫다 답답한 강의도 교재도 건물도 사람도 다 싫었다
그러고 살았더니 여지없이 F맞더라
내 생애 첫 F학점 생애 첫꼴찌였다
정신이 번쩍 들더라
별거 없다고 생각한 학생들 사이에서
그것도 전공수업 F라니
화가 났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화를 이듬 해 봄학기까지 잘 품고 있다가
학기가 시작한 뒤 미친듯이 공부했다
부족한 부분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공강시간마다 도서관 가서 해가 지는 줄도
배가 고픈줄도 모르고 공부했다

그때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내 모습을 후배들이 봤는데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자기들이 도서관 가면 앉아있었고
나올때까지 앉아서 공부만하던 형이라고
암튼 그렇게 시험기간이 됐는데
이미 몸과 마음 모두 피폐해진 상태에서
분노만큼은 수그러들지가 않았다
시험만 있으니 도서관에만 틀어박혀있는 날이 많았다

보통 밤 12시즘 자취방에 도착하고
대충씻고 바로 잠자리에 들어가는데
일곱시에 알람을 맞춰놓아도 새벽 세시반 네시 정도에 눈이 떠지더라
스르르 눈뜨는게 아니라
흐억헉커커걱 하면서 눈 번쩍뜸
그러면 잠도 안 와 그냥 옷 주섬주섬 챙겨입고
그대로 도서관 나갔다
나가서 지쳐 쓰러질때까지 공부하다가
앉아서 잠들면 한시간 정도 설잠자다가 다시 눈이 떠진다
시험기간 내내 그렇게 잠을 자고 싶어도
뭐가 문제인지 깊이 잠들지 못하고 새벽에 일어났다
미치겠더라
근데 이상하게 공부는 좀 잘됐어
물론 그렇다고 1,2등한건 아니지만 뭐 만족했다

그후로 시험기간이라고 저렇게 불면증을 앓은적이 없었는데
바로 어제밤 시팔 잠이 안 오더라?
난 언제 어디서든 꿀잠의 대명사로 통하는데?
그러더니 왠걸 아침에 알람 울리기전에 눈뜸...

요즘 딱히 스트레스라 할만한것도 없고
그냥저냥 직장인 코스프레 잘하고 있는데
대체 뭐가 신경쓰이는걸까
오늘 오전엔 여직원이 틱틱거리는거 보고
진짜 개빡치더라 물론 내색은 안했지만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어 오히려 내가 놀람
예전엔 이런 별거 아닌일로 화가 난적이 없었는데
요즘 좀 심리적으로 좀 불안한가봐
난 화나면 가끔 내 고운 심성사이로 온갖 썅욕이 난무하는데
오늘 그 강도가 유난히 강했다
휴... 입밖으로 냈으면 큰일날뻔ㅋㅋ
근데 이러다 나도 모르게 폭발하는거 아닐까 좀 걱정된다

난 역시 곁에 여자 한 명 있어야 하나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