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져가는 겨울 밤, 길어진 어둠 속에 서 있으면 말들이 괜히 늦어진다. 낮에 다 쓰지 못한 생각들이 밤이 되어서야 제자리를 찾는 것처럼, 걷는 속도도 숨도 자연스레 느려진다.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아직 걷고 있다는 사실만이 조용한 위안이 된다.
의미 없어 보이는 달빛은 늘 그렇듯 가만히 떠 있을 뿐인데, 그 빛은 내 안에서 다른 빛으로 투영된다. 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나는 그 위에 의미를 얹는다. 작은 불빛 하나에도 이유를 붙이고, 사라지지 않았다는 증거로 삼는다. 어둠이 전부를 덮는 것 같아도, 실은 꼭 필요한 것만 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오히려 더 솔직해진다.
순간은 붙잡을 수 없게 흘러가지만, 그 순간들이 이어져 지금이라는 현재를 만든다. 포장되지 않은 선물처럼, 열어보는 동시에 사라지는 시간. 어제는 이미 이름이 붙어 있고, 내일은 아직 손에 잡히지 않지만, 현재만은 숨 쉬는 감각으로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그 시간을 받는 사람이자, 동시에 흘려보내는 사람이다.
잠들기 힘든 밤이면 고이 접어 두었던 사념들이 다시 펼쳐진다. 정리했다고 생각했던 마음의 주름들이 어둠 속에서 드러나고, 말하지 않아도 될 생각들까지 조용히 자리를 차지한다. 몸은 가만히 누워 있지만, 생각은 먼저 내일로 걸어갔다가 되돌아온다. 그 무게는 날카롭기보다는 묵직하고, 아픔보다는 익숙하다.
이 밤은 잠들지 못했다고 다그치지 않는다. 그저 생각들이 앉아 있을 공간을 내어주고, 새벽이 올 때까지 조용히 함께 머문다. 그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 밤이 지나가고, 나는 또 하나의 현재를 다 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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