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금 서울시청 앞 더 플라자 호텔 자리, 원래는 화교들의 땅이었음.



2.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주둔하면서 중국 상인들이 서울로 본격 유입되기 시작함. 소공동 일대가 그 거점이었음.



3. 1910년대 이후 소공동에는 369평 규모의 차이나타운이 자리 잡음. 중식당, 한의원, 목욕탕, 잡화상, 서점 등 16가구 25개 점포가 밀집해 있었음.



4. 화교들은 일제강점기에도, 해방 후에도 소공동을 지켰음. 1970년대 기준으로 서울 거주 전체 외국인의 60%가 화교였고, 그 중심이 소공동이었음.



5. 이 평화로운 동네를 뒤흔든 건 1966년 10월 31일, 린든 B. 존슨 미국 대통령의 방한이었음.



6. 박정희 대통령은 존슨 방한을 국가적 행사로 격상시켰음. 임시휴일을 선포하고 수도권 관공서·학교에서 약 200만 명을 동원해 공항에서 서울광장까지 환영 인파를 깔았음.



7. 당일 현장에는 외신 기자 1,000여 명이 몰렸음. 그들의 카메라는 행사장만 찍은 게 아니었음.



8. 외신 카메라가 서울 전경을 넓게 담는 순간, 서울시청 건너편 북창동·남창동·회현동 일대의 낙후한 판자촌이 그대로 전파를 탔음. 화교들이 모여 살던 소공동 슬럼도 포함이었음.



9. 정작 한국 국민들은 텔레비전 보급률이 낮아 이 장면을 보지 못했음. 하지만 해외 교포들은 봤음.



10. 미국, 일본 등지에 사는 교포들이 청와대에 탄원서를 보내기 시작함. "우리나라 수도가 이렇게 보여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었음.



11. 박정희 정권은 이를 계기로 서울 도심 재개발을 국책 과제로 올렸음. 표적 1순위는 시청 앞 소공동이었음.



12. 1966년부터 서울시가 소공지구 재개발을 검토하기 시작함. 화교들 입장에서는 청천벽력이었음.



13. 서울시의 제안은 이랬음. 화교들이 소유한 369평 땅을 내놓으면, 대신 지하 3층 지상 18층짜리 화교빌딩을 지어주고 지분에 따라 공간을 분양해주겠다는 것이었음.



14. 협상은 질질 끌렸음. 결국 1971년 8월 20일, 화교 지주 16명 중 14명이 서울시의 재개발 계획에 합의함. 2명은 끝까지 거부했음.



15. 1971년 철거가 완료됨. 서울시가 약속한 화교빌딩 착공 시기는 1972년이었음.



16. 그런데 1972년이 됐는데도 화교 회관 소식이 없었음. 주변 한국인 지주들이 반대하면서 계획이 흐지부지됐음. 화교들은 임시 가건물에서 장사를 이어가며 기다렸음.



17. 장사도 안 됐음. 임시 가건물이라 손님도 오지 않았고, 언제 지어질지 모르는 약속을 믿으며 버티는 상황이었음.



18. 그 지친 화교들에게 한국화약(현 한화그룹) 창업주 김종희 회장이 찾아왔음.



19. 김 회장의 제안은 이랬음. 땅을 넘기면 당시 감정가 평당 30만 원의 3배 이상인 평당 107만 원에 사겠다는 것이었음.



20. 화교 14명의 땅 합계 542.4평이 한국화약에 넘어갔음. 협상 타결임. 서울시가 못 해준 걸 민간 자본이 해결한 셈이었음.



21. 서울시가 대만으로 건너가 사죄를 한 건 이 무렵이었음. 서울시장이 직접 화교 본국 측에 머리를 숙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음. (당시 화교 대부분은 대만 국적자였음)



22. 1973년 한국화약은 일본 마루베니상사와 합작투자 계약을 맺고 호텔 건축에 착공함. 1976년 9월 준공, 같은 해 10월 1일 '서울프라자호텔'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함.



플라자 호텔 개관


23. 호텔의 형태가 독특한 이유가 여기 있음. 가로가 길고 세로가 짧은 '병풍' 모양으로 설계된 건, 호텔 뒤편 화교 판자촌의 흔적을 시각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의도였음.



24. 이것이 서울 도심 재개발 1호 사업이었음. 이 소공지구 재개발을 신호탄으로 삼성·교보·대한화재 등 대기업들이 줄줄이 도심 재개발에 뛰어들었음.



25. 화교들은 결국 소공동을 떠났고, 서울에는 제대로 된 차이나타운이 끝내 형성되지 못했음. 인천 차이나타운이 유일한 흔적으로 남은 이유 중 하나임.



26. 그 자리의 이전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음. 조선시대에 이 땅은 왕이 하늘에 제례를 지내던 절 '지천사(支天寺)'가 있던 자리였음.



27. 지천사는 팔만대장경을 강화도에서 해인사로 옮기는 2년 동안 임시 보관한 장소이기도 했음. 태조 이성계 시절 얘기임.



28. 조선 사직단 → 일제강점기 화교촌 → 해방 후 판자촌 → 플라자호텔. 한 블록이 겪어온 역사의 밀도가 서울 어디에도 뒤지지 않음.



29. 플라자호텔은 2025년 현재 47년 만의 리모델링이 추진 중임. 병풍 역할을 하던 저층부 일부를 철거해 서울광장~북창동 보행축을 뚫겠다는 계획임.



30. 슬럼을 가리기 위해 세운 병풍이, 이제는 그 병풍을 허물어서 도시를 다시 열려 한다는 게 이야기의 마지막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