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니앱이 장손이고 띠니앰도 12대 종가 출신이라 제사나 관혼상제라면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틀띠니 어렸을 때는 대대종가라고 원조 종가집에 모여서 다같이 치르는 것도 봤고 지손으로 갈라져서 할앱 생전에 주관하던 제사는 할앱 시골집에서 모여서 치뤘었고 할앰 돌아가신 후에는 띠니 집에서 20년 넘게 지내는데 제사로 인해서 갈등이 있는 건 맞지만 정확히 말하면 노동이라던가 잦봊 차별 문제는 아니긔
띠니 생각에는 제사 때 노동은 원래 잦들이 맡아서 하는 게 정석 같긔 대대종가 시절을 보면 전부치고 밤깎고 제단마룻바닥 쓸고 닦고 이런 일들 전부 할앱들이 주도했고 할앰들은 거드는 식이었긔 또 안와도 뭐라고 하는 사람 없었긔
띠니 할앱이 물려받아서 할때도 그건 마찬가지였고 띠니앱도 제사 차례상에 올라가는 음식 전부치고 고기삶고 과일 다듬는 거 존아 익숙하게 잘하긔 앰이 하는 건 어창 육탕 끓이고 간맞추는 거랑 상에 올리는 거 제외하고 식구들이 먹을 갈비나 잡채 같은 특별식을 만드는 거긔
그런데 갈등이 생긴 부분은 어디냐면 결국은 금전적인 부담이었긔
이게 친가/외가 양상이 다른데 띠니앱은 맏아들이어도 지손이라 그런가 물려받은 현금성 재산도 별로 없고 차남들이 존아 후안무치해서 명절제사때마다 띠니 집에 오면 3일씩 호텔처럼 잘쳐묵고 잘 덮고 잘 씻고도 돈 한푼을 안줬긔
제사상 차리는 거 그 자체보다도 갈비하고 잡채하고 3일동안 쳐묵고 잠잘 이부자리 챙기고 그것들이 사라지면 도우미 아지매 불러다가 대대적으로 기름때 청소하고 이불빨래 싹 다 하고 이러느라 1년에 4-5번 생활리듬이 깨지고 가정에 불화가 생기고 띠니앰이 아닌 띠니가 앱한테 지랄지랄했긔(칭척들이 와서 말한마디씩 얹고 싸움나고 그런 건 다 생략하겠긔) 살아있는 띠니가 괴롭다고 띠니는 집안 관혼상제 허례허식때문에 죽고 싶은데 죽은 뒤에 띠니 제사는 지내지 말라고까지 했긔
띠니네는 결국 이런 문제들로 모이는 제사가 파투나고 잦동충들은 앱한테 출입금지당하고 띠니네만 간소하게 상차리고 제사지내긔 띠니가 좋아하는 막내 고모만 돈봉투 들고 오고 띠니 식구들 먹으라고 맛있는 거 해다주고 가끔 참석하긔 그렇게 한 지 10년 가까이 되는데 지금은 마음의 평화를 찾았고 제사나 차례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긔
번외로 띠니 외가는 12대 대종가인데 대종가답게 제사나 차례 지내는 맞이들에게 제사지낼 재산이 딸려오고 또 지손들도 본인들이 조상의 복록을 받으려면 제사장(큰형)의 마음을 편하게 해야한다는 걸 잘 알아서 말한마디 한마디 조심하고 제사 지내면 부비지 않고 금방금방 집으로 돌아가고 또 형님형수에게 용돈도 두둑히 주고 이런 게 습성이 되어 있다보니 이쪽은 별 갈등이 없었긔
띠니가 제사차례에 봊갈아넣는게 화교짱깨식이라고 확신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주변에서 혐혼한 봊들 사례가 몇몇 있긔 원래 기독교천주교라서 제사같은 거 지내지도 않고 명절에 모이지도 않닸다는 시집에서 며늘 들어오니까 갑자기 제사를 만들고 윾충들이 다 모이게 하고 이런 경우를 여럿 봐서긔 지내지도 않던 제사를 며늘 오니까 시작하고 또 며늘봊이 질려서 도망가면 끊었다가 다른 며늘봊들어오면 다시 시작하고 이런 경우 있는데 이게 뭐겠노 토종이어도 개쌍놈의 집구석이고 높은 확률로 화교겠긔
화교짱깨 새끼들 순혈들이 제사 차례 지내는 거 부러워한 거 맞다는 걸 확신할 수 있는 지점이 아닐까윤
제사는 원래 사대부꺼였긔 양반중에서도 상위계급꺼 얘들은 원래 제사 차릴때 노비 썼긔 조선시대 노비는 서양의 노비하고는 마이 틀림 군부역 피할라고 된 가짜 노비가 태반이라 서양의 흑인 노예 생각하면 클남 오늘날의 월급쟁이 생각하면 되긔 진짜 노비는 관비들이었고 무튼 사대부 노비는 그럼 양인이 가짜 노비 행세한게 태반인데 이제사준비를 노비가 했긔 그리고 제사를
주도한이는 남녀 가리지 않고 곳간 열쇠 쥔 사람이 했긔 대표적으로 신사임당 신사임당네가 곳간을 쥐고 있어서 아들이 없는집에 제사는 신사임당이 했긔 그런데 이게 세월이 흘러 가짜노비가 돈받고 하던일을 며느리가 하게 된거임 난 그냥 신문에 나온거 여기저기 주서다 댓글 달아 짱깨 때문에 이리 된건 몰겠지만 원래는 노비가 상차리면 곳간진자가 제사 주도 했다더라
물론 중간에 이리 변질 된건 띠니 말대로 짱깨 개입이 클테지만 사료가 없으니 뭐라 못하겠긔
원래 전통이야 알 길이 없지만 띠니가 본것만으로 추측하면 제사차례상에 오르는 것 만큼은 직접 챙기는 식이었던 것 같긔 조선시대 잦선호사상때문에 제사장이 잦이어서 할앱들이 했던 것 같고 큰할앱이 돌아가시면 제사장이 큰며늘봊인 거는 맞고 노비를 동원한 거는 띠니 원글에 있는대로 제사상에 차린 것들 이외에 객식구들이 먹고자고 할 것 시중드는 문제일것 같은데
@ㅇㅇ(211.235) 큰할앱이 돌아가면 제사장이 맞며늘봊인거 보면 저선시대라 해도 막 봊혐이 컸던 것 같지는 않은데 맏며늘 가면 며늘봊이 낳은 잦기가 물려받는 게 보통이고 그게 아닐 경우만 수양대군 ㅌㅊ로 작은할앱으로 가는데 다산이었던 예전을 생각하면 그건 극히 희귀케이스고
@ㅇㅇ(211.235) 아무튼 제사 노동이슈로만 보면 제사상 그 자체보다는 객식구들 의식주 시중 이부분이 크긴 하긔 노동측면으로도 그렇고 무엇보다 금전적으로 현대로 올수록 큰 일 치르기 힘든 구조의 좆파트에서 치뤄야 하고 죄다 마트에서 구매해야 되고 그러다보면 출혈이 커지고 스트레스 받고 나가떨어지는 거긔
@ㅇㅇ(211.235) 오히려 종가고택에서 큰 일 치르면 존아 편했던 기억이 나긔 게다가 띠니네 경우처럼 집성촌이면 모였다가 다들 자기 집으로 돌아가면 그만이고 서울같이 멀리서 온 지손후손들도 다들 본가가 근처니까 제 지내고 흩어지면 그만이고 큰집에 삐대고 기생충짓할 일이 없었고 모두가 편했던 것 같긔 시간이 흐르면서 서울이나 각지로 진출해 흩어져서 살고 좆파트처럼 현대적으로
@ㅇㅇ(211.235) 살면서 1년에 수 차례식 생활 리듬이 깨지는 게 스트레스 요인이 된 것 같긔윤 또 집을 내어주는 게 아니고 방문만 하는 차남들 입장에서도 근거리도 아닌 원거리에서 방문하는 자체도 힘들 것 같긴 하고 굳이 짱깨 개입 아니어도 현실적으로 힘든 문제는 많은 건 인정하긔윤
@ㅇㅇ(211.235) 띠니가 느끼는 짱깨 읍이럴 개입은 6제사 지내면 봊이 노동착취당한다9 이 부분이거든 띠니네 집안은 대대로 해온 가락이 있으니까 봊이 착취당하는 구조가 아니라는 걸 아니까 제사 음식은 시앰봊며늘봊만 하는거다 라는 읍이럴이 있는 것 자체가 그냥 1차원적으로 존아 기분 나쁘더라긔
제사때 여자만 노동에 시달렸다고 화내는거 근본없는 노비집안 출신이거나 화교 암짱깨인데 지가 순혈이라고 착각하고 살아온거긔 여태까지 ㅇㅇ 그렇지 않고서야 만년동안 이어져 온 전통문화인데 그렇게 싫어하고 혐오할 수는 없긔
그니까 어쩌다 토종이어도 예전에 구경만 하던 제사차례상 흉내내려는 화짱조 마인드 상놈이겠노 집안에 여러 좆간들 있는데 봊만 쏙쏙 골라서 일시킨다는 게 말이 안되긔 큰 일 치를 때는 누구든 할 수 있는 거 다하긔 갓기들도 송편빚는데 잦이라고 손못대게 한다? 이건 말이 안되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