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같던 유쌤 인생에 처음 등장한 의사는 할매였어.

배가 고플땐 밥을 먹이고, 마음이 허기질땐 정을 먹이고.

 

길에서 쓰러진 아이 엄마를 응급처치한 홍쌤은,

유쌤의 삶에 등장한 두번째 의사였지.

당시 홍쌤은, 육체적으로 호흡곤란 상태에 있었던 아이 엄마 뿐만 아니라,

정신적 질식 상태 일보직전의 유쌤에게도, 본의 아니게 인공호흡을 해 주고,

한술 더 떠서, 세상에서 어떻게 호흡하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멘토 역할도 하게 돼.


그리고...

진원장은, 유쌤이 만난 세번째 의사였어.

사회적으로 성공한, 완전체(?) 의사.

요죽 그럴싸했음, 할매가 유쌤에게,

호강할 수 있는 수많은 길들 중에서, 의사 하라고 했을까.

하지만, 할매의 수술을 계기로,

진원장은, 그 어느 의사도 주지 못했던 큰 깨달음(?)을, 유쌤에게 하사하시지.


...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스쳐지나갔을지도 모를, "나의 의사 경험담"이었을거야.

하지만, 실질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의사"라는 존재가 절실했던 삶이었기에,

유쌤은, 이 세 사람과의 만남을 그냥 흘려 버리지 않고,

의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나간 것 같다.


물론,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유쌤도, 의사 역시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재차 경험해.

그게 자연스러운 일임도 알게 되고.

하지만, 사람의 생명을 다루고,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최전선에서,

유쌤은 "나약한 인간" 뒤에 숨기보다는,

뼈아픈 경험을 통해 얻게 된, 의사로서의 신념을 선택해.


의사는...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에게 구원과 위로를 전달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수철이 때가 그랬던 것 같아.

수철이를 수술할 정신이 어디 있겠어?

하지만, 당시의 수철이에게, 의사로서의 자신의 존재가 지닌 상징적 의미를 알고 있었기에,

결국 수술방 문을 열잖아.


그리고 나의원 사건은...

의사로서의 유쌤의 성장을 제대로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싶어.


유쌤은...

지난 13년간, 자신이 고집한, 그리고 자신을 지탱해 온, 의사로서의 원론적인 신념에 따라 움직여.

환자를 살리는 것을 우선하며,

자신에게 떨어질 문제들에 대해서도 책임을 피하지 않지.

타인의 도움 뒤에 숨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약자를 방패삼아, 자신의 짐을 덜 생각도 하지 않지.


그리고 말하지.

이게 자신의 "자존심"이라고.



그래서...

징계위원회에서 진원장과 마주한 유쌤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어쩌면 유쌤은, 진원장과의 싸움을 통해,

진원장이 가지고 있던 의료인으로서의 신념이,

도대체 무엇에 토대를 두고 있는가를 공론화시킴과 동시에,

과연 그것이, 최선인가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덧1) 다 컸다. 유쌤.

덧2) 지켜보겠다, 자존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