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일본 열도로 들어가는 관문도시 후쿠오카, 그곳에서 일본 최초의 벼농사 흔적을 살필 수가 있다. 기원전 3세기, 야오이인들은 수로를 활용하는 세련된 농업기술을 발전시켰다. 이들은 누구였을까? 당시, 수렵생활을 하던 조몬족과는 얼굴 형태부터 차이를 드러내는 야오이인들은, 발굴된 뼈의 80% 이상이 대륙사람들과 유사하다. 한반도에서 건너온 최초의 농경정착민이었던 것이다.
일본 오사카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무덤 닌토쿠 왕릉이 있다. 야오이 시대가 물러가고 고분시대가 도래하면서 남긴 유적이다. 지배자의 권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 무덤에는 또 하나의 의문이 붙는다.
그렇다면 왜, 전에 없던 것을 일부러 만들었을까? 1948년, 에가미 나미오는 새로운 왕조의 출현이라는 학설을 제기한다. 북동아시아계 기마 부여족이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들어와 지배세력이 됐다는 것이다. 닌토쿠 왕릉의 주인은 이전의 왕조와는 전혀 다른 혈통의 정복왕조였다. 결국 만세일계, 순수한 혈통의 역사를 주장했던 일본의 역사는 거짓이었다.
▶일본 문화의 뿌리
역사는 잊혀지고 왜곡될 수 있지만 옛사람들의 유물은 진실을 말한다.
기마민족 부여는 중국을 떠나 한반도 백제에서 세력을 확장시킨다. 그리고 일부 세력이 남하해 가야를 점령했고, 일본 열도 내륙 깊숙이 진출하여 지배세력을 형성했던 것이다. 무엇이 이를 증명할 것인가?
일본 고유의 것으로 알려진 창의 자루 끝에 꼽는 통형동기가 김해에서 발굴되었다.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가 깊게 연결되었음을 증명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유물로 칠지도가 있다. 백제의 세력이 강성하던 369년, 태자는 왜왕에게 칠지도를 보낸다. 일본서기는 이에 대해 백제왕이 일본천왕에게 헌상했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기세가 융성했던 백제의 입장에서 왜국의 왕에게 복속을 맹세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일본 문화의 새 주역으로서 백제가 일본열도의 중심에 서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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