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과도정부의 독도탐사 중 울릉군청 서고에서 심흥택보고서 부본 발견 -- 치명타
1954년, 미 국무부 문건에서 러스크서한(일본해의 소도서 4권에 근거한)의 역사성 부인 -- 치명타
즉 일본해의 소도서 4권의 역사성 부인 -- 치명타
즉 1952년 SF강화조약의 독도 해석 부인 -- 치명타
즉 1953년 미일행정협정의 독도 해석 부인 -- 치명타
1969년 고종칙령41호 발굴 -- 치명타
1978년 이명래 보고서 발견 -- 치명타
1987년 호리가즈오 세종실록지리지 인정 -- 치명타
1987년 호리가즈오 1877년 태정관지령 및 유래의 개략 공개: 송도=독도 -- 치명타
2005년 무라카미가 문헌 공개: 송도=독도 -- 치명타
2006년 우루시자키 히데유키 목사의 태정관 지령 부속 기죽도약도 공개: 송도=독도 -- 치명타
43808 양심의목소리, 2006년 우루시자키히데유키의『기죽도약도(磯竹島略圖)』폭로 okidoki 201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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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사토 쇼오진 교수의 양심선언 -- 역시 치명타
그외에도 빠뜨릴 수 없는 (얼마 전 돌아가신) 나이토 교수의 꾸준한 양심선언성 다케시마론 비판 논저가 있었고.
꾸준한 치명타를 입은 결과는 다케시마론을 위해선 회생불능 -- 식물인간 뇌사상태 급으로 정지 내지 이미 사망한 것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역사적 근거로 덤벼보았자 승산이 없음이 확실해졌음.
남은 건 허위를 날조해서 끊임없는 거짓말 살포로 교란시켜보자는 술책만 남은 것.
다케시마뽕들의 페이버릿 1: 우산도=죽도론. --- 그런 경우도 어쩌다 있겠지만, 박석창 각석비 방위보정, 지자극 방위각 보정, 일출 방위각 보정 등을 통해 대부분 우산도=독도 방위임을 보여 실패한 접근법. 처음부터 안 될 줄 알았지만 행여나 거짓말로 교란시켜 볼까 수준의 걍해본 소리로 판명남.
다케시마뽕들의 페이버릿 2A: 독도는 조선동극지 130도 xx분 밖이라는 주장 -- 소위 동극지가 두만강 하구를 동극지점으로 경도 측정한 결과라서 독도 경위도를 염두에 둔 판단과 무관.
다케시마뽕들의 페이버릿 2B: 조선동극지가 울릉도라는 주장 -- 일찍이 1907 장지연 대한신지지에서 우산도는 경위도 알려진 울릉도의 동남방이라 선언; 무인도를 열외로 다루어 예언적으로 처발린 논리라 울릉도 경위도가 무엇이건 그보다 동남방이므로 무한대 정의처럼 선험적으로 무한히 처발린 논리.
다케시마뽕들의 페이버릿 2C: 대한지지, 대한신지지 조선전도 등에 울릉도 주변도서까지만 나오고 독도가 안 나왔다 -- 소축척 지도이므로 표시 불가능한 무인도는 지도 상에 안 나타남. 역시 축척대로 나타낸 현대 지도의 정의 상 선험적으로 안통하는 논리.
1877년의 태정관지령문 죽도외일도가 울릉도 외 죽도/관음도라고 주장 -- 태정관 지령문 부속 서류 유래의 개략과 기죽도약도에서 죽도외일도가 울릉도와 독도임이 선명하게 드러나므로 실패한 논리.
1884년의 태정관지령문 (ver 2)가 송도(일명죽도)조선칭울릉도라 하여 송도가 울릉도라 주장 -- 1882년부터 일본인들이 에도기의 지명을 까먹고 울릉도=송도라고 부르기 시작한 걸 조선정부에게 떠넘기는 전도된 논리라서 또 실패. 이런 혼란은 북택정성의 죽도고증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해서 오히려 일본이 도해금지로 에도기의 울릉도=죽도, 우산도(독도)=송도를 완전히 망각했던 사정을 드러냈을 뿐.
아르고낫 경위도 측정오류 및 이를 수용한 지볼트 지도의 오류때문에 지명에 혼란이 왔다는 주장 -- 사후에 지도 상에서 발생한 지명 혼란이 사전에 수립된 울릉도=죽도, 우산도=송도의 조일 간 합의된 국제영토질서를 변경시킨다는 주장은 시간 선후를 전도한 시대착오의 오류로서 다시 실패.
대개 이런 부류의 조선 사료의 빈틈을 찾아서 교란/약화를 기도하는 허망한 딴지걸기 시도에 불과할 뿐, 본질적인 주제문이 없는 일본의 주장이 한국의 독도주권을 붕괴시킬 가능성은 대략 0%에 수렴.
기타 안용복 쟁계문헌,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변례집요 등의 문구에서 모순되어 보이거나 일관성에 흠결을 줄수 있을 성싶은 만만한 문구를 색색이 밑줄그어가며 도배질해 대는데 대개 문구를 오해했든가 조일 간 지명의 혼란을 악의적으로 곡해했든가 죽도를 우산도라고 봤던 일부 예외적 기록을 제기할 뿐, 이미 교정됐거나 교정 중인 낡은 구설을 아무리 붙잡고 늘어져봐야 1690년대 조일간 합의되었던 공통의 이해에 기반한 국제간 합의 사항을 후대의 지명 혼란으로 교란할 수 없는 무익한 기도로 돌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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