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동극 130도35분 두만강하구 -> 독도 배제했단 뜻일까? 검증해보자
조선이 대륙에 붙은 두만강 하구라는 동극점을 무인도 암초까지 포함하는 조선 동해 도서 동극지로 왜곡한 속임수에 속지 말자
진실없는 성급한 화해 따위는 필요없다--게으른 지식인에게 상주기 경계해야
이덕일의 친일파 비판글을 우연히 접하였다. 충격적인 지적에 쉽게 수긍하기마저 껄끄러웠다. "내 눈으로 실견하기 전에는 함부로 동조하지 말자"고 거듭 스스로 다짐했다.
관련 기사: "박유하 세종대 일어일문학과 교수가 2005년 쓴 ‘화해를 위해서’가 뒤늦게 논란이 되고 있다. 자기실현을 위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는 것을 바란 조선인 징용자가 있고 독도를 일본과 공유하자는 내용의 책이 2006년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우수교양 도서로 지정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이 책은 국가 예산으로 학교, 복지시설 등에 배포됐다."
http://www.hankookilbo.com/v/0b72c2b43ac04f47889767571fbd1930
한 한가람연구소 게재 논문에서는 이 문제를 한층 정밀하게 추적하여 구체적인 지적을 보니 더 이상 관망할 성질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발적인 일 개인의 비의도적 실수가 아니라 사전 계획 하에 정밀하게 구사된 신경외과 수술 급 경상 프로파간다의 구사에 불과하였음이 의심되었다. 이자가 속한 집단 속에선 그저 다반사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관련 논문: 일본의 독도 침략 논리와 국내 학계의 추종 -이른바‘시마네현(島根縣) 고시 제40호의 실체와 박유하의 독도 주장을 중심으로-. 신운용(한국외국어대학교). 한민족과 역사 2015년 가을호. pp. 28-47
http://historyin.org/wordpress/wp-content/uploads/2015/11/일본의-독도-침략-논리와-국내-학계의-추종_신운용.pdf
구글 북스에 올라온 공개된 글에 보니 과연 현채의 1899년 대한지지 원전을 안 읽고 일본의 왜곡 프로파간다물을 옮긴 것이 의심되었다.
"1899년에 나온 자료에도 동경 130도의 울릉도를 조선 동쪽의 극한'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 화해를 위해서. 박유하. 2005.
1899년이라면 한국인이 편역한 최초의 근대적 지리서 현채의 대한지지 밖에 없다.
일부러 저자와 서명과 원문의 경도 130도 35분이라는 디테일을 감추어 반박을--내지 기만의 포착을-- 미연에 방지하고
독도 주제에 밝지 못한 문외한들일 대부분의 일반인들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속았는지도 모르고 속도록 공교롭게 쓴 고도의 계획적 속임수라는 간계마저 포착된다.
젊은 나이에 어려운 일본유학행을 하여 난득의 학위까지 취득하신 분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그저 혀를 찰 뿐이다.
그러나 1899년 현채 대한지지의 현실은 어땠을까?
정말 그랬을까? 실사구시적으로 알아보자.
결론적으로 그런 문구는 없다.
반도국 ... 동경 130도 35분에 이른다는 1권 모두의 구절을 130도로 얼버무리면서 문구에 없는 울릉도 문자를 다른 곳에서 끌어와 삽입하여 날조한 문구가 명백하다.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으나 "동북 한 모퉁이는 두만강을 두고 러시아 령 우수리에 접하고"가 나온다. 다른 지리서에서는 두만강 하구로 나오는 한반도 동극지이다.
다음은 조선반도의 동극지점인 두만강 하구를 동경 130도 35(±5)분으로 기술한 국내외 지리서 목록이다.
울릉도의 경도는 동경 130도 40분에서 50분대에 미치므로 이분 말대로라면 1899년 현채의 대한지지는 울릉도마저 누락한 셈이다.
황성신문 기사에 따르면 대한지지에 왈 "울릉도는 고우산국이라"하였다. 이 말에서 신경준의 동국문헌비고 여지고 문구, "두 섬은 다 우산국 땅이다"가 시사되었을 수 있다.
어쩌면 현채는 울릉도 우산도가 조선령임은 알았지만 근대적 의미의 경위도까지에는 밝지 못하였을 수 있다.
그러므로 당장 러시아에게 빼앗길 위기에 놓인 북방영토만이라도 분명하게 경위도를 밝힌 것이 아니었을까?
현채 대한지지가 언급한 적이 없는 울릉도의 경도, 현채 대한지지의 조선반도 동극지점인 두만강 하구의 동경 경도에서조차 벗어난 울릉도를
상상으로 읽어서 책을 쓰실 정도로 신통하신 분은 책을 써서 세상을 거짓으로 교화할 수 있어 범인에게나 요구되는 자격을 초월하여 상급도 저술도 불필요하신 신선이라고 본다.
아래에는 대표로 1907년 발간의 한국총람(韓國總覽)에 실린 한반도의 네 끝 지점을를 예로 들고 나머지는 목록만 남긴다.
이로써 기초 독서를 건너뛰고 대중적 프로파간다물에 탐닉하는 비학구적 행동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모험인지 알 수 있다.
이런 작품을 쓰신 분에게 국가가 올바른 길로 선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상급을 드린다는 말은 담당 공직자께서도 이 분과 마찬가지로
기초 독서 없이 독도침탈 프로파간다에 젖은 친일파 사이비 학자('다케시마 장학생' 즉 대한민국 정부에 잠입하여 뿌리내린 고정간첩)임을 의심케 한다.
https://ko.wikipedia.org/wiki/대한지지
(2) 1876年 瀬脇寿人「鶏林事略」 130度35分
http://farm3.static.flickr.com/2348/2456952650_bcec987380_o.jpg
환영수로지寰瀛水路誌(1883), <환영수로지寰瀛水路誌>의 조선국의 범위를 기록한 부분입니다. 조선의 범위는 '북위 33도 15분에서 동서12도 25분, 동경 124도 20분에서 동경 130도 35분에 이른다 <대한지지>의 조선의 동단과 일치
http://mblogthumb2.phinf.naver.net/20140421_157/kskimpak_1398081500975MX4UE_JPEG/ȯ.jpg?type=w2
환영수로지寰瀛水路誌(1886)
(5) 1887年 小松運「朝鮮八道誌」 130度35分
http://kindai.ndl.go.jp/BIImgFrame.php?JP_NUM=40010318&VOL_NUM=00000&KOMA=10&ITYPE=0
(6) 1889年 英国百科事典「チェンバーズ百科事典(Chambers' encyclopaedia)」新版 第3巻 p.476 130度30分☆
http://www.pref.shimane.lg.jp/soumu/web-takeshima/takeshima08/2007/record200902.html
(11) 1894年 岩崎茂吉「朝鮮地理圖」 130度35分
http://kindai.ndl.go.jp/BIImgFrame.php?JP_NUM=40011021&VOL_NUM=00000&KOMA=4&ITYPE=0
(13) 1894年 林正「新撰朝鮮国地図」 130度35分
http://kindai.ndl.go.jp/BIImgFrame.php?JP_NUM=40010953&VOL_NUM=00000&KOMA=7&ITYPE=0
(14) 1894年 大田才次郎「新撰朝鮮地理誌」 130度35分
http://www.geocities.jp/tanaka_kunitaka/takeshima/chosenchirishi-1894/08.jpg
(15) 1894年 水路部(現・水産庁)「朝鮮水路誌」 130度35分 울릉도를 마쓰시마[松島], 독도를 리앙코루도열암으로 기술
http://www.geocities.jp/tanaka_kunitaka/takeshima/hydrograph1894/1894-3s.jpg
(16) 1894年 足立栗園「朝鮮志」 130度36分
http://kindai.ndl.go.jp/BIImgFrame.php?JP_NUM=40010294&VOL_NUM=00000&KOMA=6&ITYPE=0
(17) 1894年~1897年 イザベラ・バード「朝鮮紀行」 130度33分☆
http://www.archive.org/stream/koreaandherneig02birdgoog#page/n28/mode/1up
(18) 1894年 秋山四郎「外国地誌」 130度40分
http://kindai.ndl.go.jp/BIImgFrame.php?JP_NUM=40005746&VOL_NUM=00000&KOMA=16&ITYPE=0
1899 조선수로지
(20) 1899年 玄采「大韓地誌」 130度35分★ 울릉도는 고우산국이라
http://www.pref.shimane.lg.jp/soumu/web-takeshima/takeshima08/2007/record_20070910.data/1.JPG
(21) 1899年 岩崎重三「新式万国地理」 130度35分
http://kindai.ndl.go.jp/BIImgFrame.php?JP_NUM=40005867&VOL_NUM=00000&KOMA=24&ITYPE=0
(22) 1900年 山上万次郎「新撰大地誌 前編(世界之部)」 130度35分
http://kindai.ndl.go.jp/BIImgFrame.php?JP_NUM=40005873&VOL_NUM=00001&KOMA=50&ITYPE=0
(23) 1901年 恒屋盛服「朝鮮開化史」 130度35分
http://www.geocities.jp/tanaka_kunitaka/takeshima/enlightened-1901/05.jpg
(24) 1901年 玄采「大韓地誌」 130度35分
http://dokdo-or-takeshima.blogspot.com/2007/10/1901-daehanjiji-map-of-gangwondo.html
(26) 1902年 武田鶯塘「新撰世界地理問答」 130度40分
http://kindai.ndl.go.jp/BIImgFrame.php?JP_NUM=40005951&VOL_NUM=00000&KOMA=26&ITYPE=0
(27) 1903年 葛生修吉「韓海通漁指針」 130度35分
http://kindai.ndl.go.jp/BIImgFrame.php?JP_NUM=40034152&VOL_NUM=00000&KOMA=40&ITYPE=0
(28) 1903年 農商務省山林局「韓国森林視察復命書」 130度35分
http://kindai.ndl.go.jp/BIImgFrame.php?JP_NUM=40063553&VOL_NUM=00000&KOMA=20&ITYPE=0
(30) 1904年 岩永重華「最新韓国実業指針」 130度35分
http://www.geocities.jp/tanaka_kunitaka/takeshima/businessguide-1904/08.jpg
(31) 1904年 山本庫太郎「朝鮮移住案内」 130度35分
http://kindai.ndl.go.jp/BIImgFrame.php?JP_NUM=40033107&VOL_NUM=00000&KOMA=14&ITYPE=0
(32) 1905年 岡部福蔵「日本民族の新發展場萬韓露領地誌」 130度35分
http://kindai.ndl.go.jp/BIImgFrame.php?JP_NUM=40010538&VOL_NUM=00000&KOMA=12&ITYPE=0
(35) 1906年 農商務省水産局「韓国水産業調査報告」 130度35分
http://kindai.ndl.go.jp/BIImgFrame.php?JP_NUM=40034159&VOL_NUM=00000&KOMA=48&ITYPE=0
(36) 1906年 張志淵など『大韓自強会月報』第三号(光武十年七月一日発刊) 130度35分
http://farm6.static.flickr.com/5279/5882180336_0e2cf00817.jpg
tp://p.tl/ZHGz
(37) 1906年 玄采「大韓地誌」 130度35分
http://farm4.static.flickr.com/3259/2855703334_e7e81d38cb_b.jpg
(40) 1907年 徳永勲美「韓国総攬」 130度35分
http://www.lib.hokudai.ac.jp/cgi-bin/hoppodb/record.cgi?id=0E010338000000000
(41) 1907年 小林杖吉「外国地理表解」 130度35分
http://kindai.ndl.go.jp/BIImgFrame.php?JP_NUM=41019026&VOL_NUM=00000&KOMA=20&ITYPE=0
(50) 1909年 鄭寅琥「最新高等大韓地誌」 130度35分
http://search.i815.or.kr/ImageViewer/ImageViewer.jsp?tid=co&id=3-005112-000 (7/150)
(51) 1909年 「大韓協会会報第12号‘地誌’」 130度35分
http://db.history.go.kr/url.jsp?ID=ma_02_012_0170
http://s04.megalodon.jp/2008-0403-1948-19/db.history.go.kr/url.jsp?ID=ma_02_012_0170 [cache]
(52) 1910年 野口保興「韓国南満洲」 130度38分
http://kindai.ndl.go.jp/BIImgFrame.php?JP_NUM=40010251&VOL_NUM=00000&KOMA=8&ITYPE=0
1912 Очеркъ Кореи 130度35分/130度40分. 다쥴레. 양코.
결론 : 친일파는 존재한다. 그들이 단지 재일 유학기간 중에 일본인의 친절에 감동하여 조국을 배신한 빚 갚는 중의 '다케시마 장학생'이건,
현재 일본이나 한국에서 학비를 지원받는 현직 '다케시마 장학생'이건 아니면 아예 한국말을 익혀 잠입하여 뿌리내린 일본의 고정간첩 푸락치건 간에
그들은 우리 한국인 가운데 안착하여 암약 중이다.
그들이 그럴싸하게 보이는 자료를 제시하며 마치도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자 보시다시피 독도는 한국인이 한 번도 한국 영토로 간주한 적이 없습니다'와 같은 말로
예의 바르게 그러나 거침없이 주장할 때 만약 그대가 원전을 확인하고 정말 그런지 세밀하게 따져보지 않는다면 그대는 아마도 속아넘어갈 것이다.
국제정치의 장에선 이자들에게 학술적 정직이란 단지 사치스러운 옵션으로서 방해물일 뿐이며
우선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기만 교란 선공 날려 쟁취한 후 역사 교과서는 승리자의 입장에서 아무렇게나 정리하면 된다는 초개인적 가치기준이 작동한다.
(어디선가 많이 보아온 장면 아닌가?)
겉으로는 친절하고 상냥하고 후하게 대접하며 얼핏 보기에 합리적으로 꾸며 행동하는 가식적인 겉모습--교언영색--에 속지 마시길.
원숭이년들이 박유하를 어찌 볼 것인지 궁금타.
다케시마 셀의 주한 지부장이나 알바비 지급하는 총책 쯤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