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광무4년1900칙령41호보다 4 개월 늦은 흑룡회 신발견섬 오보
고종광무4년1900년 10월 25일 칙령41호(아래는 10월 27일 자 관보본)보다 130일 늦은 흑룡회의 독도 신발견섬 오인지 및 오보 기사 모음.
오보라는 증거는 여럿이겠지만 아직껏 천하의 지도 상에 나타난 적이 없다는 주장만으로도 이미 허위임이 드러난다.
소위 일본과 한국의 어부들이 양코(yanko)라고 부른다는 사실부터가 프랑스 함선 Les Rochelles du Liancourt 의 Liancourt 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조차
은폐한 뻔뻔스러운 거짓 보도임을 알 수 있다.
한때 일본 지리학계에서 양코가 일본어 어원이라는 주장도 제기됐었는데 이 주장은 일본의 다른 지리학자가 논파하여 양코나 비슷한 타마고시마(卵島)
지명이 일본어 유래가 아님을 입증한 바 있다. 덧붙인다면 타마고시마(卵島)는 에도기의 울릉도 쟁계 기간 중에 출현했던 우산도(于山島)/자산도(子山島)
에 이어 이를 조선사서 동국통감을 보고 교정한 우산도(芋山島)의 토란 우(芋) 자에서 토란(土蘭/土卵)의 일본어 타로(taro)나 달걀 단(蛋) 새알 란(卵)의
번안 차용 지명으로 볼 수 있다. -- 참조 : 죽도고증.
프랑스의 배 리앙쿠르(Liancourt)호가 독도를 발견한 것은 1849년 1월 27일
동해안에서 고래잡이를 하던 프랑스의 배 리앙쿠르(Liancourt)호가 독도를 발견한 것은 1849년 1월 27일이었다. 리앙쿠르 호는 361톤의 포경선이었고,
선장은 갈로르트 드 수자(Galorte De Souza), 일명 장 로페즈(Jean Lopez)였다. 장 로페즈 선장은 귀항 후 1850년 4월 19일에 해군성 소속 해양 경찰
당국에 항해 보고서(일지)를 제출하였다. 독도에 대한 부분은 이곳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당시 해군 제독인 인사국장이 직감적으로 이를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 해도국장에게 공문을 보내 독도의 존재를 알렸다.
" 1849년〔조선조 철종1년-지은이〕 1월24일 나는 대한해협 한 가운데 있는 쓰시마 북쪽을 통과한 후, 다줄레 섬〔울릉도-지은이〕으로 향했다.
1월27일, 나는 다줄레 섬이 북동 1/2북 방향으로 바라보이는 위치에 있었다. 그때 동쪽에 큰 암석(roche) 하나가 있었다. 이 암석은
어떤 지도와 책자에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이 암석의 위치는 북위37도2분, 동경131도46분이었다. " -- 이진명, 독도, 그 지리상의 재발견, 삼인, 2005
이 문서를 통해 독도는 서양인들에게 최초로 공식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공문을 받은 해도국은 해도국 수로과가 발간하는『수로지』(Annales hydro-
graphiques, 2eme semestre 1850, 제4권, 1851년 간행)에 그대로 수록했다. 또한 다음 해(1851년) 발간한「태평양전도」에 독도의 정확한 위치를
기재했다. 이 태평양전도에는 울릉도가 마쓰시마로, 독도가 리앙쿠르암(Rocher du Liancourt)으로 표시되어 있다. 인사국장의 문서, 수로지 제4권, 그리고
태평양 전도를 통해 독도는 그 정확한 위치와 명칭이 최초로 서양인들에게 알려지고 공식화된 것이다.
-- '리아쿠르 호의 발견과 프랑스 수로지의 기록'. 국립중앙도서관.
<1851 프랑스 해군의 1851년판 <태평양전도>. 사상 처음으로 독도가 서구식 해도에 등장 'Rocher du Liancourt' (리앙쿠르 암)이라는 명칭으로 정확한 좌표에 표시>
이미 한국인이 발견했고 영국인도 발견했고 프랑스인도 발견했고 러시아인도 발견했고 미국인도 발견해서 각국 지도 혹은 국제 해도에 오른 지가 오랜 독도가 어찌 천하의 지도에 오르지 않았을까?
이 주장만으로도 흑룡회의 보도는 비의도적 오보를 넘어 작정하고 저지른 계획적 허위 보도임이 드러난다.
이래도 음모론으로 몰 것인가? 흑룡회 보도는 진실한 기사이기는 커녕 오보도 아니고 허위보도였다.
한편 고종칙령으로부터 흑룡회 오보까지의 기간도 흥미로움
광무4 년 고종칙령 41호 반포 : 1900년 10월 27일 (관보본)
흑룡회의 소위 신발견섬 오보 : 1901년 3월 10일
기간 : 약 0년 4개월 10일 -- 약 130일에 이르는 이 기간이 일본 정부/어용단체가 독도(당시 이름 석도/고지명 우산도, 송도)를 신발견으로 홍보한 후 적절한 기회를 틈타 몰래 편입 절차를 밟자는 음모를 구상한 기간이었으리라.
가상적 대화 : " 조선이 경위도도 없이 전근대적 방식으로 반포한 칙령41호를 극복할 묘안을 제출해 주세요. 우선 국제 해도상에 없는 무인도 섬이라고 발표했다가 슬쩍 편입시켜 버리면 어떨까요? 좋은 생각이네요. 국제법에 만고불변의 법칙이란 게 어디 있나요? 그저 묘책을 부려서 잠시 속여넘겨 영토화한 후 시간을 지내며 굳혀보는 겁니다. 실패해도 잃을 건 없는 땅따먹기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마음편히 묘안을 짜서 제출해 주시면 감사는 말뿐이고 덴노 황제 폐하의 비자금에서 은전을 베풀어 주시지 않을까요? 그렇게 하려면 기존의 공개된 국제해도 상의 정보와 충돌하면 수포로 돌아기고 입장도 곤란해지기 때문에 신발견 섬이되 경위도는 밝히지 않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거리 관계도 애매하게 말해서 만에 하나 발각될 경우 체면 잃지 않고 빠져나갈 탈출경로도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걸 해외 언론사에게 배포할 때 가급적 친일 성향이 입증된 편집장이나 뇌물 공여 경력이 좀 든든한 기자로 선정해서 이왕이면 대대적으로 국제 사회의 공인을 얻는 겁니다. 만에 하나 폭로성 기사라도 나올 듯하다 보시면 저렴하게 때우려 마시고 초반에 확 금전 내지 미인계로 때려눕힌다는 각오로 임해주시면 좋겠어요. 만약 매수되지 않는 기자나 언론사가 있다면 국제 야쿠자 조직을 통해서 쥐도새도 모르게 처리하는 깔끔한 클리너 조직을 가동시켜 주시고요. 가급적이면 교통사고사나 우을증 약물중독 마약과용 등으로 인한 사고사가 좋겠고요, 만약 독극물 투여라는 극단적 극딜 상황이라면 엄지발가락과 둘째 발가락 사이에 검시관이 탐지하기 어렵도록 미세 주사바늘을 써 줄 것을 당부합니다. 云云 "
자료는 독도다케시마 브로구스뽀또의 게리 비버스 제공. 아리갓또우 비바스 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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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March 1901 Article from the Black Dragon Society public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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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ing information page from the 10 March 1901 Black Dragon Society public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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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April 1901 Article from "The Japan 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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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April 1901 Article from the "San-in Shimb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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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May 1901 Article from "The Long Island Farmer," Jamaica, New Yo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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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June 1901 Article from the "Straits Times," Singap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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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July 1901 Article from "The Pacific Commercial Advertiser," Honolulu |
아래는 위 흑룡회 1901년 3월 10일 오보의 국역 기사
제국신문 1901년 4월 1일 보도
<1851 프랑스 해군의 1851년판 <태평양전도>. 사상 처음으로 독도가 서구식 해도에 등장 'Rocher du Liancourt' (리앙쿠르 암)이라는 명칭으로 정확한 좌표에 표시>
이미 남의 나라 땅인지가 늦어도 세종 이래 350 여 년인데 어떻게 일본에서 얻을 수 있었겠는가?
국가의 주권 행사 의지도 없었고 (1877년 태정관 지령 알지?)
영토의 타국 점령의 형적도 역력가견인데 어떻게 얻어요? (세종실록에서 증보문헌비고에 이르는 지방행정구역과 고지명과 신지명, 1690년대 울릉도 쟁계문헌에 따른 해금령, 1900칙령이 있죠. 홍재현 진술도 있고요. 이게 모두 형적임.)
단순 오보이므로 국제법 상 오류에 의한 무효임. 1969년 비엔나협정 제 48조 오류 조항 참조
http://link.springer.com/chapter/10.1007/978-3-642-19291-3_51#page-1









고종의 정식 군현 편제 보다 1년 늦은 신발견 (편입도 아니고 말이지)
안용복 실명씨 박동지 장한상의 답사 내지 관측 보다 208 년 늦은 발견.
세종실록 지리지보다 347년 늦은 발견.
도대체 이런 소위 신발견 오보가 가진 국제법적 효력은 무엇일까? 휴지조가리임
흑룡회 요즘 지켜보고 있음....